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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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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현의 IT 칼럼] 랜섬웨어, 몸값을 내야 하나
    IT/과학

    [최우현의 IT 칼럼] 랜섬웨어, 몸값을 내야 하나

    이런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아는 제조업체의 서버가 전부 암호화됐고, 화면에는 비트코인을 보내라는 안내문이 떠 있다고 했다. 대표가 묻는다. "내야 합니까?" 교과서의 답은 정해져 있다. 내지 마라. 범죄 조직에 자금을 대는 일이고, 낸다고 복구가 보장되지도 않으며, 돈을 낸 회사라는 소문은 다음 공격자를 부른다. 다 맞는 말이다. 다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지금 공장이 멈춘 당사자가 아니다. 당한 쪽의 셈법은 다르다. 백업은 없거나 같이 암호화됐고, 생산 라인이 멈춘 하루 손실이 몸값보다 크고, 거래처 납기는 다가온다. 이 상황에서 원칙론은 조언이 아니라 사치다. 실제로 적지 않은 기업이 조용히 낸다. 협상을 대신해주는 업체가 있고, 몸값을 보장 범위에 넣은 사이버 보험이 있다. 지불이 하나의 산업이 된 지 오래다.그래서 내면 해결되나. 그것도 아니다. 복호화 키를 받아도 데이터가 온전히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흔하고, 요즘 공격자들은 암호화 전에 데이터를 빼돌려놓고 "안 내면 공개하겠다"고 이중으로 조른다. 몸값을 내도 유출 협박은 남고, 한번 낸 회사가 다시 표적이 되는 경향도 보고된다. 돈으로 산 것은 해결이 아니라 시간이고, 그 시간도 온전하다는 보장이 없다.결국 "내야 하나"는 답이 없는 질문이 아니라 묻는 시점이 틀린 질문이다. 사고 당일에 이걸 묻고 있다면 선택지는 이미 나쁜 것 둘뿐이다. 진짜 질문은 평시에 던져야 한다. 우리 회사는 몸값 요구를 받았을 때 "복구하면 되니 됐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회사인가.그 대답을 만드는 게 백업이다. 단, 조건이 있다. 요즘 랜섬웨어는 본 서버보다 백업 서버를 먼저 찾아가 지운다. 네트워크에 상시 연결된 백업은 공격자 입장에서 암호화할 파일이 하나 더 있는 것에 불과하다. 백업은 세 벌을 두고, 두 가지 다른 매체에 나누고, 한 벌은 망에서 떼어 보관한다. 오래된 3-2-1 원칙이 랜섬웨어 시대에 다시 생명줄이 됐다. 하나 더, 복구를 해본 적 없는 백업은 백업이 아니다. 막상 돌려보니 반년 전 것이더라는 이야기가 현장에는 흔하다. 분기에 한 번, 진짜로 복구해보는 훈련까지가 백업이다.전화를 걸어온 그 대표에게 돌아갈 답은 결국 이거였다. 지금은 어떤 선택을 해도 손해를 보는 단계고, 덜 나쁜 쪽을 고르는 일만 남았다고. 그 말을 하면서 생각했다. 이 통화는 몇 달 전, 백업 예산을 깎던 회의실에서 이미 결정돼 있었다고. "몸값을 낼지 말지는 사고 당일 정하는 게 아니다. 백업을 설계하던 날 이미 정해져 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10-14 07:43:04 최우현 칼럼니스트
  • [최우현의 IT 칼럼] AX, 거창하게 말고 회의록부터
    IT/과학

