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보내온 지구촌 인류에 대한 경고 ... 생물다양성과 식량안보의 경고등, '꿀벌'
- 벌이 사라지면 식탁도 비어간다…생물다양성 붕괴가 부른 식량위기
벌의 감소가 곧 쌀과 밀까지 모두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먼저 줄어드는 것은 과일과 채소, 견과류, 종자작물처럼 식탁의 영양과 다양성을 책임지는 먹거리다. 벌이 보내는 경고의 핵심은 ‘인류가 당장 굶는다’는 과장이 아니라, 농산물 생산이 불안정해지고 건강한 식품이 더 비싸지는 미래에 있다. 벌 한 마리의 이동이 사과와 딸기를 만든다벌이 꽃 위에 내려앉아 꿀과 꽃가루를 모으면 몸의 가는 털에 꽃가루가 붙는다. 벌이 다른 꽃으로 이동하는 동안 꽃가루가 암술에 전달되고 수정이 이뤄진다. 이 과정을 꽃가루받이 또는 수분이라고 한다.수정에 성공한 꽃은 씨앗과 열매를 만든다. 사과와 배, 복숭아, 딸기, 수박, 호박, 아몬드, 커피, 카카오, 유채 등 다양한 작물이 벌을 비롯한 동물 수분매개자의 도움을 받는다.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세계 주요 식량작물 종류의 약 4분의 3이 동물 수분에 적어도 일부 의존한다고 설명한다. 전 세계 야생 꽃식물도 약 90%가 동물의 도움을 전부 또는 일부 받는다.그러나 이 통계를 “벌이 사라지면 세계 식량의 75%가 사라진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FAO 세계 수분 서비스 자료를 보면 쌀과 밀, 옥수수 같은 주요 곡물은 대부분 바람이나 자가수분으로 번식한다. 동물 수분매개자가 영향을 주는 세계 작물 생산량은 부피 기준으로 약 35%다. 꿀벌만 지키면 해결된다는 오해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벌은 벌통에서 꿀을 생산하는 서양꿀벌이다. 양봉농가는 벌통을 과수원이나 시설재배지로 옮겨 작물의 꽃가루받이를 돕는다. 이 같은 관리 꿀벌은 현대 농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그러나 자연의 꽃가루받이를 담당하는 벌은 꿀벌만이 아니다. 세계에는 2만 종이 넘는 벌이 존재하며, 대부분은 사람이 벌통에서 기르지 않는 야생벌이다. 뒤영벌과 땀벌, 가위벌, 애꽃벌 등은 종마다 활동하는 온도와 시간, 방문하는 꽃, 꽃가루를 옮기는 방식이 다르다.일부 야생벌은 꿀벌보다 낮은 기온이나 흐린 날에도 움직이고, 꽃을 진동시켜 꽃가루를 떨어뜨리는 ‘진동수분’을 한다. 토마토와 가지, 블루베리처럼 이러한 방식에서 더 효과적으로 꽃가루받이가 이뤄지는 작물도 있다.꿀벌의 수를 늘린다고 모든 야생 수분매개자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 관리 꿀벌의 벌통 수가 유지되더라도 주변 야생벌과 나비, 꽃등에가 감소하면 수분 생태계의 다양성과 안정성은 약해질 수 있다. 특정 종이나 질병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농업은 새로운 감염병과 기상이변에 더 취약해진다.벌이 줄어드는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벌 감소를 특정 살충제 하나의 문제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농경지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서식지 파괴와 농약, 기후변화, 질병, 단일작물 농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도로와 주택,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논밭 주변의 풀밭과 산울타리가 사라지면 야생벌은 먹이와 둥지를 함께 잃는다. 모든 야생벌이 벌집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상당수는 땅속이나 마른 줄기, 나무 구멍 등에 홀로 둥지를 만든다. 농지의 흙을 덮거나 주변의 고목과 마른 줄기를 모두 제거하는 관리 방식도 이들의 번식 공간을 줄일 수 있다.살충제는 벌을 직접 죽이거나 방향감각과 학습, 먹이활동, 번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제초제는 벌을 직접 겨냥하지 않더라도 농경지 주변의 야생화를 제거해 먹이를 줄인다. 독성의 크기는 농약의 종류와 농도, 살포 시기와 방식, 노출 기간에 따라 달라진다.유럽식품안전청(EFSA)이 꿀벌뿐 아니라 뒤영벌과 단독생활벌을 별도로 고려해 농약 위해성을 평가하도록 지침을 마련한 것도 벌의 종마다 노출과 반응이 다르기 때문이다. 꽃은 폈지만 벌은 아직 오지 않았다기후변화는 꽃과 벌의 오랜 시간표를 흔든다. 