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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현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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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주현 사회칼럼] 자립 준비 청년 ...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편견'이 무너지고 있는 틈, 우양재단 최은진 사회복지사
    사회

    [노주현 사회칼럼] 자립 준비 청년 ...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편견'이 무너지고 있는 틈, 우양재단 최은진 사회복지사

    지난 두 편에서는 이성남 장학사와 김성민 대표의 삶을 통해, 편견이 어떻게 한 사람의 노력 앞에서 조금씩 자리를 내주는지 살펴보았다. 두 사람이 자란 시기는‘자립준비청년’이라는 말조차 없이‘고아’라는 단어가 거리낌 없이 쓰이던 때였고, 자립정착금 같은 제도적 지원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던 때였다.학기 중에는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방학이 되면 갈 곳이 없어 숙식이 제공되는 곳을 찾아 일해야 했던 이야기, 보육원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색안경부터 쓰고 보던 경험. 이런 일들은 지금 30대 초 중반이 된 청년들에게도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따뜻한 사람이 더 많은 사회였지만, 더러 송곳 같은 말과 마주칠 때면 자립 초기의 청년들은 쉽게 움츠러들곤 했다.다만 모두가 그 두려움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같은 시간을 통과한 뒤, 이번에는 후배들의 두려움을 덜어주는 쪽에 서는 이들도 있다. 우양재단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최은진도 그런 경우다. 그의 이력을 따라가 보면, 당사자의 경험이 어떻게 현장의 실무로 이어지는지가 비교적 또렷하게 드러난다.상실로 시작된 삶최은진의 유년은 연이은 상실 위에 놓여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병으로 아버지를 잃었고, 중학교에 들어서던 해에는 몸이 약했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곁에는 두 여동생이 남았다. 자신도 아직 보호가 필요한 나이였지만,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를 일찍 떠안게 된 셈이다. 어린 나이에 겪은 상실과 외로움은 훗날 같은 처지의 청년들이 느끼는 불안을 비교적 빠르게 알아채는 바탕이 되었다.가장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자리부모를 잃은 세 자매는 아동양육시설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시설의 조건이 넉넉했던 것은 아니어서 적응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곳은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아이’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한 공간이기도 했다. 그는 그곳에서 학원에 다니고 또래와 어울리며, 뒤늦게나마 평범한 성장의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진로의 방향도 이 시기에 잡혔다. 사춘기의 힘든 시간을 지나는 동안 자신을 받아준 교사들이 있었고, 누군가의 돌봄이 한 아이의 삶을 어떻게 붙드는지를 직접 겪었다. 그는 사회복지를 ‘받은 돌봄을 다시 건네는 일’로 받아들였고, 이는 이후 그의 진로 선택으로 이어졌다.얼음장처럼 차가웠던 세상시설의 보호는 정해진 나이에서 끝난다. 그 역시 만 열여덟 무렵 퇴소를 준비해야 했고, 두 여동생의 생계까지 헤아려야 하는 처지였다. 또래들이 진학과 미래를 고민할 나이에 그는 주거·생활비·학업·동생들의 삶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다. 그에게 자립은 설레는 독립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운 문제였다. 그가 마주한 현실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그럼에도 그는 주저앉는 쪽을 택하지 않았다. 현실과 싸우면서도, 언젠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청년들을 대변하고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그는 이 시기를 막연한 의지만으로 통과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두려움과 상실, 외로움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후배들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알았고, 생계 걱정 탓에 여행은커녕 문화생활조차 엄두 내기 어려운 자립준비청년의 현실도 가까이서 이해했다. 그가 훗날 청년들의‘쉼과 관계’까지 살피게 된 데에는 이런 경험이 작용했다.학업과 현실 사이 그는 서울신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학부 과정을 마쳤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다만 그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 진학과 독립 이후에도‘숨 쉬는 데에도 비용이 드는’ 현실의 압박은 계속됐고, 돈 때문에 학업을 멈춘 적도 있었으며 무기력하게 흘려보낸 날도 있었다고 그는 회고한다.제도상 자립은 퇴소와 동시에 시작되지만, 실제로는 매달의 월세와 식비, 학비, 그리고 관계의 부재와 싸우는 긴 과정이었다.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데에는 손을 내밀어 준 교사와 후원자, 같은 길을 걷는 자립준비청년 공동체의 영향이 있었다.그래서 그의 자립 이야기는 독한 의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홀로 서기 위해서는 관계와 지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의 삶이 그대로 보여 준다. 자립준비청년에게 정작 절실한 것이 경제적 지원만큼이나 의지할 어른과 심리적 안정, 곁을 지켜 줄 멘토라는 점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당사자에서 실무자로 그는 자신의 경험을 직업으로 옮겨 왔다. 2020년 서울특별시 아동공동생활가정지원센터에서 자립지원전담요원으로 출발해 그룹홈 보호종료아동의 사례관리를 맡았고, 2021년부터는 청소년그루터기재단에서 자립준비청소년 사업을 기획·운영하며 사각지대의 청소년을 발굴해 지원했다. 2022년 말부터는 서울특별시 자립지원전담기관에서 예비 자립준비청년의 사례관리를 담당했고, 2025년부터는 우양재단 후원홍보팀에서 그룹홈 청소년 식비 지원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당사자에서 실무자, 사업기획자, 사례관리자로 역할을 넓혀 온 흐름이 이력에 비교적 또렷하게 남아 있다.현장 업무와 별개로 강연과 멘토링도 이어 왔다. 자신이 자란 신명보육원을 여러 차례 찾아 자립 후기를 나누었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는 보호종료를 앞둔 아이들과 자립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립준비청년 장학 프로그램 참여자와 서울시 그룹홈 재원아동에게는 자립 경험과 지원제도를 안내했고, 교회를 찾은 청년들에게는 자립 정보를 일러 주고 상담을 진행했다.이런 만남이 단순한 경험담 발표와 구별되는 지점은 분명하다. 자립을 앞둔 청년에게는 집을 구하는 방법, 제도를 찾는 경로, 외로움이 밀려올 때 손 내밀 곳, 돈을 관리하는 방식처럼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하고, 그것을 먼저 걸어 본 사람의 말로 듣는 일은 매뉴얼과 무게가 다르다. 최은진은 그 질문들에 자신의 경험으로 답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는 언론과 영상을 통해서도 자립준비청년의 현실을 알려 왔다. 2019년 ‘열여덟 살이 되기 싫다’던 보호종료아동들의 호소를 다룬 보도를 시작으로 여러 방송과 다큐멘터리, 금융교육 영상, 팟캐스트에 당사자로 참여했다. 보육원 출신 사회복지사로서 사회복지사를 꿈꾸게 된 과정과 시설·그룹홈의 차이를 설명하며, 잘 드러나지 않던 현실을 공적 언어로 옮기는 역할을 해 왔다.그는 그 경험을 직업으로 바꾸었다. 2020년 서울특별시 아동공동생활가정지원센터에서 자립지원전담요원으로 출발해 그룹홈 보호종료아동의 사례관리를 맡았고, 2021년부터는 청소년그루터기재단에서 자립준비청소년 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사각지대의 청소년을 발굴해 지원했다. 2022년 말부터는 서울특별시 자립지원전담기관에서 예비 자립준비청년의 사례관리를 담당했으며, 2025년부터는 우양재단 후원홍보팀에서 그룹홈 청소년 식비 지원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자립준비청년 당사자에서 출발해 현장의 실무자로, 사업기획자로, 사례관리자로 역할을 넓혀 온 흐름이 또렷하다.현장 실무 곁에서 그는 후배들을 직접 만나는 강연과 멘토링도 이어 왔다. 자신이 자란 신명보육원을 여러 차례 찾아 자립 후기를 나누었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는 보호종료를 앞둔 아이들과 자립을 주제로 이야기하며 동기를 북돋웠다. 자립준비청년 장학 프로그램 참여자와 서울시 그룹홈 재원아동에게는 자립 경험과 지원제도를 안내했고, 교회를 찾아온 청년들에게는 자립 정보를 일러 주고 상담을 진행했다.이 만남들은 단순한 경험담 발표가 아니다. 자립을 앞둔 청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실제로 그 길을 먼저 걸어 본 사람의 말이다. 집은 어떻게 구하는지, 제도는 어디서 찾는지, 외로움이 밀려올 때 누구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지, 돈은 어떻게 관리하는지, 무너졌을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 최은진은 자신의 삶으로 그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그는 언론과 영상으로도 자립준비청년의 현실을 알려 왔다. 2019년 ‘열여덟 살이 되기 싫다’던 보호종료아동들의 호소를 다룬 보도를 시작으로 여러 방송과 다큐멘터리, 금융교육 영상, 팟캐스트에 당사자로 나섰다. 보육원 출신 사회복지사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회복지사의 꿈을 품게 된 과정과 시설과 그룹홈의 차이를 차분히 설명하며, 잘 보이지 않던 현실을 세상의 언어로 끌어올렸다.흘려보내는 삶그의 삶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되돌려주는 삶’이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아름다운가게에서 물건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봉사로 백한 시간을 채웠고, 2021년부터는 신명보육원 아동과 결연해 후원을 이어 왔으며, 2024년부터는 자립준비청년의 건강한 자립을 돕는 사회적기업 브라더스키퍼의 후원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결코 넉넉한 출발선에 서 본 적 없는 그였지만, 자신이 받은 도움을 셈하지 않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방식을 택했다.감사로 짓는 삶그의 가치관은 분명하다. 그는 삶에 주어진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한 명의 지켜진 아이가 건강히 자라 자립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도움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임을 잊지 않기에, 늘 감사하며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 동시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을 끝까지 해내겠다는 비전을 품고 있다. 어린 시절 남들보다 더 많이 아팠던 이유가, 어쩌면 타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그는 자신의 상처를 그렇게 받아들인다.한 보육원 동기는 그를 ‘하루하루를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자신의 삶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그의 삶을‘극적인 성공담’으로 묶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그는 상실 이후의 시간을 단번에 뒤집은 인물이라기보다, 그 시간을 천천히 다시 세워 온 사람에 가깝다.무대 위에서, 다시 받은 이름그 과정의 한 매듭이 어느 시상식에서 지어졌다. 제1회 ‘올해의 자립준비청년상’에서 그는‘희망도전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한때 세상 밖으로 떠밀리듯 나섰던 자립준비청년이,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 앞에서‘희망’과‘도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무대에 오른 그는 거창한 성취의 언어 대신 자신을 일으켜 준 사람들을 먼저 떠올렸다. 주저앉으려 할 때 손 내밀어 준 교사와 후원자에게 감사를 돌렸고, 앞으로 마주할 어려움도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시험대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자립준비청년들이 다른 누구와 다르지 않게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보탰다. 받은 도움을 다시 건네며 살아온 사람에게 그 상은 결승선보다 또 하나의 출발선에 가까워 보였다. 그는 그날의 박수를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직 무대 밖에 선 후배들을 향한 응원으로 받아 안았다.보호받던 아이가, 보호를 설계하는 사람으로정리하면 최은진의 이력은 ‘보호받던 아이가 보호를 설계하는 사람이 된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부모를 잃은 아이였고, 두 여동생을 걱정해야 했던 어린 가장이었으며, 만 열여덟에 낯선 현실로 나선 자립준비청년이었다. 동시에 사회복지를 공부한 전문가이자, 자립지원 현장에서 후배들을 만나 온 실무자이고, 자신의 경험을 사회적 언어로 옮긴 당사자이기도 하다.그를 단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사람’으로만 부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동시에 그의 삶을 미화할 필요도 없다. 더 정확한 것은, 그가 고통을 이해로, 이해를 전문성으로, 다시 그 전문성을 후배들의 자립을 돕는 실무로 연결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 연결의 어느 지점에는 여전히 학업 중단과 무기력의 시간이, 그리고 혼자서는 통과하기 어려웠을 외로움이 함께 놓여 있다.바로 그래서 그의 사례는 자립준비청년 지원과 관련해 한 가지 메시지를 비교적 분명하게 남긴다. 자립은 의지의 문제로만 환원되지 않으며, 손을 잡아 줄 사람과 제도가 있어야 비로소 작동한다는 것이다. 편견은 어느 날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최은진처럼 자신의 경험을 다시 누군가의 곁으로 옮겨 두는 사람이 늘어날 때, 그 견고해 보이던 벽에도 조금씩 틈이 생긴다. 이 글이 다룬 것은 그 틈의 한 사례다. “자립은 혼자 버티는 것이 아니다. 누가의 손을 잡고, 다시 다른 누군가의 손을 잡아 주는 과정이다. ”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6-22 10:24:09 노주현 칼럼리스트
  • [노주현 사회칼럼] 자립 준비 청년 ...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편견'을 부수는 사람들, 브라더스키퍼 김성민 대표
    사회

    [노주현 사회칼럼] 자립 준비 청년 ...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편견'을 부수는 사람들, 브라더스키퍼 김성민 대표

