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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칼럼니스트

기자가 쓴 기사
  • [이광희의 문화 칼럼] 세계 최고수준의 주거 문화는 한국에 있다
    문화/생활

    [이광희의 문화 칼럼] 세계 최고수준의 주거 문화는 한국에 있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막 들어갈 무렵을 회상하면서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서 생활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할 것 같다. 그때는 단독 슬래브 건물에 마당 중앙에 수도꼭지가 있었고 그 옆에 화장실이 하나 있는 구조의 집에서 뺑 둘러서 다섯 가구가 같이 살았다. 아침만 되면 화장실 앞에서 빨리 나오라고 아우성쳤으며, 정말 급한 사람은 삽을 들고 동네 외진 공터로 뛰어가곤 했었다. 게다가 그때는 단수(斷水)가 왜 그리 자주 됐는지 크고 빨간 대야에 물을 받아 놓고 물 아껴 쓰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지금은 웃으면서 옛일을 떠올리는 정도이지만 당시 80년대에는 흔히 있는 주거 문화였다. 예전에 비해 현재의 주거 문화는 어떤가한국의 주거 문화는 예전에 비하면 놀라울 만한 변화가 있었고 특히 서울 같은 경우에는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믿기 어려운 도시 주거 문화에 큰 변화가 있었다. 여기서 예전이란 40~50년 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불과 2000년대 초반을 보더라도 그 변화는 매우 크다.예를 들자면 건대입구에 있는 더샵 스타시티 주거 복합 건물 같은 경우에는 2003년에 착공하여 2007년에 입주를 시작했는데 포스코건설에서 시공한 58층 규모의 복합 도심형 주거 단지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우선 기존의 아파트와 다른 점이 58층의 웅장한 건물 4개가 마름모처럼 놓여 있고 그 중앙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지상에는 차가 들어설 수 없게끔 해 놓고 지하에 대규모 주차장을 만들어 놓았으며 주차장에서 바로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으로 연결해 놓았다. 즉 자기 집 주차장에서 몇 발짝만 걸으면 눈앞에 지하철 개찰구가 보이고 그 옆으로는 백화점과 쇼핑물 센터 그리고 극장이 연결되어 있으며 조금 더 걸으면 건국대학교와 건국대학교 병원이 바로 연결되어 있다. 즉 쉽게 말해서 밖에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자신이 원한다면 옷에 빗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지하철과 쇼핑센터 극장 그리고 병원과 학교까지 갈 수 있는 최상의 주거 시스템을 조성해 놓은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심형 아파트인 것이다. 전 세계 어디를 찾아봐도 이와 같은 편리한 도심형 아파트는 찾아보기 어렵다. 싱가포르와 일본에도 비슷한 도심형 아파트는 있지만 더샵 스타시티처럼 완벽한 조건의 아파트는 아니다.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이 주거 문화가 발달하고 있는 이유는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국토의 절반 이상이 산악지대이며 그조차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어서 한국은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면적이 크지 않다. 그러다 보니 공간 활용이 더욱 발전하게 되고 대규모의 아파트가 급진적으로 세워진 것이다. 이때 아파트의 주거 생활을 더 편리하게 하려고 아파트 주위에 상가가 들어섰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파트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몰리자 아파트 주변에는 쇼핑센터, 병원, 약국, 스포츠센터, 학교 등 여러 가지 생활 문화에 최적화되는 순서를 자연스럽게 거쳐 갔다. 또한 많은 인구가 몰리는 지역에서는 아파트의 가까운 거리에 버스 노선이 생기게 되었고 건설사와 시공사는 아예 지하철이 지나가는 역세권을 중심으로 아파트를 세우게 되자 그 편리함은 한층 더해진 것이고 아파트는 날로 고급스러워지며 편리함도 기대 이상으로 발전했는데 그렇게 해서 더샵 스타시티와 같은 주거 복합 건물이 탄생한 것이다. 필자는 여행을 좋아해서 많은 나라를 경험했고 일본에서는 10년, 미국에서도 1년 정도 생활한 경험이 있지만 그 어떤 선진국에서도 한국과 같이 발달하고 편리한 주거 문화가 형성된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날로 편리해지고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는 한국의 주거 문화일본인 친구가 한국에 와서 아파트를 경험하고는 매우 놀라는 표정으로 “스고이=대단해”를 외친다. 물론 일본도 도쿄의 롯폰기 혹은 중심가에 있는 아파트는 매우 고급스럽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20년 전부터 아파트 또는 오피스텔에 냉장고와 에어컨은 기본이고 드럼 세탁기와 전기 인덕션까지 모든 일상생활에 필요한 가전제품이 기본으로 다 비치되어 있고 붙박이장까지 있어서 몸만 들어가면 되게끔 매우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므로 단순히 한류로 인한 붐으로 한국에 왔다가 한국의 주거 문화에 매료되어 한국에 계속해서 머물고 싶다는 젊은 외국인이 느는 추세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안전한 치안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가 주거 문화가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외국인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앞으로 한국 최고의 주거 문화를 선도하는 지역은 부산이 될지도 모른다불과 두 달 전에 필자는 부산의 북항 재개발 홍보관에 다녀왔다. 