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폭염·집중호우는 이제 상수… 기후위기 시대 맞춤형 수급 시스템 시급
- 비축 확대·계약재배·AI 예측체계 구축 등 구조개혁 없이는 '장바구니 물가' 불안 반복
서민 식탁의 대표 식재료인 계란과 대파 가격이 또다시 큰 폭으로 오르면서 정부의 농산물 수급 관리 체계가 근본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정부는 뒤늦게 할인 지원과 수입 확대를 통해 가격 안정에 나섰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가격이 오른 뒤 세금을 투입해 할인하는 방식은 매년 반복되는 '응급처치'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물가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예측 능력과 정책 대응 시스템 전반을 되돌아봐야 할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예고된 위기였지만 정부는 또 늦었다
올해 계란 가격 상승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겨울부터 전국적으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되면서 산란계가 대규모로 살처분됐다. 공급 감소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예상됐고, 산란계를 다시 키워 정상 생산까지 회복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은 업계의 공통된 전망이었다.
대파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배면적 감소와 이상고온, 기상 악화 가능성은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됐다. 최근 몇 년간 반복된 폭염과 집중호우를 고려하면 생산량 감소 역시 충분히 예상 가능한 변수였다.
그럼에도 정부의 본격적인 대응은 소비자들이 가격 상승을 체감한 이후 시작됐다.
태국산과 미국산 계란 수입, 할인 예산 투입, 대형마트 할인 행사 등 대부분의 대책은 가격이 오른 이후에야 시행됐다.
결국 정부는 위험을 관리하기보다 가격이 오른 뒤 수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매년 반복되는 '사후 처방 행정'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올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에는 폭염과 집중호우로 수박, 오이, 애호박, 배추 가격이 급등했다.
그때도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을 강화하고 농산물 수급관리 체계를 고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올해 달라진 것은 품목뿐이었다. 지난해는 배추와 수박이었고 올해는 계란과 대파였다.
결국 가격이 오르고 소비자 불만이 커진 뒤 할인 예산을 투입하고 수입을 늘리는 대응 방식은 그대로 반복됐다.
기후위기가 일상이 된 상황에서 여전히 과거 방식의 물가 관리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할인은 정책이 아니라 응급조치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인 3000억 원의 할인 예산을 편성하고 수입 계란 공급을 확대했다.
단기적으로 소비자 부담을 줄이는 효과는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할인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가격 상승분 일부를 보전하는 방식이다. 가격이 오를 때마다 세금을 투입하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공급 안정 시스템을 미리 구축했다면 막대한 할인 예산을 반복적으로 투입하지 않아도 됐을 가능성이 크다.
수입 확대 역시 근본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
환율 상승과 국제 물류비 변동에 따라 수입 가격도 쉽게 흔들릴 수 있고, 국내 생산 기반 약화라는 또 다른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예측 행정'으로 전환해야
기후위기 시대 농산물 가격은 더 이상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폭염, 집중호우, 가뭄, AI와 같은 가축 전염병은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정부 역시 대응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첫째, AI 발생과 재배면적 감소 등 위험 신호가 확인되는 즉시 공급 부족 규모를 예측하는 실시간 농산물 위험 예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계약재배를 확대해 생산량을 보다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생산자에게는 소득 안정성을, 소비자에게는 가격 안정성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다.
셋째, 국가 비축 시스템도 품목별 특성에 맞게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신선 농산물은 저장 한계가 있는 만큼 가공란과 냉동·가공 채소 등 다양한 형태의 비축 전략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넷째, AI 방역 체계를 보다 정밀하게 개선해야 한다. 발생 이후 대규모 살처분에 의존하기보다 스마트 방역과 농장별 위험도 관리, 백신 연구 등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다섯째, 농업 분야에도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기상자료와 재배면적, 병해충 발생, 소비량 등을 종합 분석해 생산량과 가격을 미리 예측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시장 충격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장바구니 물가는 국가 경쟁력이다
계란과 대파 가격은 단순히 일부 품목의 가격 상승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이 가장 자주 구매하는 생활필수 식품의 가격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와 직결된다.
같은 문제가 해마다 반복된다면 국민들은 정부의 발표보다 마트 가격표를 먼저 믿게 된다. 기후위기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정부는 "예측이 어려웠다"는 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가격이 오른 뒤 할인 쿠폰을 받는 일이 아니라, 애초에 장바구니 물가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공급 시스템이다.
계란과 대파 가격 급등은 단순한 물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농업 정책과 수급 관리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경고다. 매년 반복되는 '가격 급등→수입 확대→할인 지원'의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면, 내년에는 또 다른 품목이 같은 자리를 대신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이제는 사후 대응이 아닌 선제 대응 중심의 농정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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