    지난 칼럼에서 이성남 장학사가 보여 준 세계관이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태도이며, 아이는 사회가 함께 키워야 한다’라는 믿음이었다면, 오늘 만날 김성민 대표의 키워드는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자립은 고립된 독립이 아니라, 연결된 독립이다.’같은 편견의 성벽을 마주했지만, 두 사람이 든 망치는 다르다. 이성남 장학사가 교단과 글로 사람들의‘인식’을 두드렸다면, 김성민 대표는 일자리와 제도라는‘구조’를 직접 설계해 그 벽의 토대를 흔들었다. 한 사람은 마음을 바꾸려 했고, 한 사람은 세상이 굴러가는 방식을 바꾸려 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자신이 통과해 온 가장 어두운 시간을 망치의 손잡이로 삼았다는 점에서 닮아있다.그가 어떻게‘연결된 독립’이라는 단어에 도달했는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홀로 거리에 던져졌던 여섯 달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김성민 대표의 삶 역시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버려진 아이가 살아남아, 자신과 같은 아이들이 다시는 버려지지 않도록 일자리와 관계와 제도를 만들어 온 이야기.보육원 밖에 있던 더 큰 두려움그는 세 살 무렵 보육원에 들어가 열일곱 해를 그곳에서 자란 자립 준비 청년 당사자였다. 보육원은 어린 그가 생존을 배운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나는 왜 부모와 함께 살 수 없는가?”, “나는 왜 다른 아이들과 다른가”라는 질문을 가슴에 품게 한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삶에서 더 큰 두려움은 보육원 안이 아니라 그 밖에 있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만 열여덟이 되면 보호가 끝나 사회로 나가야 했고, 그는 그 시간을 설렘이 아니라 공포로 기억한다. 먼저 퇴소한 선배들의 소식이란 교도소와 경찰서, 성매매와 범죄, 그리고 끝내 다시 시설로 돌아오는 아이들의 이야기뿐이었기 때문이다. 김성민 대표 역시 등 떠밀리듯 보육원 문을 나섰지만, 그가 손에 쥔 것은 먼저 나간 선배가 보낸 5만 원이 전부였다. 당시 자립정착금이 있었으나 권고 사항에 그쳐 늘 지급되지는 않았고, 그렇게 빈손에 가까운 채로 세상에 던져진 그는 갈 곳을 찾지 못해 여섯 달을 거리에서 보냈다.이 6개월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시간이었다. 그는 단지 가난을 겪은 것이 아니라, 자립 준비 청년이 어째서 사회에서 무너지는지를 온몸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집도 돈도 없고, 물어볼 어른도 아플 때 연락할 사람도 없으며, 실패했을 때 돌아갈 곳마저 없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직접 통과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훗날 자립 준비 청년의 문제를 단순히 돈이 부족한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의 눈에 핵심은 언제나 부모의 부재, 관계의 부재, 기댈 어른의 부재였다.후원의 한계, 그리고‘자립’이라는 단어다행히 그는 식당 일을 시작하며 조금씩 삶의 균형을 되찾았고, 그 무렵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의 꿈이 다시 떠올랐다. 나와 같은 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 가족이 되어 주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훗날 그는 이 꿈을 돌아보며, 그것이 단지 선한 소망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절실했던 필요였다고 말한다. 그 자신이 누구보다 가족을 갈망했기에, 후배들에게 가족 같은 사람이 되어 주고 싶었다.이 꿈을 좇아 대학에 진학한 그는 이후 약 7년간 비영리단체에서 시설보호아동과 자립 준비 청년을 지원하는 일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후원이 사람을 살릴 수 있으리라 믿었다. 돈을 보태고 물품을 보내며 아이들을 도우면 자립의 문제가 풀릴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후원의 한계가 뼈에 사무쳤다. 후원이 이어지는 동안에는 문제가 잠시 가려질 뿐, 그것이 끊기는 순간 청년들은 다시 막막한 현실 앞에 홀로 서야 했다. 후원만으로는 결코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결론에, 그는 그렇게 도달했다.이후 그는 전국 200여 곳의 보육원을 찾아다니며 보호아동과 사회복지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길 끝에서 그가 길어 올린 단어는‘자립’이었고, 자립을 위해서는 한 번의 지원금보다 지속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자립 준비 청년에게는 건강하게 삶을 꾸려 가는 법을 알려 주어야 하며, 꾸준히 일할 자리를 통해 스스로 경제적으로서 보는 경험을 쌓게 해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두 번째 벽 '마음의 상처라는 장애물'처음에는 직접 회사를 세우기보다 기존 기업에 청년들을 연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여러 사업체를 발로 뛰어 6개월 만에 100개가 넘는 일자리를 이어주었지만, 곧 두 번째 벽에 부딪혔다. 청년들이 한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짧게는 일주일, 길어도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김성민 대표는 이것을 단순히 청년들이 성실하지 못한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편견과 차별을 겪어 온 아이들은, 마음 한가운데 자격지심과 피해의식을 안은 채 사회로 나온다. 누군가 친절을 베풀면 ‘불쌍해서 그러는 건가?’ 싶고, 누군가 지적하면 ‘보육원 출신이라 함부로 대하나!’ 싶어진다. 그래서 그는 이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이 일자리만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고 사회에 적응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그 무렵 중요한 발견이 찾아왔다. 조경 관련 기업에 취업한 한 청년이 식물을 다루며 정서적 안정을 얻고 일에 잘 녹아드는 모습을 본 것이다. 식물은 조용하지만, 분명히 살아 있고, 돌봄을 요구하되 사람을 몰아붙이지 않는다. 그는 식물을 가꾸는 일이 청년에게 일자리이면서 동시에 회복의 과정이 될 수 있음을 보았다. 우리가 직접 식물을 아이템 삼아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자는 생각이 여기서 싹텄고, 그것이 2018년 5월 브라더스키퍼의 창업으로 이어졌다.약점을 우대의 조건으로 '브라더스키퍼'브라더스키퍼는 식물 인테리어와 실내외 벽면녹화, 화분 임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식물을 통해 자립 준비 청년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이 회사가 내건 구호는‘Save People & Save Nature’, 곧 사람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는 일이다. 회사 안에서 김성민 대표는‘바비아나’라는 식물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 꽃말은 다름 아닌 ‘단란한 가정’이다. 어린 시절부터 단란한 가정을 꿈꾸었고 후배들에게도 그런 가정을 선물하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 그 이름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브라더스키퍼가 특별한 까닭은 단지 자립 준비 청년을 돕는 기업이라는 데 있지 않다. 이 회사는 보육원 출신을 채용에서 우대한다. 사회가 약점으로 여기는 이력을 오히려 우대의 조건으로 삼는 것이다. 여기에 김성민 대표의 철학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다. 그는 자립 준비 청년이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는 대신 당당해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한 줄의 사연을 한 줄의 법조문으로그의 문제의식은 갈수록 넓어졌다. 회사 안에서 일자리와 회복 프로그램을 일구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아이의 삶을 끌어안을 수는 없다는 한계 또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라더스키퍼가 모든 보육원 아이의 문제를 다 풀어내지 못한다는 현실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매번 마음을 다잡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정책 현장에서도 목소리를 냈다. 청와대와 여러 간담회, 정책 자문 자리에서 자립 준비 청년의 처지를 대변하며, 한 사람의 사연이 한 줄의 법조문으로, 다시 하나의 제도로 옮겨 앉도록 끈질기게 밀어붙였다. 그렇게 쌓인 결과가 고용노동부의 법안 두 건, 그리고 보건복지부의 법안 스무 건과 지원제도 스무 가지다. 숫자만으로는 좀처럼 와닿지 않는 변화지만, 그 변화가 향한 곳은 분명했다. 자립 준비 청년의 자살률이 줄어든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결국 법과 제도를 바꾸는 데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그는 자기 삶으로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한 기업의 대표를 넘어, 국가와 기업과 환경이 청년을 받쳐 줄 수 있도록 그 토대 자체를 설계하는 사람. 그것이 그가 정책 현장에서 맡아 온 또 하나의 역할이었다.‘형제를 지키는 자’라는 이름그의 삶에는 신앙과 사명감이라는 또 하나의 축이 흐른다. 그가 거듭 전하는 메시지는 ‘부모에게 버려진 삶’을 ‘하나님이 기다려 주신 삶’으로 다시 읽어 내는 태도이다. 다만 그는 신앙을 현실을 비껴가는 언어로 쓰지 않는다. 자신의 고통을 개인의 상처에 가두지 않고, 내가 형제를 지키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책임으로 바꾸어 낸다. 그래서 브라더스키퍼라는 이름은 한낱 회사명이 아니라, ‘형제를 지키는 자’라는 그의 정체성 그 자체에 가깝다.그의 마음가짐은 크게 세 갈래로 모인다. 첫째는 상처를 숨기지 않는 태도다. 그는 보육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감추기는커녕, 그것을 자기 삶의 출발점이자 사명의 근거로 삼는다. 고통스러웠던 그 시간이 이제는 감사와 자랑의 재료가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둘째는 후원보다 구조를 바라보는 태도다. 일시적인 후원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후원만으로는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립 준비 청년에게는 돈뿐 아니라 일자리와 교육, 주거와 법률 지원, 금융 교육, 정서적 회복, 사회적 관계망이 함께 놓여야 한다. 셋째는 자립이 결코 혼자 서는 일이 아니라는 철학이다. 나무는 홀로 자라는 듯 보이지만 실은 땅과 바람과 물에 기대어 살아간다. 마찬가지로 세상 어떤 존재도 홀로 살아갈 수 없으며, 자립의 첫 번째 조건은 기댈 사람을 찾는 것이고, 그 완성은 자신 또한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흥미롭게도 이 깨달음은 그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허락한 ‘회복의 시간’ 속에서 더욱 또렷해졌다. 쉼 없이 달려온 김성민 대표에게 인생의 첫 휴가가 찾아온 것이다. 잠시 멈추어 선 그 자리에서 그는 한 가지 진실을 새삼 마주했다. 결코 한 사람의 힘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 그는 수많은 청년을 일으켜 세웠지만, 정작 자신을 지탱해 온 것 역시 곁의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온 구조였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그가 끝내 도달한 결론은 자신이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웅이 없어도 사람이 무너지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었다.지금에 이르러 브라더스키퍼의 경영 체계는 달라졌다. 2025년 이후로는 김하나 대표가 회사를 이끌고, 김성민은 창립자이자 전 대표로 자리한다. 그러나 그가 지닌 의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역할은 한 기업의 대표를 넘어, 자립 준비 청년 문제를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보여 준 상징적 인물로 넓어진다. 그는 보육원 출신 청년을 가엾은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다. 일할 수 있는 사람, 회복할 수 있는 사람,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마땅히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았다.영웅이 없어도 무너지지 않는 사회그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단어는 ‘성공’보다 ‘사명’, ‘후원’보다 ‘자립’, ‘동정’보다 '존중’, ‘개인의 극복’보다 ‘사회적 가족’이다. 그는 자립 준비 청년에게 혼자 잘 살아남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기대어 살아가며, 진짜 자립이란 기댈 사람을 만나고 나 또한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그 자신에게도 똑같이 향한다. 한 사람의 영웅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웅이 없어도 누구도 무너지지 않는 사회를 함께 짓는 것. 그것이 김성민 대표가 끝내 가닿은 자리다.두 회에 걸쳐 우리는 같은 성벽을 부수는 두 사람을 만났다. 이성남 장학사는 ‘함께 키우면 달라진다’라는 증거로 인식의 벽을 두드렸고, 김성민 대표는 ‘연결되면 무너지지 않는다.’라는 구조로 제도의 벽을 허물었다. 한 사람은 마음의 언어로, 한 사람은 일자리의 언어로 같은 진실에 도달했다. 편견은 결코 한 번의 선언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 자기 삶 전체를 망치 삼아 한 장면씩 부수어 갈 때, 성벽에는 분명히 금이 간다. 그리고 그 금 사이로, 다음 아이가 통과할 길이 열린다.그것이 우리가‘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가운데 가장 단단한 벽인 편견을, 끝끝내 부수는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할 단 하나의 태도다.
    2026-06-15 07:23:53 노주현 칼럼리스트
  • [노주현 사회칼럼] 자립 준비 청년 ...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편견'을 부수는 사람들, 이성남 장학사
    사회

    [노주현 사회칼럼] 자립 준비 청년 ...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편견'을 부수는 사람들, 이성남 장학사

