[기후 위기] 비 한 방울 없었는데 산이 무너졌다 … 네팔 덮친 ‘빙하 재앙’, 12년 전 경고가 현실로

정진욱 발행일 2026-08-31 10:23:26
- 히말라야 빙하·암석 1200m 아래로 추락 … 강 막은 천연댐 붕괴하며 30분 만에 수위 9m 상승
- 네팔·티베트서 600명 이상 사망·수천 명 실종 … EBS가 2014년 경고한 ‘빙하 쓰나미’ 재조명
- 폭우 없어도 홍수 나는 시대 … 온난화가 얼음과 영구동토로 붙어 있던 산의 기반까지 흔들어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거대한 홍수가 산골 마을을 집어삼켰다. 하늘이 아니라 산에서 물과 흙, 바위, 얼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수천 년 동안 히말라야 고산지대를 지탱하던 빙하와 암반이 무너지면서 계곡은 순식간에 거대한 흙탕물의 통로로 변했다.

지난 26일 오전 네팔 중북부 라수와 지역과 중국 티베트 지룽현 접경에서 발생한 대재앙은 기존의 ‘폭우 뒤 홍수’라는 재난 상식을 뒤집었다. 당시 피해 지역 상공은 대체로 맑았고 대홍수를 일으킬 만한 집중호우도 관측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보테코시강과 트리슐리강의 수위는 불과 30분 만에 최대 9m가량 치솟았다.


▲ 히말라야 빙하 붕괴, 네팔 구조 현장(사진출처=AI ChatGPT 생성)


29일 외신과 현지 당국 집계를 종합하면 네팔에서 최소 626명, 티베트에서 7명이 숨졌으며 실종자는 양쪽 지역을 합쳐 약 3000명에 이른다. 

사망·실종자 집계가 계속 변하고 있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재민과 긴급 지원이 필요한 주민도 9만 명을 넘어섰다. 도로와 교량, 학교, 병원, 수력발전 시설까지 광범위하게 파괴되면서 구조와 구호 활동도 난항을 겪고 있다. 


‘지진 홍수’에서 ‘빙하·암석 붕괴’로

사고 직후에는 티베트 지역에서 감지된 지진이 빙하를 무너뜨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위성영상과 지진파를 다시 분석한 전문가들은 지진이 원인이 아니라 빙하와 암석이 무너지면서 발생한 충격이 지진처럼 관측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위성영상에는 해발 약 5200m 지점의 빙하 일부가 떨어져 나가 약 1200m 아래 계곡으로 추락한 흔적이 포착됐다.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암석과 토사를 끌고 내려오면서 ‘얼음·암석 눈사태’를 만들었고, 이 잔해가 강을 막아 일종의 천연댐을 형성한 것으로 분석된다.

뒤에서 불어난 강물이 이 임시 댐을 무너뜨리자 얼음과 바위, 진흙, 물이 뒤섞인 대규모 토석류가 좁은 계곡을 따라 폭발적으로 내려갔다. 일반 홍수보다 밀도와 파괴력이 훨씬 큰 흐름이었다. 물만 밀려온 것이 아니라 산의 일부가 통째로 이동한 셈이다.

로이터통신 분석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사고 당일 이례적으로 높은 기온에 따른 빠른 눈·얼음 융해가 붕괴 규모를 키웠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다만 특정 빙하의 붕괴를 기후변화 하나만으로 단정하려면 현장조사와 장기 기후자료 분석이 더 필요하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은 ‘빙하 붕괴→얼음·암석 눈사태→강 차단→천연댐 붕괴→돌발홍수’로 이어진 복합재난의 윤곽이다. 


12년 전 EBS가 경고한 ‘빙하 쓰나미’

이번 참사 이후 2014년 방송된 EBS 다큐멘터리 ‘하나뿐인 지구-히말라야의 대재앙, 빙하 쓰나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당시 제작진은 에베레스트 인근 해발 약 5000m의 임자 빙하호를 찾아갔다. 50여 년 전 작은 연못에 불과했던 곳이 빙하가 녹으면서 길이 2.3㎞, 너비 580m, 수심 100m에 이르는 거대한 호수로 변한 현장을 보여줬다.

