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현의 사회 칼럼] 자립준비청년 제7편 ... 자립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사랑이라는 전쟁, 나쁜 연인들 2’
우리는 부모를 통해서 무엇을 배우는가?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먼저 새겨지는 글씨는 부모의 손끝에서 그어진다. ‘양육의 방식, 가치관, 생활의 습관’ 그 모든 것이 아이의 살에 깊은 흔적으로 남는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부모를 통해 사랑을 받는 방식을 처음 배운다.부모가 아이의 감정에 따뜻하게 반응해주면, 아이는 사랑이란 안전한 것이라 익히게 된다. 반대로 방치와 거절, 학대가 반복되면 사랑이란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라 새기게 된다. 또한 아이는 부모가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부부 사이의 존중과 무시, 폭언과 사과, 책임을 나누는 모습들을 보면서, 가까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익힌다. 부모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첫 번째 모델이기도 하다. 부부가 동등한 관계인지, 한쪽이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관계인지를 보고 자란 모습은, 훗날 아이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가족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가장 처음 새겨지는 청사진이 된다.하지만 보육원 아동에게는 부모가 아닌 생활지도원이 있다. 생활지도원은2교대 혹은3교대 근무가 일반적이고 근무환경 또한 녹록지 않아 퇴사율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결국 보육원 아동은‘안정적인 부모의 모델’을 가지지 못한 채 자라게 되며, 이는 훗날 안정적인 관계를 맺는 데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고아’들을 쉽게 꼬시는 법을 알려주마작년 어느 날, 우연히 익명 커뮤니티에서 마주친 글의 제목이다. 그날, 진심으로 내 두 눈을 씻어내고 싶었다. 사실 그 글의 본문은 차마 여기에 옮길 수 없을 만큼 자극적이었다. 글의 요지는 이러했다. 보육원 출신 아이들은 쉽게 꼬셔진다, 조금만 예쁘다고 치켜세워주면 금세 넘어오고 한없이 헌신적이라는 것이다.그동안 나는 자립준비청년이 만난 나쁜 연인들의 사례를, 어느 연애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일들 중 몇몇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막연히 여겨왔다. 그러나 익명 커뮤니티에 버젓이 올라온 그 글을 마주한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정서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자립 초기를 노리는 나쁜 연인들이, 내가 짐작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좋은 남자는 어떤 남자에요?몇 해 전, 어느 보육원 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보육원 학생 한 명이 소위‘조건만남’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데, 도무지 자신의 말은 듣지 않으니 부디 와서 그 아이를 말려달라는 부탁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실제로 만난 여학생은 고3이었다. 얌전하고 단정한 인상의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는 상대에 따라 피임 기구를 쓸지 말지를 정했고, 본인 역시 피임에 대한 개념이 분명하지 않았다. 조건만남에 대해 특별한 죄책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받는 돈조차 너무 적어 도리어 내가 놀랄 정도였다. 내가 그저“조건만남은 나쁜 것”이라고 말한들, 아이가 들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말이라면 보육원 선생님에게 이미 수없이 들었을 테니까.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그 조건만남 뒤에는 학생이‘남자친구’라 부르는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조건만남을 시키고, 받은 돈의 일부를 학생에게 떼어주는 방식이었다. 학생은 자신이 남자친구를 사랑하고, 남자친구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했다. 자신이 그를 사랑하기에, 그가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제야 학생의 행동에 드리워져 있던 의문이 비로소 풀렸다. 돈이 절실히 필요한 형편도 아니었고, 학교나 보육원에서 특별히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도 아니었기에, 도대체 왜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사랑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며, 그 남자는 좋은 남자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좋은 남자를 만나 진짜 사랑을 하라며, 한참을 이야기했다.학생은 눈을 반짝이며 한참을 듣더니, 이내 내게 이렇게 물었다.“그런데 선생님 좋은 남자는 어떤 남자에요?” 그 물음을 듣는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그렇다. 예컨대 부모가 매일 도박과 술에 빠져 집안이 늘 어수선했던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무의식 중에‘저런 사람과는 절대 만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새긴다. 그렇게 우리는 자라면서 나쁜 배우자, 혹은 나쁜 연인의 기준을 자기도 모르게 세워간다. 그러나 보육원에서 자라다 보면 모델 자체가 없기 때문에, 좋은 배우자에 대한 기준 또한 흐릿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불안정한 애착관계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주는 사람을 곧 좋은 연인이라 믿게 만든다.물론 내가 만난 그 학생의 사례는 다소 극단적이긴 하다. 그러나“사랑한다”는 한마디 말에 한 청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나는 그날 처음으로 똑똑히 목도했다. 다행히 그 학생은 가까스로 그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끊어내고 보육원을 무사히 퇴소했지만, 그 이후의 삶은 지금도 안개 속처럼 모호하다. 나 사랑하면서 이것도 못 해줘? 사랑하는 사이에서 부탁은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연인 사이에서 결코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금기의 문장이 있다. 바로“나 사랑하면 이거 해줘!”라는 말이다. 사랑을 부탁의 근거가 아닌 복종의 근거로 끌어다 쓰기 때문이다. 이 말은 상대에게 죄책감을 짐 지울 뿐 아니라, 사랑을 거래의 조건으로 변질시킨다. 또한 상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관계 안에 조종과 착취가 스며들게 만드는 위험한 문장이기도 하다.그런데 사랑이 고팠던 사람일수록, 이 말 앞에서 거절이란 좀처럼 쉽지 않다. 거절하는 순간 사랑을 잃을 것 같고, 또 한 번 버려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쁜 연인들은 바로 이 불안의 틈을 교묘하게 파고든다.수도권3년제 대학을 졸업한 A는 한 대기업 생산직에 근무했다. 3년제 대학을 나온 덕에 고졸 동기들보다 연봉이 조금 더 높았고, 보육원에 서5년 이상 거주한 자립준비청년에게 주어지는 군 면제 혜택 덕분에 또래 남자들보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회사가 숙식까지 모두 제공한 덕에 돈도 알뜰히 모았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근처 호프집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성과 연애가 시작되었다.