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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생활공해] '냄새 공해' 악취만이 아니다. 원치 않는 냄새가 일상 침범
    환경

    [생활공해] '냄새 공해' 악취만이 아니다. 원치 않는 냄새가 일상 침범

    보이지 않지만 피할 수 없는 후각 공해도 생활환경 문제 서울시도 악취 관리…“좋은 냄새도 과하면 누군가에겐 불편”
    [데일리환경=정민오 기자] 아침 출근길 집에서 나서자마자 엘리베이터에서 불쾌한 냄새가 기분을 망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지하철에서 갑자기 강한 향수 냄새가 밀려오기도 한다. 점심시간 음식점 골목을 지나면 각종 음식물 냄새가 뒤섞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앞에서 걷는 행인의 담배 연기 냄새,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불쾌한 냄새 등이 코를 찌르기도 한다.냄새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소음처럼 데시벨로 쉽게 측정하기도 어렵고, 빛처럼 밝기를 숫자로 표시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한번 맡기 시작하면 피하기 어렵고 일상에 미치는 불편은 상당하다.이 때문에 최근에는 악취뿐 아니라 일상에서 원치 않는 냄새에 노출되는 상황을 통칭해 '냄새 공해'라는 표현도 등장하고 있다.냄새는 보이지 않지만 생활을 침범한다환경 분야에서 관리하는 대표적인 냄새 문제는 '악취'다. 악취는 하수도, 음식물, 폐기물, 사업장 등 다양한 배출원에서 발생할 수 있다.특히 도심에서는 공장 같은 대규모 시설보다 일상생활과 가까운 곳에서 발생하는 생활악취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음식점의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냄새나 하수관로, 정화조 등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대표적이다.서울시 역시 악취를 시민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생활환경 문제로 보고 관리하고 있다. 올해 서울시는 악취배출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공공환경시설과 악취 우려 사업장 등 약 700곳을 대상으로 하절기 집중점검을 진행하고 있다.여름철에는 기온이 높아지면서 냄새 문제가 더욱 민감해진다. 음식물이나 유기물이 부패하기 쉬워지고 하수관이나 정화조 등에서도 냄새가 발생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좋을 수 있는 냄새'도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냄새 공해의 흥미로운 지점은 반드시 불쾌한 냄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담배 냄새나 하수구 냄새처럼 누구나 악취라고 생각할 만한 냄새가 있는 반면, 향수나 섬유유연제, 방향제처럼 일반적으로 '좋은 향'으로 여겨지는 냄새도 있다.문제는 냄새에 대한 감각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누군가에게는 은은한 향수 냄새가 기분 좋은 향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강한 자극으로 느껴질 수 있다. 좁은 엘리베이터나 만원 지하철처럼 환기가 제한된 공간에서는 향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특히 향수를 한 번 뿌리는 것과 여러 번 뿌리는 것, 개인 공간에서 사용하는 것과 밀폐된 공공장소에서 사용하는 것은 같은 향이라도 체감이 크게 달라진다.결국 중요한 것은 '향이 좋은가 나쁜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선택권이 있는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특히 음식점이나 공연장, 교통수단, 엘리베이터 등에서 향수를 뿌리는 행동은 법으로 정하기 이전의 문제다. 악취는 '불쾌함'까지 숫자로 담기는 어렵다냄새가 환경문제로 관리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소음은 소리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고 빛은 밝기를 측정할 수 있지만 냄새는 사람의 후각과 주관적인 느낌이 개입한다.같은 냄새라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강도가 다를 수 있고, 냄새의 종류와 노출 시간, 주변 환경에 따라서도 체감이 달라진다.실제로 서울시는 과거 생활악취 관리 과정에서 악취에 대한 판단에는 주관성이 많이 반영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법적 규제 대상이 아닌 생활악취까지 별도로 관리해왔다.때문에 냄새 문제는 단순히 '냄새가 난다'는 민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발생원을 찾아내고, 반복적으로 발생하는지 확인하며, 필요한 경우 측정과 저감시설 설치 등으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음식점·하수구 등 생활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도시에서 냄새 공해를 만드는 원인은 생각보다 다양하다.직화구이 음식점에서 발생하는 조리 냄새, 하수관과 빗물받이에서 올라오는 냄새, 음식물 쓰레기와 폐기물에서 발생하는 냄새, 사업장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냄새 등이 대표적이다.서울시는 직화구이 음식점 등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악취저감시설 설치와 유지관리 비용을 지원하는 정책도 시행해왔다. 실제 방지시설 설치 이후 주변 주민들의 악취 체감이 줄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이는 냄새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예민함으로 치부할 사안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내가 괜찮으면 괜찮다'는 생각부터 바꿔야냄새 공해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생활방식이 다른 사람의 생활공간까지 침범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특히 엘리베이터, 지하철, 사무실, 병원, 공연장처럼 사람들이 가까이 모이는 공간에서는 한 사람의 냄새가 수십 명에게 동시에 전달될 수 있다.결국 냄새 공해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기술과 규제만이 아니다.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냄새가 다른 사람에게도 편안할 것이라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도시가 더 쾌적한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소리와 빛뿐 아니라 우리가 매일 무심코 흘려보내는 '냄새' 역시 하나의 후각 공해의 생활 환경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정민오 기자 dailyt@naver.com
    2026-08-12 16:24:17 정민오
  • [생활공해] '시각 공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시를 뒤덮은 전광판과 조명
    환경

    [생활공해] '시각 공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시를 뒤덮은 전광판과 조명

    밤에는 빛공해, 낮에는 시각공해…LED 전광판·간판 늘며 눈 쉴 틈 없는 도시 서울시도 전광판 밝기 기준 마련…'더 밝게'보다 '필요한 만큼'의 도시환경 필요
    [데일리환경=정민오 기자] 밤이 되면 도시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대신 오히려 더 화려해진다. 건물 외벽을 가득 채운 LED 전광판과 상가 간판, 가로등과 아파트 조명이 거리를 밝힌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외부 조명 때문에 집 안에서도 완전한 어둠을 경험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낮이라고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출근길과 퇴근길 거리 곳곳에서 간판과 현수막, 대형 광고판, 디지털 사이니지가 시야를 채운다.도시의 편리함과 활기를 위해 만들어진 빛과 광고가 어느 순간부터 사람의 눈과 생활공간을 침범하는 '환경공해'가 되고 있다. 바로 빛공해와 시각공해다. 밤에도 꺼지지 않는 도시의 불빛빛공해는 필요 이상으로 밝거나 원치 않는 인공조명이 사람이나 생태계에 피해를 주는 현상을 말한다.대표적인 것이 주거지역으로 들어오는 외부 조명이다. 아파트 맞은편 상가의 간판이나 건물 외벽 조명, 주차장과 도로의 조명 등이 밤늦게까지 켜져 있으면 집 안까지 빛이 들어올 수 있다.특히 LED 조명의 확산과 대형 전광판의 증가로 도시의 밤은 과거보다 훨씬 밝아졌다. 문제는 단순히 '눈이 부시다'는 불편에 그치지 않는다.밤에 지나치게 강한 빛에 노출되면 수면 환경이 방해받을 수 있고, 생체리듬을 교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람에게 밤은 본래 어두워져야 하는 시간이지만 도시의 인공조명은 밤과 낮의 경계를 점점 흐리고 있다.서울시가 올해로 20회째 빛공해 공모전을 열며 시민들에게 생활 속 빛공해 문제를 알리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서울시는 빛공해를 줄이고 시민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좋은 빛'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눈을 뜨면 또 다른 공해가 시작된다빛공해가 주로 '밤의 문제'라면 시각공해는 시간대를 가리지 않는다.거리를 걷다 보면 크고 작은 간판이 건물 외벽을 채우고, 도로변에는 각종 광고물과 현수막이 늘어서 있다. 여기에 대형 LED 전광판과 디지털 사이니지가 더해지면서 도시의 시각 정보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광고가 많다는 사실 자체를 공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 더 눈에 띄기 위해 크기를 키우고, 더 밝게 만들고, 움직이는 화면을 사용하는 광고가 늘면서 도시 공간 자체가 거대한 광고판처럼 변하고 있다는 지적은 가능하다.특히 디지털 전광판은 기존의 정적인 간판과 다르다. 화면이 움직이고 색이 바뀌며 밝기도 크게 달라진다. 보행자는 물론 운전자 입장에서도 시야를 끌어당기는 자극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결국 빛공해와 시각공해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는 셈이다.'더 밝게' 경쟁하는 전광판…서울시도 기준 마련실제로 서울시는 올해 대형 옥외전광판의 밝기를 관리하기 위한 별도의 기준을 마련했다.서울시는 지난 2026년 3월 전국 최초로 옥외전광판의 주·야간 빛 밝기 권고기준을 마련하고 4월부터 적용했다. 30㎡ 이상의 전광판을 대상으로 주간 밝기를 7,000cd/㎡ 이하로 권고하고, 야간에는 표시면적과 시간대에 따라 기준을 세분화했다.서울시가 주요 전광판 52곳을 실측한 결과 주간 전광판의 상위 평균 밝기는 약 10,000cd/㎡ 수준이었다. 서울시는 밝기를 낮추면 시민의 시각적 피로를 줄이는 동시에 전력 사용량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실제 관리 중인 전광판 가운데 일부는 밝기를 낮추는 조치도 진행됐다. 서울시는 4월에만 주간 46개, 야간 40개 전광판의 밝기를 기존보다 낮췄다고 밝힌바 있다.도시의 밤에는 어둠도 필요하다도시에서 빛을 없앨 수는 없다. 가로등과 건물 조명은 안전을 위해 필요하고, 상점과 기업의 광고 역시 도시 경제의 중요한 요소다.문제는 필요와 과잉의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인가다.모든 공간을 밝히는 것이 안전한 도시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광고를 크게 만드는 것이 활력 있는 도시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곳에는 적절한 빛을 사용하고, 불필요한 빛은 줄이며, 거리의 시각적 정보 역시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쾌적한 도시환경에 가까울 수 있다.결국 좋은 도시의 조건은 얼마나 밝고 화려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편안하게 보고, 걷고, 쉴 수 있는가​에 있을지도 모른다.소음공해가 귀를 쉬게 하지 못하고, 냄새공해가 코를 괴롭힌다면 빛공해와 시각공해는 눈을 쉬지 못하게 한다.도시는 점점 더 밝아지고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그만큼 사람의 눈이 쉴 수 있는 공간과 밤의 어둠을 되돌려주는 일도 고민해야 할 때다.정민오 기자 dailyt@naver.com
    2026-08-12 16:24:01 정민오
  • 폭염 지나갔는데 물이 없다…남부권 덮친 ‘늦여름 가뭄’ 비상
    환경

