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희의 문화 칼럼] 유술(柔術)이란 명칭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이광희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9-03 20:10:28
요즘은 20~30대 암 발병률이 생각보다 높아서, 이제 건강은 젊을 때부터 신경 쓰고 하나의 루틴처럼 관리해야 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보다 술 소비율이 적어지고 저녁 시간대에 스포츠 짐이나 무술 도장(道場)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젊은이를 쉽게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주로 마니아들이 수련하던 것이 점점 입소문을 타고 퍼져서 이제는 제법 수련 인구가 늘어가고 있는 무술이 있는데 바로 유술(柔術)이다.


▲ 이광희 문화 칼럼니스트


최근 유술의 인기가 올라간 것은 아마 브라질리언 주짓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브라질리언 주짓수와 유술은 다른데, 예를 들어 개구리와 맹꽁이가 비슷하지만 같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유술과 주짓수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무술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면 구분하기가 어렵고 잘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자.

우선 유술은 검(劍)의 동작을 그대로 맨손 무술 즉 체술(體術)에 대입하여 만들었다. 옛 무사(武士)가 검으로 대결하다가 검을 놓치거나 빼앗겼을 때 맨손으로 적을 상대하며 상대를 던지고 꺾는 기술이 유술이라면 브라질리언 주짓수는 일본의 마에다 미쓰요 유도 사범이 브라질에 가서 유도 기술을 가르친 것이고, 체질적으로 매우 유연하고 부드러운 브라질 사람에게 맞게 한층 업그레이드된 것이 브라질리언 주짓수이다.

1895년 17세의 나이로 강도관 유도에 입문한 마에다는 빠르게 성장하여 1901년에 3단에 승단하고 학교에서 유도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런데 1904년부터 유도의 정립자 가노 지고로가 자신의 유도를 전 세계로 퍼트리고 알리기 위해 제자를 파견하는데 마에다도 그중 한 명이었다. 마에다는 중남미를 거쳐 1914년에 브라질에 도착해서 벨렝, 리우데자이네루, 상파울루 등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유도를 가르쳤다. 이때 카를루스 그레이시를 제자로 삼아 강도관 유도를 지도했고, 그레이시가 자신이 배운 것을 형제들과 친척들에게 가르치면서 브리질리언 주짓수가 탄생하게 된다. 유도 기술은 선기술에 중점을 많이 두지만 주짓수는 유도에서 말하는 굳히기 기술 즉 그라운드 기술에 더 많은 중점을 둔다. 또한 지금은 하체 관절기 기술이 금지된 유도와는 다르게 주짓수는 하체 관절기 기술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유술의 시작은 언제인가?

유술의 시작은 언제인가? 유술의 시작은 정확하게 언제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삼국시대의 백제가 주로 사용한 군사 무술이라는 것을 필자가 약 25년 동안 많은 조사와 연구를 통해서 밝혔고 2편의 논문을 통해서 발표한 적도 있으며 책으로도 <진짜 무술 이야기> 출간했다. 이러한 내용을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유술은 무사가 검을 놓쳤을 시 맨손으로 적을 제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맨손으로 상대를 제압하면 다 유술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유술이 성립되려면 우선 관절 기술과 던지기 기술이 주를 이루어야 하며 이러한 기술은 검을 사용하는 동작과 일치해야 한다.

따라서 유술이라고 정확하게 말하려면 백제 무사가 구사하던 검술 동작이 내재해 있어야 하며 이 동작은 검술(劍術)이나 체술(體術)이나 즉 칼을 쓰는 기술이나, 맨손 무술이나 그리고 장술(杖術)이나 모두 하나의 동일한 몸동작이며, 같은 기법을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유술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정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며 유술이 아닌데 단지 단어만 차용해서 유술이라고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유술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사용되었나?

유술은 삼국시대부터 있었지만 유술이란 말은 16세기에 일본에서 처음 시작됐다. 또한 같은 시기에 야와라(柔)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글자 그대로 부드러움을 강조했는데, 부드러움 안에는 강함이 내재해 있으므로 그 강함을 발산하기 위해서는 부드러워야만 했다. 그러므로 강함은 곧 부드러움이고 강함을 강함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고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상대하여 제압했는데 이것이 바로 유능제강(柔能制剛)이며 유술의 원리다.

이러한 유술은 16세기에 검술로 명성 있는 세키구찌류에서 처음 유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세키구찌(関口)의 가문(家門)도 백제계 도래인의 후손이며 시조는 이마가와 씨(今川氏)이고 청화 원 씨의 후손이자 원의가(源義家)의 자손이다. 원 씨는 13세기 가마쿠라 바쿠후(幕府)를 세우고 무사 정권으로 나라를 다스린 최고의 사무라이 가문이라는 것을 필자가 앞선 칼럼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다. 세키구찌 가문의 사람은 최고의 사무라이 가문의 자손이고 검술과 유술로도 유명했으며 현대 유도의 정립자인 가노 지고로가 유도의 형(形)을 만들 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세키구찌 가문에 의해서 유술이라는 무명이 사용되어지면서 유술은 더욱 급진적으로 발전했으며 더 폭넓게 퍼져 나갔고 많은 분파가 생겼다. 또한 이후 합기도 같은 지금의 호신술로도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유술의 역사 그리고 명칭이 처음 사용되어진 시기에 대해서 알아봤다. 유술은 우리의 선조가 군사적인 병법 즉 무술로 사용하던 것이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가서 더 폭넓게 전해진 것이고 유술이라는 무명(武名)도 백제계 도래인의 후손인 세키구찌 가문에 의해서 사용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즉 유술은 우리 선조의 병법이자 나라를 지키는 군사 무술이었고 오늘날까지 전해진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 유술 명칭이 나오는 자료


위의 문헌을 보면 유술발명(柔術發明)은 도쿠가와 때 세키구찌 쥬우신(関口柔心)이 시작했고, 그 후 기슈(紀州)의 다이난고(大納言)로 임명되어 야와라(やわら)와 유술(柔術)로 명(名)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광희 칼럼니스트 기자 yoshinkan_kr@naver.com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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