홍보관 직원이 나와서 약 30분간 북항 재개발에 관하여 상세한 설명을 하고 질의응답까지 마쳤는데, 처음에는 단순한 항만을 정비하는 재개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설명을 다 듣고 난 후에는 근래 찾아보기 힘든 거대한 규모의 장기 프로젝트라는 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항의 재개발은 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중앙정부와 부산항만공사, LH, 부산도시공사, 코레일 등이 서로 협력하여 1, 2, 3단계로 나누어 약 10조 정도의 투자금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해양도시 및 글로벌 허브 도시를 계획하고 있었고 현재 1단계가 진행 중이며 일부는 그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다.앞에서 말한 것처럼 단순하게 개인이나 민간에서 하는 개발 사업이 아니므로 그 규모가 상당하며 바다를 중심으로 관광, 국제행사 및 업무, 문화콘텐츠, 쇼핑 그리고 호텔까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서 철도와 항만을 연결하는 해양도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주변에 주거하는 시민은 자연스럽게 삶의 질이 매우 높아질 뿐 아니라 모든 편의 제공과 함께 안락한 주거 문화를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받기 때문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자 내 방에서 커튼을 열면 밖에서는 파도가 치고 노을이 지며 야간에 열리는 불꽃축제는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게다가 각종 국제행사가 근거리에서 열리고 오는 길에 바닷가 공원에서 가족들과 산책을 즐기며 쇼핑과 식사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생활이 내 집 앞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차량으로 인한 교통체증이 없이 웬만한 거리를 모노레일로 이동할 수 있게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모든 편리함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 조성되는 곳이 부산이며 한국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주거 문화는 한국 안에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의 음식 문화, 대중문화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대인기를 얻고 있고 많은 외국인이 한국을 동경하며 한국에서의 생활을 꿈꾸고 있다. 한국의 문화는 앞으로도 인기가 있을 것이고 주거 문화는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이광희 문화 칼럼니스트 yoshinkan_kr@naver.com*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8-24 14:43:50 이광희 칼럼니스트
  • [이광희의 문화 칼럼] 이제는 절도가 되는 사라진 서리 문화
    문화/생활

    [이광희의 문화 칼럼] 이제는 절도가 되는 사라진 서리 문화

    '서리'의 사전적 의미는 곡식이나 과일을 훔쳐 먹는 '장난'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말 그대로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장난이다. 물론 장난도 그 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될 수 있고 혼이 나지만 그렇다고 그것으로 인해 처벌받는다거나 실형받는 등 범죄자로 몰리지는 않는다. 필자도 어렸을 때 시골에서 배 서리도 해봤고 가을에 잘 익은 밤 같은 경우에는 친구들과 자주 따 먹었던 기억이 있다.그러나 요즘에 예전 기억만 떠올리며 무심코 남의 감이나 사과나 복숭아를 생각 없이 따서 한입 물었다가는 몇 배에서 심지어는 몇십 배를 배상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심하면 절도범으로 경찰서까지 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 2년 전의 일이다. 시골에 땅을 보려 온 사람이 잘 익은 감을 하나 땄는데 같이 온 일행도 대수롭지 않게 하나 땄다가 주인이 보고 신고하여 경찰서로 끌려가는 일이 있었다. 얼핏 보면 시골 인심이 야박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자초지종을 알고 보니 며칠 전부터 누군가가 감을 따서 훔쳐 가는 바람에 주인이 벼르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외지인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감을 땄다가 마침 주인이 보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 있던 일까지 전부 책임져야 할 상황이 된 것인데, 하지만 멀리서 땅을 보러 처음 왔다는 것이 해명돼서 약간의 배상만 하고 잘 마무리가 된 것으로 기억이 난다.그러므로 요즘에는 옛 추억을 떠올리며 탐스럽게 익었다고 해서 남의 집 과실을 아무 생각 없이 하나 덥석 잡아서 땄다가는 바로 경찰차에 실려 가는 낭패를 당하고 만다. 그래서 필자가 농작물 관련해서 전국적으로 연간 크고 작은 절도 사건을 조사해 봤는데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연간 약 800건 이상이나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그렇다면 위의 내용이 전부 절도 사건일까?