    폭염 지나갔는데 물이 없다…남부권 덮친 ‘늦여름 가뭄’ 비상

    48개 시·군 기상가뭄…남부권 중심으로 농업용수 부족 현실화 최근 6개월 강수량 평년의 82.3%…8~9월에도 비 적을 전망
    [데일리환경=정민오 기자] 한때 40도를 넘나들던 폭염이 한풀 꺾였다. 하지만 더위가 물러난 자리에는 또 다른 기후위기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는 '물 부족'이다.8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남부권을 중심으로 가뭄이 장기화되고 있다. 폭염 기간 강한 증발이 이어진 데다 충분한 비까지 내리지 않으면서 농업용수 부족을 비롯한 물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부산과 경남 김해, 울산 울주 등에서는 가뭄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최근 6개월 누적 강수량은 평년의 82.3%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적으로도 48개 시·군에서 기상가뭄이 발생한 가운데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가뭄 상황이 두드러지고 있다.비가 적은 데다 폭염까지…물 부족 더 키웠다가뭄의 직접적인 원인은 강수량 부족이다. 하지만 올해 상황은 단순히 '비가 적게 온 해'로만 설명하기 어렵다.기온이 크게 오르면서 토양과 수면에서 수분이 빠르게 증발했고, 농작물의 물 수요 역시 증가했다.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는 상황에서 폭염까지 겹치면서 이미 확보된 수자원이 빠르게 소진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실제로 경남 지역 농업용 저수율은 39.6%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운문댐은 가뭄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에 들어갔고, 밀양댐과 섬진강댐도 '경계' 단계에 놓이는 등 수자원 관리에도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농촌에서는 가뭄이 곧바로 생계와 연결된다. 논과 밭에 공급할 물이 부족해지면 농작물 생육이 떨어지고, 가뭄이 장기화할 경우 생산량 감소와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더 걱정되는 것은 '앞으로'다문제는 당장 비가 내리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도 가뭄을 해소할 만큼 충분한 비가 내릴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정부 전망에 따르면 8월 강수량은 평년과 비슷한 수준이 예상되지만, 9월에는 평년보다 적은 강수량이 전망되고 있다. 이미 누적된 강수량 부족을 감안하면 짧은 기간의 비만으로 가뭄이 완전히 해소되기 어려울 수 있다.지난 7월 정부가 발표한 가뭄 예·경보에서도 최근 6개월 전국 누적 강수량은 평년의 83.6% 수준에 머물렀다. 당시에도 부산·대구·인천 등을 포함한 53개 지역에서 기상가뭄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당초 기상청은 올해 여름철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6~7월 강수량은 평년보다 많고 8월은 평년과 비슷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 지역별 강수 편차가 커지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폭염과 가뭄이 동시에 나타나는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다. '폭염 다음 가뭄'이 보여주는 기후위기폭염이 끝나면 곧바로 선선한 날씨와 장마 같은 ‘정상적인 여름’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기후위기의 모습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폭염으로 물이 빠르게 증발하고, 비가 내리더라도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 정작 가뭄 지역의 수자원 확보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짧은 시간에 집중되는 호우와 장기간 이어지는 가뭄이 번갈아 나타나는 극단적인 날씨가 반복될수록 물 관리 역시 더욱 어려워진다.환경 전문가들은 가뭄을 단순히 '비가 안 오는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강수량뿐 아니라 기온, 증발량, 토양 수분, 저수지 저수율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고 지역별 물 수요에 맞춘 선제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폭염이 한풀 꺾였다고 해서 올여름의 기후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뜨거운 공기가 물러난 자리에서 마른 땅과 낮아진 저수지가 또 다른 경고음을 내고 있다.올여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기온계의 숫자만이 아니다. 얼마나 비가 왔는지, 그리고 그 비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 물로 남았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할 시점이다.정민오 기자 dailyt@naver.com
    2026-08-12 14:52:32 정민오
  • [ESG 정책 소개] 장례식장 일회용 접시가 사라진다 … 서울시가 바꾸는 새로운 장례문화
    환경

    [ESG 정책 소개] 장례식장 일회용 접시가 사라진다 … 서울시가 바꾸는 새로운 장례문화

    서울의 장례식장에서 익숙했던 일회용 밥그릇과 국그릇, 접시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서울시가 장례식장을 생활 속 자원순환 정책의 새로운 현장으로 선택하면서다.서울시가 2026년 5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장례식장에서 한 해 배출되는 일회용품 쓰레기는 약 3억7천만 개, 2,300톤 규모다. 특히 국내에서 사용되는 일회용 접시 가운데 약 20%가 장례식장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서울시는 소개했다. 장례식장이 환경정책의 대상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짧은 시간에 많은 조문객에게 음식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인용 상차림만 해도 약 20개의 일회용품이 한 번 사용된 뒤 버려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밥그릇부터 물잔까지 다시 쓴다서울시의 방식은 단순히 일회용 접시 몇 개를 줄이는 수준이 아니다.서울시는 2023년 서울의료원을 시작으로 장례식장 다회용기 사업을 확대해 왔다. 밥그릇과 국그릇, 반찬그릇뿐 아니라 수저와 젓가락, 물잔, 식탁보 등까지 다회용품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2026년 서울시 자료에는 서울의료원·서울동부병원·서울보라매병원·삼성서울병원·중앙보훈병원에 이어 연세대 신촌장례식장까지 도입 장례식장으로 소개돼 있다.시민 입장에서 생각하면 어렵지 않다. 조문객이 식사를 한 뒤 그릇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대신 회수하고, 세척·살균해 다시 사용하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다.서울시의 사업계획에서도 상주는 조문객에게 다회용기로 음식을 제공하고, 장례식장은 사용·회수를 위한 공간과 운영체계를 마련하며, 다회용기 사업자는 용기 대여와 세척·회수·재공급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나누고 있다.실제 쓰레기는 얼마나 줄었나눈여겨볼 부분은 실제 감축 실적이다.서울시가 2026년 5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장례식장 다회용기 사용은 2023년 약 20만9천 개에서 2024년 약 54만4천 개, 2025년에는 약 160만5천 개로 증가했다.같은 기간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빈소도 2023년 9개에서 2024년 26개, 2025년 51개로 늘었다. 서울시는 그동안 약 236만 명분의 식사가 다회용기로 제공돼 약 618톤의 일회용 쓰레기를 감축한 것으로 집계했다.특히 서울의료원과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다회용기 도입 후 일반폐기물이 약 70~80% 감소했다고 서울시는 밝혔다. 2026년 7월 서울시가 종합병원 30곳의 탄소중립 활동을 평가한 자료에서도 장례식장 다회용기 도입 등을 통해 일반폐기물을 최대 80% 감량한 사례가 확인됐다.왜 하필 장례식장일까장례식장은 일반 식당과 상황이 다르다. 언제 몇 명의 조문객이 방문할지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고 짧은 시간에 많은 음식을 제공해야 한다. 일회용품은 이런 상황에서 편리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장례식장의 일반적인 식사문화로 자리 잡았다.하지만 바로 그 특성 때문에 다회용기로 전환했을 때 폐기물 감축 효과도 크게 나타날 수 있다.서울시 정책이 흥미로운 지점도 여기에 있다. 시민에게 일회용품을 쓰지 말라고 요구하는 방식보다 일회용품이 대량으로 사용되는 장소의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위생은 괜찮을까시민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문제는 위생이다.다회용기는 단순히 사용한 그릇을 다시 내놓는 방식이 아니다. 서울시 사업 구조상 사용한 식기를 회수한 뒤 전문적인 세척 과정을 거쳐 다시 공급하는 체계가 전제된다. 서울시도 사업 추진 과정에서 식기 세척·물류 비용과 현장 운영 인력 등을 지원 대상으로 두고 있다.따라서 정책이 확대될수록 중요한 것은 '다회용인가 일회용인가'만이 아니다. 세척·살균 기준과 운송·보관 과정이 제대로 관리되는지 시민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것이 정책 정착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장례문화도 친환경으로 바뀔 수 있을까서울시의 장례식장 다회용기 정책은 거창한 첨단 환경기술과는 거리가 있다. 기존에 한 번 쓰고 버렸던 그릇을 회수해 다시 사용하는 비교적 단순한 방식이다.하지만 시민 생활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작지 않다. 카페에서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처럼 장례식에서도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는다면 일회용품 감축의 범위가 일상생활에서 관혼상제 영역까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서울시 역시 2026년 장례식장뿐 아니라 배달음식, 경기·행사 등 일회용품 사용이 많은 생활영역을 다회용 체계로 전환하는 정책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결국 이 정책의 성패는 '친환경 장례식장 몇 곳을 만들었느냐'보다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장례문화가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적인 선택으로 자리 잡느냐에 달려 있다.환경정책이 시민에게 불편과 희생을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서비스를 유지하면서 폐기물을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서울시 장례식장 다회용기 사업은 지켜볼 만한 생활밀착형 환경정책이다.기자의 시선장례식장에서 환경을 생각하자는 이야기가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시 자료대로 한 해 전국 장례식장에서 버려지는 일회용품이 3억7천만 개에 달한다면 더 이상 작은 문제가 아니다.특히 주목할 부분은 조문객 개인의 실천에 의존하지 않고 장례식장과 공급·회수·세척 시스템 자체를 바꾼다는 점이다. 환경정책이 오래 지속되려면 시민에게 계속 '하지 말라'고 요구하기보다 친환경적인 선택이 더 자연스럽고 편리하도록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다만 확대 과정에서는 위생관리와 세척에 필요한 물·에너지,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부담까지 함께 살펴 실제 환경효과를 지속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친환경이라는 이름 자체보다 일회용품 사용과 폐기물, 탄소배출을 실제로 얼마나 줄였는지가 정책을 평가하는 기준이 돼야 한다.
    2026-08-12 11:19:58 안영준
  • 1억7000만원 과징금 맞고도 “협력업체 일”…한국콜마 책임론
    사회

