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더 위험한 서울 지하철…“주의방송보다 미끄럼 방지시설이 먼저”

이정윤 발행일 2026-09-04 14:49:30
비가 오는 날 서울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를 오르내리거나 역사 계단을 이용할 때 평소보다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젖은 신발과 우산에서 떨어진 빗물이 바닥에 쌓이면서 미끄럼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민들에게 반복적으로 ‘미끄럼 사고에 주의하라’고 안내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예방책이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사고 위험을 이용객의 주의에 맡기기보다 시설과 설계 단계에서부터 위험요인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서울시의회에서 나왔다.

서울시의회 이재식 의원(사진)은 제339회 임시회 교통실 업무보고에서 지하철 전동차 승하차 부위와 역사 내 계단 등의 미끄럼 위험을 지적하며 서울시에 개선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 의원은 해외 출장과 평소 지하철 이용 과정에서 직접 시설을 살펴본 결과, 차량과 역사에 따라 미끄럼방지 시설에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전동차 승하차 발판과 역사 계단 끝단에는 매끄러운 스테인리스 재질이 사용돼 비가 오는 날 발 빠짐이나 미끄러짐 등 안전사고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 지하철은 하루에도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시설이라는 점에서 작은 미끄럼 사고도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다. 출퇴근 시간대처럼 승객이 집중되는 상황에서는 한 사람의 낙상이 주변 승객의 추가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최우선에 두고 실질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전동차 제작·설계 단계부터 미끄럼방지 처리를 표준화하고 제작 과정에서도 현장을 직접 점검해 안전성을 철저히 검증할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서울시도 개선 필요성에 공감했다.

여장권 서울시 교통실장은 우천 시 승하차 지점과 발판의 미끄럼 위험에 대해 “서울교통공사와 실무 검토를 거쳐 앞으로 발주되는 신규 전동차에 미끄럼방지 기능을 기본 사양으로 장착해 비가 오더라도 시민들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신규 전동차만 개선해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과제도 남는다. 이미 운행 중인 전동차와 기존 역사 계단·승강장 가운데 미끄럼 위험이 높은 시설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고 개선 우선순위를 정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전문가 관점에서도 미끄럼 사고 예방은 ‘주의’보다 ‘시설 개선’에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 특히 빗물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승강장과 계단, 전동차 출입구 등은 마감재의 미끄럼 저항 성능과 배수 상태, 논슬립 시설 설치 여부 등을 함께 점검해야 한다. 차량이나 역사마다 안전시설 기준이 다르다면 이를 일정 수준으로 표준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또 사고가 발생한 뒤 보수하는 방식보다는 우천 시 낙상·미끄럼 사고가 반복되는 장소를 파악해 위험도가 높은 곳부터 개선하는 예방 중심의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고 발생 장소와 시간, 기상 상황 등을 축적·분석하면 시설 개선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이 의원은 신규 전동차 제작 과정에서 미끄럼방지 설계를 표준화하는 동시에 부품 공용화와 재고 관리까지 포함한 체계적인 표준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결국 지하철 안전의 책임을 시민에게 “조심하라”는 안내방송으로 돌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비가 오더라도 승객이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대중교통 시설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서울시가 신규 전동차에 미끄럼방지 기능을 반영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기존 전동차와 역사까지 점검 범위를 확대해 실질적인 사고 예방 대책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안전 분야 한 전문가는 “지하철은 출퇴근 시간대 짧은 시간에 많은 승객이 이동하는 시설인 만큼 한 사람이 미끄러질 경우 뒤따르는 승객까지 연쇄적으로 넘어지는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주의 안내방송이나 경고표지만으로 사고를 예방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승강장과 계단, 전동차 발판 등 사고 위험이 높은 구간을 중심으로 시설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규 전동차에 미끄럼방지 기능을 기본 사양으로 적용하는 것과 함께 기존 전동차와 역사 시설에 대해서도 미끄럼 위험도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역사별·차량별로 서로 다른 재질과 구조를 점검해 미끄럼방지 패드, 논슬립 처리, 계단 끝단 개선 등 시설 특성에 맞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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