필자가 너무 궁금해서 판례도 찾아보고 자세하게 알아본 결과로는, 지나가다 하나를 따서 그 자리에서 곧바로 먹으면 불가벌적 행위로 보고 처벌까지는 가지 않았다. 즉 매우 가벼운 것으로 간주하고 훈방 조치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하나를 따서 먹고 또 하나를 따서 호주머니나 봉지에 담으면 법적 의미가 완전하게 달라지는데, 이렇게 되면 절도죄(형법 제329조)로 형사 입건이 되어 무조건 경찰 조서를 받는다. 또한 과실을 따는 과정에서 옆에 일행이 같이 동참했거나 혹은 야간에 했을 때는 “특수절도”에 해당하고 게다가 손으로 했는지 아니면 가위나 니퍼 같은 도구를 사용했는지에 대해서 법리적 해석을 완전하게 달리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단 한 개라도 남의 것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못 사는 시절에 “서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과 나누어 먹는다는 의미로 크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물론 너무 많이 가져가거나 과일나무를 상하게 하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주인이 인심(人心) 쓰고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게 세상살이였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갈수록 흉흉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서리”는 고사하고 주차하는 것 하나 가지고도 서로 언성을 높이고 싸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필자가 서리 문화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올여름에는 유난히 주변에서 자두와 복숭아를 많이 가져다줘서 어렸을 때 서리하던 기억이 떠올라 몇 자 적게 되었다. 세상이 풍요로워지고 살기 좋아진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도 예전처럼 너그럽게 인심을 쓰며 살아가는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 이광희 칼럼니스트 기자 yoshinkan_kr@naver.com*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8-17 16:16:57 이광희 칼럼니스트
  • [이광희의 문화 칼럼] 노인의 시대가 왔다 ... 이제 노인 문화를 모르면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에 이르렀다
    문화/생활

    [이광희의 문화 칼럼] 노인의 시대가 왔다 ... 이제 노인 문화를 모르면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에 이르렀다

    OECD 국가 중 출산율이 가장 낮은 일본을 제치고 한국이 저출산율 1위에 올라 간 것도 제법 됐다. 2018년 이후 통계청에서 발표한 통계이고 그 후 2023년 「인구동향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출산율이 0.72라고 국가 공식 통계로 발표했다. 수치상으로 보면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가 싶다가도 실제로 길거리에 나가보면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아서 피부로 실감하게 된다. 또한 무심코 지나쳤던 것을 떠올려보면 동네 산부인과가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고 아기 옷 파는 매장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게다가 예전에는 엄마들이 마음 편하게 쇼핑하게끔 대형 쇼핑센터나 백화점에 놀이방을 만들어서 운영했는데 이것도 하나둘씩 철거에 들어가 이제는 없는 곳이 더 많다. 이처럼 출산율이 저조하고 학령 인구가 감소하는 반면에 인간의 평균 수명은 늘어나고 노인이 많아지자 기존과 다른 변화가 오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과거에는 대학에 20대가 주를 이루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지만, 최근에는 평생 학습자 전형으로 칠순이 넘은 분들이 대학에 입학을 한다. 노인대학이 아닌 일반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기도 하고, 노인을 돌보는 노인학과 또는 노인복지학과, 실버산업학과가 하나둘씩 생겨나는가 하면 한의대에도 노년학이 개설되는 등 점차 사회의 중심이 노년층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이와 같은 사회의 움직임으로 인해서 고령층의 일자리가 대폭 확대되고 60~70대가 일하는 것도 이제는 흔히 볼 수 있으며, 노인들도 예전과 다르게 건강에 많은 신경을 쓴다. 얼마 전의 일이었다. 필자가 대학원 석사 때 지도해주셨던 교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뜬금없이 건강을 위해서 “태극권”을 배우려고 하는데 태극권이라는 운동이 어떠냐고 물으셨다. 운동과는 전혀 거리가 먼 신학과 교수님이 태극권을 하신다기에 의외였지만 적극 추천했다. 왜냐하면 필자가 일본 유학생 시절에 전설적인 대만의 왕수금 노사 계열의 기공 태극권을 약 3년 반 동안 수련한 적이 있었는데 태극권이 겉보기에는 천천히 너무 느리게 하기 때문에 무슨 운동이 되겠느냐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막상 해보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쉽지가 않고 오히려 기혈 순환이 잘 되며 고관절을 포함한 무릎 팔다리 관절에 상당한 운동이 되는 것을 체험할 수가 있다.대상을 노인층으로 바꿀 때가 왔다. 