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보내온 지구촌 인류에 대한 경고 ... 탄소중립의 숨은 조력자, '고래'
- 고래 한 마리가 숲처럼 탄소를 품는다 … 탄소중립의 새로운 동맹 ‘웨일카본'
[데일리환경=안영준기자 dailyt@naver.com] 고래는 거대한 몸에 탄소를 저장하고 바다 곳곳으로 영양분을 운반한다. 죽은 뒤 심해로 가라앉은 사체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며 일부 탄소를 오랫동안 깊은 바다에 남긴다. 그러나 고래를 ‘움직이는 탄소배출권’으로 환산하려는 순간 과학적 불확실성과 윤리적 문제가 시작된다. 고래의 몸은 어떻게 탄소 저장고가 되나대왕고래와 참고래, 혹등고래 같은 대형고래는 수십 년에서 100년 가까이 살며 거대한 몸을 만든다. 고래가 크릴과 물고기 등 먹이를 먹고 성장하는 동안 먹이에 포함된 탄소 일부가 지방과 근육, 뼈 등 몸속에 축적된다.이 탄소는 고래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의 ‘생물 탄소 저장고’에 머문다. 나무가 광합성으로 탄소를 몸에 저장하듯 고래도 먹이망을 통해 전달받은 탄소를 몸속에 보관하는 것이다.다만 나무와 고래의 탄소 저장 방식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나무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직접 흡수하지만 고래는 이미 식물플랑크톤이 광합성으로 흡수해 해양 먹이망으로 전달한 탄소를 먹이를 통해 얻는다. 따라서 고래 몸에 들어 있는 모든 탄소를 고래가 대기에서 새로 제거한 양으로 계산해서는 안 된다.고래가 살아 있는 동안 몸집이 커져 증가한 탄소량과, 고래 보호 때문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추가로 줄어든 양도 구분해야 한다. 이를 혼동하면 고래의 기후 효과를 실제보다 크게 평가할 수 있다.‘고래 한 마리 33톤’은 확정된 보편값이 아니다고래와 탄소의 관계를 소개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구가 “대형고래 한 마리가 평균 33톤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며 이는 나무 3만 그루와 같다”는 주장이다.이 수치는 2019년 국제통화기금(IMF) 발간물에 소개되면서 널리 확산됐다. 국제포경위원회(IWC)도 2022년 고래의 생태계 가치를 논의한 워크숍에서 이 추정치와 고래 한 마리의 경제적 가치를 약 200만달러로 계산한 사례를 소개했다. 그러나 모든 고래가 33톤의 이산화탄소를 똑같이 저장하는 것은 아니다. 대왕고래와 향유고래, 밍크고래는 몸집과 수명, 먹이, 이동경로가 크게 다르다. 어린 고래와 성체의 몸속 탄소량도 다르며, 죽은 고래가 해안으로 떠밀려오는지 심해로 가라앉는지에 따라 장기 저장 효과가 달라진다.‘33톤’이 탄소 원소의 무게인지 이산화탄소 환산량인지도 자료를 인용할 때 명확히 해야 한다. 탄소 1톤은 분자량을 적용하면 약 3.67톤의 이산화탄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단위를 혼동하면 수치가 3배 이상 달라질 수 있다.나무와의 비교도 조심해야 한다. 나무의 탄소흡수량은 수종과 나이, 기후, 토양, 계산기간에 따라 달라진다. 고래가 평생 저장한 양을 나무의 1년 흡수량과 비교하면 ‘몇만 그루’라는 큰 숫자를 만들 수 있지만, 같은 기간과 조건을 적용한 비교라고 보기는 어렵다.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고래가 몸과 영양순환을 통해 탄소 저장에 기여한다고 설명하면서 평균 33톤의 이산화탄소 환산치를 소개한다. 동시에 실제 기후 효과를 계산하려면 고래의 종과 개체군, 사체의 이동, 해양 먹이망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배설물이 바다를 비옥하게 만드는 ‘고래 펌프’고래의 탄소 효과는 거대한 몸에만 있지 않다. 고래는 깊은 바다에서 먹이를 먹고 수면으로 올라와 호흡하고 배설한다. 