    지난 회까지 우리는 편견의 정체를 들여다보았다. 한 아이를 핏줄과 기질이라는 두 단어로 재단하는 일이 얼마나 게으르고 무지한 판단인지, 그리고 그렇게 켜켜이 쌓아 올린 편견의 성벽이 얼마나 단단하고 높은지를 확인했다. 누군가는 그 성벽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누군가는 그 그늘에 갇혀 평생을 보낸다. 그러나 성벽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 구조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벽은 어디선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허물어지고 있다. 망치를 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창한 구호 대신 자기 삶 전체를 증거로 내밀어, ‘고아였으니 마땅히 그러할 것’이라는 통념을 한 장면 한 장면 지워 나간다. 이번 회와 다음 회에 걸쳐, 그 벽을 부수는 두 사람을 차례로 만나려 한다. 첫 번째 사람은 자신의 결핍과 편견을 끝내 에너지로 바꾸어 낸 이성남 장학사다. 편견과 결핍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사람. 이성남 장학사의 삶은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버려진 아이가 교육자가 되어, 다시 보육원 아이들의 곁으로 돌아간 이야기. 그는 다섯 살 무렵, 한 살 어린 동생과 함께 구멍가게 앞에 버려졌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경북 김천의 한 보육원에 맡겨졌고, 그곳에서 스무 해 남짓을 자랐다. 보육원은 먹고 자는 공간이기 이전에 생존의 터전이었고, 동시에 결핍과 상처를 가장 먼저 배운 자리였다. 굶주림과 엄격한 규칙, 폭력과 외로움, 그리고 따가운 편견이 어린 그의 일상을 차례로 통과해 갔다. 그러나 그는 자기 삶을 불행한 고아의 이야기로만 흘려보내지 않았다.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애써야 한다고 믿었고, 공부와 체육을 디딤돌 삼아 자신을 스스로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스물다섯이 되던 2002년, 마침내 공립학교 교사로 채용된다. 버려진 아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거듭나는, 그의 첫 번째 전환점이었다.교단에 서다, 그리고 돌아가다.다만 교단에 선 뒤에도 그는 한동안 자신의 출신을 드러내지 못했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사실은 오래도록 그를 짓누른 콤플렉스였다. 교직 9년째 되던 해, 그는 고향 김천의 한 중학교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 한 보육원 아동의 담임을 맡았다. 주눅 든 그 아이의 얼굴에서 지난날 자기 모습을 또렷이 본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내가 돕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날의 다짐 이후, 그는 부임하는 학교마다 시설 출신 아이들을 만나면 밥을 사 주고 조용히 곁을 지키며 후배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다.이 장면은 그의 삶에서 각별한 무게를 지닌다. 그는 성공한 뒤 과거를 끊어 낸 사람이 아니라, 성공한 뒤 다시 과거의 자리로 돌아간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기 안의 상처는 다른 아이의 상처를 알아보는 눈이 되었고, 자신의 결핍은 후배들을 이해하는 언어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보육원 출신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그 경험을 교육자의 사명으로 빚어낸 사람이다. 운동장이라는 안식처, 체육이라는 언어. 그의 본업은 체육 교사다. 그는 약 20년간 중학교 교단에서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함께 일으켜 세우는 교육을 펼쳤다. 전교 1등부터 꼴찌까지, 다문화 학생과 탈북 학생, 특수반 학생까지, 가정환경이나 성적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아이를 품으려 했다. 환경이 아무리 힘겨운 학생이라도 교사가 건네는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체육은 한낱 과목이 아니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은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아 주는 도구였고, 함께 뛰는 운동장은 아이들이 소속감을 느끼는 안식처였다. 그는 체육수업 자료를 직접 개발하고 뉴스포츠‘투투볼’의 보급에도 힘을 보탰으며, 그 공로로 2017년 ‘학교체육 대상’을, 2021년에는 대한민국 스승 상에 선정되어 ‘옥조근정훈장’을 받았다.세상 앞에 출신을 꺼내다.두 번째 전환점은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 앞에 꺼내놓은 시기에 찾아왔다. 고아권익연대에 참여하며 스스로 출신을 밝힌 그는, 2020년 《나는 행복한 고아입니다》를 펴낸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자서전에 머물지 않았다. 고아의 아픔과 현실을 전하는 데서 나아가, 보육원 출신 아이들을 위한 제도적 울타리와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함께 제안하는 목소리였다.그가 “나는 행복한 고아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자기 삶이 순탄했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고아에게 덧씌운 불행의 그림자를 거부하는 선언에 가깝다. 고아였으니 마땅히 불행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부모의 울타리 없이 자란 사람도 가정을 이루고 교사가 되고 장학사가 되며 마침내 누군가의 든든한 어른이 될 수 있음을, 그는 자기 삶으로 증명하려 했다.이후 펴낸 《행복한 고아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서는 문제의식의 지평을 한층 넓혔다. “고아라는 이름이 약점이 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서”라는 이 책의 문구처럼, 그는 분명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사회의 시선과 편견에 가려 그늘 속으로 숨어드는 아이들을 향한 편견에 정면으로 맞섰고, 울타리 없이 살아온 이들에게 따뜻한 조언과 응원을 건넸다.동정이 아니라 권리 '함께 키우는 아이'그가 전하려는 핵심은 분명하다. 아이가 부모와 단절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나야 할 까닭은 없다는 것. 그는 학생들이“나는 보육원 출신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고, 고아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키우는 아이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 한마디에 그의 세계관이 응축되어 있다. 그는 고아를 가엾은 존재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아이이자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 바라본다. 그의 활동이 동정이 아니라 인식의 개선에, 시혜가 아니라 권리의 회복에 닿아 있는 까닭이다.그는 한국고아사랑협회를 설립해 보육원 퇴소인을 돕는 일에도 발 벗고 나섰다. 보육원을 퇴소한 청년들에게는 서로 기댈 네트워크도, 주거와 취업을 받쳐 줄 기반도 모두 위태롭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 홀로 끌어안았던 고민을 후배들이 똑같이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를 이 길로 이끌었다. 유튜브 ‘나행고TV’를 운영하며 인식 개선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마음에서다. 보육원 아동과 퇴소 청년의 삶을 편견 없이 정확하게 바라봐야만 비로소 올바른 아동복지 정책이 세워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2024년, 그의 삶은 「나는 꿈을 이룬 고아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다시 한번 조명받았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평범한 하루하루가 꿈만 같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좇아온 성공이 거창한 명예에 있지 않았음을 잔잔히 보여 준다. 그에게 꿈이란 평범한 가정,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 그리고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선생님으로 사는 삶이다. 2025년 한 강연에서 어린 시절의 시련을 딛고 삶을 긍정의 빛으로 돌려세운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 것도, 결국 그 평범한 행복의 소중함을 전하기 위해서였다.성공보다 ‘환원’이라는 단어결국 이성남 장학사의 일대기는 결핍과 편견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결코 그 결핍과 편견에 갇히지 않은 한 사람의 기록이다. 그는 버려졌고, 외로웠으며, 차별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그 상처를 숨기는 대신 교육의 언어와 감사의 언어로 다시 빚어냈고, 부끄러운 약점으로 묻어두는 대신 후배 아이들이 같은 이름 때문에 주눅 들지 않도록 기꺼이 자기 삶을 열어 보였다.그래서 그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단어는‘성공’보다 ‘회복’, ‘극복’보다 ‘환원’, ‘개인의 서사’보다 ‘공동체의 책임’이다. 그는 홀로 잘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도움과 견뎌 낸 아픔을 다시 아이들에게 되돌려주는 사람이다. 버려진 아이가 꿈을 이룬 이야기이자, 꿈을 이룬 어른이 다시 버려진 아이들 곁으로 돌아간 이야기. 그것이 이성남 장학사의 삶이다. 그가 부순 것은 한 사람의 편견이 아니라, 편견이 작동하는 방식 그 자체였다. 한 아이의 미래를 핏줄로 점치던 자리에, 그는 ‘함께 키우면 달라진다’라는 명백한 증거 하나를 세워 두었다. 다음 회에서는 같은 성벽을 전혀 다른 망치로 부수는 한 사람을 만난다. 교육의 언어가 아니라 일자리와 구조의 언어로 편견에 맞선 사람, 브라더스키퍼의 김성민 대표다.
    2026-06-10 07:40:18 노주현 칼럼리스트
  •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11편, '편견' ... 피는 못 속인다는 말 앞에서
    사회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11편, '편견' ... 피는 못 속인다는 말 앞에서

    어느 입양 사연에 달린 댓글들 편견이라는 주제로 칼럼을 쓰고 있던 2주 전, 우연히 SNS를 보다가 눈에 띄는 사연 하나를 만났다. 난임으로 오래 고생하던 아내가 남편에게 아이를 입양하자고 했더니, 남편이 이를 반대했다는 이야기였다. 반대의 이유는 이러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충동적이고 무절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니, 그런 기질을 타고날 수 있어 싫다.”정작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 사연이 아니라, 그 아래 끝없이 달린 댓글이었다. 대부분은“타고난 기질은 무시 못 하니 남편 말을 들으라.”는 쪽이었다. 차마 이곳에 옮기기 어려운 험한 말도 많았고,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지 말라’는 오래된 속담을 인용한 댓글도 적지 않았다. “유전적인 기질은 무시 못 한다.”, “그런 아이를 입양하는 게 찝찝해서, 나는 몸이 갈려 없어지는 한이 있어도 시험관을 계속한다”라는 말까지 보였다. 그 댓글들을 읽고 있자니, 가슴이 턱 하고 막히는 느낌이었다.아이는 누가 키우느냐,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사회적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 그런데 그 댓글들의 밑바닥에는“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라는 식의, 유전 결정론적 편견이 깔려 있었다. 특히“유전자의 힘은 무시 못 한다.”, “내 몸이 갈리는 한이 있어도 시험관을 계속했다.” 같은 말은, 단순히 유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혈연이 아닌 아이, 출생 배경을 모르는 아이, 보육원이나 입양 배경을 가진 아이를 향한 막연한 불안과 편견이 뒤섞여 있다. 그 편견은 어디에서 오는가?이런 댓글이 달리는 원인을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사람들은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을‘유전자’라는 한 단어로 단순화한다. 이 아이가 어떤 성격을 가질지, 어떤 어려움을 겪을지, 부모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 알 수 없다는 불안이 생기면, 그 복잡한 문제를“피는 못 속인다.”, “유전자가 중요하다”라는 말로 간단히 정리해버린다. 실제로 유전은 일부 기질과 건강상의 위험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격과 도덕성, 범죄성, 삶의 방향까지 단순히 결정하지는 못한다.둘째,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혈연 중심의 가족관이 강하게 남아 있다. “내가 낳은 아이”, “내 피가 섞인 아이”에 대한 신뢰는 크지만, 출생 배경을 모르는 아이에게는 막연한 위험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입양이나 보육원 출신에 대해 실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기보다,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타고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라는 식의 상상에 기대게 된다.셋째, 대중문화와 사건 보도가 이 편견을 키운다. 영화와 드라마, 뉴스에서 부모의 부재, 고아, 보육원 출신, 입양아라는 설정은 결핍과 분노, 범죄, 문제가 있는 인물의 배경을 설명하는 장치로 자주 쓰인다. 그러면 사람들은 충분한 통계나 사례를 확인하지 않고도“역시 가정환경이 불안정하면 위험하다”, “사람은 출신을 봐야 한다”라는 인상을 주게 된다.넷째, 자기합리화의 심리도 작동한다. “힘들어도 내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낳는 것이 더 안전한 선택이었다”라는 말은, 자신이 택한 길에 대한 정당화에 가깝다. 사람은 고생해서 선택한 길이 옳았다고 믿고 싶어 하기에, 그 반대편에 있는 입양이나 비혈연 양육을 낮춰 보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이런 댓글들은 과학적 판단이라기보다, 불안과 혈연주의, 편견과 자기합리화가‘유전자’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것에 가깝다. 유전의 영향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근거로 특정 출생 배경을 가진 사람을 위험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보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해석이다.나의 기질 검사 결과가 말해준 것필자는 지난 4월, TCI 기질 및 성격 검사를 받았다. 눈에 띄는 기질 결과를 꼽자면 자극 추구가 97%, 인내력이 95%, 사회적 민감도가 6%였다. (참고로 기질은 타고 태어난 부분이고, 성격은 후천적으로 발달하는 부분이다.)앞선 댓글들의 논리, 곧 기질만으로 사람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필자를 설명한다면, 나는“도박을(자극 추구) 끈질기게(인내력) 하면서 타인의 감정에는 무관심한(사회적 민감도)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도박도, 숏폼 영상 중독도 아니며, 무리한 투자 역시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오히려 끈기가 있는 덕분에 한번 시작한 프로젝트는 끝까지 버텨 내고, 자립 준비 청년들과 오래도록 마음을 나눈다. 기질이 곧 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자라나는 데에는 기질이나 유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다. 편견은 무지가 아니라, 사회가 사람을 분류해 온 방식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그럴 것이다”, “피는 못 속인다”라는 편견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재단한다. 특히 보육원 아동이나 입양을 기다리는 아동처럼, 친생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편견을 씌워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이는“미혼 부모는 문란하고 무책임할 것이다”, “한부모 가족은 결핍된 가정일 것이다”, “입양가족이나 위탁 가족은 진짜 가족이 아닐 것이다”, “다문화가족은 가난하거나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와 같은 수많은 편견과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다양한 편견이 존재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주의와 혈연주의라는‘정상 규범’이 유독 강하게 작동한다. 한국 사회의 편견은 단순히 무지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정상이라 배워 온 가족, 혈연, 학벌, 성별의 규범에서 비롯된다. 미혼 부모를 문란하다고 여기고, 보육원 출신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라 단정하고, 입양가족을 진짜 가족이 아니라 보고, 학벌로 사람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태도는 모두 같은 뿌리를 가진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기 전에 출신과 가족 형태, 몸, 학교, 병력으로 먼저 판정해 버리는 사회적 습관이다. 그러므로 편견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오랫동안 사람을 분류해 온 방식이 낳은 결과다. 유전학과 낙인 사이, 그 경계에 대하여 유전은 분명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 기질과 건강상의 위험, 일부 성향에는 유전적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근거로“출생 배경을 모르는 아이는 위험하다”, “보육원이나 입양 배경의 아이는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과학이 아니라 차별이 된다.사람은 유전자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성격과 삶은 유전과 양육 환경, 애착 관계, 교육, 경제적 조건, 사회적 지지, 그리고 차별의 경험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해 빚어진다. 특히 아이에게 안정적인 어른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동 발달 연구에서 거듭 확인되어 온 사실이다. 어려운 출발선에 선 아이라도 안전한 환경과 지속적인 지지를 만나면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다.입양과 보호아동에 관한 연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입양은 많은 아이에게 발달을 회복할 기회를 주었고, 시설이나 불안정한 환경에 남겨진 아이들보다 더 나은 결과를 보인 연구들도 있다. 물론 모든 아이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자란다는 뜻은 아니다. 일부 아이들은 초기의 상실과 방임, 학대, 분리의 경험으로 인해 더 많은 심리적·교육적 지원을 필요로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피가 문제”라는 뜻이 아니라, “사회와 어른의 돌봄이 더 필요하다”라는 뜻이다.“유전자의 힘은 무시 못 한다”라는 말은, 그 자체로는 맞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이“그러니 출생 배경을 모르는 아이는 꺼림칙하다”, “보육원 출신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유전학이 아니라 낙인이다. 우리가 정말 물어야 할 질문아이는 부모의 삶이나 자신의 출생 배경 때문에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아동복지법 역시 아동이 자신 또는 부모의 사회적 신분과 재산, 출생지역 등에 따라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정말로 아이를 걱정한다면,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피가 어떤가”가 아니다. “이 아이에게 안전한 어른이 있는가?”, “지속해서 돌봐 줄 사람이 있는가?”, “상처가 있다면 회복할 기회가 주어지는가?”, 그리고“우리 사회가 이 아이를 낙인찍지 않고 함께 키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이다.아이를 유전자로 판단하는 사회는, 결코 아이를 보호하는 사회가 아니다. 아이를 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그 환경과 관계를 함께 책임지는 사회야말로 진짜로 아이를 살리는 사회다.
    2026-06-01 11:05:47 노주현 칼럼리스트
  •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10편, '편견' ... 노력이 의심으로 번역되는 자리
    사회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10편, '편견' ... 노력이 의심으로 번역되는 자리