    1억7000만원 과징금 맞고도 “협력업체 일”…한국콜마 책임론

    연우 협력업체, 질소화합물 연소물질 대기 배출
    한국콜마 계열사 연우의 협력업체가 대기 중에 질소화합물 계열 연소물질을 배출해 인천광역시로부터 1억7000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한국콜마 측은 “협력업체에서 발생한 일”이라며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거액의 환경 관련 행정처분에도 원청이 협력업체를 앞세워 책임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2일 관련업계와 인천시 등에 따르면 인천 서해구 소재 연우 협력업체는 지난 6월 질소화합물 계열 연소물질을 대기 중으로 배출한 사실이 적발돼 인천시로부터 1억7000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시 대기환경과 관계자는 "연우 협력업체가 배출한 연소물질이 기준치인 150 ppm을 초과했다"고 설명했다.이번 사안은 단순히 한 협력업체의 환경법규 위반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업체가 한국콜마 계열사인 연우의 생산 과정과 연관된 협력업체이기 때문이다.연우는 화장품 용기 등을 생산하는 업체로 한국콜마그룹의 주요 계열사다. 한국콜마가 연우를 통해 화장품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만큼 연우의 생산망에서 발생하는 환경·안전 문제 역시 그룹 차원의 관리 대상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한국콜마측은 이번 사안에 대해 협력업체의 일이라는 입장이다. 회사 홍보팀의 문정원팀장은 "법적으로 직접적인 행정처분 대상이 협력업체인 만큼 한국콜마가 별도의 공식 입장을 낼 사안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다.문제는 과징금 규모가 1억7000만원에 달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경미한 관리상 실수로 치부하기에는 상당한 금액이다. 대기오염물질 배출과 관련해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처분까지 내려진 만큼 해당 사업장의 환경관리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특히 대기오염물질은 사업자 간 계약관계와 무관하게 주변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협력업체가 배출한 오염물질이라고 해서 연우나 한국콜마와 완전히 무관한 문제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최근 기업들은 협력업체를 포함한 공급망 전체의 환경·안전 관리 수준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보고 있다. ESG 경영을 강조하는 대기업일수록 협력업체에 대한 환경관리 기준을 마련하고 정기적인 점검을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한 재계 관계자는 “협력업체가 법적으로 독립된 회사라는 것과 원청의 관리 책임은 별개의 문제”라며 “대기업과 생산 과정이 연결된 협력업체에서 환경 문제가 발생했다면 원청 차원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이번 사안에서 확인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연우가 해당 협력업체에 대기오염물질 관리 기준을 제시했는지, 배출시설에 대한 정기적인 점검을 실시했는지, 시의 처분 이전에 관련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는지 등이 대표적이다.만약 원청 차원의 관리·감독이 충분하지 않았다면 단순히 협력업체가 저지른 일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논란을 잠재우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되는 모습이다.
    2026-08-12 11:19:13 이정윤
  • [이수영의 IT 칼럼] AI 시대, 장애인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인권/복지

    [이수영의 IT 칼럼] AI 시대, 장애인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 장애인의 삶이 데이터가 되는 시대, 자기결정권을 다시 묻다
    내가 병원에서 진료받은 기록은 누구의 것인가? 내가 받은 복지서비스의 기록은 누구의 것인가? 내가 사용하는 보조기기의 사용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AI가 그 데이터를 학습해 나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면, 그 정보는 누구의 것인가? AI 시대 장애인권을 이야기하면서 이제 이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장애인의 삶은 이미 수많은 데이터로 기록되고 있다. 복지서비스를 이용하면 복지데이터가 만들어진다. 병원과 재활기관을 이용하면 의료·재활 데이터가 축적된다. 보조공학기기를 사용하면 사용자의 움직임과 이용 패턴이 기록될 수 있다. 웨어러블 기기는 건강과 활동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한다. AI 기반 재활이나 의사소통 서비스가 확대되면 장애인의 행동과 음성, 표현 방식까지 데이터가 된다.문제는 데이터가 많아졌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장애인의 삶을 데이터로 바라볼 수 있게 된 만큼, 그 데이터를 누가 통제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권리의 문제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과거 장애인 정책의 중요한 질문이 “장애인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였다면, AI 시대에는 여기에 하나의 질문이 더해져야 한다. 그 서비스를 위해 수집된 장애인의 데이터에 대해 당사자는 어떤 권리를 갖는가? 장애인 데이터는 정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측면이 있다. 어떤 장애인이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는지 알아야 정책의 부족한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지역별 장애인 인구와 서비스 이용 현황을 분석해야 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할 수 있다. AI를 활용하면 이러한 분석은 훨씬 정교해질 수 있다. 개인의 건강상태와 복지서비스 이용 이력, 생활환경 등을 분석해 필요한 서비스를 예측하거나 재활 프로그램을 추천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AI가 장애인 복지를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긍정적인 모습이다.그러나 데이터가 ‘정책을 참고하기 위한 정보’에서 ‘개인을 판단하기 위한 정보’로 바뀌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AI가 과거의 복지서비스 이용 기록을 분석해 특정 장애인의 서비스 필요도를 판단한다고 생각해보자. AI의 판단이 활동지원 서비스의 제공량이나 복지서비스 추천에 영향을 미친다면, 데이터는 더 이상 단순한 행정정보가 아니다. 데이터가 장애인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의 근거가 된다.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과거에 특정 복지서비스를 많이 이용했다는 데이터가 있다고 하자. AI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향후에도 해당 서비스가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다. 반대로 특정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필요성이 낮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인간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은 이유가 필요하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지만,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신청 절차가 복잡했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경제적·사회적 환경 때문에 이용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데이터에 나타나지 않는 삶이 존재한다. AI가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도 그 데이터에 기록되지 않은 경험과 선택까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그리고 그때부터 질문은 개인정보 보호를 넘어선다. “내 데이터가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는가?”만이 아니라, “내 데이터가 나에 대한 판단을 만드는 데 사용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장애인 데이터의 문제는 ‘개인정보’에서 끝나지 않는다. 장애와 관련된 데이터는 본질적으로 민감하다. 장애 유형과 정도, 의료정보, 재활정보, 정신건강 관련 정보, 의사소통 특성, 일상생활 수행 능력 등은 단순한 숫자나 행정정보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삶을 설명하는 정보다. 더구나 AI 시대에는 개별 데이터보다 데이터의 결합이 더 중요해진다. 복지서비스 이용 기록에 의료정보가 결합되고, 여기에 이동 데이터와 웨어러블 데이터가 연결되면 AI는 개인의 생활패턴이나 건강상태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더 나아가 당사자가 직접 제공하지 않은 정보까지 데이터로부터 추론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기존의 개인정보 보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데이터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뿐 아니라, AI가 그 데이터로부터 무엇을 새롭게 알아내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 사람이 자신의 건강상태를 직접 입력하지 않았더라도 여러 데이터를 통해 AI가 특정 질환이나 위험 가능성을 추론할 수 있다. 장애인이 직접 자신의 경제적 상황이나 생활환경을 설명하지 않았더라도 데이터 결합을 통해 상당 부분 추정될 수 있다. 즉, AI 시대의 데이터는 단순히 ‘내가 제공한 정보’가 아니다. 데이터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정보까지 권리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그렇다면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에 동의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그렇지 않다. AI 시대에는 데이터가 처음 수집될 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복지서비스를 받기 위해 제공한 데이터가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 연구를 위해 활용된 데이터가 AI 시스템 개발에 사용될 수도 있다. AI 개발 과정에서 사용된 데이터가 다른 데이터와 결합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활용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익적 연구와 기술 발전을 위해 데이터 활용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 어디까지 보장되는가라고 할 수 있다.EU에서 개인정보 처리의 투명성과 정보주체의 권리를 강조하고, 고위험 AI에 대한 위험관리와 인간의 감독 등을 요구하는 것도 결국 기술의 효율성만으로 인간의 권리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경우에는 여기에 하나의 조건이 더 필요하다. 정보를 이해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접근성이다. 장애인에게 수십 페이지의 복잡한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제공한 뒤 “동의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자기결정권이 보장됐다고 할 수 있을까. 동의할 수 있는 형식적 기회와 실제로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다르다. 따라서 AI 시대 장애인의 데이터 자기결정권은 단순히 ‘동의권’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알 권리, 설명받을 권리, 선택할 권리, 필요한 경우 거부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권리, 그리고 자신의 데이터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권리까지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그렇다고 장애인 데이터를 무조건 적게 수집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가서는 안 된다. 오히려 데이터가 없으면 또 다른 차별이 생긴다. 여기에서 장애인 데이터 정책의 어려운 역설이 발생한다. 데이터를 많이 모으면 개인정보와 권리 침해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그렇다고 장애인 데이터를 지나치게 배제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장애인의 데이터가 부족하면 AI가 장애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음성인식 AI가 비장애인의 음성을 중심으로 학습한다면 장애인의 음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의 이용 환경이 데이터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면 AI 서비스는 시각장애인에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발달장애인의 의사소통 특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AI라면 그들의 의사와 욕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결국 장애인 데이터에는 매우 어려운 역설이 존재한다. 데이터를 과도하게 수집하면 권리가 침해될 수 있지만,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AI에서 장애인이 다시 배제될 수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데이터의 양을 둘러싼 단순한 논쟁이 아니다. 어떤 데이터를, 왜, 누구의 참여 아래, 어떤 보호장치를 가지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다. 바로, 장애인의 데이터에 관한 결정 과정에 장애인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장애인 데이터를 수집하고, 기업이 AI 서비스를 개발하고, 연구기관이 데이터를 분석한다고 하면서 정작 데이터의 주체인 장애인은 그 과정에서 빠져 있다면 문제가 있다.장애인은 단순한 데이터 제공자가 아니다. 데이터 활용의 영향을 직접 받는 당사자다. 따라서 어떤 데이터를 수집할 것인지, 어떤 목적으로 활용할 것인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 어떤 보호장치가 필요한지를 결정하는 과정에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단체, 그리고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의견을 들어주는 것”과 다르다.데이터 거버넌스 자체에 장애인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문제다. UN 장애인권리협약(CRPD)이 장애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장애인의 참여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와 데이터의 시대라고 해서 이 원칙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이 복잡해질수록 당사자의 참여는 더 중요해진다.장애인 데이터 정책에서 흔히 발생하는 두 가지 극단이 있다. 하나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데이터 활용 자체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AI 발전과 공익을 이유로 데이터 활용을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이다. 둘 다 충분한 답이 되기 어렵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보호와 활용의 균형이다.장애인의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도 필요한 연구와 기술 개발에는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AI가 장애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는 확보하되, 목적을 벗어난 무분별한 활용은 막아야 한다. 데이터를 활용할 경우에도 누가 접근하고 어떤 알고리즘에 사용되는지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장애인의 권리가 침해될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결국 데이터 거버넌스의 핵심은 “데이터를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데이터를 활용하면서도 장애인의 권리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다.대한민국은 AI와 디지털 행정 분야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앞으로 AI가 복지·의료·재활·행정서비스에 더욱 깊숙이 들어간다면 장애인 데이터의 중요성은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장애인 데이터에 관한 명확한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장애인이 자신의 데이터가 어떻게 수집·활용되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AI 학습이나 자동화된 의사결정에 활용되는 경우 그 사실과 목적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데이터 결합과 AI 분석으로 인해 차별이나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넷째, 장애인 당사자가 데이터 정책과 AI 거버넌스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데이터가 부족해서 장애인이 AI 서비스에서 배제되는 문제 역시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출발점에는 장애인의 권리가 있어야 한다.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장애인의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이 질문에 “정부의 것이다”, “기업의 것이다”, “데이터를 수집한 기관의 것이다”라고 단순하게 답할 수는 없다. 법적으로 데이터의 권리관계는 데이터의 종류와 수집·처리 방식에 따라 복잡하게 달라진다. 그러나 AI 시대에 우리가 분명하게 지켜야 할 원칙은 있다. 장애인의 삶에서 생성된 데이터가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데이터는 장애인의 삶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AI는 장애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더 잘 제공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데이터는 새로운 보조공학을 만들고, 더 나은 재활기술을 개발하고, 장애인의 자립과 사회참여를 확대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장애인이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린다면 기술 발전의 의미는 달라진다.장애인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과 장애인을 데이터로만 바라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AI 시대에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장애인의 데이터 권리를 보장하면서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는 국가다. 장애인이 자신의 데이터에 대해 알고, 이해하고, 참여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AI 시대 장애인의 데이터 보호 거버넌스이자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8-11 17:17:05 이수영 칼럼니스트
  • [기자수첩] 입주 1년 반, 송도 럭스오션SK뷰 아파트 테라스 떨어져 나가…입주민 불안
    사회