요즘 흔히 100세 시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즉 노인 문화의 시대가 접어든 것이다. 물론, 이미 전문가들은 20년 전부터 해 왔던 이야기이고, 일본은 그 이전부터 예상했었다. 하지만 정말 현실로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는데, 며칠 전 초등학교 앞을 지나다가 칠십 초반으로 보이는 분이 경광봉을 들고 학교 앞 스쿨존에서 아이들이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너도록 차량 통제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필자가 일을 보고 난 후 다시 그 자리를 지나는데 이미 등교 시간이 지나서인지 한산했고 경광봉을 들고 있던 그분은 경광봉으로 풀 스윙을 하면서 골프 자세를 취하시는데 순간 그 광경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저분 나이 정도면 탑골공원에 가서 내기 장기나 두고 이기면 탁주 한 사발 하시는 게 저 연령대 분들의 소소한 일과였을 것이다. 또한 동네 근처 약수터에 가서 약수를 뜨고 배드민턴을 치는 그런 노인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골프라... 그만큼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고 노인들의 생활 방식도 많이 바뀌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노인인구가 점차 늘고 있는 이 시점에 분명 노인을 상대로 하는 그 무언가를 하지 않으며 이제는 뒤처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기업도 자영업자도 노인에 관해서 연구해야 하며 무술 도장도 이제는 예전처럼 어린이 혹은 젊은 세대만 상대할 것이 아니라 노인을 겨냥해야 한다. 예를 들어 50세가 넘으면 매년 0.8~1% 정도의 근 손실이 오고 60대가 되면 근력운동을 해도 근육 형성이 쉽지 않다. 게다가 70대부터는 연 3% 이상 근육이 감소하므로 낙상사고가 일어나면 치명적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무술 도장은 노년에 할 수 있는 기공체조라든가 혹은 근력운동을 겸한 몸 쓰기 운동과 같은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도장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인데 대부분의 도장이 이와 같은 대비가 전혀 없다. 시대보다 앞서가는 것은 힘들지만 뒤처지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사회가 급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모든 것이 서서히 진행되어 삶 속에서 자연스러운 변화를 이루어 그 변화에 적응하며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면 요즘 사회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새로운 것이 너무나 빠르게 삶 속에 침투하고 그 빠른 변화를 미처 따라가기도 전에 또 새로운 것이 나온다. 어제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서 오랜만에 멀리 다녀왔는데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분이 드론을 띄워서 논에 농약을 살포하는 것을 보고 차를 세워 한참을 구경했다. 드론은 한 마리 새보다 더 빠른 속도로 창공을 날아 뿌연 액체를 연신 힘차게 뿜어댔다. 드론이 농약을 뿌리는 것을 처음 본 필자는 모든 것이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이 사회는 이제 우리가 적응하는 것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운영하는 무술연맹의 최고 고문이신 김용신 고문과 오늘 전화 통화한 내용을 끝으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78세이신 김용신 고문님은 매일 하루도 무술 수련을 거르지 않으신다. 게다가 생활체육 탁구 시니어부 경북도 대표로 시합에까지 출전하는 정말 대단한 분이시다.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이제 노인 시대가 막을 열었다. 앞으로 노인 문화는 더 큰 비중으로 우리 사회에 깊이 자리매김할 것이고 노인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큰 발전과 성공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이광희 칼럼니스트 기자 yoshinkan_kr@naver.com*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8-10 16:34:33 이광희 칼럼니스트
  • [이광희의 문화 칼럼] 시대에 따라 변화는 무술의 유행(流行)
    세계 일반

    [이광희의 문화 칼럼] 시대에 따라 변화는 무술의 유행(流行)

    세상을 살다 보면 그 시대를 풍미하는 것이 있는데, 보편적으로 유행(流行)한다고 말한다. 노래가 유행하면, “유행가”라고 하며 옷이 유행할 때에는 “최신 유행하는 스타일”이라고 하고 맛있는 음식이 유행하면 이 음식이 “대세다”라고 말을 하기도 하는데 스포츠나 무술에도 대세가 있고 그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유행이 있었다. 그러면 무술에 유행 즉 대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우선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보게 되면 36년이라는 긴 시간을 일본의 간섭을 받았기 때문에 무술도 일본 무도의 영향을 받아서 가라테(空手道)를 많이 배웠으며 일제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서 당수도(唐手道)로 명칭을 바꾸었고 그 이후에 다시 태수도(跆手道)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것이 훗날 태권도가 된다. 