이 과정에서 깊은 바다나 먹이터의 영양분을 햇빛이 드는 표층으로 옮긴다.고래의 배설물에는 질소와 인, 철 등 식물플랑크톤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이 들어 있다. 특히 남극해처럼 철분이 부족해 식물플랑크톤의 성장이 제한되는 해역에서는 고래가 운반한 철이 해양 생산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식물플랑크톤은 햇빛을 이용해 광합성하면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이들이 동물플랑크톤과 크릴의 먹이가 되고 다시 물고기와 고래에게 전달되면 거대한 해양 먹이망이 유지된다. 고래가 영양분을 표층으로 되돌리고 식물플랑크톤의 생산을 돕는 순환을 ‘고래 펌프’라고 부른다.고래는 장거리 이동을 통해 영양분을 수평으로도 옮긴다. 고위도 먹이터에서 먹이를 섭취한 뒤 저위도 번식지로 이동해 배설하고 새끼를 낳으면서 영양분을 다른 해역으로 운반한다. 이를 ‘고래 컨베이어 벨트’라고 표현하기도 한다.이러한 기능은 고래를 단순한 먹이사슬의 최상위 소비자가 아니라 바다의 영양분 분포를 바꾸는 ‘생태계 공학자’로 보게 한다.식물플랑크톤이 늘었다고 모두 탄소가 저장되는 것은 아니다고래 배설물이 식물플랑크톤의 성장을 돕는 현상은 관측과 실험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곧바로 “고래가 늘면 식물플랑크톤이 늘고, 그만큼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영구 제거된다”는 결론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식물플랑크톤이 흡수한 탄소 대부분은 표층의 먹이망에서 소비되거나 미생물에 의해 분해돼 다시 이산화탄소 형태로 물과 대기에 돌아갈 수 있다. 장기간 저장되려면 식물플랑크톤의 사체와 배설물, 유기물 입자 일부가 수백∼수천m 아래로 가라앉아야 한다. 이를 해양의 ‘생물학적 탄소펌프’라고 한다.고래 때문에 식물플랑크톤이 얼마나 추가로 성장했는지, 그중 얼마가 원래 다른 생물이 이용했을 영양분인지, 늘어난 탄소 가운데 얼마가 깊은 바다까지 가라앉았는지를 구분하기는 어렵다.해역마다 부족한 영양소도 다르다. 질소가 부족한 바다에 철만 공급되거나, 빛과 수온 등 다른 조건이 맞지 않으면 기대만큼 생산성이 증가하지 않을 수 있다. 식물플랑크톤의 종류와 먹이망 구조에 따라서도 심해로 내려가는 탄소의 비율이 달라진다.2023년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마린 사이언스"에 발표된 검토 연구는 고래가 몸체 저장과 고래 펌프, 장거리 영양분 이동, 고래 낙하 등 다양한 경로로 해양 탄소순환에 기여한다고 정리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추가로 제거하는지 정량화하려면 더 많은 현장 자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죽은 고래 한 마리가 심해의 생태계가 된다고래가 죽으면 사체는 해안으로 밀려오거나 다른 동물에게 먹히기도 하지만, 일부는 깊은 바다로 가라앉는다. 이를 ‘고래 낙하’ 또는 ‘웨일 폴’이라고 한다.심해 바닥에 도착한 고래 사체는 먹이가 부족한 심해생물에게 거대한 영양 공급원이 된다. 상어와 먹장어 같은 동물이 연조직을 먹고, 작은 갑각류와 갯지렁이, 미생물이 남은 유기물을 분해한다. 이후 뼈에 저장된 지방과 화학물질을 이용하는 미생물과 특수 생물 군집이 형성된다.하나의 고래 사체는 수십 년 동안 여러 단계의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다. 고래가 심해 생물다양성을 이어주는 ‘생태계의 섬’ 역할을 하는 셈이다.사체가 충분히 깊은 바다로 내려가면 몸에 포함된 탄소 일부도 표층 대기와 빠르게 교환되지 않는 공간에 머문다. 저장기간은 수백 년 이상이 될 수 있지만, 모든 탄소가 영구히 고정되는 것은 아니다. 