    [기자수첩] 입주 1년 반, 송도 럭스오션SK뷰 아파트 테라스 떨어져 나가…입주민 불안

    시공사 SK에코플랜트 “해댕 세대뿐 아니라 전체 안전 점검 실시 및 보상안 협의”
    입주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은 인천 송도의 한 신축 아파트의 외벽 테라스가 무너져 내려 입주민들이 큰 불안에 떨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일 오전 6시 2분경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럭스오션SK뷰 한 동의 2층 외벽에 설치된 테라스 구조물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이른 아침에 발생한 사고로 다행히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으며, 해당 세대는 분양은 완료했으나 아직 입주하지 않아 공실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SK에코플랜트가 시공한 송도 럭스오션SK뷰는 지난해 2월 준공돼 같은 해 3월부터 입주를 시작한 단지로 준공 후 약 1년 6개월 만에 이런 사고가 발생해 현재 입주민들은 추가 피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사고 원인 조사와 별도로 전 가구 점검을 진행하기로 했다. SK에코플랜트 관계자는 “입주자대표위원회와 협의해 사고 원인 등을 철저히 규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해당 세대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안전 점검을 진행할 수도 있으며 보상 등에 대해서도 협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부동산 정보 사이트 ‘호갱노노’ 등에는 이번 사고와 관련하여 안전성에 대한 문의와 계약 해지 여부를 묻는 글이 다수 게시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 글쓴이는 “현재 해당 아파트 미분양 테라스 세대 계약자다. 오늘 잔금일이었는데 무서워서 못 살겠다고 잔금 납부 못한다고 계약 해지를 요청했으나 계약해지 사유가 안된다고 한다. 계약해지 소송까지 가야하냐”고 타 이용자들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설계나 시공 과정, 건물과 테라스를 연결하는 접합부, 외장 마감 등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6-08-10 20:33:55 이정윤
  • 폭염 속 건설현장 ‘멈춤이 안전’…DL이앤씨, 근로자 보호 총력
    사회

    폭염 속 건설현장 ‘멈춤이 안전’…DL이앤씨, 근로자 보호 총력

    ‘공사보다 사람 먼저’…DL이앤씨, 폭염 현장 작업관리 강화
    연일 이어지는 폭염이 건설현장 근로자의 안전을 위협하면서 건설사들의 혹서기 대응도 강화되고 있다.DL이앤씨는 전국 건설현장을 대상으로 냉방 휴게시설과 이동형 보건버스를 운영하고 체감온도에 따라 작업시간을 조정하는 등 폭염 대응체계를 가동하고 있다고 10일 밝혔다. 특히 IoT 기반 체감온도 측정과 본사 종합안전관제시스템까지 연결해 폭염 상황을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단순 휴게시설 제공에서 한 단계 확장된 대응으로 평가된다.다만 산업안전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제도가 얼마나 잘 마련돼 있느냐보다 실제 작업 현장에서 휴식과 작업중지가 제대로 지켜지는지 여부다.DL이앤씨 박상신 대표이사는 지난 1일 천안 성성 현장을 방문해 폭염 대응 실태를 점검하고 현장 관계자들에게 안전수칙 준수를 당부했다. ‘물 한 병’ 넘어 휴식공간 확보가 핵심 DL이앤씨는 전국 모든 현장에 냉방이 가능한 휴게공간을 운영하고 정수기와 냉동고, 얼음 생수 등을 상시 비치하고 있다. 고정식 휴게실 설치가 어렵거나 야외 작업 비중이 높은 현장에는 이동형 휴게시설인 ‘보건버스’ 15대를 배치했다.울릉공항과 고속국도 제29호선 세종포천선 안성~구리 제4공구, 송도 11-1공구 등이 대표적인 운영 현장이다. 보건버스에는 얼음물과 포도당, 아이스박스 등을 갖추고 보건관리자가 직접 탑승해 근로자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선풍기가 부착된 조끼와 쿨스카프, 쿨토시 등 냉방용품도 제공한다. 고령자와 기저질환자 등 상대적으로 온열질환 위험이 높은 근로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건강관리도 실시한다.건설현장에서 폭염 대응이 중요한 이유는 작업 자체가 대부분 외부 환경에 직접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특히 철근·콘크리트·토목 작업이 이뤄지는 현장은 햇볕뿐 아니라 달궈진 구조물에서 발생하는 복사열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일반적인 기온만으로 작업 위험도를 판단하기 어렵다.결국 단순히 생수나 냉방용품을 지급하는 것을 넘어 작업자가 실제 몸을 식힐 수 있는 공간과 충분한 휴식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폭염경보 때 1시간마다 15분 휴식…중대경보는 옥외작업 중단 DL이앤씨는 폭염 상황을 관심·주의보·경보·중대경보 등 4단계로 구분해 작업을 관리한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지면 2시간마다 20분 이상의 휴식을 실시하고, 폭염경보 단계에서는 1시간마다 15분 이상의 휴식을 의무화한다.폭염중대경보가 발령될 경우에는 모든 옥외 작업을 중지한다.이 같은 작업중지 기준은 건설현장의 생산성과 공사 일정보다 근로자의 생명과 건강을 우선해야 한다는 원칙을 실제 현장 운영에 적용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그러나 현장에서는 작업 공정과 일정, 협력업체별 작업 상황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회사가 마련한 기준이 실제 개별 근로자에게까지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체감온도 35도·38도 실시간 감시 DL이앤씨가 폭염 대응에 활용하고 있는 또 다른 수단은 ‘스마트 온열질환 예방 시스템’이다. 현장에 설치한 IoT 기반 체감온도계가 작업장별 체감온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면 안전보건관리자가 이를 모니터링한다.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이면 폭염경보, 38도 이상이면 폭염중대경보를 발령하고 작업중지와 휴식 부여, 작업시간 조정 등의 조치를 시행한다.‘안전 삐삐’를 활용해 위험구역이나 대상 작업자를 신속하게 파악하는 시스템도 함께 운영한다.본사 종합안전관제상황실은 전국 건설현장의 작업환경과 기상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위험 현장을 파악해 필요한 조치를 전달한다.폭염 대응을 현장 관리자의 경험이나 판단에만 맡기지 않고 객관적인 측정값을 기반으로 대응한다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다.하지만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온도계가 위험을 알려줘도 현장에서 실제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면 스마트 안전시스템의 의미는 사라진다.전문가 시각... “휴식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휴식을 사용할 수 있는 현장문화”산업안전 전문가 관점에서 폭염 대응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체감온도의 정확한 측정, 충분한 물과 냉방공간 확보, 그리고 위험 단계에서 실제로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이다.특히 건설현장은 원청과 협력업체, 일용직 근로자 등 고용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에 ‘휴식하도록 규정했다’는 것과 ‘근로자가 실제로 쉬었다’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 있다.공사 일정이나 작업량 때문에 근로자가 휴식을 미루거나 작업중지 요구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환경이라면 제도가 있어도 효과가 떨어진다.따라서 폭염 안전관리 평가에서도 휴게실 숫자나 지급된 생수량보다 실제 휴식시간 준수율, 작업중지 사례, 근로자 이용률 등을 확인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령 근로자와 만성질환자 등 취약 근로자 관리도 중요하다.같은 온도와 작업환경이라도 개인의 나이와 건강 상태, 작업 강도에 따라 온열질환 위험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현장 보건관리자가 취약 근로자의 건강 상태를 사전에 파악하고 이상징후가 나타날 경우 즉시 작업에서 제외하는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폭염 대응 매뉴얼’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 실행력 폭염은 이제 여름철 건설현장에서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예외적인 위험으로 보기 어렵다.장기간 이어지는 고온 상황을 전제로 작업시간과 공정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건설현장의 안전관리 방식 자체가 바뀔 필요가 있다.그런 점에서 DL이앤씨가 보건버스와 체감온도 IoT 측정, 본사 관제센터 등을 운영하는 것은 건설현장의 폭염 대응을 시스템화하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그러나 폭염 안전관리의 최종 결과는 장비나 시스템의 숫자로 결정되지 않는다.가장 더운 시간에 작업을 실제로 멈추는지, 협력업체 근로자도 동일하게 휴식을 보장받는지, 근로자가 몸에 이상을 느꼈을 때 눈치를 보지 않고 현장을 벗어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건설사 입장에서는 공사기간과 비용 부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폭염 상황에서 작업속도를 유지하다 인명사고가 발생한다면 그보다 훨씬 큰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DL이앤씨 관계자는 “폭염은 근로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만큼 철저한 예방과 현장 중심의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휴게시설 운영과 작업시간 관리, 스마트 안전관리 체계를 통해 모든 근로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혔다.결국 기업의 폭염 대책은 ‘무엇을 설치했느냐’보다 ‘얼마나 멈출 수 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체감온도가 위험 수준을 넘어섰을 때 작업자가 실제로 공구를 내려놓고 쉴 수 있는 현장, 그것이 폭염 속 건설현장 안전관리의 가장 현실적인 기준이다.
    2026-08-10 11:50:29 이정윤
  • [이수영의 IT 칼럼] 과학기술 복지로 여는 대한민국, AI와 로봇으로 만드는 무장애 도시의 표준
    인권/복지