이 외에도 검도와 유도 합기도 등을 많이 수련했다. 이러한 무술은 해방 이후 약 30년간 많은 사람들이 수련했는데 70년대 말에 들어와서는 홍콩영화가 붐을 타기 시작하여 중국 무술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쿵후 도장이 하나 둘씩 늘어났고 이소룡이 자주 쓰던 쌍절곤을 너도 나도 돌리며 흉내를 내곤 했었는데, 이와 같은 중국 무술의 유행은 약 10년 동안 지속되다가 특공무술과 합기도(合氣道)에 자리를 내어준다. 그러던 중 90년대에 접어들어 장클로드 반담 주연의 「어벤져」라는 킥복싱 영화가 히트하고, 전국의 킥복싱 도장에 킥복싱을 배우려는 회원으로 가득 차서 체육관에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90년대 중반에는 해동검도가 혜성처럼 나타나서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더니 2000년 초반까지 매우 높은 인지도가 형성되어 전국에 많은 도장이 생겨났는데 당시 해동검도가 최고 정점을 찍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해동검도의 열풍이 조금 가시자, 느닷없이 경호무술이라는 신생 무술이 인기몰이 하기 시작했고, 전국에 경호무술 간판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했으며, 서로 자신이 창시자라고 하면서 창시자를 주장하는 사람이 20명이 넘을 정도였는데, 재밌는 것은 무술의 명칭은 같은데 무술 기법이 서로 다 달랐다.다른 나라에 비해서 비교적 한국은 유행이 매우 빠르게 지나가는데 무술도 마찬가지였다. 경호무술의 열기가 시들어가자 K-1이라는 입식격투기가 일본을 통해서 들어왔고, 대한민국이 떠들썩할 정도로 흥행했는데, 무술이라기 보다는 스포츠에 가까운 K-1은 가라테, 격투기, 킥복싱을 하나로, 입식 최강자를 가린다는 의미가 있었다. 이러한 K-1에 한국 선수들도 많이 출전했으며 이 대회를 통해서 최홍만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탄생하기도 했다.K-1이 성행할 때 필자는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최홍만 선수와 밥샙 선수를 직접 근거리에서 본 적이 있는데 격투기 선수라기 보다는 “잭크와 콩나물”이라는 만화에 나오는 거인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K-1은 모두를 열광시키는 것 같았으나 그 열기는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런데 K-1 보다도 더 박진감 넘치는 MMA라는 종합격투기 바람이 불더니 10대와 20대는 열광하기 시작했고, 기성세대도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K-1 못지않은 인기몰이를 했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스포츠나 무술보다 더 실전에 가까웠으며, 심지어는 누워있는 사람도 때리고 발로 밟기도 했으므로 사람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본 사람들은 매우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종합격투기는 다른 무술이나 스포츠처럼 반짝 인기몰이를 하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아직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으며, 특히 젊은 층의 10대 20대의 수련생이 많고 이들은 제2의 김동현 선수를 꿈꾸기도 한다. 또한 다른 운동에도 선한 영향을 주고 있는데, 종합격투기는 타격과 누운 기술 즉 킥과 펀치 그리고 그라운드 기술을 다 섭렵해야 하므로 타격을 베이스로 하는 선수는 레슬링이나 주짓수를 배우며 연습하고 그라운드 기술을 베이스로 하는 선수는 복싱이나 킥복싱을 연습하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운동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왜냐하면 종합격투기 선수들로 인하여 자연스러운 홍보가 되기 때문이다. 따러서 최근에는 복싱과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배우는 인구가 상당히 늘었고 단순하게 마초가 되기 위한 남자만의 운동이 아닌, 호신술과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한 여성 수련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복싱 같은 경우에는 예전에는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복싱 도장에 가면 여성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근래에는 많은 여성이 복싱 다이어트를 하고 있으며, 또한 시합장에서도 여성 매치를 손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짓수 같은 경우에도 SNS에 도복을 입고 사진을 찍은 모습의 여성들이 심심찮게 돌아 다닌다. 그만큼 요즘 젊은 세대는 운동으로 체력과 건강을 유지하려는 문화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 얼마 전 필자가 요식업을 하고 있는 지인과 통화했는데 예전보다 술 마시러 오는 젊은 손님이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므로 대화 중에 느낀 것은 요즘 젊은 세대들의 소비 패턴이 달라지고 있고 예전보다 더 땀 흘리며 운동하여 체력을 다지고 자기 계발에 힘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건전한 문화가 더 지속했으면 하는 바람이다.이광희 칼럼니스트 기자 yoshinkan_kr@naver.com*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8-03 13:20:08 이광희 칼럼니스트
  • [이광희의 문화 칼럼] 일본의 닌자(忍者) 그 뿌리를 찾아서....
