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사망 204명에 과징금 최대 9,494억…기업 규모 따라 110배 격차, 처벌 형평성 논란
사망자 23명 사업장보다 3명 사망 사업장 과징금 상한이 110배…영업이익 기준 적정성 도마 위
[데일리환경=이정윤 기자]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도입되는 고액 과징금 제도가 시행을 앞두고 처벌의 형평성과 실효성 논란에 직면했다. 같은 산업재해 사망사고라도 기업의 영업이익 규모에 따라 과징금 상한이 수십 배에서 100배 이상 차이 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다. 특히 사망자가 23명 발생한 사업장의 과징금 상한은 30억원인 반면, 3명이 숨진 대기업에는 최대 3,300억원을 부과할 수 있는 것으로 추산돼 과징금 산정 기준이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다만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차등 부과하는 방식은 기업의 경제적 부담 능력과 제재 효과를 고려한 제도라는 점에서 단순히 사망자 수와 과징금 액수를 비교하는 것만으로 형평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윤재옥 의원(대구 달서구을)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일인 2022년 1월 27일부터 2026년 6월 30일까지 최근 1년 이내 노동자 3명 이상이 숨진 사업주는 36곳으로 집계됐다.여기에는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철도공사, 산림청 등 공공부문도 포함됐다. 해당 사업주에게서 발생한 사망사고는 총 114건, 사망자는 204명에 달했다.윤 의원실은 이들 사업주의 사고 발생 연도별 영업이익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 자료에 대입해 과징금 상한을 산출했다. 동일 사업주가 여러 해에 걸쳐 대상에 포함된 경우 연도별로 구분해 총 45건을 분석했다.그 결과 과징금 상한액의 합계는 최대 9,494억원으로 추산됐다.지난 10월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제161조의2는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최근 1년간 근로자 3명 이상이 사망한 경우 영업이익의 5%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영업이익이 없거나 산정하기 어렵고, 영업이익의 5%가 30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30억원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이번 분석은 모든 사고가 법정 의무 위반에 해당하고 과징금 상한액이 부과된다는 가정에 따른 것이다. 개정법 시행 이후 발생하는 사망사고부터 적용되므로 과거 사고에 실제로 과징금이 부과되는 것은 아니다.실제 과징금 규모 역시 향후 대통령령으로 정해질 세부 기준과 위반 정도, 사망자 수, 재발 방지 노력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23명 숨진 아리셀 30억, 3명 사망 현대차 3,300억…과징금 110배 차이이번 분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산업재해 사망자 수와 과징금 상한액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이다.2024년 6월 경기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로 노동자 23명이 숨졌지만, 아리셀은 해당 연도 4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과징금 상한액이 30억원으로 산정됐다.반면 같은 해 11월 사고로 노동자 3명이 숨진 현대자동차는 2024년 별도 영업이익 6조 5,994억원의 5%에 해당하는 약 3,300억원까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사망자 수는 아리셀이 현대차보다 7배 이상 많지만 과징금 상한액은 오히려 현대차가 110배 높은 셈이다.과징금 추산액도 일부 대기업에 집중됐다.현대자동차가 3,30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전력공사 1,583억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1,011억원, 포스코 890억원 순으로 나타났다.이들 4건의 과징금 상한액은 총 6,784억원으로 전체 추산액의 71.5%를 차지했다.반면 전체 45건 가운데 영업이익의 5%를 기준으로 과징금이 산출된 경우는 19건으로 42%에 그쳤다.나머지 26건은 영업손실 12건, 영업이익의 5%가 30억원 미만인 경우 10건, 영업이익 산정이 어려운 경우 4건으로 집계됐다.이는 과징금 제도가 실제 적용될 경우 상당수 사업주가 영업이익 5% 산식이 아닌 30억원 이내 부과 기준의 적용을 받게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중소기업은 영업이익의 11배까지…경영 부담 논란과징금 산정 방식은 중소기업에 상대적으로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논란이 예상된다.2025년 12월 발생한 사고로 노동자 4명이 숨진 구일종합건설은 해당 연도 영업이익이 2억6,000만원이었지만 과징금 상한액은 30억원으로 추산됐다.연간 영업이익의 약 11.5배에 달하는 규모다.2024년 노동자 3명이 숨진 초석에이치디는 영업이익 11억6,000만원의 약 2.6배, 2026년 3명이 숨진 영덕풍력발전은 직전 연도 영업이익 14억2,000만원의 약 2.1배에 해당하는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대기업에는 영업이익의 5%라는 상한이 적용되는 반면, 이익 규모가 작은 사업주에게는 연간 영업이익을 크게 웃도는 과징금 상한이 적용될 수 있는 구조다.물론 이러한 금액은 실제 부과액이 아닌 법률상 가능한 최대치다. 앞으로 마련될 시행령에서 기업 규모와 위반 정도, 재발 방지 노력 등을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따라 실제 부담은 달라질 전망이다.그럼에도 중소기업의 경우 대규모 과징금이 경영 악화나 사업 중단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안전관리 관점…과징금 강화만으로 사망사고 줄일 수 있나산업안전 관리의 관점에서 이번 제도는 기업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는 동시에 실제 사고 예방 효과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고액 과징금은 사업주가 안전·보건 의무를 준수하도록 유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처벌 수준을 높이는 것만으로 산업재해가 자동으로 감소한다고 보기는 어렵다.산업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작업장별 위험성 평가와 유해·위험요인 제거, 노후 설비 개선, 협력업체 안전관리, 근로자 교육 등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특히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과징금 부과와 별개로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동일한 위험이 재발하지 않도록 개선 여부를 확인하는 사후관리 체계가 중요하다.