    [최우현의 IT 칼럼] AX, 거창하게 말고 회의록부터

    요즘 기업 신년사와 IR 자료에 빠지지 않는 단어가 AX, AI 전환이다. 전사 혁신, 전 직원 AI 인재화, 업무 프로세스 재설계. 말은 큰데, 선포식 다음 해에 가보면 남은 건 컨설팅 보고서와 교육 이수증인 경우가 많다. AX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반대다. 해야 하니까, 되는 방식으로 하자는 이야기다.되는 방식은 싱겁게 들린다. 작게 시작하는 것이다. 회의록 정리, 메일 초안, 주간 보고 요약. 혁신이라 부르기 민망한 일들인데, 공통점이 있다. 매일 하고, 누구나 하고, 잘못돼도 큰일이 안 난다. AI를 처음 붙이기에 이만한 조건이 없다. 반대로 첫 과제로 "AI 기반 수요 예측 혁신"을 잡으면 데이터 준비에 반년, 검증에 반년이 가고, 그 사이 조직의 기대는 식는다. 큰 프로젝트가 나쁜 게 아니라 첫 프로젝트로 나쁜 거다.작게 시작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AX가 무너지는 지점은 대개 모델 성능이 아니라 "우리 팀은 그거 안 써요"다. 도구는 깔렸는데 손이 안 간다. 이걸 뚫는 건 교육도 지시도 아니고 목격이다. 옆자리 김 대리가 한 시간 걸리던 회의록을 10분에 끝내는 걸 보면 공문 없이도 다들 따라 한다. 전사 확산은 계획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번지는 거다.그래서 권하는 순서는 이렇다. 부서마다 '매주 반복되고, 문서로 시작해서 문서로 끝나는 일' 하나씩을 고른다. 한 달간 AI로 해보고, 줄어든 시간과 겪은 문제를 한 페이지로 적는다. 이 한 페이지들이 모이면 그게 그 회사의 AX 로드맵 초안이다. 우리 일을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이 직접 부딪혀 쓴 기록이니, 외부에서 그려주는 로드맵보다 정확할 수밖에 없다.작게 시작한다고 아무 준비 없이 하라는 건 아니다. 지킬 것 두 가지는 정해두고 가자. 고객 정보와 미공개 기밀은 넣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는 결과물은 사람이 한 번 더 확인한다. 시작 단계에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규정집 50페이지를 만드느라 시작을 미루느니, 일단 이것만 지키며 시작하고 규정은 해가면서 채우는 편이 빠르고 안전하다.AX는 필수가 맞다. 몇 년 뒤엔 전기나 인터넷처럼 도입 여부 자체가 질문이 아니게 될 거다. 그럴수록 순서가 중요하다. 선언은 크게 하되 시작은 회의록만 하게. "AX의 첫걸음은 전략 보고서가 아니라, 다음 주 월요일 회의록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9-29 07:17:14 최우현 칼럼니스트
  • [최우현의 IT 칼럼] 할머니 폰에 깔린 앱 30개의 정체
    IT/과학

    [최우현의 IT 칼럼] 할머니 폰에 깔린 앱 30개의 정체

    추석에 고향 가면 다들 하는 일이 있다. 부모님 폰 봐드리기. "이거 왜 자꾸 광고가 떠." "글씨가 작아졌어." "누가 자꾸 문자를 보내." 그러다 홈 화면을 넘겨보면 정체 모를 앱이 서른 개쯤 나온다. 누가 깔았는지 본인도 모른다. 대리점 직원이, 손주가, 광고 배너가, 그리고 어쩌면 사기범이. 보안 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건 명절 소일거리가 아니라 실전 점검이다. 10분이면 되니 순서대로 해보시라.첫째, 모르는 앱은 지운다. 이름이 영어거나, 아이콘이 어디서 본 듯한데 뭔지 모르겠거나, 설치 시점이 최근이면 지운다. 걱정할 것 없다. 필요한 앱은 지워도 다시 깔면 되지만, 나쁜 앱은 남아 있으면 계속 나쁘다.둘째, 원격제어 앱을 찾는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휴대폰 점검해드리겠다"며 깔게 하는 게 이 앱이고, 한번 깔리면 그때부터 폰 화면은 상대방 것이다. 은행 앱도, 인증 문자도. 본인이 왜 깔았는지 설명 못 하는 원격제어 앱이 있으면 지우고, 최근 그런 전화를 받은 적 없는지 꼭 물어보시라. 그 대화가 이번 명절에 나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대화일 수 있다.셋째, 설정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앱 설치 허용'을 끈다. 문자 링크로 가짜 앱을 깔게 만드는 스미싱은 이 문이 열려 있어야 성립한다. 닫아두면 사기범이 보낸 링크를 눌러도 설치 자체가 안 된다. 한 번 끄면 끝나는 설정인데, 어르신 폰의 상당수가 열려 있다.넷째, 자동결제를 확인한다. 구독한 기억이 없는 서비스에 매달 몇천 원씩 빠져나가는 경우가 흔하다. 앱 마켓의 구독 관리와 통신사 앱의 부가서비스 항목을 보면 된다. 부모님이 "이건 무료라고 했는데"라고 하시는 건 대개 첫 달만 무료다.다섯째, 업데이트와 백업이다. 몇 년째 미뤄둔 운영체제 업데이트를 눌러드리고, 사진을 클라우드나 손주 폰으로 백업해드린다. 폰을 잃어버리거나 사기당해서 초기화하게 됐을 때, 어르신에게 제일 큰 상실은 돈이 아니라 손주 사진이다.마지막은 설정이 아니라 약속이다. "모르는 번호가 돈 얘기하면 일단 끊고 나한테 전화해." 이 한마디가 위의 다섯 가지를 합친 것보다 세다. 사기범이 제일 두려워하는 건 최신 보안 앱이 아니라, 피해자가 전화를 끊고 자식에게 확인하는 그 30초다. 앱 서른 개를 지우는 것도 좋지만, 그 30초를 만들어드리고 오시라.*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9-16 11:04:13 최우현 칼럼니스트
  • [최우현의 IT 칼럼] 보안 교육 이수했습니다. 그래서 안전한가
    IT/과학