    생활문화 일반

    [이광희의 문화 칼럼] 일본의 닌자(忍者) 그 뿌리를 찾아서....

    닌자는 일본의 상징일까…그 이면에 가려진 역사
    검은 복장에 얼굴을 가린 채 어둠 속을 누비며 표창을 던지는 닌자(忍者). 오늘날 닌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 가운데 하나다.영화와 드라마, 게임을 통해 전 세계인이 알고 있는 존재가 됐고, 일본 관광산업에서도 중요한 브랜드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대중이 알고 있는 닌자의 모습과 실제 역사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우선 닌자는 허구가 아니라 실제 존재했던 집단이다. 다만 영화처럼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전사가 아니라, 첩보와 잠입, 정찰, 교란, 암살 등을 수행하던 특수 임무 수행자에 가까웠다. 현대적인 표현으로 하면 특수부대와 정보요원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 조직이었다. '닌자(忍者)'라는 이름에도 그들의 성격이 담겨 있다. 한자 '忍'은 칼날(刃)이 마음(心) 위에 놓인 글자다. 흔히 '참을 인'으로 번역되지만, 단순히 참는다는 의미만으로는 부족하다. 언제든 칼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감정을 억누르고 임무를 수행하는 강한 정신력과 냉철함을 상징한다. 여기에 사람을 뜻하는 '者'가 더해져 닌자가 된다.결국 닌자는 무술보다 정신력과 절제, 은밀함을 우선시했던 존재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닌자가 가장 활약한 시기는 일본 전국시대였다. 수많은 영주들이 전쟁을 벌이던 시대였던 만큼 정보전의 가치도 매우 컸다. 이 과정에서 이가(伊賀)와 고가(甲賀) 닌자는 일본 전역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특히 이가 닌자는 오다 노부나가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합류해 정보 수집과 경호 임무를 수행하며 명성을 이어갔다. 이후 에도 막부가 들어서고 전국적인 전쟁이 사라지자 암살보다 경비와 첩보 활동으로 역할이 바뀌었고, 메이지유신 이후 사무라이 제도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등장한다. 이가 닌자를 이끌었던 핫토리 한조(服部半蔵) 가문의 뿌리를 추적하면 백제계 도래인과 연결된다는 연구와 전승이 존재한다. 핫토리(服部) 성씨 역시 한반도에서 건너온 기술 집단에게 부여됐다는 기록이 일부 문헌에서 전해진다. 실제로 일본에는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철기, 방직, 토목, 농업 등 다양한 기술을 전파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닌자의 기원이 백제다' 또는 '닌자의 기술이 백제 무술이다'라고 단정할 만큼의 확정적인 역사적 증거는 현재까지는 부족하다. 일부 연구자들은 핫토리 가문의 뿌리와 백제계 도래인의 연관성을 제시하지만, 이것이 곧 닌자 조직 전체의 기원이나 기술 체계를 설명하는 결정적 근거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확실한 사실은 일본의 닌자가 여러 시대를 거치며 지역적 환경과 전쟁 경험 속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는 점이다. 닌자의 전술을 살펴보면 정면 승부보다 기습과 위장, 잠입, 함정 설치, 심리전, 정보 수집을 중시했다. 오늘날 군사 용어로 말하면 특수전과 비정규전의 성격이 강했다. 미리 함정을 설치하거나 지형을 이용해 적을 유인하고, 야간 침투와 변장, 은폐 기술을 활용하는 방식은 현대 특수부대의 작전 개념과도 일부 닮아 있다. 영화에서는 화려한 검술과 공중제비가 강조되지만 실제 닌자는 싸움을 피하는 것이 최고의 기술이라고 여겼다. 임무를 완수하고 살아 돌아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 오늘날 일본 미에현 이가 닌자박물관에는 당시 사용했던 무기와 복장, 생활상이 전시돼 있으며, 관광객들은 닌자 시연을 통해 그 문화를 접할 수 있다. 그러나 관광 콘텐츠로 소비되는 닌자와 역사 속 닌자는 분명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닌자는 단순한 전설도, 영화 속 영웅도 아니었다. 전쟁의 시대가 만들어낸 정보전 전문가였으며, 그들의 역사는 아직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분야다.역사는 한 나라의 상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특히 한반도와 일본의 고대 교류처럼 다양한 기록과 해석이 공존하는 주제일수록 사실과 추정은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만 흥미로운 이야기와 역사적 진실을 함께 이해할 수 있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7-13 14:29:57 이광희 칼럼니스트
  • [이광희의 문화 칼럼]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에서 비롯된 일본의 저력과 단결의 힘. 제 2편, 사무라이의 기개(氣槪)
    세계 일반

    [이광희의 문화 칼럼]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에서 비롯된 일본의 저력과 단결의 힘. 제 2편, 사무라이의 기개(氣槪)

    - 왜 일본인은 사무라이 정신에 그토록 열광하는가