안전관리 실무 측면에서는 과징금 산정 시 단순한 영업이익뿐 아니라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의 중대성, 사망자 수, 반복 사고 여부, 사고 예방을 위한 실질적인 투자와 개선 노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다만 기업이 안전시설에 투자했다는 이유만으로 중대한 법 위반에 대한 책임이 과도하게 감경되지 않도록 하는 기준도 필요하다.특히 사망사고 이후의 개선 노력과 사고 이전에 이행했어야 할 법적 의무를 구분해 평가해야 과징금 제도의 예방 효과와 책임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재계 관점…“제재 기준 명확해야 기업도 안전투자 계획 세운다”재계의 관점에서는 과징금 제도의 예측 가능성과 기업 규모별 부담 형평성이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른다.산업재해로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사업주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것은 필요하지만, 과징금 산정 기준이 불명확하거나 기업의 실제 부담 능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면 제도 운영 과정에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특히 영업이익이 적거나 적자를 기록한 기업에도 최대 30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는 구조는 중소기업의 재무 여건을 고려한 세부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과징금이 기업의 존속에 영향을 줄 정도로 부과될 경우 안전설비 개선과 인력 확충에 투입할 재원이 줄어들 가능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반면 기업의 재정 부담을 이유로 제재를 지나치게 완화한다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법적 책임이 약화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결국 재계가 제기할 수 있는 핵심 문제는 과징금 자체의 폐지나 축소보다 기업이 사전에 법적 위험을 예측하고 안전관리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명확한 부과 기준을 마련하는 데 있다.기업 규모에 따른 경제적 부담 능력을 반영하되, 중대한 안전조치 위반과 반복적인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제재가 이뤄지도록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기업에 얼마를 물릴 것인가보다 노동자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가 우선이번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과징금이 많고 적은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36곳의 사업주에게서 114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해 20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 더욱 무겁게 다뤄져야 할 대목이다.정부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처벌과 경제적 제재를 강화해 왔음에도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점은 기존 산업안전 관리체계가 현장에서 충분한 예방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성을 보여준다.특히 사망자 수보다 영업이익 규모가 과징금 상한액을 크게 좌우하는 구조는 제재의 형평성에 대한 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다만 기업 규모에 따라 과징금 액수를 달리하는 것이 반드시 불합리한 것은 아니다. 동일한 금액의 과징금이라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받는 경제적 충격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중요한 것은 기업의 경제적 능력을 고려하면서도 사고의 심각성과 안전관리 의무 위반 정도가 과징금 산정에 충분히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23명이 숨진 사고와 3명이 숨진 사고의 과징금 상한액이 110배 차이 난다는 사실만으로 법률의 문제점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실제 제재 과정에서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정부가 설명해야 할 필요는 있다.또한 산업재해 예방을 기업의 과징금 부담 문제로만 접근해서도 안 된다.노동자가 위험한 작업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예방조치가 우선이며, 사고 발생 이후의 처벌은 이러한 의무를 지키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묻는 수단이어야 한다.정부가 과징금 제도의 성과를 평가할 때도 부과 금액이나 제재 건수보다 사망사고 감소 여부와 사업장 안전 수준의 개선을 중심에 둬야 한다.윤재옥 의원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뒤에도 1년 새 3명 이상이 숨진 사업주가 36곳, 사망자가 204명에 이른다"며 "처벌을 세게 하면 사망자가 줄어든다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어 "사망자 수가 아니라 영업이익 크기가 과징금 상한을 가르는 구조라면 23명이 숨진 사업장은 최대 30억원, 3명이 숨진 사업장은 최대 3,300억원이 되는 일이 생긴다"며 "이는 안전관리 실패가 아니라 기업 규모에 매기는 제재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윤 의원은 또 "정부의 산업재해 관리가 단순히 기업을 옥죄는 방향에 그치지 않고 현장의 위험을 실제로 줄이는 예방 투자로 이어지도록 이번 국정감사에서 안전 대책을 분명히 따져 묻겠다"고 밝혔다.산업재해 과징금 제도의 실효성은 앞으로 마련될 시행령의 구체적인 부과 기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정부는 기업의 영업이익과 사고의 심각성, 반복적인 법 위반 여부, 안전관리 개선 노력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동시에 고액 과징금이 기업의 안전투자를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안전관리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에게는 실질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제도적 균형을 확보해야 한다.산업재해 대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기업에 얼마나 많은 과징금을 부과하느냐가 아니라,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사고를 얼마나 줄이느냐에 있다.정부가 과징금 부과 기준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과 함께 산업현장의 위험요인을 사전에 제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예방정책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