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현 사회칼럼] 자립 준비 청년 ...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편견'이 무너지고 있는 틈, 작가 이선

노주현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7-06 11:54:17
▲ 작가 이선


자립준비청년의 직업 선택은 여전히 좁다. 

2015년 이후 퇴소한 청년들에게는 그 폭이 조금씩 넓어졌다고 하지만, 간호·유아교육·사회복지처럼 취업에 유리한 전공으로의 쏠림은 오래된 관성으로 남아 있다. 


특히 예체능 계열은 재능이 있어도 취업이 어렵고 전공에 드는 비용까지 만만치 않아, 애초에 선택지에서 밀려나기 쉽다. ‘시설 출신은 안정적인 길을 택해야 한다’는 통념은, 그렇게 꿈의 크기를 미리 재단한다.

2025년9월 말, 그 통념에 조용히 어긋나는 소설 한 편이 나왔다. 환경문제를 판타지로 풀어낸 『버려진 도시, 아티카』다. 

바다 쓰레기와 폐어구, 해양생물의 고통을‘아티카’라는 가상의 도시에 담아 해양 오염과 책임, 용서와 공존을 이야기하는 이 성장·환경 소설은, 청소년과 성인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지만, 그 작가가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사실이 더 오래 눈길을 붙든다.


외로움을 문장으로 바꾸다

이선은 경기도 안산의 보육원과 그룹홈에서 자란 자립준비청년 출신 작가다. 

현재 경상국립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자로 소개되어 있으며, 그의 삶은 보호시설에서의 성장, 자립 이후의 고립, 그리고 그 고립을 글쓰기로 옮겨 온 과정으로 정리된다.

스무 살 무렵 그는 진주에 있는 경상국립대학교에 입학했다. 시설에서 자라며 언젠가‘자유’를 얻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고, 퇴소 후LH 임대주택에서 첫 자립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누구의 간섭도 없는 공간이 해방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혼자 사는 집은 곧 자유보다 더 큰 외로움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그 시기를 “자유라는 기대감과 외로움이라는 현실”이 충돌한 시간으로 설명한다.


은둔의 방에서 다시 문을 열기까지

외로움은 이내 깊은 고립으로 이어졌다. 

그는 휴학한 뒤 거의1년 가까이 은둔 생활을 했고, 집 밖으로 나서는 일조차 버거운 시기를 통과했다. 

그러나 그 시간에 무너지는 대신, 자신의 고독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헬스장에 등록해 몸을 움직이고, 집 밖으로 나설 이유를 하나씩 만들어 갔다. 

생활의 리듬이 바뀌자, 스스로를 다시 사회 안으로 끌어내는 힘이 생겼다. 자립수당만으로는 생활과 꿈을 함께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에게 아르바이트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펜을 놓지 않았고, 자립 과정에서 겪은 고독과 극복의 기록을 모아 2023년 10월 24일 첫 에세이 "세상은 나를 두 명으로 봅니다"를 펴냈다. 

264쪽 분량의 이 책은 “고아로 사는 삶”을 솔직하게 풀어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려 한 작업이었다.


정착금이 끊긴 자리에서 두 번째 책을

첫 책을 낸 뒤, 그는 작가로서 더 단단해져야 한다는 한계를 마주했다. 아르바이트 시간을 줄이고 학교생활과 독서, 일기 쓰기, 집필 훈련에 다시 집중했다.

이후 판타지와 환경문제를 결합한 순수문학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2025년2월, 자립정착금이 종료되면서 생계 문제가 다시 밀려왔다.

그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2025년부터 그는 자신의 경험을 개인의 이야기에만 두지 않았다.

경상남도 바람개비 서포터즈와GN 청년자문단으로 활동하며, 예비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자립교육과 정책 제안에 참여했다. 겪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경험을 뒤에 오는 이들에게 돌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 노력의 결과가 2025년 9월29일 출간된 첫 판타지 소설 "버려진 도시, 아티카"다.

바른북스에서 나온 308쪽 분량의 이 소설은, 한 소년이 바다 아래 신비로운 도시 ‘아티카’에 들어가 바다의 목소리와 해양 쓰레기의 현실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이 작품은 등교길 버스 안에서 피어난 작은 상상에서 출발했고,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몽환적 감성을 어린 시절의 풍경과 겹쳐 써 내려간 것이다.

출판사 서평은 이 소설을 해양 오염과 책임, 용서와 공존의 문제를 판타지 서사로 풀어낸 작품으로 설명한다.


결핍을 재료로 삼은 사람

정리하면 이선의 이야기는, 시설에서 자란 청년이 자립 이후 마주한 외로움을 은둔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창작과 사회활동으로 바꿔 낸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단지 어려운 환경을 견뎠다는 데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의 결핍과 고립을 글쓰기의 재료로 삼았고, 그 경험을 다시 예비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나누는 방식으로 확장하고 있다.

‘시설 출신은 안정적인 길만 택해야 한다’는 편견은, 그가 두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는 동안 조용히 한 겹씩 벗겨졌다.


편견은 한 번의 선언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이 연재는 지난 회차들에 걸쳐, 같은 성벽을 저마다 다른 망치로 두드린 사람들을 만나 왔다. 이성남은 ‘함께 키우면 달라진다’는 증거로 인식의 벽을 두드렸고, 김성민은 ‘연결되면 무너지지 않는다’는 구조로 제도의 벽을 허물었다.

최은진은 자신이 통과한 상실을 현장의 전문성으로 바꾸어 후배들의 두려움을 덜었고, 서연지는 매일의 노동과 한 장의 자격증, 한 통의 신고로 ‘시설 출신은 불안정할 것’이라는 통념을 사실로 반박했다.

그리고 이선은, 결핍 그 자체를 창작의 언어로 바꾸어 ‘꿈은 이들의 몫이 아니다’라는 편견에 균열을 냈다.  다섯 사람이 선 자리와 쥔 도구는 모두 달랐다.

누군가는 교육으로, 누군가는 제도로, 누군가는 돌봄으로, 누군가는 성실의 축적으로, 또 누군가는 이야기로 같은 벽을 향했다.

이 시리즈가 세대와 직군을 달리하며 다섯 사람을 이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편견은 한 사람의 극적인 성공담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벽을 두드린 사람들이 모일 때, 비로소 벽에는 금이 가고 틈이 벌어진다.

이들은 ‘예외적으로 잘 해낸 개인’이 아니라, 통념이 틀렸음을 저마다의 삶으로 증명한 다수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틈은,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다.

지금 시설에서, 그룹홈에서, 자립을 앞둔 자리에서 자신의 앞날을 가늠하고 있을 청년들에게 이 다섯 사람의 이야기가 전하는 말은 분명하다.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누군가 미리 재단해 둔 몇 개의 전공에 갇혀 있지 않다. 네 결핍은 약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 너만이 쓸 수 있는 언어가 될 수도 있다.

앞선 이들이 벽에 낸 틈으로, 다음 아이가 조금 더 수월하게 통과할 길이 열린다. 편견은 한 번의 선언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벽을 두드린 사람들이 쌓이는 만큼, 뒤에 오는 이가 통과할 길은 넓어진다.

작가로서의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지만, 이선은 오늘도 묵묵히 다음 작품을 준비한다. 그가 써 내려갈 다음 문장이, 또 한 명의 청년에게 ‘나도 써도 된다’는 신호가 될 것이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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