    편견은 충분히 알기 전에 이미 판단해 버리는 마음의 습관이다. 한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보기보다, 그가 속해 있다고 여겨지는 집단·성별·나이·직업·출신·외모·지역·종교·학력 같은 표지로 먼저 재단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어떤 집단에 대한 단순한 믿음이 고정관념이라면, 그 고정관념에 감정적인 태도가 얹어진 것이 편견이다. 예를 들어 "저런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할 거야"라는 생각이 고정관념이라면, "그래서 나는 저 사람들이 불편해"라는 마음이 편견이다. 그리고 그 편견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순간, 차별이 된다. 필자에게 편견이 불러온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2017년 강서구 장애인 학교 설립을 둘러싼 풍경이다.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장애 학생 학부모들이 주민설명회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했던 그 모습은, 지금도 영화와 드라마에서 자주 오마주되고 있다. 당시 반대의 명분 안에는 "특수학교가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섞여 있었다. 강서구 사건만큼 큰 이슈를 끌지는 못했지만, 2018년 안양에서도 보육원 이전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보육원 예정지 인근에는 "주민 허락 없는 보육원 공사, 안양시는 인허가를 취소하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주민들은 절차와 협의 부족을 문제 삼았지만, 그 현수막이 보여 준 것은 결국 보육원이 환영받는 이웃이 아니라 '들어와서는 안 되는 시설'로 취급될 수 있다는 현실이었다.보육원아동들이 한번쯤은 겪었던 편견들 지난주에는 대중문화가 만들어 내는 편견에 대해 이야기했다. 보육원 아동에게는 흔히 불쌍함, 배우지 못함, 도둑, 범죄 같은 편견이 따라붙는다. 지금의 이십 대 중반, 소위 밀레니얼 세대까지 학교에서 가장 자주 겪었던 편견은 단연 '도둑질'에 관한 것이다. 학교에서 물건이 분실되면 보육원 아동이라는 이유 하나로 가장 먼저 조사를 받았다. 그 윗세대 청년들 중에는 저학년 때 속옷까지 벗긴 채 조사를 받았다는 증언도 있다. 대부분 초등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12년 내내 이어지는 일이다.2001년생인 A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보육원에 입소했다. 입소하면서 보육원 근처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전학을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급에서 MP3 분실 사건이 일어났다. 가장 먼저 교무실로 불려간 사람은 A였다. 마침 A 역시 분실된 것과 같은 색, 같은 기종의 MP3를 가지고 있었다(당시 초등학교 고학년 사이에서는 그 모델이 유행이었다). 선생님은 다소 고가의 장비인 MP3를, 그것도 분실된 것과 같은 기종·같은 색으로 가지고 있는 보육원 아동 A가 범인이라고 단정 지었다. A가 아니라고 거듭 부인하자 손바닥에 회초리가 떨어졌다. A는 누군가의 물건을 단 한 번도 훔쳐 본 적이 없었기에 억울함에 몸부림쳤지만, 그보다 더 슬펐던 것은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이 보육원에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은 일이었다. 일반 가정에서라면 겪지 않았을 일을 보육원 아동이라는 이유로 겪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MP3는 학교 쓰레기장에서 발견되었고 그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중학교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은 툭하면 반복되었다. 요즘 아동들은 이런 일을 대놓고 겪지는 않지만, 가끔 보육원 사무실로 물건을 잃어버린 학생의 부모가 전화해 "혹시 우리 아이 물건을 보육원 아동이 가져가지 않았는지 조사해 달라"고 요청하는 일은 여전히 있다.삼십 대 초반의 B는 중학교 1학년 때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오던 대학생 덕분에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그 결과 중학교 2학년 2학기 중간고사에서 성적이 크게 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담임선생님이 B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고 단정한 것이다. 별도의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학교 선생님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보육원에 전화를 걸었고, 보육원 선생님과 학교 선생님 사이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B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성적이 오른 자신이 당연히 칭찬받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돌아온 것은 의심이었다. 다행히 보육원 선생님들이 끝까지 자신을 믿어 주었기에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고등학생이 된 B는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그런데 당시 힘도, 돈도 없던 B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견디다 못해 학교 측에 정식으로 제보했지만, B에게 더 힘들었던 것은 학폭 자체가 아니라 제보 이후의 시간이었다. 당시 보육원에서는 공부 잘하는 B를 위해 별도로 학원을 보내 주었고, 유명 대학에 재학 중인 남자 대학생이 봉사활동으로 과외를 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가해자와 가해자 부모들이 이 사실을 문제 삼았다. 그 남자 대학생에게 성(性)을 제공하는 대가로 과외를 받는다는 소문, 보육원이 불법으로 학원을 보낸다는 이상한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실제로 과외받던 날 가해자 부모가 들이닥치듯 찾아와 사진을 찍었고, 봉사 과외 선생님에게 따로 전화를 걸어 추궁하고 괴롭히는 바람에, 결국 그 과외 봉사활동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이렇듯 '보육원 아동은 성적이 낮을 것이다', '보육원 아동은 도둑질을 할 것이다'라는 식의 편견은 80년대생이나 그 이전 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인 일이다.여성 청년에게 더 가혹한 편견의 잣대여성 자립준비청년의 경우에는 학력이 높거나 유학을 다녀온 이력이 있으면 또 다른 프레임이 따라붙는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최저시급이 6천 원대였다. 그 시절 등록금이 높은 사립대를 다녔거나 유학을 다녀온 자립준비청년에게는 '뒤에 누군가 있을 것이다', 즉 불법 스폰서가 있을 거라는 의심이 따라붙는 식이다.작년 소위 여초 사이트를 달군 글이 하나 있었다(물론 글의 진위 여부는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 삼십 대 중반의 한 여성이 보육원 출신으로,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유학을 다녀왔다. 그녀는 같은 동문인 한 남성과 사귀게 되었는데, 만남의 시기가 짧아 아직 결혼을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해 자신의 출신을 밝히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남성이 결혼을 진지하게 이야기하자, 여성은 자신이 보육원에서 자랐음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남성은 "불법 스폰서가 없다면 유학 생활이 가능했겠느냐"며 그녀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결국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후원자들의 후원금과 자신의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하며, 식비를 줄여 가면서까지 어렵게 공부한 사람이었다. 이 모든 노력을 단번에 폄하해 버린 남성과는 헤어졌지만, 남성은 동문들 사이에 "그 여자가 불법 스폰서를 받은 것 같다"는 소문까지 퍼뜨리는 찌질함의 극치를 보였다고 한다.생각보다 이 편견의 벽은 높고 견고하다. 같은 조건의 남성 청년이 어렵게 끝까지 공부해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칭찬이 따라붙지만, 여성 청년에게는 의심의 눈초리가 먼저 따라붙는다. 그래서 적지 않은 여성 자립준비청년들이 자신이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는다. 밝히는 순간 노력의 서사가 의심의 서사로 뒤바뀌어 버리기 때문이다.편견이 남기는 자리편견은 한 사람의 가능성을 시작도 하기 전에 닫아 버린다. 도둑이 아닌데도 가장 먼저 의심받고, 노력해서 얻은 성적조차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며, 어렵게 쌓아 올린 학력 앞에서는 더 무거운 의심이 따라붙는다. 이런 일들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초·중·고 12년, 더 길게는 청년기 전체로 이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많은 자립준비청년들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출신을 감추는 법부터 익힌다. 감춰야만 비로소 평범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기 때문이다.A가 MP3 사건을 통해 깨달은 것은 단순히 자신이 도둑으로 의심받았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보육원에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였다. 편견은 그렇게 한 사람의 자기 인식 안쪽까지 천천히 침식해 들어간다.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큰 사건이 필요하지 않다. 매일 조금씩 의심받는 시간이 쌓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다음 주에는 더 깊은 자리에 박혀 있는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바로 유전과 기질, 그리고 핏줄에 관한 편견이다. "결국 그 피가 어디 가겠느냐", "부모를 닮을 수밖에 없다"는 식의 말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따라다니는지, 그 이야기를 이어 가 보려고 한다.
    2026-05-25 14:17:55 노주현 칼럼리스트
  •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9편,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대중문화가 바라보는 편견'
    사회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9편,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대중문화가 바라보는 편견'

    대중문화는 어떻게 ‘고아’를 소비하고 있었나? "고아"라는 같은 단어 안에도, 사회마다 새겨진 결은 사뭇 다르다. 서구권에서는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아동문학 「올리버 트위스트」, 「빨간 머리 앤」, 「비밀의 화원」을 비롯하여 헐리우드 영화 「Instant Family」, 「Shazam!」, 뮤지컬 「애니」에 이르기까지, 고아 캐릭터는 대체로 긍정적인 방향에서 조명되어 왔다.서구권 작가들에게 고아는 오래전부터 강력한 서사 장치였다. "출신이 미스터리하고, 가족관계로부터 자유로우며, 어떤 존재로도 변할 수 있는 인물" 고아 캐릭터는 자유, 결핍, 모험, 정체성 탐색을 한 인물 안에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었다. 현실의 아동이라기보다, 이야기를 굴리는 도구로 쓰여 온 셈이다.한국의 사정은 정반대였다. 6.25 전쟁을 기점으로 전쟁고아가 급증하면서, 고아라는 존재는 자유의 상징이 아니라 연민과 비극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1960~70년대의 대표작 「맨발의 청춘」, 「배신」, 「흑맥」 등에서 고아 출신 남성은 가난, 폭력, 계급의 벽 사이로 떠밀리며 비극적 결말로 끌려간다. 이 시기 한국영화 속 고아는 대체로 전쟁의 피해자, 뒷골목의 청춘, 불쌍한 아이, 혹은 교화의 대상이었다.현대 한국영화의 토대를 닦은 1980년대에 와서도 그 그림자는 크게 옅어지지 않는다. 「내가 버린 여자」, 「들개」,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망령의 곡」 같은 작품 속에서 고아는 '불쌍한 아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비극과 희생·소외·분노를 떠안은 성인 여성의 몸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그 여성들 역시 자기 삶의 주체라기보다 남성, 가족, 가부장제, 전쟁이 남긴 상처를 비추어 보이는 거울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다.이렇게 연민·희생양·비주체성·폭력·가난의 장치로 굳어진 고아 이미지는, 2000년대를 지나서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평론가들은 이러한 클리셰를 일명 '고아공식' 즉 서사나 갈등을 만들기 위해 고아 설정을 손쉽게 소모해 버리는 방식이라 부른다. 이 공식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출생의 비밀을 다룬 통속극에서부터 누아르 스릴러에 이르기까지, 노골적인 편견 대사나 범죄자·희생양 클리셰로 소비된 2000년대 이후의 주요 작품들은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1. "부모 없이 자라서." 노골적인 언어폭력과 편견이 나온 작품드라마 속 갈등(특히 결혼 반대나 학교 내 갈등)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정교육"이나 "근본"을 운운하며 상처를 주는 대사들이 단골로 쓰인다. (ex 시크릿가든, 내 딸 금사월, 이태원 클라쓰) 2. "보육원 출신 = 범죄 카르텔" 빌런의 전사(Backstory)로 삼은 작품영화나 드라마에서 빌런 캐릭터에게 서사를 부여할 때, "어릴 적 버림받아 세상에 독기만 남았다"라는 식으로 범죄의 당위성을 고아 설정에서 찾는 경우(ex. 눈물의 여왕,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차이나타운, 악인전, 아무도 모른다, 사랑의 불시착, 열혈사제)3. 범죄의 손쉬운 희생양으로 쓴 작품(ex. 탐정리턴즈, 마더, 아저씨, 청년 경찰, 팬트하우스) 정리하자면, 미디어는 한 인물의 악함이나 처절함을 설명하려 할 때 가장 빠르고 손쉬운 카드로 '고아'를 꺼내 든다. 부모가 없으니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 돌아갈 가정이 없으니 범죄에 쉽게 가담하거나 또한 쉽게 표적이 될 것이라는 도식. 이런 연결은 콘텐츠의 자극성을 끌어올릴지는 몰라도, 현실에서 그 이미지를 그대로 짊어진 채 살아가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불필요한 낙인을 새기는 부작용을 낳는다.대중문화가 만든 이미지는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가대중문화의 영향은 "사람을 세뇌한다"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대중문화는 사람들이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에 대해, 가장 먼저 '이미지'를 심어 두는 힘을 가진다. 특히 고아, 보육원 출신, 자립준비청년처럼 일반 대중이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지 못하는 집단일수록, 화면이 만들어낸 이미지의 영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1. 대중문화는 “현실 인식”을 만든다.미디어 효과 연구 가운데 배양이론(Cultivation Theory)은, 사람들이 TV·영화·드라마 속 묘사를 반복적으로 볼수록 그 묘사를 현실의 모습처럼 받아들이게 된다고 본다. 직접 경험이나 지식이 적은 주제일수록, 미디어가 건네는 이미지가 곧 현실의 자리로 들어선다. 고아가 "불쌍한 아이", "문제아", "범죄자", "상처 많은 사람"으로만 반복적으로 그려진다면, 일반인은 실제 자립준비청년을 마주치기도 전에 이미 그러한 선입견을 장착하게 된다.2. 대중문화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만든다.UNICEF는 미디어와 광고가 아동·청소년의 사회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긍정적이고 다양한 재현은 포용적 사회규범을 만들어 내지만, 차별적 고정관념이 반복되면 정반대의 결과로 이어진다. 어떤 인물을 끝없이 "가엾은 존재"로만 그려 내면, 대중은 그를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 시혜적 대상으로 바라본다. 반대로 그 인물을 주체적이고 다양한 모습으로 그릴 때, 그는 비로소 자연스러운 이웃으로 받아들여진다.3. 대중문화는 태도와 행동에도 영향을 준다.2025년에 발표된 한 메타분석 연구는, 오락성과 교육성을 결합한 '엔터테인먼트-교육 콘텐츠'가 건강 관련 지식·태도·행동·자기효능감에 작지만 분명한 영향을 끼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통제·무작위통제 연구 39건을 종합한 이 결과는, 대중문화가 사람을 단번에 뒤집어 놓지는 않지만, 좋은 서사를 반복적으로 제공하면 생각과 태도, 그리고 행동까지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4. 그렇다면 지금의 재현은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가.UNICEF의 아동 보도 윤리 기준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고정관념적 이미지는 피해야 하며, 아동은 존엄하고 존중받는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또한 취약하거나 소외된 집단을 맥락 없이 "취약한 사람들"로만 묘사하면, 그 집단이 본질적으로 약한 사람들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고정관념을 오히려 강화한다고 경고한다. 앞서 살펴본 한국 대중문화 속 '고아공식'의 세 유형은, 정확히 이 경고가 가리키는 위험과 맞닿아 있다.한 장의 클리셰, 한 사람의 낙인대중문화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인 동시에, 사람들이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 그 자체를 만들어 내는 장치이다. 한 집단에 대한 사회적 첫인상은 대체로 화면에서 시작된다. 고아가 계속해서 불쌍하거나, 위험하거나, 결핍된 존재로만 그려진다면, 현실의 자립준비청년 역시 그러한 시선 속에서 발견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고아 출신 인물을 어떻게 그리는가는, 단순한 캐릭터 설정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의 편견을 새로 빚어내거나, 혹은 천천히 깎아내는 일이다.창작자분들께 부탁드리고 싶다. 인물의 어두움이나 결핍을 설명할 때, '고아'라는 설정을 더 이상 빠르고 손쉬운 카드로 꺼내지 말아 주시기를. 그 카드는 화면 안에서는 한 장의 클리셰일지 모르지만, 화면 밖에서는 누군가의 현재 정체성에 평생 따라붙는 낙인으로 작동한다. 한 인물의 굴곡을 만들어 내는 길은 충분히 많다. 그중 가장 안이한 길을, 굳이 가장 자주 선택하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그리고 화면 앞에 앉으신 수용자분들께도 한 가지 당부를 드리고 싶다. 대중문화가 만들어 낸 고아의 얼굴에 속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화면 속 그 얼굴은 작가의 손에서 빚어진 이미지일 뿐, 현실의 자립준비청년의 얼굴이 아니다. 그들은 화면 속 캐릭터들과 달리,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보통의 이웃들이다. 대중문화가 건네준 첫인상에 속지 않는 것 — 그것이 한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마주하기 위한 가장 첫 걸음이다.대중문화 안에 자리 잡은 편견의 이미지들은, 화면 바깥으로 한 발 나오는 순간 더욱 또렷한 모양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학교 안에서, 동네 골목에서, 직장 면접실에서, 그리고 누군가의 집 앞에 내걸린 현수막 한 장에서. 다음 회에서는, 대중문화가 만들어 낸 이 이미지들이 우리의 현실 공간에서 어떻게 꺼내져 쓰이고 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려 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5-18 07:51:38 노주현 칼럼리스트
  •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8편,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사랑이라는 전쟁, 나쁜 연인들 3’
    사회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8편,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사랑이라는 전쟁, 나쁜 연인들 3’