    [이수영의 IT 칼럼] 과학기술 복지로 여는 대한민국, AI와 로봇으로 만드는 무장애 도시의 표준

    “지형적 한계를 넘는 로봇과 AI 기술의 결합, 이수영이 그리는 대한민국은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과학기술 복지’의 나라입니다.”
    인공지능은 도시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자율주행 기술은 이동의 방식을 바꾸고 있으며, 로봇은 사람의 일상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만큼 우리의 도시는 모두에게 편리해지고 있을까? 누군가에게 집 앞의 계단은 단순한 계단이 아니다.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는 외출을 가로막는 벽이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는 세상과 단절되는 문턱이다. 경사가 심한 골목과 좁은 보도, 턱과 계단, 노후한 주거환경은 이동약자에게 도시 전체를 거대한 장벽으로 만든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대한민국에서 노인과 장애인의 이동 문제는 더 이상 일부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나이가 들면서 누구나 이동능력이 떨어질 수 있고, 사고나 질병으로 후천적인 장애를 경험할 수도 있다. 오늘의 이동약자를 위한 도시를 만드는 것은 결국 내일의 우리 모두를 위한 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도시는 ‘경치만 좋은 창살 없는 감옥’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장벽을 걷어내기 위해 지방자치와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혁신(STI)​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첫 번째 장벽, ‘지형’을 기술로 넘자. 우리나라는 산지가 많고, 오래된 주거지역과 골목길이 곳곳에 남아 있다. 모든 지역에 도로를 새로 만들고 기존 도시구조를 뜯어고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기술이 지형에 적응하도록 만들면 된다. 가파른 경사에서도 수평을 유지하는 모빌리티 기술과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결합한 경사지 특화 1인용 모빌리티를 개발하고 실증할 필요가 있다. 버스 등 교통수단이 접근하기 어려운 좁은 골목과 급경사 구간까지 이동할 수 있는 소형 자율주행 모빌리티가 장애인과 노인의 이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교통수단 하나를 만드는 문제가 아니다. 기존의 대중교통망이 닿지 못했던 도시의 ‘모세혈관’까지 이동 서비스를 연결하는 것이다. 교통의 사각지대를 기술로 메우는 새로운 이동권 정책이 필요하다.두 번째 장벽, ‘중력’을 낮추자. 고령자와 장애인에게 또 하나의 거대한 장벽은 중력이다. 건강한 사람에게 몇 분이면 오를 수 있는 계단도 하체 근력이 약해진 노인에게는 외출을 포기하게 만드는 높은 산이 될 수 있다. 이 문제 역시 과학기술로 접근할 수 있다. 경량형 착용형 웨어러블 로봇, 즉 ‘입는 로봇’의 공공 렌탈과 지원사업​을 시범 사업으로 적용해 확대하자. 무릎과 허리, 하체의 움직임을 보조하는 웨어러블 로봇은 장애인과 노인이 스스로 일어서고 걷고 이동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입는 로봇은 사람을 대신해 걷는 기계가 아니다. 사람에게 다시 자신의 힘을 돌려주는 ‘제2의 근육’이다.누군가에게 업히지 않고, 누군가의 부축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시장에 가고 병원에 가고 산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기술이 만들어야 할 복지의 모습이다. 과학기술 복지는 단순히 편의를 제공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장애인과 노인이 스스로 선택하고 움직일 수 있는 ‘자립의 권리’를 회복시키는 것​이어야 한다.세 번째 장벽, ‘데이터’를 과학기술로 밝히자. 이동수단과 로봇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동약자에게 외출이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길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어디에 턱이 있는지, 어느 구간이 지나가기 어려운지, 계단은 어디에 있는지, 어느 길이 가장 안전한지 알 수 없다면 외출 자체가 위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디지털 트윈 기반의 무장애 지도다. 대한민국의 주요 도시를 3D 공간으로 구현하고 도로의 경사도, 계단, 보도 폭, 턱, 경사로, 엘리베이터, 장애물 등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데이터화하자. 그리고 AI가 시민의 상황에 맞춰 최적의 이동경로를 제시하도록 하자.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계단이 없는 경로를, 고령자에게는 경사가 완만한 경로를, 시각장애인에게는 음성으로 안내되는 경로를, 보행이 어려운 시민에게는 이동지원 서비스와 연결되는 경로를 제공하는 것이다. 향후에는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스마트 안경과 웨어러블 기기, 이동 로봇까지 연결할 수 있다. 길을 잃은 항해사에게 북극성이 방향을 알려주듯, 디지털 트윈과 AI가 만들어내는 ‘디지털 북극성’이 이동약자의 길을 안내하도록 하는 것이다.과학기술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과학기술을 주로 산업 경쟁력과 경제성장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더 빠른 반도체, 더 강력한 AI, 더 정교한 로봇.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을 하나 더 던져야 한다. 과학 기술은 가장 불편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바꾸었는가?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집 앞 계단 때문에 외출하지 못하는 노인이 있고,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해 집에 머무는 장애인이 있다면 과연 우리는 그 도시를 ‘포용적인 스마트 도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진정한 스마트시티는 기술이 많은 도시가 아니다. 기술 때문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도시다.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고, 노인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으며, 아이와 임산부, 일시적으로 다친 사람까지 누구나 도시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다. 그래서 무장애는 장애인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국민의 미래를 위한 도시정책이다.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은 유모차도 지나갈 수 있다. 노인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보도는 어린아이에게도 안전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안내는 고령자에게도 유용하다. 결국 장애인을 위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과학기술 복지’의 기준을 바꾸자. 이제 복지의 표준도 달라져야 한다. 복지의 목표를 단순히 부족한 것을 보충해주는 데만 두어서는 안 된다. 기술을 통해 시민이 다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AI 돌봄이 혼자 사는 노인의 위험을 먼저 감지하고, 로봇이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의 일상을 보조하고, 디지털 트윈이 가장 안전한 이동경로를 알려주며, 자율주행 모빌리티가 교통 사각지대까지 찾아가는 사회. 이것이 바로 AI와 로봇 시대의 과학기술 복지가 될 수 있다. 기술이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오래, 더 안전하게, 더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다. 대한민국이 무장애 도시의 표준이 되자. 이제 대한민국의 도시정책은 ‘스마트시티’를 넘어 ‘Barrier-Free AI City’, 즉 AI 기반 무장애 도시를 지향해야 한다. 지역마다 지형과 인구구조는 다르지만 문제는 연결되어 있다. 고령화가 심각한 지역, 산복도로와 경사지가 많은 지역, 농어촌의 교통 취약지역, 노후 주거지가 밀집한 지역, 장애인의 이동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는 지역. 이곳에 AI와 로봇, 디지털 트윈을 결합한 새로운 도시모델을 적용할 수 있다.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그 기술을 누구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다. 가장 먼저 기술의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은 가장 편리한 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불편한 곳에 놓인 사람이어야 한다. 과학기술은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기보다 가장 낮은 곳을 비출 때 비로소 따뜻해진다. 장애인과 노인이 계단 앞에서 멈추지 않는 대한민국. 휠체어를 탄 시민이 목적지를 포기하지 않는 대한민국. 누구나 자신의 건강 상태와 관계없이 안전하게 도시를 이동할 수 있는 대한민국. AI와 로봇이 사람의 삶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지켜주는 대한민국.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진짜 스마트시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기술보다 사람이 있어야 한다.과학기술의 온기로 비추는 ‘디지털 북극성’. 그 빛이 대한민국의 모든 도시와 골목, 모든 노인과 장애인, 모든 이동약자의 일상을 비출 때, 대한민국은 비로소 무장애 도시의 세계적 표준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이 사람을 앞서가는 나라가 아니라, 기술이 가장 먼저 사람을 바라보는 나라. 필자는 그러한 꿈을 현실로 만드는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
    2026-08-10 11:04:33 이수영 칼럼니스트
  • 잘하면 돈 받고, 잘못하면 과태료 … 2026년 시민이 꼭 알아야 할 환경정책 5가지
    환경

