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10편, '편견' ... 노력이 의심으로 번역되는 자리
편견은 충분히 알기 전에 이미 판단해 버리는 마음의 습관이다. 한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보기보다, 그가 속해 있다고 여겨지는 집단·성별·나이·직업·출신·외모·지역·종교·학력 같은 표지로 먼저 재단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어떤 집단에 대한 단순한 믿음이 고정관념이라면, 그 고정관념에 감정적인 태도가 얹어진 것이 편견이다. 예를 들어 "저런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할 거야"라는 생각이 고정관념이라면, "그래서 나는 저 사람들이 불편해"라는 마음이 편견이다. 그리고 그 편견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순간, 차별이 된다. 필자에게 편견이 불러온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2017년 강서구 장애인 학교 설립을 둘러싼 풍경이다.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장애 학생 학부모들이 주민설명회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했던 그 모습은, 지금도 영화와 드라마에서 자주 오마주되고 있다. 당시 반대의 명분 안에는 "특수학교가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섞여 있었다. 강서구 사건만큼 큰 이슈를 끌지는 못했지만, 2018년 안양에서도 보육원 이전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보육원 예정지 인근에는 "주민 허락 없는 보육원 공사, 안양시는 인허가를 취소하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주민들은 절차와 협의 부족을 문제 삼았지만, 그 현수막이 보여 준 것은 결국 보육원이 환영받는 이웃이 아니라 '들어와서는 안 되는 시설'로 취급될 수 있다는 현실이었다.보육원아동들이 한번쯤은 겪었던 편견들 지난주에는 대중문화가 만들어 내는 편견에 대해 이야기했다. 보육원 아동에게는 흔히 불쌍함, 배우지 못함, 도둑, 범죄 같은 편견이 따라붙는다. 지금의 이십 대 중반, 소위 밀레니얼 세대까지 학교에서 가장 자주 겪었던 편견은 단연 '도둑질'에 관한 것이다. 학교에서 물건이 분실되면 보육원 아동이라는 이유 하나로 가장 먼저 조사를 받았다. 그 윗세대 청년들 중에는 저학년 때 속옷까지 벗긴 채 조사를 받았다는 증언도 있다. 대부분 초등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12년 내내 이어지는 일이다.2001년생인 A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보육원에 입소했다. 입소하면서 보육원 근처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전학을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급에서 MP3 분실 사건이 일어났다. 가장 먼저 교무실로 불려간 사람은 A였다. 마침 A 역시 분실된 것과 같은 색, 같은 기종의 MP3를 가지고 있었다(당시 초등학교 고학년 사이에서는 그 모델이 유행이었다). 선생님은 다소 고가의 장비인 MP3를, 그것도 분실된 것과 같은 기종·같은 색으로 가지고 있는 보육원 아동 A가 범인이라고 단정 지었다. A가 아니라고 거듭 부인하자 손바닥에 회초리가 떨어졌다. A는 누군가의 물건을 단 한 번도 훔쳐 본 적이 없었기에 억울함에 몸부림쳤지만, 그보다 더 슬펐던 것은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이 보육원에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은 일이었다. 일반 가정에서라면 겪지 않았을 일을 보육원 아동이라는 이유로 겪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MP3는 학교 쓰레기장에서 발견되었고 그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중학교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은 툭하면 반복되었다. 요즘 아동들은 이런 일을 대놓고 겪지는 않지만, 가끔 보육원 사무실로 물건을 잃어버린 학생의 부모가 전화해 "혹시 우리 아이 물건을 보육원 아동이 가져가지 않았는지 조사해 달라"고 요청하는 일은 여전히 있다.삼십 대 초반의 B는 중학교 1학년 때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오던 대학생 덕분에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그 결과 중학교 2학년 2학기 중간고사에서 성적이 크게 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담임선생님이 B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고 단정한 것이다. 별도의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학교 선생님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보육원에 전화를 걸었고, 보육원 선생님과 학교 선생님 사이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B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성적이 오른 자신이 당연히 칭찬받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돌아온 것은 의심이었다. 