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고 떼고 분리해도 4개 중 1개만 원료로 … ‘재활용 신화’ 넘어 플라스틱 감축으로
- 그린피스 “통계상 재활용률 64%지만 물질 재활용은 26%”
- 20년 새 일회용 페트병 생산량 3배 … 소비자 노력만으로 한계
- 시민 79.1% “다회용기·리필 시스템 마련되면 플라스틱 사용 줄어들 것”
배달 음식을 먹은 뒤 플라스틱 용기를 깨끗하게 씻는다. 페트병에서는 라벨을 떼고 내용물을 비운 뒤 분리배출함에 넣는다. 많은 시민이 매일 반복하는 환경 실천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성껏 분리배출한 플라스틱 가운데 실제 새로운 제품의 원료로 다시 돌아가는 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최근 ‘달콤한 사탕 재활용, 분리배출이 헛수고인 이유 세 가지’라는 자료를 통해 재활용만으로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핵심은 ‘재활용률’이라는 숫자 안에 무엇이 포함돼 있느냐는 것이다.그린피스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플라스틱의 통계상 재활용률은 64% 수준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상당히 높은 수준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가운데 폐플라스틱이 새로운 제품의 원료로 다시 사용되는 ‘물질 재활용’은 약 26%이고, 약 37%는 플라스틱을 태워 에너지를 회수하는 ‘열적 재활용’이다.결국 시민들이 생각하는 ‘버린 플라스틱이 다시 플라스틱 제품으로 돌아오는 재활용’과 통계상 재활용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소각을 통한 에너지 회수를 재활용 통계에 포함한다고 해도 플라스틱이 다시 원료로 순환되는 것과 동일하게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은 남는다. 특히 플라스틱은 대부분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생산되고 생산·폐기·소각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에 소각 중심의 처리 방식은 탄소중립과 자원순환이라는 관점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문제는 재활용 속도보다 빠른 ‘생산 속도’더 큰 문제는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가 재활용 시스템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그린피스는 지난 20년 동안 국내 일회용 페트병 생산량이 약 3배 증가했다고 지적한다.과거 조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된다. 그린피스와 충남대학교 장용철 교수팀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민 1인당 연간 소비량은 생수 페트병 109개, 일회용 플라스틱컵 102개, 비닐봉투 533개, 배달용기 568개에 달했다. 네 품목만 합쳐도 1인당 연간 약 19㎏이다.특히 2017년과 비교해 2020년 일회용 플라스틱컵 소비량은 56.9% 증가했고 생수 페트병은 13.5%, 비닐봉투는 15.9%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그린피스와 연구진은 별도의 감축 조치 없이 기존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30년 생활계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이 연간 약 647만5천 톤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10년의 약 3.6배, 2020년의 약 1.5배 수준이다.세계적인 생산 증가도 문제다. 그린피스가 인용한 국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연간 약 4억6천만 톤으로 20년 전보다 두 배 증가했으며, 증가 추세가 지속되면 2050년까지 현재의 약 3배 수준에 이를 가능성이 제기된다.결국 재활용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시장에 투입되는 신규 플라스틱이 계속 증가한다면 폐기물 문제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얘기다.“한 번 재활용하면 끝?” … 플라스틱은 영원히 돌지 않는다세 번째 문제는 플라스틱을 무한정 재활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플라스틱은 종류와 색상, 첨가제, 오염 정도가 각각 다르고 재활용 과정에서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 복합재질이나 오염된 포장재처럼 애초부터 경제적·기술적으로 재활용하기 어려운 제품도 적지 않다.때문에 분리배출을 아무리 철저하게 하더라도 모든 플라스틱을 다시 동일한 품질의 제품으로 되돌리는 완전한 순환구조를 만드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그린피스가 재활용 확대만으로는 부족하고 생산과 사용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시민들은 이미 변화할 준비 … 79.1% “리필·다회용기 있으면 줄인다”주목할 부분은 시민들의 환경의식 부족만을 플라스틱 증가의 원인으로 돌리기 어렵다는 것이다.최근 그린피스가 소개한 조사에서는 시민의 79.1%가 다회용기나 리필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이 줄어들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플라스틱 제품이나 일회용 배달용기에 비용이 부과될 경우 사용을 줄이겠다는 응답도 56.1%였다. 반면 편의를 위해 플라스틱을 계속 사용하겠다는 응답은 37.7%에 그쳤다.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이끌 주체로 정부를 꼽은 응답은 64.4%, 기업은 58.8%로 조사됐다.이는 플라스틱 문제를 소비자의 분리배출 태도만으로 접근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하는 단계에서부터 일회용 포장을 피할 수 있는 선택지가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그린피스 “생산·사용부터 줄여야” … 정부에 6가지 변화 요구그린피스는 플라스틱 오염을 실질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재활용 중심 정책에서 생산·사용 감축 중심 정책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우선 플라스틱 생산·사용·폐기의 전 과정을 포괄하는 실효성 있는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일회용품을 재활용하는 구조를 넘어 재사용과 리필 시스템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한다.또 일회용 플라스틱의 단계적 금지, 과도하게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기업에 대한 환경·사회적 비용 부담, 생산·사용·수출입 정보의 투명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플라스틱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오염 피해를 더 크게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약자와 지역사회를 보호하는 정책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기자의 시선“분리배출하지 말자”가 아니라 “분리배출만 믿지 말자”이번 문제를 ‘분리배출은 소용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분리배출은 여전히 필요하다.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폐기물은 재활용 가능성마저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용기를 씻고, 이물질을 제거하고, 올바르게 분리해 버리는 행동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문제는 시민에게 분리배출 책임을 요구하면서 생산과 유통 단계에서는 막대한 일회용 플라스틱이 계속 쏟아지는 구조다.시민에게 페트병 라벨 하나를 더 잘 떼라고 요구하는 것만큼 기업에는 포장재를 얼마나 줄였는지, 재사용 용기를 얼마나 확대했는지, 신규 플라스틱 사용량을 얼마나 감축했는지를 물어야 한다.정부 정책 역시 ‘얼마나 많이 재활용했느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얼마나 적게 생산하고 사용했느냐’를 핵심 지표로 삼을 필요가 있다.재활용은 이미 만들어진 쓰레기를 처리하는 마지막 단계에 가깝다. 반면 감축은 쓰레기가 만들어지는 첫 단계부터 차단하는 정책이다.플라스틱 문제의 해법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의 정확한 분리배출은 계속하되, 정부와 기업이 생산 감축·재사용·리필 시스템 확대를 통해 애초에 버릴 플라스틱 자체를 줄이는 것. 이제 자원순환 정책의 중심을 ‘잘 버리는 사회’에서 ‘덜 만들고 오래 쓰는 사회’로 옮겨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