    잘하면 돈 받고, 잘못하면 과태료 … 2026년 시민이 꼭 알아야 할 환경정책 5가지

    탄소중립이 거창한 국가정책에만 머무는 시대는 지나고 있다. 2026년 환경정책을 살펴보면 장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거나 텀블러를 사용하고, 빈 병을 반환하는 일상적 행동에도 경제적 혜택이 붙는다. 반면 쓰레기를 아무 곳에 버리거나 일회용품 규정을 위반하고, 운행제한 대상 자동차를 몰았다가는 과태료를 물 수 있다.특히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추진하는 정책 가운데 시민 생활과 직접 연결되는 제도는 ‘혜택을 주는 정책’과 ‘위반하면 비용을 부담시키는 정책’이 동시에 강화되는 모습이다. 2026년 시민이 알아둘 만한 대표적인 5가지를 정리했다. 장바구니만 써도 포인트 … 2026년 탄소중립포인트 확대시민 입장에서 가장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정책은 ‘탄소중립포인트 녹색생활 실천’이다. 2026년에는 기존 실천항목에 나무 심기, 가정용 베란다 태양광 설치, 재생원료 사용제품 구매, 장바구니 이용, 개인용기 식품 포장 등이 새롭게 추가돼 모두 17개 실천활동에 인센티브가 제공되고 있다.올해부터 고품질 재활용품 배출은 회당 100원에서 300원으로, 공유자전거 이용은 50원에서 100원으로 인상됐다. 반면 전자영수증은 100원에서 10원, 일회용컵 반환은 200원에서 100원, 다회용기 이용과 리필스테이션 이용은 각각 2,000원에서 500원으로 조정됐다. 친환경제품 구매도 1,000원에서 500원으로 낮아졌다. 포인트는 현금 계좌나 신용카드사 포인트 등 가입 시 선택한 방식으로 지급되며, 실천한 달의 다음 달 말부터 순차 지급된다. 다만 예산이 소진되면 지급이 중단될 수 있다는 점도 2026년 규정에 명시됐다.환경정책이 시민에게 ‘참아달라’는 요구에서 ‘참여하면 돌려준다’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단가가 크지는 않지만 장바구니, 공유자전거, 다회용컵처럼 매일 반복되는 행동에 보상을 연결했다는 점은 시민 참여를 끌어내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노후차는 조기폐차 지원, 운행제한 어기면 과태료자동차 소유자는 배출가스 등급을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은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나 비상저감조치 등에 따른 운행제한 대상이 될 수 있다.현행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은 자동차 운행제한 조치를 정당한 사유 없이 위반할 경우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서울시 역시 운행제한 대상인 5등급 자동차에 대해 정당한 사유 없이 제한을 위반한 소유자에게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조례에 규정하고 있다.다만 모든 5등급 차량이 언제 어디서나 단속되는 것은 아니다. 운행제한의 시행 지역과 기간, 시간, 저공해조치를 완료한 차량에 대한 예외 등이 있기 때문에 해당 지자체의 공고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은 조례상 저공해조치를 한 차량을 운행제한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따라서 오래된 경유차 소유자는 단순히 차량을 계속 운행할 것인지가 아니라 조기폐차 지원을 이용할 것인지, 저공해조치를 할 것인지까지 경제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카페·식당 일회용품 규제 … 위반하면 최대 300만원 이하카페나 음식점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이 가장 주의해야 할 환경규제 중 하나가 일회용품 사용이다.현행 자원재활용법은 집단급식소와 식품접객업, 일정 규모 이상의 숙박업과 목욕장업 등에서 일회용품의 사용을 억제하고 무상 제공을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법을 위반해 일회용품을 사용하거나 무상 제공할 경우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된다.실제 과태료는 영업장 규모와 위반 횟수에 따라 달라진다. 시행령 별표에 따르면 객실·객석 면적이 33㎡ 미만인 소규모 식품접객업은 1차 위반 5만원, 2차 10만원, 3차 이상 30만원이다. 33㎡ 이상 100㎡ 미만은 10만·30만·50만원, 100㎡ 이상 333㎡ 미만은 30만·50만·100만원, 333㎡ 이상은 50만·100만·200만원으로 높아진다. 대규모점포는 1차 100만원, 2차 200만원, 3차 이상 300만원까지 부과될 수 있다.다만 ‘일회용품을 사용하면 모두 과태료’라는 식의 해석은 주의해야 한다. 규제대상 품목과 업종, 포장·배달 여부, 예외사항 등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어떤 업종에 해당하는지와 규제대상 품목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종량제봉투 안 쓰고 버리면? 생활쓰레기 불법투기 최대 100만원 이하시민 생활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할 수 있는 환경법 위반은 쓰레기 배출이다.2026년 시행 폐기물관리법은 생활폐기물을 정해진 방법에 따르지 않고 버리거나 매립·소각한 경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생활폐기물 배출자는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정한 방법에 따라 폐기물을 배출해야 한다.여기서 ‘100만원’은 모든 쓰레기 위반에 곧바로 적용되는 금액이 아니라 법률상 상한이다. 담배꽁초나 휴지 투기, 종량제봉투 미사용, 차량을 이용한 폐기물 투기, 쓰레기 불법소각 등 구체적인 위반행위와 실제 부과금액은 시행령과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따라서 온라인에서 흔히 돌아다니는 ‘분리배출 잘못하면 무조건 과태료 몇 만원’이라는 정보만 믿어서는 안 된다. 특히 아파트와 단독주택, 상가의 재활용품 배출일과 방법은 지방자치단체별로 차이가 있어 자신이 거주하는 시·군·구의 배출기준을 확인해야 한다.소주병도 돈이다 … 빈 병 돌려주면 70~350원 환급환경정책 가운데 가장 오래됐지만 의외로 시민들이 잘 활용하지 않는 제도가 빈용기보증금이다.소주·맥주·청량음료 등 보증금 대상 제품을 구입할 때 소비자는 병 가격에 보증금을 함께 내고, 사용한 빈용기를 반환하면 그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2026년 현재 빈용기 보증금은 용량에 따라 190㎖ 미만 70원, 190㎖ 이상 400㎖ 미만 100원, 400㎖ 이상 1,000㎖ 미만 130원, 1,000㎖ 이상은 350원이다.일반적인 소주병이 100원, 맥주병 가운데 400㎖ 이상 제품은 130원인 경우가 대표적이다. 빈 병 10개를 반환하면 1,000원 안팎을 돌려받는 셈이다.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는 전국 반환소를 안내하고 있으며, 소비자가 반환한 빈용기는 수거된 뒤 세척·살균 과정을 거쳐 다시 사용된다.소매점이 정당한 사유 없이 빈용기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된다. 자원재활용법상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은 사업자는 과태료 대상이며, 시행령의 부과기준은 영업장 규모와 위반 횟수에 따라 금액을 차등 적용한다.기자의 시선 "환경정책, ‘규제’보다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가격표가 필요"2026년 환경정책의 특징은 분명하다. 탄소를 줄이고 자원을 재사용하는 행동에는 경제적 보상을 주고, 사회 전체에 환경비용을 발생시키는 행동에는 과태료를 물리는 ‘가격 신호’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문제는 제도가 너무 복잡하다는 점이다. 장바구니를 쓰면 포인트가 적립된다는 사실은 알아도 어느 매장에서 어떻게 인증해야 하는지 모르는 시민이 많고, 일회용품 역시 카페 안에서 어떤 품목이 규제되고 포장 주문에서는 무엇이 허용되는지 혼란스러운 경우가 적지 않다. 쓰레기 과태료 또한 지역과 위반유형에 따라 금액이 달라 인터넷상 잘못된 정보가 반복된다.환경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규제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민이 ‘오늘 무엇을 하면 얼마를 받을 수 있고, 무엇을 하면 얼마의 과태료를 물 수 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제도를 단순하고 명확하게 알리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탄소중립은 시민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구호만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장바구니 하나, 빈 병 한 개, 자동차 한 대의 선택이 실제 비용과 혜택으로 연결될 때 정책은 비로소 생활 속 행동으로 자리 잡는다. 2026년 환경정책이 보여주는 변화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다.
    2026-08-10 07:29:06 안영준
  • 수명 다한 자동차 타이어, 버리고 끝이 아니다…폐타이어의 '두 번째 삶'
    환경

    수명 다한 자동차 타이어, 버리고 끝이 아니다…폐타이어의 '두 번째 삶'