    필자의 칼럼 제 1편,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사이고우 다카모리는 개혁을 지지하는데 앞장선 사람이었지만, 정부가 사무라이를 그토록 심하게 궁지에 몰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사무라이들에게 주던 봉급을 없애고, 칼도 휴대가 금지되며, 사무라이들은 사회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 것에 대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 다카모리는 정부와 심한 갈등을 겪다가 마침내 고향인 가고시마(鹿児島)로 내려가서 그저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데, 당시 정권을 가진쪽은 혹시 다카모리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염려되어 1877년 가고시마에 있는 무기고를 관리시키려 했다. 이에 참고 있던 사무라이들은 극에 달했고 결국 봉기가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갖춘 사무라이라고 해도 기관총과 야포를 운용하는 정부군을 상대로 싸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전쟁에 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토록 막강한 정부군과 싸우면서도 사무라이는 절대 비굴하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죽음을 택하며 끝까지 싸웠다는 것이며, 그 선봉에 선 사이고우 다카모리는 백제계 도래인의 후손이었다.왜 일본인은 사무라이 정신에 그토록 열광하는가?사무라이의 시대가 막을 내린지 149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일본인은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 사무라이의 정신을 이야기하며 뭔가 힘든 역경을 이겨내려 하고, 사무라이의 이야기를 하면 다들 정말로 힘을 내서 마치 드라마처럼 그 역경을 이겨내곤 한다. 그러면 왜 일본인은 사무라이 정신에 그토록 열광하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일본 건국 이후에 사무라이처럼 멋있는 기개(氣槪)를 간진 사람이나 집단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은 강자 앞에서 비굴하지 않았고 늘 자신의 몸가짐에 흐트러짐 없이 바른 자세와 정신을 함양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려고 한 사람들이며 자기가 모시는 사람에게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며 충성을 다했다. 그러므로 지금도 일본에서는 사무라이의 정신을 최고로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국민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일본인이 최고로 생각하는 문화이자 정신인 사무라이 정신은 백제인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마지막에 약 3만 명에 이르는 사무라이를 이끌고 선봉에 서서 최후까지 싸운 사람도 백제계 도래인의 후손 즉 우리의 선조였다. 다시 말해서 사무라이는 시작도 끝도 백제인에 의한 우리 조상의 문화였고 그분들의 얼이 담긴 정신이었는데, 그런데 정작 한국에는 사무라이 정신에 대해서 아는 이도 없고 그저 일본의 옛날에 있었던 무사도(武士道)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쩌다가 우리의 역사, 우리의 문화를 잃어버리고 이렇게까지 단절되었을까?한 번 제대로 된 역사와 역사관을 가지고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을 되찾아야겠다.2011년 145년 만에 프랑스로부터 조선시대의 “외규장각의 의궤”가 돌아왔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에 강화도를 침범한 프랑스군이 가져갔던 것이다. 물론 외규장각의 의궤는 물질적인 것이고 사무라이의 정신은 내적인 것이지만, 필자는 본질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것에 관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우리 것을 되찾아서 계승, 발전시켜 후대에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남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며 이 글을 마친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7-08 15:47:49 이광희 칼럼니스트
  • [이광희의 문화 칼럼]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에서 비롯된 일본인의 저력과 단결된 힘 ... 제 1편, 그 힘의 근본과 출발
    생활문화 일반

    [이광희의 문화 칼럼]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에서 비롯된 일본인의 저력과 단결된 힘 ... 제 1편, 그 힘의 근본과 출발

    사무라이 정신은 어디에서 시작됐는가
    일본은 약 1만4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이 이처럼 수많은 섬으로 구성된 국가라는 사실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그러나 일본은 대규모 자연재해나 국가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놀라울 정도의 질서와 단결력을 보여주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지진과 태풍, 홍수 같은 재난이 반복되지만 신속한 복구와 침착한 대응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아왔다.이러한 일본 사회의 저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많은 일본인들은 그 근원을 '사무라이 정신'에서 찾는다.