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집중호우, 미세먼지 등 기후위기가 일상적인 주거환경까지 위협하면서 건설업계의 아파트 설계 기준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단순히 냉난방 성능이나 조경을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기후 데이터를 활용해 위험을 예측하고 건축물이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주거기술 개발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GS건설은 세계적인 건축가 카를로 라티 교수가 이끄는 건축·혁신 디자인 그룹 CRA-Carlo Ratti Associati와 ‘미래형 기후위기 대응 주거 개념’을 주제로 공동연구를 진행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가 주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데이터에 기반해 분석하고 거주자의 건강과 안전, 주거 자산을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주거 솔루션을 도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GS건설과 CRA는 폭우·폭염·미세먼지 등 주요 기후 변수별 데이터를 토대로 국내외 주거환경을 분석했다. CRA의 데이터 분석 및 센서 기반 설계 기술과 GS건설의 주택 시공·운영 경험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기후변화 따라 아파트도 ‘반응형 주거’로
이번 연구의 핵심은 외부 환경 변화에 주거시설이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데 있다.
기존 공동주택은 폭염이나 집중호우 등이 발생하면 거주자가 냉방기기를 가동하거나 관리주체가 배수시설을 점검하는 등 사후 대응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데이터와 센서를 기반으로 한 주거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기온과 습도, 강수량, 미세먼지 등 환경 변화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건물 관리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GS건설은 이번 공동연구를 통해 폭우·폭염·미세먼지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미래형 주거 개념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현재 개념 단계인 연구 결과를 토대로 향후 기술적 타당성과 실제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실증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검증이 완료된 기술은 사업지별 여건과 특성을 고려해 자이(Xi) 아파트에 순차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GS건설 관계자는 “이번 공동연구는 기후위기가 주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데이터 기반으로 분석하고 선제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지속적인 연구와 기술 검증을 통해 기후변화 속에서도 안전하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차세대 주거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카를로 라티 교수는 MIT 센서블 시티 랩(Senseable City Lab) 디렉터이자 CRA 창립 파트너로, 도시와 건축에 데이터와 센서 기술을 접목하는 ‘반응형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환경전문가 “기후 대응 주택 필요…기술 자체가 또 다른 에너지 부담 돼선 안 돼”
환경·건축 분야 전문가 관점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주택기술 개발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첨단기술 도입 자체를 친환경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센서와 데이터 분석, 자동제어 시스템을 활용하면 폭염이나 미세먼지 등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시스템을 설치하고 지속적으로 가동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전력 소비와 유지관리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냉방설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폭염에 대응할 경우 거주자의 쾌적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건물 전체의 전력 소비가 증가하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기후 대응형 주택의 성능을 평가할 때는 단순히 실내온도가 얼마나 낮아졌는지가 아니라 에너지 사용량과 탄소배출량을 얼마나 줄였는지까지 함께 평가할 필요가 있다.
센서와 자동제어 설비의 내구성도 문제다. 아파트는 수십 년간 사용하는 시설인 만큼 설치 초기 성능뿐 아니라 10년, 20년 이후에도 시스템을 유지·보수할 수 있는지, 교체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도 검토해야 한다.
문제는 ‘비용·관리·데이터’…첨단기술만으로 해결 어렵다
기후 대응형 미래주택이 실제 아파트에 적용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첫 번째는 비용 문제다. 센서와 자동제어 시스템, 기후 대응 설비가 추가될수록 공사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결국 분양가나 관리비 상승으로 이어진다면 기술 도입에 따른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봐야 한다.
두 번째는 유지관리 문제다. 첨단설비는 설치보다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센서가 고장 나거나 데이터 분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전문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데이터 관리 문제다. 주거공간에서 각종 센서가 활용될 경우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고 어디까지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생활 관련 데이터가 포함된다면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 문제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네 번째는 주거 격차 문제다. 기후 대응 기술이 고가의 신규 아파트에 집중될 경우 노후 공동주택이나 취약계층 주거시설과의 ‘기후 안전 격차’가 오히려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기후위기의 피해는 주택 가격이나 소득 수준을 가리지 않지만 대응 능력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 아파트’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기후 대응력이다
기후위기가 아파트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까지 바꾸고 있다.
과거 아파트 경쟁력이 입지와 교통, 학군, 조경, 커뮤니티 시설에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폭염과 집중호우 같은 기후위험에 얼마나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주거 가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GS건설과 CRA의 공동연구 역시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후위험을 분석하고 건축물이 환경 변화에 대응하도록 설계한다는 접근은 기존의 사후 대응형 주택관리에서 한 단계 나아간 시도다.
그러나 ‘첨단 센서가 설치된 아파트’와 ‘기후위기에 강한 아파트’는 반드시 같은 의미는 아니다.
실제 폭우가 내렸을 때 침수 피해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폭염 때 냉방에너지 사용량을 얼마나 절감하면서 적정 실내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지, 미세먼지가 심할 때 실내공기질을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는지 객관적인 수치로 입증돼야 한다.
또 하나 살펴볼 부분은 경제성이다. 기후 대응 기술이 추가되면서 분양가와 관리비가 크게 올라간다면 소비자에게는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 친환경이라는 이름으로 추가되는 기술이 실제 에너지 절감이나 관리비 절감으로 이어지는지도 검증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 주택의 기준이 신규 고급 아파트에만 머물러서도 안 된다. 상대적으로 기후재난에 취약한 노후 공동주택과 저소득층 주거시설에도 적용할 수 있는 저비용 기술 개발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결국 이번 연구의 평가는 화려한 미래주택 개념도가 아니라 향후 진행될 실증 결과에서 갈릴 것으로 보인다.
기술 적용 전후의 에너지 소비량과 탄소배출량, 침수·폭염 대응 성능, 유지관리 비용 등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공개한다면 ‘기후위기 대응 아파트’가 단순한 마케팅 문구인지 실제 주거 안전을 높이는 기술인지 판단할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좋은 집은 첨단기술이 가장 많이 들어간 집이 아니라, 적은 에너지와 합리적인 비용으로 기후위험으로부터 사람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집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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