    [최우현의 IT 칼럼] 보안 교육 이수했습니다. 그래서 안전한가

    매년 이맘때 회사마다 공지가 돈다. "정보보호 교육 이수 기한이 이번 주까지입니다. 미이수자는 부서장에게 통보됩니다." 그러면 다들 영상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한다. 2배속이 되면 2배속으로, 건너뛰기가 막혀 있으면 창을 띄워둔 채 점심을 먹는다. 마지막에 퀴즈 다섯 개를 풀고 이수증이 나온다. 회사는 이수율 99%를 보고서에 적는다. 나도 그 교육 자료를 만들어본 사람이라 심정을 이해한다. 아무도 안 본다.이게 왜 문제인가. 교육이 무의미해서만은 아니다. 형식적 교육은 두 가지를 망친다. 첫째, 조직에 잘못된 안심을 준다. "우리 직원들은 교육받았다"는 문장이 보고서에 들어가는 순간, 정작 사람이 뚫리는 위험은 관리된 것으로 처리된다. 둘째, 직원에게 보안이 '귀찮은 의무'라는 인상을 심는다. 한번 그렇게 자리 잡으면 진짜 중요한 공지도 같은 서랍에 들어간다.그런데 사고 통계는 정반대 이야기를 한다. 기업 침해 사고의 출발점은 여전히 대부분 사람이다. 메일 한 통, 링크 하나, 전화 한 통. 기술 방어에 수십억을 쓰고도 직원 한 명의 클릭으로 뚫리는 구조에서, 사람 교육이 연 1회 영상 시청으로 끝난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효과 있는 교육은 어떻게 다른가. 현장에서 본 것 중 통한 건 세 가지였다. 첫째, 짧고 자주. 연 1회 60분이 아니라 월 1회 5분. 최근 실제로 온 피싱 메일 하나를 보여주고 "이건 이래서 가짜였다"고 짚어주는 게 교과서 60분보다 낫다. 둘째, 실전 훈련. 회사가 직접 가짜 피싱 메일을 보내보는 모의 훈련인데, 여기서 핵심은 클릭한 사람을 혼내지 않는 것이다. 혼내면 다음부터 신고를 안 한다. 클릭 자체보다 클릭 후 신고까지 걸린 시간을 보는 회사가 실제로 강해진다. 셋째, 위에서부터. 임원이 교육을 건너뛰는 회사에서 직원이 교육을 챙길 리 없고, 실제로 스피어피싱의 표적은 임원이다.그리고 하나 더. 이수율이라는 지표를 버려야 한다. 이수율 99%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대신 볼 건 이런 숫자다. 모의 피싱 클릭률이 작년보다 내려갔는가, 의심 메일 신고 건수가 늘었는가, 신고까지 평균 몇 분 걸리는가. 이 숫자들은 조작하기 어렵고, 오르고 내리는 이유가 분명하다.교육은 보험이 아니라 근육이다. 한 번 들어서 되는 게 아니라 계속 써야 남는다. 올해도 이수 기한 공지가 왔다면, 이수증 말고 이걸 물어보시라. "우리 회사에서 의심 메일을 신고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 답이 없는 회사는, 이수율이 100%여도 교육이 없는 회사다.*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9-01 22:48:32 최우현 칼럼니스트
  • [최우현의 IT 칼럼] AI에게 말한 비밀은 어디로 가는가
    IT/과학