다행히 보육원 선생님들이 끝까지 자신을 믿어 주었기에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고등학생이 된 B는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그런데 당시 힘도, 돈도 없던 B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견디다 못해 학교 측에 정식으로 제보했지만, B에게 더 힘들었던 것은 학폭 자체가 아니라 제보 이후의 시간이었다. 당시 보육원에서는 공부 잘하는 B를 위해 별도로 학원을 보내 주었고, 유명 대학에 재학 중인 남자 대학생이 봉사활동으로 과외를 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가해자와 가해자 부모들이 이 사실을 문제 삼았다. 그 남자 대학생에게 성(性)을 제공하는 대가로 과외를 받는다는 소문, 보육원이 불법으로 학원을 보낸다는 이상한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실제로 과외받던 날 가해자 부모가 들이닥치듯 찾아와 사진을 찍었고, 봉사 과외 선생님에게 따로 전화를 걸어 추궁하고 괴롭히는 바람에, 결국 그 과외 봉사활동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이렇듯 '보육원 아동은 성적이 낮을 것이다', '보육원 아동은 도둑질을 할 것이다'라는 식의 편견은 80년대생이나 그 이전 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인 일이다.여성 청년에게 더 가혹한 편견의 잣대여성 자립준비청년의 경우에는 학력이 높거나 유학을 다녀온 이력이 있으면 또 다른 프레임이 따라붙는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최저시급이 6천 원대였다. 그 시절 등록금이 높은 사립대를 다녔거나 유학을 다녀온 자립준비청년에게는 '뒤에 누군가 있을 것이다', 즉 불법 스폰서가 있을 거라는 의심이 따라붙는 식이다.작년 소위 여초 사이트를 달군 글이 하나 있었다(물론 글의 진위 여부는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 삼십 대 중반의 한 여성이 보육원 출신으로,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유학을 다녀왔다. 그녀는 같은 동문인 한 남성과 사귀게 되었는데, 만남의 시기가 짧아 아직 결혼을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해 자신의 출신을 밝히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남성이 결혼을 진지하게 이야기하자, 여성은 자신이 보육원에서 자랐음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남성은 "불법 스폰서가 없다면 유학 생활이 가능했겠느냐"며 그녀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결국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후원자들의 후원금과 자신의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하며, 식비를 줄여 가면서까지 어렵게 공부한 사람이었다. 이 모든 노력을 단번에 폄하해 버린 남성과는 헤어졌지만, 남성은 동문들 사이에 "그 여자가 불법 스폰서를 받은 것 같다"는 소문까지 퍼뜨리는 찌질함의 극치를 보였다고 한다.생각보다 이 편견의 벽은 높고 견고하다. 같은 조건의 남성 청년이 어렵게 끝까지 공부해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칭찬이 따라붙지만, 여성 청년에게는 의심의 눈초리가 먼저 따라붙는다. 그래서 적지 않은 여성 자립준비청년들이 자신이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는다. 밝히는 순간 노력의 서사가 의심의 서사로 뒤바뀌어 버리기 때문이다.편견이 남기는 자리편견은 한 사람의 가능성을 시작도 하기 전에 닫아 버린다. 도둑이 아닌데도 가장 먼저 의심받고, 노력해서 얻은 성적조차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며, 어렵게 쌓아 올린 학력 앞에서는 더 무거운 의심이 따라붙는다. 이런 일들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초·중·고 12년, 더 길게는 청년기 전체로 이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많은 자립준비청년들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출신을 감추는 법부터 익힌다. 감춰야만 비로소 평범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기 때문이다.A가 MP3 사건을 통해 깨달은 것은 단순히 자신이 도둑으로 의심받았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보육원에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였다. 편견은 그렇게 한 사람의 자기 인식 안쪽까지 천천히 침식해 들어간다.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큰 사건이 필요하지 않다. 매일 조금씩 의심받는 시간이 쌓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다음 주에는 더 깊은 자리에 박혀 있는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바로 유전과 기질, 그리고 핏줄에 관한 편견이다. "결국 그 피가 어디 가겠느냐", "부모를 닮을 수밖에 없다"는 식의 말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따라다니는지, 그 이야기를 이어 가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