분해 과정에서 일부는 이산화탄소나 메탄 등으로 바뀌고, 해류와 해양순환을 따라 언젠가 표층으로 돌아올 수 있다.2010년 "플로스 원" 연구는 상업포경 이전 수준으로 대형고래 개체군이 회복될 경우 고래 낙하를 통해 매년 약 16만 톤의 탄소가 추가로 심해에 전달될 가능성을 추정했다. 이 양을 이산화탄소로 환산하면 약 59만 톤이다. 의미 있는 생태계 효과지만 전 세계 화석연료 배출량과 비교하면 매우 작은 규모다. 고래가 돌아오면 탄소 기능도 회복된다산업적 포경은 19∼20세기 대형고래 개체군을 급감시켰다. 고래가 줄면서 몸에 저장되는 탄소뿐 아니라 배설물로 이동하는 영양분과 고래 낙하의 빈도도 함께 감소했다.2022년 영국 왕립학회보에 발표된 연구는 남반구의 주요 수염고래 5종이 상업적 포경 이전 개체 수를 유지했을 경우, 몸체 성장과 고래 낙하를 통해 연간 약 40만 톤의 탄소를 저장·심해 수송했을 가능성을 추정했다. 남반구 수염고래 탄소 기능 연구 고래 개체군 복원이 잃어버린 탄소 기능을 일부 회복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고래 복원은 속도가 느리다. 대형고래는 임신기간이 길고 한 번에 주로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일부 개체군은 포경 중단 뒤 회복하고 있지만, 북대서양참고래처럼 충돌과 혼획, 먹이환경 변화로 심각한 위험에 놓인 종도 있다.고래를 보호하면 탄소뿐 아니라 영양순환, 생물다양성, 관광, 문화 등 여러 편익이 함께 발생한다. 탄소량만으로 고래의 가치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배보다 느린 고래 … 선박 충돌의 위험대형 선박의 항로와 고래의 이동·먹이터가 겹치면 충돌 위험이 커진다. 고래는 수면에서 호흡하고 쉬며 새끼를 돌본다. 선박이 빠른 속도로 접근하면 발견하거나 피할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충돌은 몸에 깊은 상처와 골절, 내부 장기 손상을 일으킨다. 대형 선박은 고래와 충돌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항해를 계속하기도 해 실제 피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주요 서식지에서 선박 속도를 낮추면 충돌 확률과 치명률을 함께 줄일 수 있다. 고래의 실시간 위치와 계절별 이동을 반영해 항로를 조정하고, 선박과 항만에 탐지·경보 체계를 구축하는 방법도 필요하다.북대서양참고래의 장기적인 비정상 폐사 사례에서 확인된 대표적 인위적 사망 원인은 어구 얽힘과 선박 충돌이다. 보이지 않는 그물과 들리지 않는 길고래는 어망과 통발을 연결하는 밧줄에 걸리기도 한다. 몸에 감긴 줄을 끌고 수개월간 이동하면 에너지가 고갈되고, 줄이 피부와 지방층을 파고들어 감염과 장애를 일으킨다. 수면으로 올라오지 못하면 익사할 수도 있다.고래가 자주 출현하는 시기와 해역에서 어구 사용을 조정하고, 수면에서 해저 통발까지 이어지는 고정 밧줄을 줄인 ‘무부표·무로프 어구’를 개발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분실 어구의 신고와 회수, 어구 표시제도 함께 필요하다.수중소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장벽이다. 고래는 소리를 이용해 무리와 소통하고 짝을 찾으며 이동하고 먹이를 탐색한다. 선박 엔진과 프로펠러, 해양 공사, 군사 소나, 자원탐사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중요한 신호를 가리거나 행동과 이동경로를 바꿀 수 있다.일부 강한 소음은 청각 손상이나 급격한 회피행동을 일으킬 위험도 있다. 선박 속도 저감과 저소음 프로펠러, 공사 시기 조정, 핵심 서식지의 소음 기준 마련은 고래 보호와 해양환경 관리의 중요한 부분이다.고래를 탄소시장에 넣을 수 있을까고래 보호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고래 탄소’를 탄소배출권으로 만들자는 주장이 나온다. 기업이나 국가가 고래 보호사업에 투자하고, 그 결과 늘어난 탄소 저장량을 배출권으로 인정받는 방식이다.아이디어는 매력적이지만 실제 제도화에는 여러 난제가 있다.