    [최우현의 IT 칼럼] AI에게 말한 비밀은 어디로 가는가

    건강 증상, 이직 고민, 부부 싸움, 회사 기밀이 섞인 보고서 초안. 요즘 사람들이 ChatGPT 같은 AI에게 털어놓는 것들이다. 검색창에는 못 치던 이야기를 AI에게는 한다. 문장으로 대답해주고, 판단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래서 질문이 생긴다. 그 이야기들은 어디로 갔을까.우선 원리부터. AI에 입력한 내용은 내 폰이 아니라 그 회사 서버에서 처리된다. 여기까지는 이메일과 같다. 다른 점은 그 다음이다. 서비스와 설정에 따라 내 대화가 다음 모델을 만드는 학습 재료로 쓰일 수 있다. 내 문장이 그대로 박제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내 이야기가 모델이라는 반죽에 섞여 든다는 뜻이다. 한번 반죽에 들어간 밀가루는 골라낼 수 없다. 삭제 버튼은 내 화면의 기록을 지울 뿐, 반죽을 되돌리지 못한다.사고도 이미 있었다. 2023년 5월, 삼성전자에서 직원들이 내부 소스코드 등을 ChatGPT에 입력한 사실이 알려져 사내 생성형 AI 사용이 제한된 일이 있었다. 해킹이 아니었다. 직원이 자기 손으로, 업무를 잘하려고 넣었다. 악의가 아니라 편의가 사고의 경로였다. 회사들이 뒤늦게 "AI 사용 지침"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다.그러면 뭘 조심해야 하나. 기준선은 간단하다. 병원 대기실에서 큰 소리로 말해도 되는 내용인가. 된다면 AI에게도 된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만 걸러내면 된다. 남의 정보(고객 명단, 동료 평가), 회사의 정보(미공개 실적, 소스코드, 계약서), 나를 특정하는 정보(주민번호, 계좌, 병명과 실명의 조합). 고민 상담이 문제가 아니라 상담에 실명을 붙이는 게 문제다. "우리 팀장이"까지는 익명이지만 "OO전자 OOO 팀장이"부터는 기록이다.설정도 1분이면 된다. 주요 AI 서비스에는 대화를 학습에 쓰지 않게 하는 옵션이 대부분 있다. 메뉴 이름은 서비스마다 다르지만, 설정에서 '학습', '데이터' 같은 단어를 찾으면 된다. 회사 업무라면 학습 배제가 계약된 기업용 서비스를 쓰는 게 맞고, 그게 없다면 그 업무는 AI 없이 하는 게 맞다.AI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요지는 AI를 일기장이 아니라 대화 상대로 대하라는 거다. 일기장은 나만 보지만 대화는 상대가 있다. "AI는 비밀을 지켜주지 않는다. 지킬 비밀이 뭔지 정하는 건 당신 몫이다."*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8-19 13:48:30 최우현 칼럼니스트
  • [최우현의 IT 칼럼] AI가 생성한 코드는 누가 책임지나
    IT/과학

    [최우현의 IT 칼럼] AI가 생성한 코드는 누가 책임지나

    개발자들 사이에 이런 농담이 있다. "요즘 코딩은 AI가 하고, 나는 엔터만 누른다."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통계는 진지하다. 신규 코드의 절반 가까이를 AI가 쓴다는 조직이 이제 드물지 않다. 나도 쓴다. 편하다. 빠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AI가 짠 코드에 취약점이 있었고, 그걸로 사고가 났다고 하자. 누구 책임인가. 지금 답은 정해져 있다. 개발자다. AI 서비스 약관에는 "결과물의 검증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다"는 문구가 빠짐없이 들어 있다. 제안은 도구가 했지만 수락은 사람이 했다는 논리다. 따지자면 맞는 말인데, 현장에서는 안 통하는 말이다.왜 안 통하나. 검증이 실제로 안 일어나기 때문이다. 스탠퍼드 댄 보네(Dan Boneh) 교수 연구팀이 2023년 실험을 해봤더니, AI 어시스턴트를 쓴 개발자들이 안 쓴 쪽보다 취약점을 더 많이 만들었다. 정작 본인들은 자기 코드가 더 안전하다고 믿었다. 매끄러운 코드가 확신을 만들고, 확신이 검토를 생략시킨다. 문장이 매끄러우면 의심이 죽듯이, 코드가 매끄러우면 리뷰가 죽는다.규모 문제는 더 심각하다. 사람이 하루에 짜는 코드는 뻔하니 리뷰도 그 속도를 따라갔다. AI가 하루에 수천 줄을 쏟아내면 리뷰어는 둘 중 하나가 된다. 병목이 되거나, 거수기가 되거나. 대부분 후자가 된다. "사람이 검토했습니다"라는 체크박스는 남는데 검토는 없다. 책임을 따지려고 만든 절차가 책임을 세탁하는 절차로 변한다.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더 꼼꼼히 읽자"는 답이 아니다. 사람 눈으로 기계의 속도를 따라잡겠다는 건 정신력으로 자동차와 경주하겠다는 소리다. 검증도 기계가 해야 한다. 코드가 약속한 성질을 지키는지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정형 검증, 알려진 취약 패턴을 훑는 정적 분석, 입력을 퍼부어 깨지는 지점을 찾는 퍼징. 사람은 코드를 한 줄씩 읽는 대신, 무엇을 보장해야 하는지 정하고 그 보장이 증명됐는지 확인하면 된다. 쓰는 속도가 기계가 됐으면 읽는 속도도 기계가 돼야 맞다.사고가 났을 때 "AI가 짰다"는 변명이 못 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개발자가 잘 봤어야지"로 끝내는 것도 답이 아니다. 검증할 수단은 안 주고 검증 책임만 지우는 건 책임 분배가 아니라 책임 전가다. 자동차 회사에 충돌 테스트를 요구하듯, AI로 코드를 찍어내는 조직에는 그만한 검증 체계를 요구하는 게 순서다. 누가 책임지나. 검증 없이 엔터를 누른 모든 사람이, 그리고 검증할 도구를 쥐여주지 않은 모든 조직이.*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8-05 08:28:02 최우현 칼럼니스트
  • [최우현의 IT 칼럼] 벤치마크 1위 모델이 실무에서 헤매는 이유
    IT/과학