    고무분말·고형연료 등으로 재활용…고품질 재생원료 전환은 아직 과제 폐타이어 60% 이상 열적 활용에 머물러…타이어 마모 입자까지 새로운 환경 문제로 부상
    [데일리환경=정민오 기자] 자동차에서 수명을 다한 타이어는 어디로 갈까. 차량을 운행하는 동안에는 제동과 조향, 주행 안정성을 책임지는 핵심 부품이지만 교체하는 순간 처리해야 할 폐기물이 된다. 하지만 폐타이어가 모두 버려지는 것은 아니다. 고무와 카본블랙, 금속, 섬유 등 다양한 소재가 포함돼 있어 적절한 처리 과정을 거치면 다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대표적인 방법이 폐타이어를 잘게 분쇄해 고무칩이나 고무분말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재생고무는 운동장 트랙이나 생활체육시설 등의 탄성 포장재를 비롯해 건축·토목 분야 등에 활용될 수 있다. 타이어 내부의 철 성분 역시 분리해 금속 자원으로 회수할 수 있다.문제는 '재활용된다'는 것과 '고품질 자원으로 순환된다'는 것이 같지 않다는 점​이다.현재 국내 폐타이어는 상당 부분이 고형연료 등 열적 활용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다. 폐기물 자체를 단순 매립하는 것보다 에너지를 회수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폐타이어를 다시 산업 원료로 활용하는 물질 재활용과는 차이가 있다.최근에는 폐타이어에서 재생카본블랙 등을 회수해 새로운 타이어의 원료로 사용하는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정부 역시 폐타이어를 비롯한 폐기물에서 고품질 재생원료를 생산하고 이를 다시 산업에 활용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다. '한 번 더 쓰는 것'에서 '다시 원료로'폐타이어 재활용의 방향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단순히 폐타이어를 처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무와 카본블랙 등 타이어에 포함된 소재를 최대한 회수해 새로운 제품의 원료로 되돌리는 순환경제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다만 재생원료를 새로운 타이어에 다시 사용하는 데는 품질과 내구성 등의 기술적 과제가 남아 있다. 재생원료의 품질을 높이는 동시에 이를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환경 분야 관계자는 "폐타이어는 고무와 카본블랙, 금속 등 다양한 자원을 포함하고 있어 단순 폐기물로만 볼 수 없다"며 "처리량을 늘리는 것보다 다시 산업 원료로 활용할 수 있는 고품질 재활용 기술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타이어는 달리는 동안에도 환경에 흔적을 남긴다폐타이어 문제는 교체한 이후에만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는 동안 타이어와 노면의 마찰로 타이어 마모 입자(Tire Wear Particles)​가 발생한다. 이렇게 발생한 입자는 도로 주변에 쌓이거나 바람과 빗물 등을 통해 주변 환경으로 이동할 수 있다.이는 전기차라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전기차는 주행 과정에서 배출가스를 거의 발생시키지 않지만, 타이어가 도로와 마찰하면서 발생하는 마모 입자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자동차의 환경 영향을 이야기할 때 배기가스뿐 아니라 타이어와 브레이크 등에서 발생하는 비배기성 오염물질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이유다.폐기물 아닌 '자원'으로 바라볼 때폐타이어 재활용의 과제는 단순히 얼마나 많이 회수하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회수한 타이어를 얼마나 높은 가치의 자원으로 다시 산업에 돌려놓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무분말이나 고형연료로 활용하는 것도 현재의 재활용 방식 가운데 하나지만, 궁극적으로는 폐타이어에서 회수한 재생원료를 다시 새로운 타이어나 산업용 소재의 원료로 사용하는 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이 과제다.자동차가 친환경 이동수단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배출가스뿐 아니라 수명이 다한 타이어가 어디로 가는지, 주행 과정에서 어떤 환경 부담을 남기는지까지 살펴봐야 한다.타이어의 수명은 교체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원으로 다시 태어날 때까지 이어지고 있다.정민오 기자 dailyt@naver.com
    2026-08-09 17:06:37 정민오
  • 미세먼지는 줄었는데 오존은 왜 늘까…여름철 '보이지 않는 공기오염'의 경고
    환경

    미세먼지는 줄었는데 오존은 왜 늘까…여름철 '보이지 않는 공기오염'의 경고

    맑은 하늘이라고 안심은 금물…강한 햇빛과 폭염이 오존 생성 촉진
    [데일리환경=정민오 기자] 하늘은 유난히 맑다. 멀리 있는 산도 선명하게 보이고 미세먼지 농도도 '좋음'이다. 그런데도 외출을 자제하라는 대기질 경보가 내려진다.이유는 바로 오존(O₃)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기오염이라고 하면 미세먼지를 먼저 떠올리지만, 여름철에는 오히려 오존이 더 큰 환경 문제로 꼽힌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거의 느끼기 어렵지만, 고농도 오존은 호흡기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표적인 대기오염물질이다.오존은 미세먼지와 만들어지는 방식부터 다르다. 미세먼지는 자동차 배출가스나 산업시설, 국외 유입 등의 영향을 받아 직접 발생하거나 대기 중에서 생성된다. 반면 오존은 자동차와 공장 등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NOx)과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강한 햇빛과 반응하면서 만들어지는 '2차 생성 오염물질'이다.즉, 햇빛이 강할수록 오존은 더 많이 생성될 수 있다. 특히 폭염이 이어지는 한여름에는 높은 기온과 강한 자외선이 오존 생성을 더욱 촉진한다. 그래서 미세먼지는 낮은데 오존 농도는 '나쁨' 수준까지 올라가는 현상이 반복된다. 이 때문에 여름철 대기질은 단순히 미세먼지 수치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오존 농도가 높아지면 눈과 목이 따갑거나 기침, 호흡곤란 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 어린이와 노인, 천식이나 만성 호흡기 질환을 앓는 사람은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장시간 야외활동이나 격렬한 운동은 오존 농도가 높은 오후 시간대를 피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최근에는 기후변화도 오존 관리의 중요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폭염일수가 증가하고 고온 현상이 길어질수록 오존이 생성되기 쉬운 환경이 자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기후변화가 지속될 경우 여름철 오존 관리가 미세먼지만큼 중요한 환경 과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환경 분야 한 관계자는 "겨울과 봄에는 미세먼지가 주요 관심사였다면, 여름에는 오존이 대표적인 대기오염물질이 된다"며 "맑은 날씨라고 해서 공기질까지 좋은 것은 아니므로 오존 예보도 함께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어 "오존은 자동차와 산업시설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줄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며 "친환경 교통 확대와 휘발성유기화합물 저감, 산업 배출 관리 등 종합적인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우리는 맑은 하늘을 보면 자연스럽게 깨끗한 공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여름철에는 가장 맑은 하늘 아래에서 오히려 보이지 않는 대기오염이 심해질 수도 있다. 기후위기로 폭염이 길어지는 시대, 이제는 미세먼지뿐 아니라 오존까지 함께 살펴보는 것이 건강과 환경을 지키는 새로운 생활 습관이 되고 있다.정민오 기자 dailyt@naver.com
    2026-08-08 08:00:41 정민오
  • 용산공원에 주택 들어서나…최유희 시의원, “단 한 채도 안 돼”, 구민들은 주택보다 생활환경 변화 촉각
    사회

    용산공원에 주택 들어서나…최유희 시의원, “단 한 채도 안 돼”, 구민들은 주택보다 생활환경 변화 촉각

    서울 주택난 해소 필요성 있지만 국가공원 훼손 놓고 신중론
    서울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용산공원과 용산어린이정원 부지를 주택 공급에 활용하는 방안이 일각에서 거론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서울 도심의 대규모 부지를 활용해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현실론과, 수십 년간 국가공원으로 추진해온 공간을 단기적인 주택 공급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보전론이 맞서는 모습이다.최유희 시의원(사진)은 지난 6일 서울시에서 열린 ‘부동산 정상화를 위한 시민 대토론회’를 계기로 용산공원과 용산어린이정원 부지 내 주택 공급 구상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최 시의원은 “용산공원은 서울 도심에 남은 소중한 국가공원 예정지이자 미래세대에 물려줘야 할 공공자산”이라며 “용산공원과 어린이정원 부지에는 단 한 채의 주택도 건설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용산공원은 관련 특별법에 따라 국가 차원에서 조성과 관리가 추진되는 공간이다. 현행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은 용산공원의 관리청을 국토교통부장관으로 규정하고 있다.주택난 절박하지만…공원까지 공급 부지로 활용해야 하나서울의 주택 공급 확대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서울 집값과 주거비 부담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도심 내 신규 주택을 확보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고, 교통과 생활 인프라가 갖춰진 도심 부지 활용 역시 주택 공급 정책의 중요한 수단으로 거론된다.용산 역시 서울 중심부라는 입지와 철도·도로망 등을 감안하면 개발 잠재력이 큰 지역이다.하지만 문제는 주택을 ‘어디에 공급할 것인가’다.용산공원은 일반적인 유휴 국공유지와 성격이 다르다. 미군기지 반환을 거쳐 장기간 국가공원 조성을 목표로 추진해온 부지라는 점에서 주택 공급을 위해 계획을 변경할 경우 정책의 일관성과 공공성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특히 한번 공동주택과 도로, 상업시설 등 도시시설이 들어서면 다시 대규모 공원으로 되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때문에 당장의 주택 공급 효과뿐만 아니라 앞으로 수십 년 후 서울의 도시 구조까지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집만 늘어나면 끝인가”…교통·학교·생활환경도 문제용산구민 입장에서 이번 논쟁은 단순히 ‘공원이냐 주택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대규모 주택이 새롭게 들어서면 인구 증가에 따른 교통량 확대와 학교, 병원, 어린이집, 주차시설 등 생활 인프라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특히 용산은 한강대로와 이태원·한남동, 서울역과 용산역 주변 등 주요 도로의 교통량이 적지 않은 지역이다.추가적인 대규모 주거단지가 들어설 경우 주변 도로와 대중교통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부터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신규 아파트 몇 천 가구를 공급하는 것만으로 정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학교 배치와 통학 문제, 차량 증가, 상하수도와 전력 등 기반시설 용량, 공공시설 확충까지 함께 검토하지 않으면 기존 주민들이 개발에 따른 부담을 떠안을 가능성도 있다.반대로 주택 공급 확대를 원하는 시민 입장에서는 서울 도심 한복판의 대규모 부지를 전부 공원으로 사용하는 것이 과연 최선인지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특히 직장과 주거지가 멀어 장시간 출퇴근하는 시민에게는 도심 주택 공급 자체가 중요한 주거 정책이기 때문이다.결국 용산구민과 서울시민에게 충분한 정보를 공개하고 공원 보전 효과와 주택 공급 효과, 기반시설 부담을 비교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용산공원은 단순한 ‘빈 땅’이 아니다도시환경 측면에서 용산공원의 가치는 단순히 나무가 많은 대형 공원을 하나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서울처럼 건축물과 도로가 밀집한 도시에서 대규모 녹지는 여름철 열섬현상을 완화하고 시민의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기능을 한다.또 도시 곳곳에 단절된 녹지를 연결하는 생태축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용산은 남산과 한강 사이에 위치한다.장기적으로 용산공원이 충분한 녹지를 확보할 경우 남산과 한강을 연결하는 도시 녹지축의 중심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시계획적인 가치가 크다.주택 공급 역시 시민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정책이지만 공원 역시 일종의 도시 기반시설이다. 도로와 학교가 필요하듯 고밀도 도시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녹지와 휴식공간 역시 필요하다.따라서 용산공원 개발 여부를 판단할 때 단순히 ‘몇 가구를 공급할 수 있느냐’는 숫자만 비교해서는 곤란하다. 녹지를 없앴을 때 발생할 장기적인 환경 비용과 교통·기반시설 확충 비용까지 포함해 판단해야 한다.주택 공급 대안은 없나…역세권·유휴부지·정비사업 함께 검토해야최 의원은 용산공원을 활용하지 않고도 주택 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대안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도심 유휴부지를 활용하고 역세권을 복합개발하거나 노후 주거지를 정비하고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정상화하는 방식이다.다만 이 같은 대안 역시 실제 공급 규모와 사업 기간, 주민 갈등, 사업성을 따져봐야 한다. 용산공원 보전을 주장한다고 해서 서울의 주택 공급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공원을 지켜야 한다면 정부와 서울시는 그에 상응하는 현실적인 주택 공급 대책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반대로 주택 공급을 위해 용산공원 일부를 활용하겠다면 정확한 개발 면적과 공급 가구 수, 녹지 감소 규모, 교통대책 등을 시민에게 먼저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용산공원 논쟁, ‘집이냐 공원이냐’로 단순화해선 안 된다서울 시민에게 집은 절박하다. 하지만 녹지 역시 한번 사라지면 다시 확보하기 어려운 공공자산이다.그렇기 때문에 이번 문제를 ‘주택 공급에 찬성하면 개발론자’, ‘공원을 지키자고 하면 주택난을 외면한다’는 식의 이분법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정부가 먼저 답해야 할 것은 구체적인 숫자다.용산공원을 활용한다면 실제 몇 가구를 공급할 수 있는지, 서울 전체 주택 공급에서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 공원 면적은 얼마나 줄어드는지, 추가 교통량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공개해야 한다.반대로 공원 전체를 보전한다면 용산공원이 서울의 환경과 시민 생활에 어떤 가치를 가져다주는지도 객관적으로 제시해야 한다.특히 용산공원은 수십 년간 국가 차원에서 공원 조성을 추진해온 공간이라는 점에서 정책 변경에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정부 정책이 주택시장 상황에 따라 쉽게 변경된다면 장기 도시계획에 대한 시민의 신뢰도 흔들릴 수 있다.최 의원의 “단 한 채도 건설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공원 보전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한 메시지지만, 동시에 서울의 주택 부족 문제에 대해 어떤 대안을 현실적으로 마련할 것인지까지 함께 논의돼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용산공원을 둘러싼 논쟁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개발과 보전 중 어느 한쪽의 목소리가 큰가가 아니다. 30년, 50년 뒤 서울 시민에게 어떤 선택이 더 큰 자산으로 남을지를 판단하는 것이다.서울의 중심부에 다시 만들기 어려운 대규모 공원을 남길 것인지, 일부를 활용해 주택 공급이라는 당장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한번 내려지면 되돌리기 어렵다.그만큼 정부와 서울시는 정치적 구호보다 객관적인 자료와 장기적인 도시계획을 먼저 시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2026-08-07 21:14:53 이정윤
  • [이수영의 IT 칼럼] AI 대전환 시대, 장애인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AI가 필요하다
    인권/복지

