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으로 부담금 내면 끝?…공공부문 장애인 의무고용 정책의 민낯

이정윤 발행일 2026-09-11 12:50:32
국회·국방부·대법원 등 5년째 기준 미달…교육부·17개 시도교육청도 전부 미준수
[데일리환경= 안상석 기자] 정부가 민간기업에 장애인 고용 확대를 요구하면서 정작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절반 이상이 법정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
타났다. 장애인 고용을 선도해야 할 공공부문이 오히려 법정 기준을 반복적으로 밑돌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 정책의 실효성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의무고용을 이행하지 않은 공공기관이 국민 세금으로 고용부담금을 납부하는 구조가 장기간 반복되면서, 현행 제도가 장애인 고용 확대라는 본래 목적보다 사실상 ‘부담금 납부를 통한 면책 수단’으로 작동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예지(사진)의원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공무원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준수하지 않은 기관은 전체 320곳 중 179곳으로 55.9%에 달했다.


현행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2025년 기준 소속 공무원 정원의 3.8%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기관 77곳 가운데 31곳이 법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국회와 국방부, 대법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 연속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못했다. 특히 공수처는 이 기간 장애인 공무원을 단 한 명도 고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교육 분야다.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은 5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의무고용률을 충족하지 못했고, 전체 평균 고용률도 2%에 미치지 못했다. 이에 따른 고용부담금은 4,751억 원에 달했으며, 17개 시·도교육청의 부담금만 4,502억9,500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 243곳 가운데 148곳, 60.9%가 장애인 의무고용 기준을 지키지 못했다. 강원특별자치도와 경상북도, 충청남도는 5년 연속 기준에 미달했다.

‘고용하라’는 정부, 정작 자신은 법정 기준도 못 지켜

문제는 단순한 고용률 미달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해 기업에 의무고용률을 적용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부담금을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같은 기준을 반복적으로 지키지 못한다면 민간에 장애인 고용을 요구할 정책적 명분 역시 약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공공부문의 고용부담금 재원은 결국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 민간기업은 의무고용을 지키지 못하면 기업의 비용으로 부담금을 내지만, 국가기관과 지자체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부담금을 납부한다.

결국 장애인을 직접 채용해 일자리를 만드는 대신 국민 세금으로 부담금을 내는 상황이 반복되는 셈이다. 제도가 이 같은 방식으로 굳어진다면 장애인 의무고용제도의 핵심인 ‘고용 확대’보다 ‘부담금 납부’가 손쉬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5년 연속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관이 계속 존재한다는 것은 일시적인 채용 여건이나 인력 수급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반복적인 미준수 기관에 대해 실질적인 개선을 강제할 장치가 충분했는지 정부 정책 자체를 점검해야 할 대목이다.

장애인에게 맞는 직무 만들지 않고 ‘적합한 인재 없다’ 반복해서는 안 돼

장애인 고용정책도 단순히 정해진 비율을 채우는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장애 유형과 직무 특성을 분석해 행정·전산·연구·상담·교육지원 등 장애인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직무를 적극 발굴하고, 근무환경 개선과 보조공학기기 제공, 유연근무 등 정당한 편의를 함께 확대해야 한다.

기관별로 장애인 채용이 어려운 원인을 분석하지 않은 채 매년 부담금을 납부하는 방식으로는 고용률을 근본적으로 끌어올리기 어렵다.

김예지 의원은 “법으로 정한 최소한의 의무조차 지키지 않는 정부와 지자체가 절반을 넘는다는 것은 공공부문이 장애인 고용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국가와 지자체가 납부하는 고용부담금은 결국 국민의 세금인 만큼 부담금 납부로 법적 책임을 손쉽게 털어내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복적인 미준수 기관에 대해서는 명단 공개에 머물지 않고 정부업무평가와 지자체 합동평가 등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부담금 액수가 아니라 ‘왜 5년 동안 못 바꿨나’를 물어야

이번 통계에서 정부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숫자는 단순히 55.9%라는 미준수율만이 아니다. 국회와 일부 국가기관, 교육기관 등이 5년 연속 법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한두 해의 미달이라면 채용 시기나 적합 인력 부족 등의 현실적인 사정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기관이 5년 동안 같은 기준을 반복적으로 위반했다면 문제는 개인의 취업 역량이 아니라 제도와 조직의 채용 구조에 있다고 봐야 한다.

정부가 장애인 고용정책의 신뢰를 얻으려면 민간에 의무를 강조하기 전에 공공부문부터 법정 기준을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 세금으로 부담금을 내고 다음 해 다시 같은 상황을 반복하는 구조를 끊어야 한다. 장기간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는 기관에는 기관장 평가와 정부업무평가를 연계하고, 구체적인 채용·직무개발 계획을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는 등 실효성 있는 개선책이 필요하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도의 목적은 부담금을 걷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일할 자리를 만드는 데 있다. 공공부문이 이 기본 원칙조차 실천하지 못한다면 정부의 장애인 고용정책은 민간에만 책임을 요구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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