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문제는 서울교통공사가 기존 수유실의 하루 평균 이용자가 적다는 이유로 추가 설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수유실이 없는 역사에서는 애초 이용실적이 발생할 수 없는 만큼 현재 운영 중인 시설의 이용률만으로 추가 수요를 판단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영유아를 동반한 부모에게 수유실은 매일 사용하는 시설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필요한 순간 이용할 곳이 없다면 지하철 이용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시설이기도 하다.
황운하(사진)의원이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교통공사 1~8호선과 9호선, 우이신설선, 신림선 등 전체 338개 역사 가운데 수유실이 설치된 곳은 108곳으로 32.0%에 그쳤다.
지난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공개된 수치와 동일하다.
이용객 많은 역도 없다…상위 30개 역 중 21곳 미설치
서울교통공사가 관리하는 1~8호선은 276개 역사 가운데 86곳에만 수유실이 설치돼 있다. 설치율은 31.2%다.
특히 이용객이 많은 주요 역사에서도 수유시설 부족이 확인됐다.
공사가 제출한 2025년 일평균 수송인원 상위 30개 역을 보면 수유실이 설치된 역은 잠실·강남·성수·고속터미널·삼성·신림·가산디지털단지·양재·광화문 등 9곳이었다.
반면 홍대입구와 1호선 서울역, 구로디지털단지, 신도림, 선릉, 을지로입구, 역삼, 종각 등 이용객이 많은 역사도 미설치 대상에 포함됐다.
단순히 전체 역사를 기준으로 설치율을 따지는 것보다 유동인구가 많고 환승 수요가 집중되는 역에서 최소한의 육아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루 0.21명 이용”…그런데 없는 역의 수요는 어떻게 계산하나
서울교통공사는 황 의원실에 “2025년 기준 일평균 개소당 0.21명만이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추가 설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숫자만 보면 이용률이 매우 낮다.
하지만 이 통계가 실제 수요를 충분히 보여주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현재 이용실적은 수유실이 이미 설치돼 있는 86곳을 대상으로 집계한 것이다. 시설이 없는 역에서는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수요 자체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또 수유실의 위치를 이용객이 쉽게 찾을 수 있는지, 시설에 대한 안내가 충분한지, 내부 환경과 접근성이 실제 부모들이 사용하기에 적절한지도 이용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0.21명’이라는 숫자만으로 시민의 수요가 없다고 판단하기보다 낮은 이용률의 원인부터 분석할 필요가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있으면 좋다”가 아니라 외출 가능성의 문제
영유아를 동반해 지하철을 이용하는 부모 입장에서 수유공간과 기저귀 교환시설은 일반 승객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시설이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장시간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유 시간이 갑자기 찾아오거나 기저귀를 교체해야 할 경우 적절한 공간을 찾지 못하면 화장실이나 역 밖의 상업시설을 찾아 이동해야 한다. 유모차와 짐까지 가지고 있다면 이동 부담은 더 커진다.
특히 환승 과정에서 다시 개찰구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라면 영유아 동반 승객에게 지하철은 편리한 대중교통이 아니라 이용하기 어려운 교통수단이 될 수 있다.
육아 중인 부모의 관점에서는 수유실의 가치를 단순한 하루 이용자 숫자로만 평가하기 어렵다.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더라도 꼭 필요한 순간 사용할 수 있다는 ‘접근 가능성’ 자체가 이동 편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노선별 격차도 심각…어디를 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육아편의
노선에 따른 격차도 컸다.
신림선은 11개 역사 가운데 10곳, 9호선 2·3단계는 13개 역사 중 12곳에 수유실이 설치돼 있다.
반면 9호선 1단계 25개 역사와 우이신설선 13개 역사에는 해당 운영구간 자체 수유실이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9호선 1단계 운영사는 2009년 개통 당시 설계에 수유실 공간이 반영되지 않아 별도의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25개 역사 모두 추가 설치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우이신설선 역시 2017년 개통했지만 2009년 착공돼 관련 규정 적용 대상이 아니었고 대합실 면적도 협소해 별도의 설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법적 의무가 없다는 것이 현실적인 설명은 될 수 있지만, 시민 입장에서는 이용하는 노선에 따라 육아 편의시설 접근성이 크게 달라지는 결과가 발생하는 셈이다.
전문가 “수유실은 이용률보다 접근성…거점역 중심 재설계해야”
교통·육아환경 분야에서는 수유실과 같은 편의시설의 필요성을 단순 이용자 숫자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수유실은 화장실이나 승강기처럼 모든 승객이 사용하는 시설은 아니지만 특정 이용자에게는 필요한 순간 반드시 있어야 하는 시설이라는 특성이 있다”며 “하루 평균 이용자 숫자만을 기준으로 추가 설치 여부를 결정하면 잠재적인 수요를 놓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모든 역사에 동일한 규모의 수유실을 설치하는 것이 반드시 효율적인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용객 규모와 환승 인원, 영유아 동반 승객의 이동 가능성, 주변 상업·공공시설의 수유공간 유무 등을 분석해 주요 거점역부터 단계적으로 설치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공간이 부족한 기존 역사에는 독립된 대형 수유실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기존 유휴공간을 활용한 소규모 가족휴게공간이나 기저귀 교환시설 등 역사별 여건에 맞는 대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존 역사는 법 적용 사각지대…‘공간 없다’로 끝낼 문제인가
현행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은 여객시설을 새로 설치하거나 주요 부분을 변경하는 경우 이동편의시설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시행규칙에서도 임산부 휴게시설을 유모차와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설치하고 수유실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를 별도로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기존 시설에 대한 소급 적용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오래된 지하철 역사일수록 공간 확보가 어렵고 관련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 경우가 있어 신규 노선과 기존 노선 사이의 편의시설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황 의원은 “모든 역사에 일률적으로 대규모 수유실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이용객이 많은 거점역과 환승역부터 최소한의 육아 편의시설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기존 역사에 대한 단계적 확충 기준과 설치가 어려운 역에 적용할 대체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0.21명’이라는 숫자가 보여주지 못하는 부모들의 이동
서울교통공사가 밝힌 수유실 하루 평균 이용자 0.21명이라는 숫자는 정책 판단에 참고할 수 있는 자료다.
하지만 이 숫자 하나가 수유실을 더 설치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으로 곧바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시설이 없어서 이용하지 못한 사람은 이용통계에 나타나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이동하기 어려워 처음부터 지하철 대신 승용차나 택시를 선택한 부모 역시 지하철 수유실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이용자가 적으니 만들지 않는다’는 결론이 아니라 왜 이용률이 낮은지, 어느 역에 실제 수요가 있는지를 조사하는 일이다.
338개 역사에 똑같은 수유실을 설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하루 수십만 명이 오가는 주요 역과 환승거점조차 시설이 없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저출생 대응을 강조하면서 정작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시설을 이용률만으로 판단하는 정책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수유실은 단순한 편의시설을 넘어 영유아와 보호자가 도시의 대중교통을 얼마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활 인프라다.
‘하루 0.21명이 이용한다’는 숫자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필요한 순간 이용할 수 있는가’다. 아이와 부모에게 편리한 지하철을 만들겠다면 설치율 32%라는 숫자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가 높은 역부터 촘촘하게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이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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