    [이수영의 IT 칼럼] AI 대전환 시대, 장애인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AI가 필요하다

    - 비장애인 이용자 중심으로 설계된 AI서비스도 모두에게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우리는 이 문장을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같은 절차를 제공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평등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장애인에게는 이 말이 반드시 공정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과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발달장애인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면 과연 그것이 공정한 것일까? 같은 계단을 오르라고 요구하는 사회는 모두를 똑같이 대하는 사회일 수는 있어도, 모두에게 공정한 사회는 아니다.AI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많은 사람들은 AI가 사람보다 공정하다고 믿는다. 감정이나 선입견 없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AI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 것이 항상 공정한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의 삶은 '평균'이라는 기준만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한 공공기관이 AI 상담 서비스를 도입했다고 가정해 보자. 모든 국민은 동일한 챗봇을 이용하고, 같은 화면에서 같은 절차를 거쳐 민원을 신청한다. 겉으로 보면 누구에게나 동일한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이 화면낭독기로 이용하기 어렵다면 어떨까? 청각장애인이 음성 안내만 제공되는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면 어떨까?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긴 문장과 복잡한 절차 앞에서 서비스를 포기한다면 과연 이것은 공정한 행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서비스는 동일했지만, 이용할 수 있는 권리는 동일하지 않았다. 이것이 평등(Equal Treatment)과 공정성(Equity)의 차이다. 평등은 모두를 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다. 공정성은 서로 다른 조건을 고려하여 누구나 동등한 결과에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장애인 복지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가치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장애인을 특별히 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 때문에 발생하는 장벽을 제거하여 동등한 사회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AI도 이 원칙을 따라야 한다. 최근 생성형 AI와 디지털 행정서비스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AI 서비스는 '비장애인 이용자'를 중심으로 설계된다. 장애인의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이나 접근 환경, 인지 특성은 설계의 출발점이 아니라 사후 보완의 대상으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접근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디지털 격차를 만들 수 있다.예를 들어 이미지 생성 AI가 시각장애인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면 정보 접근권은 제한된다. 음성 기반 AI가 청각장애인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면 의사소통의 기회는 줄어든다. 쉬운 문장(Easy Read)이나 다양한 표현 방식을 지원하지 않는 AI는 발달장애인의 정보 접근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AI가 장애인을 차별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애인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AI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불평등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모두에게 같은 AI'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AI다.국제사회도 이러한 방향을 강조하고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은 장애인의 완전하고 효과적인 사회참여를 위해 접근성과 합리적 편의제공(Reasonable Accommodation)을 중요한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실질적으로 누리기 위한 사회적 장치다.AI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기술은 사람을 평균에 맞추도록 요구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다양한 사람의 삶에 맞추어 변화해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방향을 '공정한 AI(Fair AI)', '포용하는 AI(Inclusive AI)'라고 부르고 싶다. 공정함은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또한, 포용은 서로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AI 시대 장애인 복지가 지향해야 할 미래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에게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보다, 누구도 이용에서 배제되지 않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다. 기술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포용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선택해야할 헌법적 가치다. AI가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할수록 기술은 신뢰와 함께 발전한다. 나아가, AI가 더 다양한 사람을 포용할 때 비로소 사회도 함께 발전한다. AI 시대 장애인 복지의 목표는 가장 똑똑한 기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누구도 기술 앞에서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디지털 포용이며, 장애인권이 AI 시대에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8-07 20:59:32 이수영 칼럼니스트
  • '지구와 함께, 시민과 함께' … '2026 소래아카데미' 참가자 모집
    환경

    '지구와 함께, 시민과 함께' … '2026 소래아카데미' 참가자 모집

    - 시민 손으로 그리는 소래 국가도시공원 미래 설계 - 온라인 강의부터 생태탐방·정책 제안까지
    인천환경운동연합이 시민과 함께 소래습지의 생태적 가치를 배우고 국가도시공원의 미래를 직접 설계하는 '2026 소래아카데미' 참가자를 모집한다. 이번 소래아카데미는 인천광역시, 포스코이앤씨, 월드비전, 사랑의열매의 후원으로 운영되며, 소래를 사랑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온라인 강의와 현장 생태탐방, 시민 참여 프로젝트를 연계해 단순한 환경교육을 넘어 시민 주도의 공원 보전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아카데미는 8월 25일부터 9월 12일까지 진행되며, 모집은 8월 24일까지다. 교육은 온라인(ZOOM)과 소래습지생태공원 현장에서 병행된다.온라인 강의는 모두 4회에 걸쳐 진행된다.첫 강의에서는 소래습지와 인천 공원녹지의 역사와 형성 과정을 살펴보고, 이어 소래습지의 생태와 생물다양성, 소래 염전과 소금창고의 역사, 시민참여와 공원녹지 정책 등을 주제로 전문가 강연이 이어진다.현장 프로그램인 '소래생태 탐구학교'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소래습지로 들어가 생태를 관찰하고 체험한다.참가자들은 염생식물과 갯대공 체험, 조류 모니터링, 저서생물 모니터링 등을 통해 습지 생태계를 직접 조사하며, 이론으로 배운 내용을 현장에서 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프로그램의 마지막은 단순한 수료식이 아니다.9월 12일에는 '시민이 함께 그린 소래 국가도시공원의 미래'를 주제로 참여형 프로젝트가 열린다. 참가자들은 국가도시공원의 보전과 관리, 활용 방안에 대한 의견을 제안하고 토론하며, 시민의 시각에서 공원의 미래 청사진을 함께 그리게 된다.환경단체는 이러한 시민 참여가 국가도시공원 추진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공감대를 높이고 지속가능한 관리 체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소래습지는 수도권에서 보기 드문 연안습지이자 철새들의 서식지이며, 염전 문화와 생태적 가치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최근에는 국가도시공원 지정 논의가 이어지면서 생태 보전과 시민 활용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환경은 행정이 만들고 시민이 따라가는 시대에서, 시민이 함께 설계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2026 소래아카데미'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의를 듣는 교육생이 아니라, 직접 습지를 조사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참여자로 시민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국가도시공원은 지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역 주민들이 그 공간의 가치를 이해하고, 왜 보전해야 하는지 공감하며, 미래 활용 방안을 함께 고민할 때 비로소 살아있는 공원이 된다.기후위기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지금, 습지는 단순한 녹지가 아니라 탄소를 저장하고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핵심 생태 기반이다. 이런 공간을 시민 스스로 배우고 기록하며 정책에 참여하는 과정은 환경교육을 넘어 지역 거버넌스의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다.소래아카데미는 환경 강좌 하나를 운영하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시민이 국가도시공원의 주인이 되는 과정을 만드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이 전국의 생태공원과 도시공원으로 확산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26-08-07 08:54:07 안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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