프로그램은 빙하호를 막고 있는 불안정한 흙과 돌의 자연제방이 무너지면 막대한 물과 토사가 하류를 덮치는 ‘빙하호 범람홍수(GLOF)’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산악통합개발센터 관계자는 당시 네팔 히말라야의 빙하호 가운데 21개가 잠재적 위험성을 지닌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EBS가 다룬 재난과 이번 사고를 동일한 사건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당시 다큐멘터리는 주로 팽창한 빙하호의 자연제방이 무너지는 재난을 경고했지만, 이번 사고는 빙하와 암석 자체가 계곡으로 붕괴해 강을 막은 뒤 그 천연댐이 터진 것으로 추정된다.

발생 방식은 다르지만 두 사건을 관통하는 핵심은 같다. 기후변화로 히말라야의 얼음 환경, 즉 ‘빙권’ 전체가 빠르게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12년 전 경고는 특정 날짜와 장소를 맞힌 예언이라기보다, 온난화로 축적된 위험이 언젠가 대재앙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과학적 경고였다.


만년설은 왜 비가 오지 않아도 무너졌나

빙하는 단순히 산 위에 쌓인 눈이 아니다. 압축된 얼음이 중력에 따라 매우 천천히 이동하는 거대한 자연 구조물이다. 빙하는 경사면과 암석을 붙잡고, 얼어 있는 지반과 영구동토는 산악지대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

기온이 오르면 빙하 표면뿐 아니라 내부와 바닥에도 녹은 물이 스며든다. 이 물은 빙하와 암반 사이의 마찰력을 낮춰 얼음의 이동을 빠르게 만들 수 있다.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는 암석의 균열은 점점 넓어지고 영구동토가 녹으면 암벽을 붙잡던 힘도 약해진다.

이 상태에서는 집중호우가 없어도 급격한 기온 상승이나 눈·얼음의 융해, 빙하 내부 압력 변화, 작은 낙석 등이 대규모 붕괴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 폭우는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문제는 위험의 연쇄성이다.

빙하가 무너지면 눈사태로 끝나지 않는다. 얼음과 암석이 강을 막고, 새 호수를 만들고, 그 호수가 다시 터지면서 하류를 덮친다. 산사태가 도로와 통신망을 끊으면 구조가 늦어지고, 식수·위생 시설이 파괴되면 감염병 위험까지 커진다. 하나의 기후 충격이 홍수와 산사태, 고립, 식수난, 에너지 공급 중단으로 번지는 ‘재난의 도미노’다.

AP통신은 현재 사고 현장 상류에도 얼음과 토사가 강을 막아 형성된 새로운 호수들이 남아 있다. 수백만㎥의 물을 가둔 것으로 추정되는 호수가 다시 무너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구조대와 하류 주민에게 2차 대피 경보가 내려졌다. 


히말라야 빙하, 10년 사이 소실 속도 65% 빨라져

이번 참사를 우연한 산악사고로만 보기 어려운 배경에는 히말라야 전역에서 관측되는 급격한 빙하 감소가 있다.

국제산악통합개발센터(ICIMOD)에 따르면 힌두쿠시·히말라야 지역의 빙하 소실 속도는 2011∼2020년 이전 10년보다 65% 빨라졌다. 현재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 경로가 계속되면 이 지역 빙하는 2100년까지 현재 부피의 최대 80%를 잃을 수 있다. 홍수와 산사태 같은 산악재난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세계기상기구(WMO) 아시아 기후 보고서는 고산아시아에서 관측한 빙하 24곳 가운데 23곳이 2023∼2024년 질량을 잃었다고 밝혔다. 겨울철 적설 감소와 여름철 극심한 고온이 빙하 손실을 가속한 것으로 분석됐다.

