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크림이 부른 비극… '낮에는 독소'로 변하는 유기자차
바다로 뛰어든 피서객들의 몸에서 씻겨 내려간 자외선 차단제 성분 중 해양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은 화학적 자외선 차단제(유기자차)에 주로 쓰이는 '옥시벤존(Oxybenzone, 벤조페논-3)'과 '옥티녹세이트(Octinoxate)' 성분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진이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산호초 해역에만 매년 최소 6,000톤에서 최대 1만 4,000톤의 자외선 차단제 성분이 흘러 들어간다. 이 성분들은 올림픽 규격 수영장 6개 반 분량의 물에 단 한 방울만 섞이는 수준(약 62ppt)의 극미량으로도 산호초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산호가 옥시벤존을 흡수한 뒤 체내에서 스스로 '낮에 햇빛을 받으면 독소로 변하는 물질'로 대사시킨다는 메커니즘을 규명해 학계에 충격을 안긴바 있다.
이 독성 물질들은 산호의 체내 DNA를 변형시켜 기형 생장을 유발하고, 산호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공생 조류를 방출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산호가 하얗게 변하다가 결국 굶어 죽는 '백화(Bleaching) 현상'이 가속화된다. 산호초는 해양 생물의 약 25%가 서식처로 삼는 '바다의 열대우림'인 만큼, 산호의 사멸은 해양 생태계 전체의 도미노 붕괴로 이어진다.
해외는 '징역·벌금형' 강력 규제… 국내 해수욕장은 여전히 사각지대
이 같은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인지한 해외 유명 해양 휴양지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강력한 법적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의 하와이주와 버진아일랜드, 태국의 해양국립공원, 중남미 멕시코의 카리브해 연안 휴양지 등에서는 옥시벤존과 옥티녹세이트가 포함된 선크림의 반입 및 판매, 사용을 법으로 전면 금지했다. 최근에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옥시벤존을 빼고도 다른 유해 화학 성분을 넣은 채 '산호초 안전(Reef-Safe)'이라 속여 판 대형 자외선 차단제 브랜드에 수억 원대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단속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반면,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은 해양수산부와 일부 지자체에서 여름철 해수욕장 개장 시 '친환경 선크림 사용 권고' 캠페인을 벌이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강제성 없는 권고 수준에 불과하다. 시중 마트나 드럭스토어에서는 여전히 해양 생태계 유해 성분이 포함된 자외선 차단제가 제약 없이 판매되고 있으며, 피서객들 역시 이에 대한 정보와 인식이 부족해 무방비로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리프 세이프' 마크의 배신… 진짜 바다를 지키는 선택 기준은?
더욱이 소비자들이 대안으로 찾는 '리프 세이프(Reef-safe)' 혹은 '산호 친화적' 문구조차 이젠 안심할 수 없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유럽 해양오염학회지 등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유기자차의 대체 성분으로 쓰이는 '징크옥사이드' 기반의 미네랄 선크림 중 일부 제품을 산호에 노출한 결과, 단 96시간 만에 산호 조직의 96%가 변색되거나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인증 기관이 없는 틈을 탄 기업들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마케팅에 소비자들이 속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소비자가 직접 성분표를 확인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유해 화학 물질 대신 광물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빛을 반사하는 무기 자외선 차단제(무기자차)를 고르되, '논-나노(Non-Nano)' 제품인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차단제 성분의 입자가 나노(10억분의 1m) 단위로 너무 작으면, 아무리 미네랄 성분이라 할지라도 산호나 패류의 세포막을 통과해 흡수되어 또 다른 체내 독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크림에는 자외선 차단 성분 외에도 보습제, 유화제, 향료 등 수많은 화학 물질이 들어간다. 유럽 해양오염학회지의 최근 실험 결과 '논-나노 무기자차' 완제품을 산호에 노출했음에도 단 수일 만에 산호 조직이 변색되거나 사멸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결국 가장 완벽한 대안은 화학 물질을 바다에 덜 흘려보내는 '물리적 차단'이다. 미국 스미소니언 해양연구소(Smithsonian Ocean)를 비롯한 전 세계 해양 과학자 및 환경 단체들은 "선크림에만 의존하기보다, 바다에 들어갈 때는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 래시가드, 타올, 모자 등을 착용해 피부 노출 면적을 최소화하는 것이 산호를 살리는 가장 실질적이고 확실한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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