    거절 할 수 있는 용기여러 현장 보고서와 연구는, 보육원에서 오래 자란 청소년들에게 낮은 자아존중감과 높은 의존성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기주장과 독립성을 길러 주는 자립준비프로그램의 필요성이 오래도록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이 경향을 한 사람의 결함처럼 읽어서는 곤란하다. 어른의 한마디에 자기 자리가 흔들리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어른의 눈치를 먼저 익히는 일은, 어쩌면 가장 본능적인 생존의 기술이었을 테니까. 거절을 모르는 청년의 뒤에는, 거절해도 안전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아이가 서 있다.거절을 잘 못 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착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다른 결이 있다. 관계가 깨질까 두려운 마음, 상대의 실망을 견디기 어려운 마음, 자기 욕구보다 타인의 평가를 늘 먼저 두는 습관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 특히 거절을 '관계의 단절'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결국 자신을 지킬 힘이 약하다는 뜻이다.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관계 안에서 자기 욕구를 안전하게 표현해 본 경험이 부족하거나, 거절했을 때 관계가 끊어질 수 있다는 불안을 일찍 학습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거절할 수 있는 용기란 버릇없는 태도가 아니라 자기 삶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자립 기술이다. 그러나 사회로 나온 이 청년들에게서 이 용기는, 안타깝게도 한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자기 경계선이 약한 이들은 착취적인 사람에게 쉽게 걸려든다. 최악의 경우 범죄에 이용되어, 인생에서 가장 빛나야 할 이십 대를 송두리째 잃기도 한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남자친구가 '사랑한다'는 말로 꼬여 학생을 성을 착취하는 경우처럼, 범죄에 이용되고 버려지는 사례가 종종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그렇게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충격은 거대하고 회복탄력성은 낮으니, 몇몇 청년들은 끝내 다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보호 종료 후의 시간은 유난히 길고 또 적막하다. 어제까지 수십 명이 부대끼던 공간에서 빠져나와,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방으로 들어서는 첫 밤. 그 적막을 처음으로 깨뜨려 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우리는 그 손을 너무 쉽게 잡아 버린다. '내 편이 생겼다'는 그 한순간의 안도가, 평생을 흔들 결정을 너무 빨리 내리게 만든다. 다음의 두 이야기는, 그렇게 잡아 버린 손에 관한 기록이다. 여자친구와 함께라면 어디든 좋아요! A는 초등학생 때 네 살 터울의 동생과 함께 보육원에 입소했다. 그 순간부터 '동생은 내가 지킨다'는 사명감을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장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공장에 들어갔지만, 일은 생각보다 고되고 돈을 모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던 A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게임을 통해 알게 된 그녀와 사귄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여자친구는 A에게 새로운 제안을 건넸다. 해외에 나가서 함께 돈을 벌자는 것이었다. 큰돈을 벌 수 있고 해외에서도 살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했다. 사귄 지 한 달, 가장 알콩달콩하던 시기였으니 그녀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솟았다. 보육원에 남아 있는 동생이 퇴소하기까지는 아직 3년이 남아 있었으니, 그 사이 돈을 두둑이 모아 동생이 나왔을 때 번듯한 오빠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계산도 들었다. 게다가 몸 쓰는 일도 아닌 사무직이라니, 더할 나위 없었다. 똑똑하고 야무진 여자친구가 서류까지 모두 꼼꼼히 챙겨 주는 모습에 A는 더 깊이 빠져들었다. 그렇게 제안을 수락한 보름 뒤, A는 여자친구와 함께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도착하니 한국인 형들이 많았고, 그들은 A를 살갑게 맞아 주었다. 키가 작고 왜소해서 학창 시절 같은 학교 형들에게 걸핏하면 맞고 다녔던 A에게, 이렇게 잘해 주는 형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따뜻했다. 그러나 그 회사는 보이스피싱 조직이었다. 처음 2주 정도는 범죄인 줄도 몰랐다고 한다. 평범한 회사로만 알았다가 범죄 조직임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여권이 모두 빼앗긴 뒤였다. 일은 괴로웠지만, A는 자기 자신보다 여자친구가 더 걱정이었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여자친구도 그 조직의 일원이었고, 이런 방식으로 이십 대 초반의 남자를 꼬여 범죄에 이용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는 사실을.그 사이 한국에 남은 동생은 난리가 났다. 자주 통화하던 오빠가 중국에서 돈을 벌어 온다더니 어느 날 연락이 뚝 끊겨 버린 것이다. 답답한 시간이 1년이 흐르고, 동생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오빠와 다시 연락이 닿았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동생은 먼저 안도부터 했다. 오빠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러나 곧 오빠를 그곳에서 빼내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동생은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고3 2학기가 되자마자 취직했고, 직장 생활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동생이 스무 살이 되던 해 11월, 동생은 범죄 조직에 거금 1천 5백만 원을 건네고서야 오빠를 데려올 수 있었다.A는 처음 그곳에 들어갔을 때보다 몸무게가 8kg 이상 빠진, 말 그대로 앙상한 뼈만 남은 채 한국에 돌아왔다. 다행히 초범이고 속아서 범죄에 이용된 점이 참작되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A가 고백한 말이 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어렴풋이 '이건 불법적인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자친구에게 가기 싫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면 여자친구가 자기만 두고 떠나 버릴까 봐, 그게 그때는 너무나 무서웠다고. 그리고 그날 가기 싫다고 말하지 못한 자신을, A는 지금까지도 원망하고 있다. 사랑으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어요그렇다. 사랑이라는 이름은 위대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을 준다. 하지만 살다 보면 "사랑한다"는 말이 얼마나 하찮고 또 얼마나 무력한지, 뼈저리게 체감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B는 고등학생 때 보육원을 나왔다. 잔소리하는 생활지도원 선생님도 싫었고, 공부에도 별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작정 보육원을 뛰쳐나온 B는 같이 가출한 친구들과 자신이 어떻게 다른지를 거리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거리에서의 삶이 생각보다 고단했던 친구들은 하나둘 다시 가정으로 돌아갔고, 마지막에 남은 건 자기 자신뿐이었다. 외로움과 고독감이 머리끝까지 차오를 무렵, 마침 헌팅포차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거기서 만난 남자들과의 짧은 연애는 외로움의 빈자리를 그럭저럭 메워 주었다.그러던 중 자주 가는 헌팅포차에서 서빙을 하던 알바생과 사귀게 되었다. 외모도 말솜씨도 어디 하나 빠질 데 없는 그 남자에게 B는 흠뻑 빠졌다. 당시 B는 이력서만 보고 학력은 따로 검증하지 않는 단순 서비스직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일은 고됐지만 혼자 살기에는 나쁘지 않은 월급이 나왔다. 사귄 직후부터 남자친구는 B의 집에 자주 머물렀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서는 거의 살다시피 했다. 신혼 같던 두 사람 사이에 첫 균열이 간 것은 두 달이 못 되었을 때였다. 남자친구가 주기적으로 마약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B는 그 사실을 알고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가 그를 고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렇게 본격적인 헌신이 시작되었다. 마약을 끊겠다고 약속한 남자친구는 다니던 헌팅포차도 그만두었고, 생활비는 오롯이 B의 몫이 되었다. B는 낮에는 직장에서, 밤에는 서빙 알바로 두 사람 몫의 생활을 떠받치며 그의 재활을 도왔다. 그러다 사귄 지 석 달이 조금 넘었을 때, 남자친구가 체포되었다. 죄명은 단순 투약이 아니라 유통이었다. 그래도 B는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수감된 동안 영치금을 보내고 일주일에 한 번씩 면회를 갔다. 출소하면 곧바로 결혼하기로 약속도 했다. 그렇게 B의 헌신은 끝이 보이는 듯했다.남자친구가 출소했다. 당장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던 그는 한 달쯤 집에서 지내다 다시 헌팅포차 알바를 시작했다. 둘이 함께 살면서 그는 가끔 B에게 작은 심부름을 부탁했다.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기에 B는 흔쾌히 들어주었고, 두 사람은 다시 신혼처럼 지냈다. 그가 출소한 지 6개월쯤 흐른 어느 날, 이번에는 B가 마약 유통 혐의로 체포되었다. 남자친구가 부탁했던 그 심부름이, 마약을 전달하는 일이었던 것이다.다행히 B는 마약을 투약한 사실이 없고, 유통 역시 마약인 줄 인지하지 못한 점이 참작되어 집행유예를 받았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B는 알게 되었다. 남자친구에게는 자기 말고도 다른 여자친구가 셋이나 더 있었다는 사실을. 말 그대로 B는 '넷플릭스'였다. 요금은 B가 내고, 아이디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는. 비유는 가벼웠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사실은 가볍지 않았다. 사랑이라 믿었던 관계는 한 사람의 헌신을 여럿이 나눠 쓰는 구조였고, 그 누구도 B의 삶을 책임지지 않았다. 다른 여자친구들 역시 마약 유통 혐의로 구속된 상태였다. 게다가 남자친구의 휴대전화에서는 B를 포함한 여러 여성의 사진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그 범죄에 함께 엮인 여자친구들이 모두 B처럼 정서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이었다는 점이다.B는 인생에서 집행유예를 받기 전, 구속되어 있던 그 시간이 가장 끔찍했다고 말한다. 구속된 것 자체도 억울했고, 다른 여자친구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분했다. 혹시 자기 영상이 어딘가에서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 속에서 매일을 견뎌야 했다. 지금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때는 무수히 다른 선택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리고 B는 남자친구가 부탁한 그 물건이 무엇이었는지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어렴풋이 눈치를 채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렇게 간곡히 부탁하는 남자친구를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사랑이라면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사랑은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사랑은 분명 아름답다. 누군가의 안부가 내 하루의 무게가 되고, 누군가의 웃음이 내 하루의 빛이 되는 일. 그래서 우리는 사랑 앞에서 조금쯤 어리석어지고, 조금쯤 너그러워지고, 또 조금쯤 용감해진다. 사랑이 사람을 자라게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사랑은 결코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기 여권을 빼앗길 만큼, 자기 이름을 잃을 만큼, 자기 삶을 통째로 저당 잡힐 만큼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빌려 입은 다른 무엇이다. 진짜 사랑은 상대를 깎아내려 자기 자리를 만들지 않으며, 상대의 두려움을 발판 삼아 무엇을 시키지 않는다. 진짜 사랑은 "거절해도 괜찮아"라고 말해 주는 자리에서 시작된다.자립준비청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다. 자기 욕구를 안전하게 말해 본 경험, 싫다고 말한 뒤에도 관계가 부서지지 않은 경험, 거절했음에도 여전히 사랑받은 경험. 그 작은 경험들이 모여 한 사람의 단단한 경계선이 되고, 그 경계선이 바로 그를 살게 한다.사랑은 위대하다. 그러나 더 위대한 것은, 그 사랑 안에서도 끝내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일과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은, 서로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는 두 개의 이름이다. 부디 우리 청년들이 그 사실을 너무 늦지 않게 알아차리기를. 사랑한다는 말 앞에서 자신을 통째로 내어 주는 대신, 사랑한다는 말 안에서 자신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그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끝내 가르쳐 주어야 할, 가장 마지막이자 가장 처음인 자립의 기술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 4-7절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5-11 13:16:47 노주현 칼럼리스트
  •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7편 ...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사랑이라는 전쟁, 나쁜 연인들 2’
    사회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7편 ...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사랑이라는 전쟁, 나쁜 연인들 2’