따뜻한 봄이 일찍 찾아오면 식물의 개화 시기도 앞당겨질 수 있다. 하지만 벌의 출현 시기와 이동, 번식이 같은 속도로 바뀐다는 보장은 없다.꽃이 먼저 피었다가 벌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지면 식물은 충분한 수분을 받지 못한다. 반대로 벌이 깨어났을 때 먹이가 될 꽃이 부족할 수도 있다. 이를 생태학에서는 개화 시기와 수분매개자 활동 사이의 ‘시기 불일치’라고 부른다.이상고온과 가뭄은 꽃의 수와 개화기간, 꿀과 꽃가루의 양에도 영향을 미친다. 폭우와 강풍은 벌의 비행을 막고, 꽃이 피는 짧은 기간에 수분 기회를 잃게 한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평균기온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꽃과 벌이 만날 수 있는 시간 자체를 불안정하게 만든다.응애와 바이러스가 벌통을 무너뜨린다관리 꿀벌에는 질병과 기생충도 큰 위협이다. 대표적인 것이 꿀벌의 몸에 붙어 체액과 지방체 조직을 먹는 꿀벌응애다. 응애는 벌을 약하게 할 뿐 아니라 날개불구바이러스 등 여러 병원체의 전파를 돕는다.꿀벌 군집은 여왕벌과 일벌, 수벌이 하나의 사회를 이루기 때문에 감염이 확산되면 벌통 전체가 급격히 약해질 수 있다. 먹이 부족이나 농약 노출, 이동 양봉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겹치면 질병을 견디는 능력도 떨어진다.세계적으로 관리 꿀벌의 벌통 수가 모두 감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양봉가가 벌통을 증식하고 손실된 군집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국가에서 발생한 꿀벌 집단 폐사와 전 세계 야생벌의 장기 감소를 같은 현상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관리 꿀벌은 벌통 수와 생산량 기록이 비교적 잘 남지만, 야생벌은 종과 개체 수를 장기간 조사한 지역이 제한적이다. 자료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종이 얼마나 빠르게 감소하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지역이 많다는 의미다.한 종류의 꽃만 펼쳐진 농장은 벌에게 사막이 된다대규모 단일작물 농업은 꽃이 피는 짧은 기간에는 벌에게 풍부한 먹이를 제공한다. 그러나 개화기가 끝나면 넓은 농경지에서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진다. 사람에게는 녹색 들판으로 보이지만 벌에게는 먹을 꽃이 없는 사막이 될 수 있다.벌은 한 계절 내내 살아가기 위해 서로 다른 시기에 피는 다양한 꽃이 필요하다. 농경지 가장자리의 야생화와 풀밭, 산울타기, 작은 숲과 습지는 단순한 빈 땅이 아니라 벌의 식당이자 이동통로, 번식지다.단일작물 재배가 확대될수록 농약 사용과 서식지 단순화가 함께 나타날 가능성도 커진다. 꽃가루의 종류가 제한되면 벌이 얻는 영양도 불균형해지고 질병과 환경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질 수 있다.외래 수분매개자와 병원체의 이동도 문제다. 농업용으로 들여온 벌이 사육시설에서 빠져나오면 토종벌과 먹이를 놓고 경쟁하거나 새로운 병원체를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 도시화 역시 서식지를 없애지만, 농약 사용이 적고 다양한 꽃을 심은 도시공원과 정원은 일부 벌에게 피난처가 될 수도 있다.벌이 줄면 먼저 ‘식탁의 색깔’이 사라진다수분매개자가 감소해도 쌀과 밀, 옥수수가 즉시 사라지지는 않는다. 대신 사과와 딸기, 체리, 호박, 아몬드처럼 수분 의존도가 높은 작물의 생산량과 품질이 영향을 받는다.꽃가루받이가 충분하지 않으면 열매가 적게 달리거나 크기와 모양이 고르지 못해 상품성이 낮아질 수 있다. 종자 생산이 줄어 다음 재배에 필요한 씨앗 가격이 오를 가능성도 있다.시장에서는 생산량 감소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소비자는 비싼 과일과 채소를 덜 구매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분성 식품이나 가공식품을 선택할 수 있다. 이때 식탁의 총열량은 유지되더라도 비타민과 미네랄, 불포화지방산 등 필수영양소의 섭취는 부족해질 수 있다.2022년 《환경보건전망》에 발표된 모형 연구는 현재의 불충분한 수분으로 세계 과일·채소·견과류 생산량이 잠재 생산량보다 약 3∼5% 낮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연구진은 이에 따른 건강한 식품 섭취 감소가 심혈관질환과 뇌졸중 등으로 이어져 연간 약 42만7000명의 추가 사망과 연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이는 실제 사망자를 직접 집계한 통계가 아니라 작물 생산과 무역, 식품 섭취, 질병 위험을 연결한 모형 추정치다. 