히말라야는 남극과 북극에 이어 지구에서 가장 많은 얼음을 보유해 ‘제3의 극지’로 불린다. 이곳에서 발원하는 강은 남아시아와 동아시아 약 19억 명의 식수와 농업·발전용수를 뒷받침한다.

단기적으로는 빙하가 빠르게 녹아 홍수와 빙하호 붕괴 위험이 커진다. 장기적으로 빙하가 줄어들면 건기에 공급되는 물이 감소해 식수·농업·에너지 위기로 이어진다. 지금은 물이 너무 많아 재난이 발생하지만, 미래에는 물이 부족해지는 이중 위기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산악국가가 떠안는 기후위기의 불평등

네팔의 세계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극히 작다. 그러나 기후변화 피해는 가장 가혹하게 받고 있다. 가파른 산악지형과 좁은 계곡에 마을과 도로, 수력발전소가 밀집해 있고, 고가의 위성·레이더·지진계·수위계와 통신망을 촘촘하게 구축하기도 어렵다.

위험한 빙하와 빙하호를 모두 실시간 감시하려면 국경을 넘는 자료 공유도 필수적이다. 이번처럼 위험이 티베트에서 시작돼 네팔로 내려오는 경우 중국 측 위성·수문·지진 정보가 수분 안에 전달돼야 한다. 강은 국경을 따르지 않지만 재난정보는 여전히 국경에 막혀 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복구가 아니다. 위험 빙하와 암벽의 위성 감시, 계곡 상류 지진·음향센서와 수위계 설치, 하류 마을의 사이렌·휴대전화 경보, 고지대 대피로와 대피소 확보가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수력발전소와 교량도 과거 강수량이 아니라 빙하 붕괴와 토석류까지 반영한 새로운 위험 기준으로 설계해야 한다.

선진국은 온실가스 감축과 함께 네팔 같은 취약국의 조기경보·재난 대응에 필요한 기후재원을 부담해야 한다. 기후위기를 만든 책임은 불균등한데 피해와 복구비용을 재난 당사국에만 떠넘기는 것은 또 다른 불평등이다.


기자의 시선 "산이 보내온 경고, 지금은 생명을 구할 시간"

12년 전 EBS가 전한 경고가 오늘 다시 소환되는 이유는 방송이 미래를 정확히 예언했기 때문이 아니다. 과학이 오래전부터 위험의 방향을 알렸지만 세계가 충분히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년설’이라는 이름은 얼음이 영원히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다. 지구 평균기온이 오를수록 산을 지탱하던 얼음과 영구동토가 풀리고, 과거에는 안정적이던 경사면이 어느 순간 붕괴할 수 있다. 이제 폭우가 없었다는 사실은 안심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기후위기는 하늘뿐 아니라 산과 바다, 얼어붙은 땅속에서도 시작된다.

인류는 네팔 참사를 먼 나라에서 일어난 특이한 자연재해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온실가스 감축을 미룰수록 극지와 고산지대에 축적된 위험은 더 크고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되돌아온다. 지구촌 기후위기를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감축과 적응을 동시에 서둘러야 할 때다.

그러나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원인 논쟁이나 책임 공방이 아니다. 실종자의 생존 가능성이 남아 있는 시간 동안 모든 역량을 수색과 구조에 집중해야 한다. 

끊어진 도로와 통신을 복구하고 고립된 주민에게 식수·의약품·식량과 임시 거처를 제공해야 한다. 상류에 남은 천연댐과 빙하를 실시간으로 감시해 구조대와 주민이 2차 재난에 희생되는 일도 막아야 한다.

국경과 정치적 이해를 넘어 위성자료와 구조기술, 헬기, 수색견, 의료진, 신원확인 장비를 신속하게 지원해야 한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지금,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한 안전한 구조와 빈틈없는 현장 지원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각성과 행동은 바로 그 생명을 지키는 일에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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