    우리는 부모를 통해서 무엇을 배우는가?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먼저 새겨지는 글씨는 부모의 손끝에서 그어진다. ‘양육의 방식, 가치관, 생활의 습관’ 그 모든 것이 아이의 살에 깊은 흔적으로 남는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부모를 통해 사랑을 받는 방식을 처음 배운다.부모가 아이의 감정에 따뜻하게 반응해주면, 아이는 사랑이란 안전한 것이라 익히게 된다. 반대로 방치와 거절, 학대가 반복되면 사랑이란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라 새기게 된다. 또한 아이는 부모가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부부 사이의 존중과 무시, 폭언과 사과, 책임을 나누는 모습들을 보면서, 가까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익힌다. 부모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첫 번째 모델이기도 하다. 부부가 동등한 관계인지, 한쪽이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관계인지를 보고 자란 모습은, 훗날 아이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가족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가장 처음 새겨지는 청사진이 된다.하지만 보육원 아동에게는 부모가 아닌 생활지도원이 있다. 생활지도원은2교대 혹은3교대 근무가 일반적이고 근무환경 또한 녹록지 않아 퇴사율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결국 보육원 아동은‘안정적인 부모의 모델’을 가지지 못한 채 자라게 되며, 이는 훗날 안정적인 관계를 맺는 데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고아’들을 쉽게 꼬시는 법을 알려주마작년 어느 날, 우연히 익명 커뮤니티에서 마주친 글의 제목이다. 그날, 진심으로 내 두 눈을 씻어내고 싶었다. 사실 그 글의 본문은 차마 여기에 옮길 수 없을 만큼 자극적이었다. 글의 요지는 이러했다. 보육원 출신 아이들은 쉽게 꼬셔진다, 조금만 예쁘다고 치켜세워주면 금세 넘어오고 한없이 헌신적이라는 것이다.그동안 나는 자립준비청년이 만난 나쁜 연인들의 사례를, 어느 연애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일들 중 몇몇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막연히 여겨왔다. 그러나 익명 커뮤니티에 버젓이 올라온 그 글을 마주한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정서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자립 초기를 노리는 나쁜 연인들이, 내가 짐작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좋은 남자는 어떤 남자에요?몇 해 전, 어느 보육원 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보육원 학생 한 명이 소위‘조건만남’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데, 도무지 자신의 말은 듣지 않으니 부디 와서 그 아이를 말려달라는 부탁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실제로 만난 여학생은 고3이었다. 얌전하고 단정한 인상의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는 상대에 따라 피임 기구를 쓸지 말지를 정했고, 본인 역시 피임에 대한 개념이 분명하지 않았다. 조건만남에 대해 특별한 죄책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받는 돈조차 너무 적어 도리어 내가 놀랄 정도였다. 내가 그저“조건만남은 나쁜 것”이라고 말한들, 아이가 들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말이라면 보육원 선생님에게 이미 수없이 들었을 테니까.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그 조건만남 뒤에는 학생이‘남자친구’라 부르는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조건만남을 시키고, 받은 돈의 일부를 학생에게 떼어주는 방식이었다. 학생은 자신이 남자친구를 사랑하고, 남자친구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했다. 자신이 그를 사랑하기에, 그가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제야 학생의 행동에 드리워져 있던 의문이 비로소 풀렸다. 돈이 절실히 필요한 형편도 아니었고, 학교나 보육원에서 특별히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도 아니었기에, 도대체 왜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사랑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며, 그 남자는 좋은 남자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좋은 남자를 만나 진짜 사랑을 하라며, 한참을 이야기했다.학생은 눈을 반짝이며 한참을 듣더니, 이내 내게 이렇게 물었다.“그런데 선생님 좋은 남자는 어떤 남자에요?” 그 물음을 듣는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그렇다. 예컨대 부모가 매일 도박과 술에 빠져 집안이 늘 어수선했던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무의식 중에‘저런 사람과는 절대 만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새긴다. 그렇게 우리는 자라면서 나쁜 배우자, 혹은 나쁜 연인의 기준을 자기도 모르게 세워간다. 그러나 보육원에서 자라다 보면 모델 자체가 없기 때문에, 좋은 배우자에 대한 기준 또한 흐릿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불안정한 애착관계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주는 사람을 곧 좋은 연인이라 믿게 만든다.물론 내가 만난 그 학생의 사례는 다소 극단적이긴 하다. 그러나“사랑한다”는 한마디 말에 한 청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나는 그날 처음으로 똑똑히 목도했다. 다행히 그 학생은 가까스로 그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끊어내고 보육원을 무사히 퇴소했지만, 그 이후의 삶은 지금도 안개 속처럼 모호하다. 나 사랑하면서 이것도 못 해줘? 사랑하는 사이에서 부탁은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연인 사이에서 결코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금기의 문장이 있다. 바로“나 사랑하면 이거 해줘!”라는 말이다. 사랑을 부탁의 근거가 아닌 복종의 근거로 끌어다 쓰기 때문이다. 이 말은 상대에게 죄책감을 짐 지울 뿐 아니라, 사랑을 거래의 조건으로 변질시킨다. 또한 상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관계 안에 조종과 착취가 스며들게 만드는 위험한 문장이기도 하다.그런데 사랑이 고팠던 사람일수록, 이 말 앞에서 거절이란 좀처럼 쉽지 않다. 거절하는 순간 사랑을 잃을 것 같고, 또 한 번 버려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쁜 연인들은 바로 이 불안의 틈을 교묘하게 파고든다.수도권3년제 대학을 졸업한 A는 한 대기업 생산직에 근무했다. 3년제 대학을 나온 덕에 고졸 동기들보다 연봉이 조금 더 높았고, 보육원에 서5년 이상 거주한 자립준비청년에게 주어지는 군 면제 혜택 덕분에 또래 남자들보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회사가 숙식까지 모두 제공한 덕에 돈도 알뜰히 모았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근처 호프집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성과 연애가 시작되었다.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시작한 연애였고, 4살 연상이라던 그녀와 약 6개월간 만난 끝에 둘은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다.A는 결혼 3년 차에 작은 사업을 시작했고, 사업은 제법 잘 풀렸다. A는 늘“아내가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여행도 자주 다니고, 명품을 모으는 취미도 생기고, 골프 여행도 곧잘 떠났다. 그러나 두 사람의 행복해 보이던 결혼 생활은 7년 만에 끝이 났다. 직접적인 이혼 사유는 배우자의 외도였다. 부부 사이의 일은 양쪽 이야기를 모두 들어봐야 한다지만, A의 이혼 사유는 단순히 외도 하나만이 아니었다.A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나 사랑하면서 이것도 못해줘?”라는 그 한마디였다. 결혼 후 직장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부터 아내가“사랑하면…”이라는 문장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친정 부모님께 매달 80만 원씩 용돈을 드리는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4살 연상이라 했지만 실은 13살 연상이었던 그녀의 부모님은 이미 연로하셨다. 물론 문제는 그녀의 나이가 아니었다. 문제는 사랑을 증명하라는 말로 A의 돈과 시간, 관계와 미래를 계속 시험했다는 데 있었다. 그녀는 이십 대 초반에 잠시 직장을 다닌 것을 제외하고는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따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린 적도 없었다. 그것이 부모님께 가장 미안하다며, A에게 함께 용돈을 드리자고 청했던 것이다.부모님 용돈으로 시작된 그녀의 요구는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A가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사업에 뛰어든 것 또한, 사실은 그녀의 끈질긴 요구 때문이었다. 사업은 다행히 잘 풀렸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요구를 옳게 만들어 준 것은 아니었다. 사업이 잘되자 그녀의 씀씀이도 함께 커졌고, 요구의 강도 또한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의 요구는 늘 같은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나 사랑하면 이거 사줘! 나 사랑하면 여기 여행 보내줘! 나 사랑하면 골프채 바꿔줘!” A가 그것을 거절하려 들면, 어김없이 죄책감이 그를 짓눌렀다.A의 마음이 결정적으로 식어버린 사건은 따로 있었다. A는 보육원에 들어가기 전 자신을 잠시 키워주었던 의붓어머니를 어렵사리 다시 찾게 되었다. 의붓어머니의 형편이 너무 어려워, A는 매달 50만 원씩 용돈을 보내드렸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와 결국 큰소리로 다투게 되었고, 그날 부부 싸움의 끝에 그는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나를 사랑한다면 그 의붓어머니와의 관계를 끊고 살아야 해. 둘 중 한 명을 선택해.”결국 A는 의붓어머니께 용돈을 드리지 않기로 했고, 1년에 세 번만 만나며 통화는 한 달에 한 번으로 한정한다는 합의를 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아내의 외도 사실이 드러났고, 7년의 결혼 생활은 그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기에.. 참고로 아이를 갖지 않은 이유 또한 결혼 직후“사랑하면 아이는 갖지 말자”는 그녀의 요구 때문이었다고 한다. 둘의 이혼은 비교적 빠르게 마무리되었다.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이혼 이후의 일이었다. A는 이혼 후 3년 동안 매달 150만 원씩을 전 아내에게 자발적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녀에게 경제적 능력이 없으니 자립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유책 배우자에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고 내가 묻자, A는 마지막에 그녀가 울며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의 눈물 앞에서, 결국 그는 끝까지 등을 돌리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A는, “사랑하면 이렇게 해줘”라는 그 늪에서 끝내 빠져나오지 못하고 말았다. 사랑은 증명을 요구 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말은 분명 따뜻한 말이다. 그러나 그 한마디는 누군가에게는 안식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올가미가 된다. 어린 시절 사랑이라는 단어를 충분히 들으며 자라지 못한 사람일수록, 그 말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나를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이 문장은 자립준비청년에게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시험당하는 한 장의 시험지처럼 다가온다. 거절하면 사랑을 잃을 것 같고, 응하지 않으면 또 한 번 버림받을 것 같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조금씩 깎아내면서까지 그 자리에 머무른다.하지만 진짜 사랑은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좋은 연인은 상대의 시간과 돈, 그리고 그가 가진 다른 관계를 시험하지 않는다. 좋은 연인은 상대를 고립시키지 않고, 상대의 삶을 빼앗지 않으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사랑은 사람을 더 작아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잃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힘이어야 한다.그러므로 자립지원은 주거와 생계, 일자리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청년들이 건강한 관계를 분별하고,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착취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돕는 관계 교육과 정서적 지지까지 포함해야 한다. “하지 마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전에 “이것이 사랑이다”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안전한 관계의 경험이 필요하다.결국 한 사람이 필요하다. 좋은 연인의 모델 이전에, 좋은 어른의 모델. 사랑한다는 말을 앞세우지 않아도 묵묵히 곁을 지켜 주는 안전한 한 사람. 그 한 사람의 존재가 청년이 살면서 마주칠 수많은 나쁜 연인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 내는 첫 번째 방패가 된다. 사랑이라는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전에 전쟁이 아닌 사랑을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그리고 그 곁의 어른들이 자립준비청년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자립지원일 것이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5-04 11:14:11 노주현 칼럼리스트
  •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5편, 학대로 시작된 보호 ... 입양도 막힌 채 보육원으로 내몰리는 아이들
    사회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5편, 학대로 시작된 보호 ... 입양도 막힌 채 보육원으로 내몰리는 아이들

    - 한국고아사랑협회 노주현 대표
    내 아이를 학대하는 나쁜 부모들2010년부터 2014년까지 보호조치아동의 발생 원인 1위는 미혼부모와 혼외자였고, 학대는 3위에 머물렀다. 2010년 12.1%에 불과하던 학대 비율은 해마다 가파르게 올라 2015년부터 1순위에 올라섰고, 2021년과 2022년에는 마침내 48%를 넘어섰다. 15년부터 2024년까지 발생한 보호조치아동은 약 3만 5천 명. 그중 37.7%, 1만 3천여 명의 아이들이 '학대'라는 이름표를 달고 가정에서 분리되었다. 더 무거운 사실은, 이 학대의 가해자 열 중 여덟이 다름 아닌 친부모라는 점이다. 아이에게 가장 안전해야 할 울타리가, 가장 날카로운 칼이 되어 있는 셈이다. 참고로 나쁜 부모 사례는 보육원을 퇴소 후에도 굉장히 많기 때문에 별도로 다시 다루고자 한다. UN 아동권리협약 제20조는 “가정환경을 잃은 아동에게 국가가 특별한 보호와 대안 양육을 보장해야 하며, 시설보호보다 가정 또는 가정과 유사한 환경의 보호를 우선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지난 10년간 평균 58.62%(40,074명)의 보호조치아동이 시설로 입소했다. 협약의 정신과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걸어온 10년이었다.학대의 그림자, 경계선지능장애 “학대·방임·불리한 아동기 경험이 경계선지능의 중요한 위험요인 중 하나이다” 이는 더 이상 가설이 아니다. 2020년 발표된 영국에서 발표된 “아동학대와 아동 인지기능 간 인과관계 탐색: 체계적 문헌고찰”(Investigating the causal relationship between maltreatment and cognition in children: A systematic review) 에서는 “12세 미만 아동 대상 31편 연구를 검토한 결과 학대 경험 아동이 비교군보다 IQ/인지발달이 더 낮았으며, 학대의 시기와 지속기간이 길수록 인지손상이 큰 ‘용량-반응 관계’도 확인했다”고 정리했다. 저자들은 특히 시설수준의 극심한 학대·박탈 환경에서는 인지기능 저하에 대한 인과적 근거가 강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2021년 네덜란드 연구는 한층 직접적이다. 지적장애 및 경계선지능 아동 134명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경계선지능 아동의 92.3%가 최소 한 가지 이상의 불리한 아동기 경험을 겪었고, 평균 사건의 수는 2.88개에 달했다. 가족의 복합적 위험과 아동의 경계선지능이 단단히 얽혀 있다는 사실이, 숫자로 또렷하게 드러난 것이다.현장에서는 이 통계보다 훨씬 더 무겁다. 보육원에서 살고 있는 아동들을 보면 지적장애나 경계선지능장애로 의심 될 만한 아동들의 수가 앞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역시 2024년 보도자료를 통해 시설보호아동 11,899명 중 4,986명, 즉 41.9%가 ADHD·경계선지능·공격적 행동 등을 보이는 ‘특수욕구아동’이라고 밝힌바 있다. 다행인 점은, 경계선지능과 ADHD는 안정적이고 구조화된 양육, 부모 교육, 조기 개입을 만나면 정서조절과 사회적응이 눈에 띄게 좋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더욱, 학대로 분리된 아이일수록 한시라도 빨리 안정된 가정으로 옮겨지는 일이 결정적이다. 그러나 그 마지막 가능성마저 지금 한국에서는 닫혀 있다.누가 입양을 가로 막고 있는가? 2010년 1,462명이던 국내 입양은 2025년 102명으로 줄었다.15년 만에 90% 이상이 사라진 것이다. 흔히 '혈연 중심 가족문화'을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그러나 혈연 중심 문화는 2010년에도 똑같이 존재했다. 문화 하나로 90%의 급락을 설명하는 것은 무리다.시계열을 들여다보면 답은 분명해진다. 점진적으로 감소하던 입양 건수가 2023년 공적입양체계 전환 논의를 전후로 급락한 것이다.2025년 7월 19일, 「국내입양에 관한 특별법」과 「국제입양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입양 절차의 실무가 민간 입양기관에서 국가로 전면 이관되었다. 아동 최선의 이익을 강화하고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에 부합하는 공적 관리 체계를 만들겠다는, 명분만큼은 흠잡을 데 없는 개편이었다. 하지만 2023년 제도가 채택된 이후 국내 입양은 304명으로 이 숫자조차 기존에 매칭이 진행되던 사례이며. 결국 23년 이후 새롭게 입양이 연결된 아동은 0명이다. 결국 입양을 원하는 부모도,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도 매칭된 것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이 사태가 과연 ‘아동 최선의 이익’과 부합하는지 되묻고 싶다. 국가에서 행정처리라는 이유로 입양을 막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준비 없는 공적체계한 아이가 친생부모에게 학대받다 좋은 양육자를 만나 사랑받으며 자라느냐, 아니면 보육원에서 2교대·3교대 생활지도원의 손을 거쳐 자라느냐는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가르는 일이다. 그토록 무거운 갈림길을, 우리는 준비 없이 갈아 엎었다.26년 3월에 아동권리보장원에서 밝힌 입장문에 따르면 특히 예산과 인력 확보가 충분히 선행 되지 못했고 이는 숫자로 고스란히 들어 난다. 2026년 3월 기준 입양 절차 진행 중인 605가정 가운데- 231가정이 기본교육 대기- 152가정이 가정환경조사 대기- 77가정이 자격심의 대기- 18가정이 결연심의 대기초반 단계부터 후반 심의까지 전 구간이 줄줄이 막힌, 전형적인 병목 현상이다. 예비양부모 자격심의와 결연심의는 아직도 월 1회. 보건복지부는 이를 월 2회로 늘리겠다고 개선안을 내놓았고, 입양 신청서는 여전히 등기우편으로 접수하다가 최근에야 온라인시스템을 만들겠노라 발표 하였다. AI가 의료 영상을 판독하고 신약을 설계하는 시대에, 한 아이의 인생을 결정짓는 첫 서류는 우체국을 거쳐야만 도착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문제는 속도만이 아니다. 새 체계는 '서류와 심의의 질'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초기 조사의 충실도, 기록의 깊이, 위원회 검토의 밀도에 따라 한 아이의 미래가 결정된다. 제도는 더 정교해졌지만, 현장 역량이 그 정교함을 따라가지 못하면 아이의 개별성은 서류 어딘가에서 소리 없이 지워진다.지금이 바로 그 위험이 현실이 된 시점이다. 생후 36개월까지가 뇌 발달의 결정적 시기라는 사실은 이제 부모가 아니어도 안다. 2023년에 태어난 아기는 이제 낯을 가리고 어린이집에 다닐 나이가 되었다. 그 3년을, 우리는 행정의 병목 안에서 아이들의 인생을 통째로 흘려보냈다.이러한 제도에 묶여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가정에서 보호받아야 할 아동은 계속 발생한다. 1분1초가 그 아동에게는 아까운 시간들이다.학대 아동이 보육원에 입소하기까지는 꽤 복잡하고 힘겨운 절차를 걸친다. 그리고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은 오롯이 아동의 몫이다. 아동에게 최대한 빨리 좋은 양육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국가가 되려 뺏고 있는 꼴 되고 있는 것이다. 깨진 우주, 그 조각을 맞춰야 할 의무고려시대에도, 조선시대에도 보호조치가 필요한 아이들은 있었고, 그들을 돌보는 기관도 있었다.전쟁과 학대, 가난과 이혼이 사라지지 않는 한, 보호조치아동은 인류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발생할 것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어쩔 수 없지 않은 것은, 그 아이들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다. 흔히 부모를 두고 '아이의 우주'라고 한다. 보육원에 입소하는 아이들은 친생부모의 이혼·재혼·한부모 경험에 더해 학대와 방임, 알코올 문제, 장애, 극심한 생활고가 겹겹이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아이들에게 우주는 이미 산산이 부서진 상태로 도착한다. 그렇다면 어른들에게는, 그리고 국가에는, 그 우주의 조각을 한 알이라도 더 맞추어 돌려줄 의무가 있다.보육원 입소의 본질은 '부모의 부재'가 아니라 '아이를 안전하게 지킬 최소한의 울타리가 무너졌다는 사실'이다.그 울타리를 다시 세우는 일을 가로막는 존재가 다른 곳도 아닌 국가의 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이제 학대 속에서 보육원으로 들어왔던 수많은 아이들이, 입양이라는 두 번째 가능성마저 닫힌 채 곧 보호 종료를 맞아 사회로 나온다. 그러나 사회에는, 앞서 적은 그대로, 그들을 받쳐줄 제도도 어른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깨진 우주의 조각을 맞추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일을 막는 제도라면, 그것은 더 이상 '아동 최선의 이익을 위한 제도'라 부를 수가 없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4-20 10:44:22 노주현 칼럼리스트
  •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4편,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혼자라는 두려움이 만든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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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4편,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혼자라는 두려움이 만든 틈’