그러나 수분매개자 감소가 단순한 곤충 보전 문제가 아니라 공중보건 문제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수분 부족과 식량·건강 영향 연구농민의 수확량과 소득도 함께 흔들린다농민에게 수분 서비스는 자연이 제공하는 생산 기반이다. 야생벌과 관리 꿀벌이 충분하면 열매가 더 많이 달리고 크기와 형태가 개선돼 판매 가능한 상품의 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반대로 수분매개자가 부족하면 농가는 벌통 임대와 인공수분에 더 많은 비용을 써야 한다. 노동자가 꽃마다 붓이나 수분 도구를 사용하는 인공수분은 일부 고부가가치 작물과 제한된 면적에서는 가능하지만, 세계 농업 전체를 대체할 수 있는 해법은 아니다. 인건비가 많이 들고 야생 수분매개자의 정교한 활동을 완전히 재현하기도 어렵다.생산량이 줄면 농산물 가격이 오를 수 있지만 모든 농가의 소득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수확량 감소가 가격 상승 폭보다 크거나 인공수분과 농자재 비용이 늘면 농가의 순소득은 오히려 줄어든다. 특히 소규모 농민은 생산 손실을 견디거나 수분용 벌통을 빌릴 자금이 부족해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FAO가 소개한 현장 연구에서는 2㏊ 미만의 소규모 농장 가운데 생산성이 낮은 농장이 수분매개자를 충분히 유인할 경우 작물 수확량을 중간값 기준 약 24% 높일 가능성이 나타났다. 벌의 서식지를 지키는 일이 농가 생산성과 식량안보를 동시에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벌을 지키는 농업은 꽃을 남기는 데서 시작한다벌 감소에 대한 해법도 한 가지가 아니다. 농약 하나를 금지하거나 벌통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복합적인 위협을 해결하기 어렵다.농경지 주변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시기를 달리해 피는 토종 꽃과 산울타기, 초지를 남겨야 한다. 야생벌이 둥지를 지을 수 있도록 흙이 드러난 작은 공간과 마른 줄기, 고목 등을 과도하게 제거하지 않는 관리도 필요하다.농약은 통합병해충관리 원칙에 따라 사용량과 독성이 낮은 방법을 우선하고, 벌이 활동하는 시간과 작물의 개화기에는 살포를 피해야 한다. 농약을 승인할 때도 꿀벌의 급성 폐사뿐 아니라 야생벌과 유충, 번식, 방향감각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양봉 분야에서는 응애와 바이러스에 대한 정기적인 검사와 방제, 벌통 이동 관리, 병원체 확산을 막는 검역이 중요하다.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녹지축과 꽃길은 기후변화로 이동해야 하는 벌에게 생태통로를 제공할 수 있다.무엇보다 수분매개자 보호정책을 환경부서만의 곤충 보전사업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 농업정책과 농약관리, 도시계획, 기후적응, 식품가격과 국민영양 정책을 함께 연결해야 한다.벌의 위기는 값싼 먹거리 체계가 보내는 청구서다벌이 모두 사라진 뒤에야 식탁이 한순간에 텅 비는 것은 아니다. 실제 위기는 더 조용하게 진행된다. 열매가 적게 달리고 상품성이 떨어지며, 농민의 생산비가 증가하고, 과일과 채소 가격이 오른다. 소득이 낮은 가정부터 영양가 높은 식품을 포기하게 된다.벌의 감소는 자연을 단순하게 만들고 농업을 대규모 단일작물과 화학물질에 의존하게 한 결과이면서, 다시 식량체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한 마리의 벌은 작지만 벌이 수행하는 꽃가루받이는 농기계와 인공수분으로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생태계의 기반이다. 벌이 보내는 경고는 곤충 몇 종을 살려야 한다는 호소를 넘어선다. 생물다양성을 비용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무한한 자원으로 여겨온 농업과 소비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그 비용은 농산물 가격과 농민 소득, 시민의 건강으로 돌아온다는 경고다.
안영준2026-09-11 08: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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