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시작한 연애였고, 4살 연상이라던 그녀와 약 6개월간 만난 끝에 둘은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다.A는 결혼 3년 차에 작은 사업을 시작했고, 사업은 제법 잘 풀렸다. A는 늘“아내가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여행도 자주 다니고, 명품을 모으는 취미도 생기고, 골프 여행도 곧잘 떠났다. 그러나 두 사람의 행복해 보이던 결혼 생활은 7년 만에 끝이 났다. 직접적인 이혼 사유는 배우자의 외도였다. 부부 사이의 일은 양쪽 이야기를 모두 들어봐야 한다지만, A의 이혼 사유는 단순히 외도 하나만이 아니었다.A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나 사랑하면서 이것도 못해줘?”라는 그 한마디였다. 결혼 후 직장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부터 아내가“사랑하면…”이라는 문장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친정 부모님께 매달 80만 원씩 용돈을 드리는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4살 연상이라 했지만 실은 13살 연상이었던 그녀의 부모님은 이미 연로하셨다. 물론 문제는 그녀의 나이가 아니었다. 문제는 사랑을 증명하라는 말로 A의 돈과 시간, 관계와 미래를 계속 시험했다는 데 있었다. 그녀는 이십 대 초반에 잠시 직장을 다닌 것을 제외하고는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따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린 적도 없었다. 그것이 부모님께 가장 미안하다며, A에게 함께 용돈을 드리자고 청했던 것이다.부모님 용돈으로 시작된 그녀의 요구는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A가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사업에 뛰어든 것 또한, 사실은 그녀의 끈질긴 요구 때문이었다. 사업은 다행히 잘 풀렸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요구를 옳게 만들어 준 것은 아니었다. 사업이 잘되자 그녀의 씀씀이도 함께 커졌고, 요구의 강도 또한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의 요구는 늘 같은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나 사랑하면 이거 사줘! 나 사랑하면 여기 여행 보내줘! 나 사랑하면 골프채 바꿔줘!” A가 그것을 거절하려 들면, 어김없이 죄책감이 그를 짓눌렀다.A의 마음이 결정적으로 식어버린 사건은 따로 있었다. A는 보육원에 들어가기 전 자신을 잠시 키워주었던 의붓어머니를 어렵사리 다시 찾게 되었다. 의붓어머니의 형편이 너무 어려워, A는 매달 50만 원씩 용돈을 보내드렸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와 결국 큰소리로 다투게 되었고, 그날 부부 싸움의 끝에 그는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나를 사랑한다면 그 의붓어머니와의 관계를 끊고 살아야 해. 둘 중 한 명을 선택해.”결국 A는 의붓어머니께 용돈을 드리지 않기로 했고, 1년에 세 번만 만나며 통화는 한 달에 한 번으로 한정한다는 합의를 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아내의 외도 사실이 드러났고, 7년의 결혼 생활은 그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기에.. 참고로 아이를 갖지 않은 이유 또한 결혼 직후“사랑하면 아이는 갖지 말자”는 그녀의 요구 때문이었다고 한다. 둘의 이혼은 비교적 빠르게 마무리되었다.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이혼 이후의 일이었다. A는 이혼 후 3년 동안 매달 150만 원씩을 전 아내에게 자발적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녀에게 경제적 능력이 없으니 자립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유책 배우자에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고 내가 묻자, A는 마지막에 그녀가 울며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의 눈물 앞에서, 결국 그는 끝까지 등을 돌리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A는, “사랑하면 이렇게 해줘”라는 그 늪에서 끝내 빠져나오지 못하고 말았다. 사랑은 증명을 요구 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말은 분명 따뜻한 말이다. 그러나 그 한마디는 누군가에게는 안식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올가미가 된다. 어린 시절 사랑이라는 단어를 충분히 들으며 자라지 못한 사람일수록, 그 말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나를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이 문장은 자립준비청년에게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시험당하는 한 장의 시험지처럼 다가온다. 거절하면 사랑을 잃을 것 같고, 응하지 않으면 또 한 번 버림받을 것 같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조금씩 깎아내면서까지 그 자리에 머무른다.하지만 진짜 사랑은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좋은 연인은 상대의 시간과 돈, 그리고 그가 가진 다른 관계를 시험하지 않는다. 좋은 연인은 상대를 고립시키지 않고, 상대의 삶을 빼앗지 않으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사랑은 사람을 더 작아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잃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힘이어야 한다.그러므로 자립지원은 주거와 생계, 일자리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청년들이 건강한 관계를 분별하고,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착취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돕는 관계 교육과 정서적 지지까지 포함해야 한다. “하지 마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전에 “이것이 사랑이다”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안전한 관계의 경험이 필요하다.결국 한 사람이 필요하다. 좋은 연인의 모델 이전에, 좋은 어른의 모델. 사랑한다는 말을 앞세우지 않아도 묵묵히 곁을 지켜 주는 안전한 한 사람. 그 한 사람의 존재가 청년이 살면서 마주칠 수많은 나쁜 연인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 내는 첫 번째 방패가 된다. 사랑이라는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전에 전쟁이 아닌 사랑을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그리고 그 곁의 어른들이 자립준비청년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자립지원일 것이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노주현 칼럼리스트 2026-05-04 11: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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