    - 한국고아사랑협회 노주현 대표
    설렘 뒤에 찾아온 현실의 벽자립이 시작되면 보육원을 퇴소하는 청년들은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마음으로 첫걸음을 내딛는다. 북적이던 공간을 떠나 드디어 '나만의 방'을 갖게 된다는 설렘, 단체생활 속 여러 통제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은 생각보다 크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청년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현실의 벽 중 하나는 바로 LH임대주택을 구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말하는 LH임대주택은 흔히 사람들이 떠올리는 LH 공공임대아파트나 LH 공공분양아파트와는 결이 다르다. 청년들이 실제로 발로 뛰며 구하게 되는 집들은, 제도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결코 안전하거나 쾌적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최근까지 우리 단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청년 A의 사례가 있다. 어느 날 우연히 A가 자기 집이 아닌 친구 집에서 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이 있는데 왜 친구 집에서 자느냐고 묻자, A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았다. LH임대주택으로 들어갈 집을 알아보러 다녔지만, 부동산에서 보여준 집들은 대부분 반지하나 지층이었고, 햇볕이 잘 들지 않거나 녹물이 나오거나 바퀴벌레가 들끓는 곳뿐이었다. A가 "정말 다른 집은 없느냐"고 묻자, 부동산 사장은 "LH임대주택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원래 다 이렇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결국 A는 그중 그나마 나은 집을 선택했다. 2층이라 햇빛은 들었지만 녹물이 나오는 곳이었다. 그러나 녹물로 씻으며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A는 짐만 그 집에 두고, 식사는 밖에서 해결했으며, 샤워를 할 때면 이틀에 한 번씩 친구 집으로 갔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시 집주인은 비교적 젊은 남성이었는데, A가 짐을 정리하러 갈 때마다 집 안에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느껴졌다고 했다. A가 항의했지만 돌아온 것은 "집주인이면 당연히 들어갈 수 있다"는 큰소리뿐이었다. 사회 경험이 많지 않았던 A는 결국 더 이상 따지지 못했다. 필자가 대신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강하게 말했지만, A는 "그냥 계약 끝날 때까지만 조용히 있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가족 없이 혼자 집을 구하러 다닌 자신을 탓했다.계약 만료 후 다시 집을 알아봐야 했지만, LH임대주택으로 구할 수 있는 집들은 대부분 비슷한 조건이었다. 그러다 필자가 직접 A와 함께 부동산을 찾아갔을 때, 그제야 햇빛이 잘 드는 쓰리룸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것이 모든 청년에게 똑같이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청년이 혼자 집을 보러 다닐 때,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어떤 청년들은 집을 보러 갈 때 일부러 나이 있는 어른에게 "같이 가 달라"고 부탁한다.가족이 없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들가족이 없다는 사실은 보육원 안에서도 느끼지만,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 훨씬 더 선명해진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수많은 사적인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형제자매는 몇 명인지, 부모님은 연세가 어떻게 되는지, 가족과의 추억은 무엇인지. 가벼운 스몰토크 속에서도 사람들은 너무 쉽게 가족 이야기를 꺼낸다. 아침에 엄마가 안 깨워줘서 지각할 뻔했다는 이야기,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가면 부모님 전화가 쏟아진다는 이야기, 동생과 싸웠다는 이야기. 이런 대화 속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은 끼어들 틈을 잃는다. 그렇다고 매번 가벼운 관계의 사람들에게까지 "나는 보육원 출신이다"라고 설명할 수도 없다. 그렇게 청년들은 일반 가정에서 자란 또래들과 자연스러운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괴리감이 깊어질수록, 외로움은 더욱 짙어진다.외로움이 만드는 틈, 그 틈을 파고드는 범죄주거 불안은 단순히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다. 안전하게 머물 곳이 없는 청년은 관계마저 불안정해진다. 친구 집을 전전하고, 도움을 요청할 가족이 없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하는 과정은 고립을 깊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고립은 외로움이 되고, 외로움은 때로 충동적 소비로, 때로는 충동적인 인간관계로 이어진다. 바로 그 틈을 파고들며 가스라이팅과 그루밍 범죄가 발생한다.자립 초기의 청년들은 정서적으로 가장 취약한 시기에 놓여 있고, 동시에 일정 수준의 금전이 손에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이들을 노리는 범죄는 생각보다 훨씬 많고 집요하다.충격적인 그루밍 범죄 사례보육원을 퇴소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 가운데, WAVVE 제작 범죄 다큐 〈악인취재기〉 시즌 1, 3화 '키다리 목사의 두 얼굴'에 소개된 사례는 충격적이었다. 2020년 공영방송에 소개되며 알려졌고, 유명인들의 후원을 발판 삼아 몸집을 키운 그 단체를 필자가 처음 접한 것은 2021년이었다.당시 갈 곳이 없던 청년 B가 머물 곳을 찾다가 그 단체를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청년들은 멘토들과 한집에서 생활했고, 멘토들을 '엄마', '아빠'라고 불렀다. 멘토들은 필자에게도 과할 만큼 친절했다. 어딘가 찜찜한 기분은 있었지만, B와 또래인 청년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B는 멘토들에게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그 시스템 자체를 무척 좋아했다. 단체 대표의 그럴듯한 언변 또한 B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B는 그 단체에 들어간 뒤에도 한동안 필자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끊겼다. 마지막 연락은 우리 단체에 금전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때 필자가 "기초수급비도 나오고 있고, 단체에서 운영하는 공장에서도 일하고 있는데 왜 돈이 필요하냐?"라고 묻자, B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B가 필자와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못하도록 단체에서 지속해서 통제했고, B 앞으로 나오는 기초수급비는 모두 단체가 관리하고 있었으며, 단체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한 대가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B를 비롯해 청년들을 앞세워 모금된 거액의 후원금 역시 청년들에게 돌아가지 않았을뿐더러, 단체 운영비로도, 간·직접비로도 쓰이지 않고 대표의 개인 재산 늘리기와 소위 엄마&아빠라고 불리었던 멘토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당시 B 외에도 다른 청년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그 단체 대표가 한 청년에게 보낸 문자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었던 문장은 이것이었다."너와 내가 한 것은 거룩한 타락이다." 종교적 권위를 빌려 폭력을 신성한 것으로 포장한 이 한 문장은, 그루밍이 어떻게 피해자의 판단력 자체를 무너뜨리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국 그 대표는 특수폭행, 성폭력처벌법 위반,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다. 오랜 시간 그 대표의 그루밍 범죄에 휘말렸던 몇몇 청년들은 그의 이름과 얼굴을 자기 몸에 타투로 새겨 넣기까지 했다.거짓은 결국 진실과 정의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구속 후에도 꽤 오랜 시간 여전히 그 대표를 기다리고 있던 청년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자립 준비 청년들이 느끼는 외로움이 얼마나 깊고 절망적인지를 보여준다.우리가 고민해야 할 진짜 질문혼자라는 두려움은 단순히 외로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두려움은 집을 구하는 순간에도,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그리고 누군가의 달콤한 말과 관심 앞에서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 자립 준비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지붕이 있는 공간이 아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함부로 이용하지 않고, 끝까지 곁을 지켜 줄 수 있는 안전한 관계다. 제도가 아무리 잘 설계되어도, 집 앞까지 함께 가 줄 한 사람이 없다면 그 제도는 작동하지 않는다. 청년 A 곁에 누군가가 함께 부동산에 갔을 때 비로소 괜찮은 집이 나왔듯이, 청년 B에게 통제가 아닌 진짜 관계가 있었다면 그 단체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결국 자립은 혼자 해내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4-13 10:38:05 노주현 칼럼리스트
  •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3편,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 자립전담요원 제도의 한계
    데일리기획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3편,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 자립전담요원 제도의 한계