첫째는 측정 문제다. 개별 고래의 몸속 탄소는 몸길이와 체중을 통해 추정할 수 있지만, 바다에서 모든 개체의 성장과 사망 원인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배설물이 늘린 식물플랑크톤과 심해로 내려간 탄소를 사업별로 정확히 측정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둘째는 추가성이다. 탄소배출권 수입이 없었다면 시행되지 않았을 보호조치로 고래가 추가로 늘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미 법으로 보호받는 고래나 자연적으로 회복 중인 개체군을 배출권 사업의 성과로 계산하면 실제보다 많은 크레디트가 만들어질 수 있다.셋째는 영속성이다. 보호한 고래가 선박 충돌과 혼획으로 일찍 죽거나 사체가 해변으로 떠밀려오면 예상한 탄소 저장기간이 달라진다. 해양열파와 먹이 감소로 개체군이 다시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넷째는 이중계산이다. 여러 국가의 바다를 이동하는 고래의 탄소 효과를 어느 국가와 사업자가 소유할 것인지, 동일한 고래를 여러 보호사업이 중복해 계산하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고품질 탄소배출권에는 실질적인 감축·제거, 정확한 측정, 추가성, 영속성, 이중계산 방지 등이 요구된다. 현재의 고래 탄소 연구는 생태적 중요성을 설명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대규모 거래가 가능한 정밀한 탄소배출권을 발행하기에는 불확실성이 크다.고래 보호가 화석연료 배출의 면죄부가 돼서는 안 된다고래 개체군을 회복시키는 일은 생물다양성과 해양 생태계, 탄소순환에 모두 도움이 된다. 그러나 고래가 흡수하거나 심해로 보내는 탄소량은 인류가 석탄과 석유, 가스를 태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상쇄할 수준이 아니다.고래 탄소의 가치를 과장하면 기업이 직접 배출을 줄이는 대신 고래 보호사업에 비용을 지불하고 ‘탄소중립’을 주장할 위험이 있다. 측정하기 어려운 미래의 흡수량을 현재의 확실한 화석연료 배출과 맞바꾸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실제로 증가할 수 있다.고래 보호는 배출 감축의 대체재가 아니라 별도의 필수 과제여야 한다. 화석연료 사용과 산업 공정의 배출을 먼저 빠르게 줄이고, 동시에 선박 충돌과 혼획, 소음, 오염으로부터 고래를 보호해야 한다.탄소가격을 활용하더라도 판매 가능한 상쇄배출권보다 해양보전기금이나 생물다양성 재원으로 설계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탄소량을 과도하게 약속하지 않으면서 고래 보호의 다양한 공익적 가치를 지원하는 방식이다.고래가 보내는 경고는 ‘숫자 밖의 자연’을 보라는 것고래는 몸속에 탄소를 저장하고 영양분을 이동시키며, 죽은 뒤에도 심해 생물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한다. 한 마리의 거대한 동물이 표층의 식물플랑크톤부터 심해의 미생물까지 연결한다.이 사실은 고래를 보호해야 할 새로운 이유를 제공한다. 동시에 자연을 탄소 몇 톤과 화폐가치로만 평가하려는 접근의 한계도 보여준다.고래 한 마리를 나무 몇만 그루로 바꾸어 계산하면 이해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숫자만 강조하면 해역마다 다른 생태계와 불확실한 탄소 흐름, 고래 자체의 생명과 문화적 가치는 사라진다.고래는 인류의 탄소배출을 대신 처리해주는 거대한 정화장치가 아니다. 고래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바다는 먹이망과 영양순환, 생물학적 탄소펌프가 함께 작동하는 바다다. 고래가 보내는 경고는 자연을 새로운 배출권으로 상품화하기 전에, 탄소를 내뿜는 인간 사회의 구조부터 바꾸라는 요구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