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 먼저 퇴소한 청년들이 여전히 가난한 현실적 이유

노주현 칼럼리스트 발행일 2026-03-30 09:53:14
- 한국고아사랑협회 노주현 대표

▲ 한국고아사랑협회 노주현 대표


자립 준비 청년을 위한 제도는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강화됐다.

보호 종료는 본인 의사에 따라 만 24세까지 연장할 수 있고, 주거지원도 확대됐으며, 국가장학금 기준도 완화됐다.


지금 상황만 놓고 본다면 분명 이전보다 나아진 것이 맞고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 사실이 다른 현실을 드러낸다. 지금의 제도 개선은 너무 늦게 왔고, 먼저 퇴소한 청년들에게는 소급되지 않았다.

자립 준비 청년 정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현재의 제도만 본다. 하지만 정말 봐야 할 것은, 제도가 강화되기 전에 이미 사회로 나온 청년들이다.

같은 30세 미만 청년이라도 누구는 제도가 마련된 뒤 출발했고, 누구는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사회에 던져졌다. 한두 살 차이, 불과 1~2년의 차이가 삶의 출발선을 갈라놓은 것이다.

현금성 지원부터 그랬다. 지금은 자립정착금 규모가 과거보다 커졌지만, 코로나 시기까지만 해도 많은 청년은 500만 원 안팎의 자립정착금으로 사회에 나와야 했다. 그마저도 지역마다 금액이 달랐다.

서울, 인천, 대전 등 지자체마다 지급액이 달랐고, 지급 시기 역시 제각각이었다.

어떤 청년은 퇴소 직후 지원받지 못한 채 몇 달을 버텨야 했다.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설을 나왔지만, 정착금은 5월, 6월, 8월에야 지급되는 식이었다. 퇴소와 지원 사이의 공백은 행정의 시간이었지만, 청년들에게는 생존의 시간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단지 불편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퇴소 직후 손에 쥔 500만 원은 어떤 청년에게는 보증금이었고, 월세였고, 침구였고, 냉장고였고, 당장 한 달을 버틸 생활비였다.

지금처럼 자립 준비 청년이 사회적 의제로 부각되기 전에는 민간의 지원도 많지 않았다.

먼저 퇴소한 청년들은 말 그대로 가진 것 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과거 공익광고 문구였던 “열여덟 어른”, “보육원 퇴소하면 500만 원을 손에 쥐고…”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 삶에 가까운 표현이었다.

주거환경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LH 공공임대주택 우선 공급과 주거지원 확대가 어느 정도 제도화되어 있지만, 먼저 퇴소한 청년들에게 집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자립정착금이 늦게 지급되면 선배 집에 얹혀 지내거나 고시원 같은 임시거처를 전전해야 한다.

설령 퇴소 직후 돈을 받았다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에서 500만 원으로 방을 구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마련하는 일은, 출발이 아니라 버티기의 시작에 가깝다.

교육의 문턱도 높다. 많은 사람은 자립 준비 청년에게 왜 아르바이트하면서도 대학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본인이나 자기 자녀도 아르바이트하며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에서.

그러나 자립 준비 청년의 아르바이트는 용돈벌이가 아니라 생존 노동이다. 월세와 공과금, 식비, 교통비, 학교생활에 필요한 각종 비용까지 모두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친구들과 밥 한 끼 먹는 일, 엠티를 가는 일, 계절에 맞는 옷을 사는 일조차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대학 생활이지만, 자립 준비 청년에게는 버거운 지출이다.

국가장학금도 지금과 같지 않다. 자립 준비 청년에게 국가장학금 성적 기준이 폐지된 것은 2023년부터다.

그전까지는 성적을 유지해야 했고, 학업을 이어가는 동안 생활비는 결국 노동으로 메워야 했다. 생계급여 역시 소득이 잡히면 줄어들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벌지 않으면 살기 어렵고, 벌면 또 급여가 깎이는 모순 속에 놓이기가 쉽다.

실제 현장에서는 장학금이나 외부 지원금이 행정상 소득으로 반영되어 갈등이 생기는 일도 있다. 제도는 있지만, 청년들의 현실은 그 제도를 온전히 활용할 수 없는 구조다.

19년도 있었던 토론회 자료에서는 대학 진학 경험자가 37.8%에 불과하다고 지적했고, 연구자료에서도 2017년도 대학 진학률이 13.7%에 그쳤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생활비를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학업 지속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을 먼저 경험한 청년들은 대학보다 취업을 우선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취업의 질 역시 높지 않았다. 서비스직, 단기직, 저임금 노동으로 진입하는 경우가 많았고,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지출하고 나면 자산을 형성할 여력은 거의 남지 않았다.

대학에 진학한 청년들 역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결국 중도 탈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제대로 된 학력도, 안정적인 경력도, 자산도 갖추지 못한 채 20대를 통과한 이들이 이제 서른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서른 안팎의 자립 준비 청년 중 상당수가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도 자연스러운 결과에 가깝다.

이들은 게을러서 가난한 것이 아니다. 나약해서 뒤처진 것도 아니다. 지원이 강화되기 전에 먼저 사회로 나와, 가장 취약한 조건 속에서 버텨야 했던 세대이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일했고, 일하느라 배우지 못했고, 주거를 지키느라 자산을 만들지 못했었다. 지금의 경제적 격차는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제도의 시차가 만들어낸 결과다.

자립 준비 청년 정책을 평가할 때 이제는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 제도가 얼마나 좋아졌는가만을 가지고 평가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 제도가 없던 시절을 통과한 청년들을 지금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먼저 퇴소한 청년들이 가장 큰 비용을 치렀다면, 이제 정책은 그 시간의 손실을 메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립 준비 청년 지원은 앞으로도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너무 늦게 도착한 소식으로 남게 될 것이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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