    - 한국고아사랑협회 노주현 대표
    1. 금전 지원만으로는 부족한 현실 2022년 6월 13일 OECD는 Assisting Care Leavers: Time for Action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보호종료 청년 지원을 단지 현금의 문제가 아니라, 주거·사후관리·멘토링·전환계획·관계의 지속성이 함께 작동해야 하는 과제로 본다. 한국은 최근 몇 년 사이 자립수당, 자립정착금, 디딤씨앗통장 매칭 확대 등 현금성 지원을 빠르게 넓혀 왔다. 그러나 제도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자립이 되는 것은 아니며, 돈이 있다고 해서 삶의 방향까지 자동으로 정리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이 돈을 언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써야 하는지 함께 점검해 줄 사람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자립은 지급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과 조율, 위기 개입, 관계 형성의 문제이기도 하다2. 자립전담요원의 현실 : 과중한 업무자립전담요원은 자립준비청년들의 주거, 취업, 교육, 심리적 어려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사회적 멘토다. 가족의 경제적, 정서적 지원을 받기 어려운 청년들이 사회적 고립이나 경제적 빈곤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핵심 안전망 역할을 수행한다. 한국에는 시설 안의 자립지원전담요원이 있고, 별도로 시·도 자립지원전담기관의 전담인력이 있다. 전자는 보호 중인 아동의 자립준비를 돕고, 후자는 보호종료 후 5년 이내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사후관리와 사례관리를 담당한다. 2021년 이전에는 자립전담요원 1인당 담당 아동이 가정위탁 304명, 공동생활가정 645명에 달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자립전담요원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2024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전담인력 230명이 자립준비청년 약 1만 명을 담당하고 있으며, 현행 제도는 자립전담요원 1명이 15세 이상 담당 아동 100명을 초과할 때마다 1명을 추가 배치하는 구조로, 이는 자립전담요원 1명이 최대 99명까지 맡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루에 한 명씩 통화한다고 가정해도 처음 통화했던 청년과 다시 연락하기까지 석 달하고도 아흐레(99일)가 걸린다. 여기에 행정업무까지 더해지는 현실이다. 또한 단기 사업비나 위탁계약구조로 인해 고용불안 요소가 있으며, 지역 간 격차가 워낙 커서 농어촌처럼 재정이 취약한 지자체의 경우 상대적으로 지원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현재 자립전담요원 제도는 확충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한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쓰기 어려운 구조임은 분명하다.3. 자립전담요원의 현실 : 느슨한 관계의 밀도성 한국 제도는 보호종료 후 5년간 지원을 전제로 한다. 사업안내에 따르면 보호종료 1년차에는 3개월 이내 최초 사후관리, 이후 반기별 1회 이상, 그 뒤에는 연 1~2회 정기 사후관리가 이뤄진다. 제도상 기간은 결코 짧지 않다. 하지만 지원기간이 길다는 것과 한 사람이 끝까지 책임 있게 연결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실제로 연구와 정책자료에서는 연락두절 문제와 사례 적체가 계속 지적되어 왔고, 2021년 기준으로는 보호종료 후 5년 이내 자립준비청년 가운데 20.2%가 연락두절 상태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결국 지금의 문제는 지원기간의 부재가 아니라, 관계의 밀도와 지속성의 부족에 가깝다.4. 민간 멘토링의 한계와 전문성의 중요성바로 이 지점에서 민간 멘토링의 역할이 등장한다. 필자의 단체인 한국고아사랑협회처럼, 행정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민간이 멘토링을 시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매우 조심해야 한다. 자립준비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좋은 어른 한 명'이 아니라, 예측 가능하고 오래 가는 관계, 그리고 필요할 때는 전문서비스로 연결해 줄 수 있는 안전한 구조다. OECD 역시 멘토링은 전문적 지원을 보완할 수는 있어도 대체할 수는 없으며, 짧게 끝나는 관계는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멘토링이 3개월 이내에 종료될 경우 자기존중감과 학업 효능감이 떨어질 수 있고, 1년보다 짧은 관계는 긍정 효과가 거의 없을 수 있다는 연구도 함께 소개한다. 이 점에서 단기 멘토링, 보여주기식 멘토링, 시혜적 멘토링은 청년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위험이 있다.5. 해외 사례 : 사전 준비와 전담자 중심의 구조아일랜드의 Tusla(아동가족청)는 16~21세의 보호종료 청년에 대해 aftercare 서비스를 제공하고, 교육·훈련 중이면 23세까지 지원을 연장한다. 이 제도의 핵심은 16~17세에 욕구평가(Needs Assessment)를 실시하고, 18세 6개월 전부터 Aftercare Plan을 수립하며, 이후에는 Aftercare worker가 지속적으로 지원한다는 점이다. Aftercare worker의 역할에는 주거, 재정, 교육·훈련·취업 연계, 옹호, 정서적 지원이 포함되며, 16세부터 사회복지사와 함께 전환을 준비하고 18세 이후에는 aftercare worker가 주도한다. 한국처럼 "사후관리 대상"이라는 범주만 두는 것이 아니라, 개별 담당자와 계획 문서가 비교적 분명하게 붙는 구조다.아일랜드는 주거 연계도 제도적으로 더 강하게 묶어 놓았다. 2025년 개정 프로토콜을 보면, eligible한 청년이 16세가 되면 배정된 사회복지사가 Aftercare Manager에게 조기 의뢰하고, 필요하면 Local Aftercare Interagency Steering Committee가 주거 문제를 함께 다룬다. 주거가 불안정해져도 사례를 계속 active(활성화) 상태로 두고, 통상 20세까지, 전일제 교육·훈련 중이면 22세까지 주거지원 협의를 이어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한국과 비교하면 주거를 사후관리의 부속사항이 아니라 핵심 의제로 구조화했다는 점이 큰 차이다.잉글랜드의 경우는 청년의 법적 상태를 나눠서 지원 강도를 달리하는 구조다. 16~17세이면서 아직 보호 중이면 eligible child, 16~17세인데 보호를 떠났으면 relevant child, 18~24세가 되면 보통 former relevant child로 분류된다. 또 보호 기간이 짧았던 경우에는 person qualifying for advice and assistance라는 별도 범주가 있어, 지원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아질 수 있다.이 제도의 중심 인물은 PA(Personal Adviser)다. PA는 단순 상담자가 아니라, 법과 지침상 실질 조정자에 가깝다. 공식 지침은 PA의 기능을 실질적 조언과 지원 제공, Pathway Plan 작성과 평가 참여, 계획 검토 참여, 서비스 조정, 청년의 진척과 안부 파악, 연락 및 서비스 기록 유지로 규정한다. 실제로는 독립생활 기술, 돈 관리, 복지급여 신청, 주거 선택, 취업 유지, 건강·정신건강 서비스 연결, 여가·지역사회 활동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한국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PA가 "누군지"가 명확하고, 만나는 빈도도 꽤 구체적이라는 점이다.잉글랜드 청년은 보통 15~17세 사이에 PA를 만나기 시작하고, 사회복지사가 보호종료 전에 반드시 PA를 소개해야 한다. PA와 청년 간의 관계 밀도를 높이는 장치가 눈에 띈다. 최소 2개월에 1번 PA가 만나야 한다고 규정하고, 더 구체적으로 새 주거지로 옮기면 7일 이내 방문, 그 뒤 28일 시점 재방문, 이후에는 2개월을 넘기지 않는 간격으로 방문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것이 최소 기준일 뿐이며, 문제가 생기면 더 자주 만나야 한다. 잉글랜드는 "연락을 유지한다" 수준이 아니라, 정기적 대면 접촉을 제도 의무로 걸어 둔 구조다.정리하면, 아일랜드는 사전 준비와 주거를, 잉글랜드는 전담자 지정과 접촉 빈도를 제도의 뼈대로 삼았다. 두 나라 모두 한국보다 지원 기간 자체는 짧을 수 있지만, "누가 책임지고 어떤 리듬으로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가 제도 속에 훨씬 촘촘하게 박혀 있다. 한국은 사후관리 기간이 5년으로 더 길지만, 실무에서 청년 1명에게 "누가 끝까지 붙어 있느냐"가 여전히 약한 편이다.6. 누가, 언제까지, 어떻게 곁에 있을 것인가결국 자립전담인력과의 느슨한 관계는 다양한 부작용을 낳는다. 돈은 지급될 수 있지만, 위기 신호는 놓치기 쉽고, 문제는 늦게 발견되며, 청년은 다시 혼자가 된다. 그래서 우리가 끝내 물어야 할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누가, 언제까지, 얼마나 자주, 어떤 책임을 지고 이 청년 곁에 있을 것인가. 자립준비청년 지원은 현금지급의 확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돈이 삶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과 관계, 그리고 책임 있는 사례관리 구조가 함께 설계될 때 비로소 자립은 시작된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4-06 10:11:20 노주현 칼럼리스트
  •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 먼저 퇴소한 청년들이 여전히 가난한 현실적 이유
    데일리기획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 먼저 퇴소한 청년들이 여전히 가난한 현실적 이유

    - 한국고아사랑협회 노주현 대표
    자립 준비 청년을 위한 제도는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강화됐다. 보호 종료는 본인 의사에 따라 만 24세까지 연장할 수 있고, 주거지원도 확대됐으며, 국가장학금 기준도 완화됐다. 지금 상황만 놓고 본다면 분명 이전보다 나아진 것이 맞고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 사실이 다른 현실을 드러낸다. 지금의 제도 개선은 너무 늦게 왔고, 먼저 퇴소한 청년들에게는 소급되지 않았다.자립 준비 청년 정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현재의 제도만 본다. 하지만 정말 봐야 할 것은, 제도가 강화되기 전에 이미 사회로 나온 청년들이다. 같은 30세 미만 청년이라도 누구는 제도가 마련된 뒤 출발했고, 누구는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사회에 던져졌다. 한두 살 차이, 불과 1~2년의 차이가 삶의 출발선을 갈라놓은 것이다.현금성 지원부터 그랬다. 지금은 자립정착금 규모가 과거보다 커졌지만, 코로나 시기까지만 해도 많은 청년은 500만 원 안팎의 자립정착금으로 사회에 나와야 했다. 그마저도 지역마다 금액이 달랐다. 서울, 인천, 대전 등 지자체마다 지급액이 달랐고, 지급 시기 역시 제각각이었다. 어떤 청년은 퇴소 직후 지원받지 못한 채 몇 달을 버텨야 했다.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설을 나왔지만, 정착금은 5월, 6월, 8월에야 지급되는 식이었다. 퇴소와 지원 사이의 공백은 행정의 시간이었지만, 청년들에게는 생존의 시간이었다.문제는 이것이 단지 불편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퇴소 직후 손에 쥔 500만 원은 어떤 청년에게는 보증금이었고, 월세였고, 침구였고, 냉장고였고, 당장 한 달을 버틸 생활비였다. 지금처럼 자립 준비 청년이 사회적 의제로 부각되기 전에는 민간의 지원도 많지 않았다. 먼저 퇴소한 청년들은 말 그대로 가진 것 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과거 공익광고 문구였던 “열여덟 어른”, “보육원 퇴소하면 500만 원을 손에 쥐고…”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 삶에 가까운 표현이었다.주거환경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LH 공공임대주택 우선 공급과 주거지원 확대가 어느 정도 제도화되어 있지만, 먼저 퇴소한 청년들에게 집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자립정착금이 늦게 지급되면 선배 집에 얹혀 지내거나 고시원 같은 임시거처를 전전해야 한다. 설령 퇴소 직후 돈을 받았다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에서 500만 원으로 방을 구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마련하는 일은, 출발이 아니라 버티기의 시작에 가깝다.교육의 문턱도 높다. 많은 사람은 자립 준비 청년에게 왜 아르바이트하면서도 대학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본인이나 자기 자녀도 아르바이트하며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에서. 그러나 자립 준비 청년의 아르바이트는 용돈벌이가 아니라 생존 노동이다. 월세와 공과금, 식비, 교통비, 학교생활에 필요한 각종 비용까지 모두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친구들과 밥 한 끼 먹는 일, 엠티를 가는 일, 계절에 맞는 옷을 사는 일조차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대학 생활이지만, 자립 준비 청년에게는 버거운 지출이다.국가장학금도 지금과 같지 않다. 자립 준비 청년에게 국가장학금 성적 기준이 폐지된 것은 2023년부터다. 그전까지는 성적을 유지해야 했고, 학업을 이어가는 동안 생활비는 결국 노동으로 메워야 했다. 생계급여 역시 소득이 잡히면 줄어들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벌지 않으면 살기 어렵고, 벌면 또 급여가 깎이는 모순 속에 놓이기가 쉽다.실제 현장에서는 장학금이나 외부 지원금이 행정상 소득으로 반영되어 갈등이 생기는 일도 있다. 제도는 있지만, 청년들의 현실은 그 제도를 온전히 활용할 수 없는 구조다. 19년도 있었던 토론회 자료에서는 대학 진학 경험자가 37.8%에 불과하다고 지적했고, 연구자료에서도 2017년도 대학 진학률이 13.7%에 그쳤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생활비를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학업 지속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을 먼저 경험한 청년들은 대학보다 취업을 우선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취업의 질 역시 높지 않았다. 서비스직, 단기직, 저임금 노동으로 진입하는 경우가 많았고,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지출하고 나면 자산을 형성할 여력은 거의 남지 않았다. 대학에 진학한 청년들 역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결국 중도 탈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제대로 된 학력도, 안정적인 경력도, 자산도 갖추지 못한 채 20대를 통과한 이들이 이제 서른을 맞이하고 있다.그래서 지금 서른 안팎의 자립 준비 청년 중 상당수가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도 자연스러운 결과에 가깝다. 이들은 게을러서 가난한 것이 아니다. 나약해서 뒤처진 것도 아니다. 지원이 강화되기 전에 먼저 사회로 나와, 가장 취약한 조건 속에서 버텨야 했던 세대이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일했고, 일하느라 배우지 못했고, 주거를 지키느라 자산을 만들지 못했었다. 지금의 경제적 격차는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제도의 시차가 만들어낸 결과다.자립 준비 청년 정책을 평가할 때 이제는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 제도가 얼마나 좋아졌는가만을 가지고 평가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 제도가 없던 시절을 통과한 청년들을 지금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먼저 퇴소한 청년들이 가장 큰 비용을 치렀다면, 이제 정책은 그 시간의 손실을 메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립 준비 청년 지원은 앞으로도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너무 늦게 도착한 소식으로 남게 될 것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3-30 09:53:14 노주현 칼럼리스트
  •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 준비 청년들이 직면한 사회적 현실 ... 지속적인 시민들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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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 준비 청년들이 직면한 사회적 현실 ... 지속적인 시민들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

    - 한국고아사랑협회 노주현 대표
    자립 준비 청년이란 아동양육시설(보육원), 공동생활가정(그룹홈), 가정위탁(친인척 및 조부 조모 위탁 포함)에서 성장한 청소년이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되어 자립을 위해 홀로 나서는 청년들을 말한다. 필자가 주로 만나는 청년들은 아동양육시설(보육원)과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을 퇴소한 청년들로, 앞으로의 칼럼 역시 보육원과 그룹홈을 퇴소한 사람들을 위주로 작성할 예정이다. 대한민국은 6·25전쟁 이후 전쟁고아와 빈곤아동이 급증하면서 보육원 중심의 아동보호가 빠르게 확대되었다. 보육원은 집단 아동양육시설로 시대별로 다르긴 하겠지만 부모의 이혼, 미혼 부모, 경제적 이유가 주요 입소 이유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보호대 상아동 발생 원인 가운데 “학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에 따라 보육원에서 입소하는 가장 큰 원인이 “학대”이다. 보육원에 입소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가지 이유가 아닐 것이다. 청년들의 이야기도 현장에서도 친생부모의 이혼·재혼·한 부모 경험과 함께 학대·방임, 알코올 문제, 장애, 극심한 생활고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결국 보육원에 입소하는 배경은 “부모의 부재”가 아닌 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울타리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아동이 보호 조치가 필요한 경우 UN 아동 권리협약 20조에 따르면 “가정환경을 상실한 아동에게 국가의 특별한 보호와 대안 양육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으며, 그 취지는 시설 보호보다 가정 또는 가족과 유사한 환경의 보호를 우선으로 고려”하는 데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보호 대상 아동이 발생하는 경우 약 60%가 아동양육시설로 입소하는 것이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감소함에 따라 보육원 아동도 감소했지만 보호 아동 발생 시 보육원에 입소하는 비율이 60%가 몇 년 동안 바뀌지 않는 비율이라는 것이 놀랍다. 보육원에서는 만 18세 이후에는 퇴소를 진행한다. 물론 자기 의사에 따라 퇴소를 최대 24세까지 미룰 수 있다. (22년 6월부터 시행) 보육원을 퇴소하면 “자립 준비 청년”이라는 행정 명칭 아래 다양한 금전적 지원이 시작된다. 22년도에는 월 30만 원이었던 자립 수당이 현재 26년도에는 월 50만 원으로 상향되었으며, 자립정착금은 각 지자체별로 상이하였으나 국가에서는 지자체가 1,000만 원 이상 지급하길 권고하고 있고 디딤씨앗통장 등을 더하면 일부는 자립정착금과 자산 형성 지원 등을 통해 비교적 큰 목돈을 손에 쥔 채 보호 종료를 맞기도 한다. 여기에 심리 상담은 총 8회, 의료급여 2종, LH 공공임대 우선 공급, 대학 특례, 국가장학금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그리고 국가뿐 아니라 다양한 민간단체에서 금전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2022년 6월 13일에 OECD에서 발표한 “Assisting Care Leavers - TIME FOR ACTION”(보호 종료 청년, 이제는 행동으로 나설 때) 기준으로 봤을 때는 한국은 ‘생활비 + 종잣돈 + 자산 형성 + 복지제도 연계’까지 포함된 비교적 강한 금전 지원패키지를 갖춘 편에 속한다. 하지만 대부분 금전 지원이 특정 시기에만 몰려 있다 보니 이러한 금액의 관리와 사용에 대한 실질적 교육과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여, 자립 초기부터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자립지원 패키지는 인터넷으로 조금만 검색해도 금방 알 수 있다 보니 상황을 잘 모르는 이들은 필자에게 “보육원 애들은 나라에서 다 해주는데 왜 자꾸 도와주는지, 왜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에 관해 묻는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듯이 제도에 속하지 못하는 청년들도 많고, 제도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금전을 갈취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민간단체들이 지속해서 활동하며 청년들의 진정한 자립을 돕고 있다. 이번 칼럼을 통해 필자는 현장에서 느끼고 보았던 자립 준비 청년들의 실사례들을 공유하고 그들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단단하게 뿌리 내리는 방법에 대해, 시민들과 함께 같이 이 문제를 고민하고, 청년들의 사회진출이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게 자립 준비에 대한 관심과 응원할 시간들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3-23 10:49:54 노주현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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