사무라이(侍)는 일반적으로 검을 사용하는 무사(武士)를 뜻하지만, 본래는 일본어 '사부라우(さぶらう)'에서 유래한 말로 '곁에서 모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단순한 전사가 아니라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고 자신의 명예와 책임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존재였다.일부 연구자들은 이러한 사무라이 문화의 형성 과정에서 백제 도래인들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고 주장한다.고대 일본은 철 생산이 부족했던 섬나라였다. 당시 한반도의 백제와 가야는 뛰어난 제철기술과 철기 제작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일본은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철기와 제철기술, 무기 제작기술을 받아들였다.뿐만 아니라 수경재배를 이용한 벼농사 기술과 건축기술, 기와 제작기술 등 다양한 선진문물이 백제를 통해 일본에 전해졌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특히 663년 백촌강 전투에서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패망한 이후 많은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이주했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도래인(渡來人)'이라 불렀으며, 당시 일본 조정은 이들의 뛰어난 기술과 지식을 적극 활용했다.'일본서기'에는 덴찌 천황이 백제의 고위 관료였던 목소귀자, 답발춘초, 곡나진수 등에게 높은 관직을 부여하고 왜군에게 병법과 전술을 가르치도록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또한 덴찌 천황은 백제인 약 2천 명을 오늘날의 도쿄·요코하마·사이타마 일대로 이주시켜 지역 발전과 행정을 맡겼다고 전해진다.이후 이 지역에서는 일본 최대 무사 세력으로 성장한 미나모토(源氏) 가문이 등장한다. 헤이안 시대 말기에는 동국 지역을 장악했고, 1192년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정이대장군에 임명되면서 일본 최초의 무사정권인 가마쿠라 막부가 시작됐다.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백제 도래인들이 일본 무사문화 형성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다만 사무라이 제도의 성립은 일본 내부의 봉건제 발전과 지방 무사세력 성장 등 다양한 역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 현재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기도 하다.사무라이는 단순한 전투집단이 아니었다.영주를 보좌하며 영토를 방어하고 세금을 거두었으며 행정과 치안까지 담당했다. 전성기에는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에서 핵심 계층으로 자리 잡으며 일본 사회를 이끌었다.무엇보다 사무라이가 오늘날까지 일본 사회에서 특별하게 평가받는 이유는 그들의 가치관 때문이다.주군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고, 책임을 끝까지 다하며, 명예를 생명처럼 여겼다. 수치를 당하면 할복으로 책임을 졌고, 공동체의 규율을 철저히 지키며 언제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단련했다.이러한 정신은 현대 일본에서도 기업문화와 조직문화, 재난 대응 등 여러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는 가치로 남아 있다.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사무라이 시대도 결국 막을 내리게 된다.에도 시대에는 약 260년 동안 큰 전쟁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검을 들고 싸우던 사무라이들은 점차 행정관료의 역할을 맡게 되었고, 무사로서의 본래 기능은 약해졌다.결정적인 변화는 메이지유신이었다.메이지유신은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천황 중심의 근대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국가 개혁이었다. 신분제가 사라졌고, 사무라이에게 지급되던 봉급도 폐지됐으며, 칼을 차는 것마저 금지하는 폐도령이 시행됐다.기득권을 잃은 사무라이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정부와 무력 충돌을 벌이게 된다. 이것이 1877년의 세이난 전쟁이다.흥미로운 점은 이 전쟁을 이끈 인물이 사이고 다카모리였다는 사실이다.그는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키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었지만, 새 정부가 사무라이를 해체하는 정책을 추진하자 이에 반기를 들고 직접 정부군과 맞섰다.결국 그는 전쟁에서 패하며 생을 마감했고, 세이난 전쟁은 일본 역사상 마지막 사무라이 전쟁으로 기록됐다.사무라이라는 신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충성·책임·명예·절제라는 사무라이 정신은 지금도 일본 사회 곳곳에서 하나의 문화적 가치로 이어지고 있다.물론 사무라이 정신을 지나치게 이상화하거나 미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위해 책임을 다하고, 맡은 일을 끝까지 수행하려는 자세만큼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되새겨볼 만한 가치가 아닐까.[2편에 계속]*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7-07 18:43:12 이광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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