    [최우현의 IT 칼럼] 벤치마크 1위 모델이 실무에서 헤매는 이유

    예전에 AI 성능을 자랑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그럴싸한 숫자 하나면 됐다. "정확도 98%", "벤치마크 1위", "파라미터 수천억 개". 발표장에서 이 숫자가 뜨면 박수가 나왔고,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나도 그런 슬라이드를 만들어봤다. 솔직히 잘 먹혔다. 문제는 그 숫자들이 말하지 않는 부분이다.벤치마크 1위부터 보자. 시험 문제가 공개돼 있으면 학생은 그 문제에 맞춰 공부한다. AI도 똑같다. 벤치마크 데이터가 학습 데이터에 섞여 드는 '오염'은 업계의 공공연한 골칫거리고, 오염이 없어도 개발사들은 점수 잘 나오는 방향으로 모델을 다듬는다. 모의고사 만점자가 실무에서 쩔쩔매는 이유와 같다. 점수가 오른 것이지, 실력이 는 게 아니다.정확도 98%는 더 난감하다. 어떤 데이터로, 어떤 조건에서 쟀는지는 대개 각주에도 없다. 실험실의 정제된 데이터로 얻은 98%는 현장에 나가는 순간 뚝뚝 떨어진다. 진짜 문제는 나머지 2%다. 2018년 MIT의 '젠더 셰이드' 연구가 짚었듯, 전체 정확도가 훌륭한 얼굴 인식 시스템도 피부색이 어두운 여성에게는 오류율이 30%대까지 치솟았다. 백인 남성은 1%도 안 됐다. 평균은 높은데, 누군가에게는 절반쯤 고장 난 기계다. 이때 물어야 할 질문은 "몇 퍼센트인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몇 퍼센트인가"다.어떤 지표에도 안 잡히는 건 사람이다. 모델이 "스스로 학습했다"는 서사 뒤에는 데이터에 라벨을 붙이고 유해 콘텐츠를 하루 종일 들여다본 노동자들이 있다. 케냐에서 시간당 2달러 안팎을 받고 이 일을 한 사람들 이야기가 보도된 게 벌써 몇 년 전이다. 데이터센터가 삼키는 전력과 냉각수도 마찬가지다. 파라미터 수는 자랑하면서 전기요금은 말하지 않는다.그러면 뭘 봐야 하나. 세 가지다. 어떤 조건에서 잰 숫자인가. 평균 뒤에 숨은 분포는 어떤 모양인가. 집계되지 않은 비용과 노동은 무엇인가. 그래도 의심되면 데모 영상 말고 내 데이터로 직접 돌려보면 된다. 촌스럽지만 이만한 게 없다.AI 시대의 문해력은 코드를 읽는 능력이 아니라 숫자를 의심하는 능력이다. 봐야 할 곳은 숫자가 비추는 자리가 아니라 그림자가 진 자리다. "AI의 숫자는 당신의 직관보다 화려하다. 그러나 정확하다는 뜻은 아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7-22 07:42:48 최우현 칼럼니스트
  • AI 피싱은 왜 맞춤법이 완벽한가
    컴퓨터

    AI 피싱은 왜 맞춤법이 완벽한가

    예전 피싱 메일을 구별하는 법은 어렵지 않았다. 맞춤법이 틀렸다. "고갱님 귀하의 게좌가 정지되였습니다" 같은 문장을 보면 누구라도 고개를 갸웃했고, 보안 교육에서도 "오탈자가 보이면 삭제하라"고 가르쳤다. 나도 그렇게 가르친 적이 있다. 적어도 2023년까지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요즘 피싱 메일에는 오탈자가 없다. 존댓말이 흠잡을 데 없고, 회사 내부에서 쓰는 용어까지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받아본 사람이 "이거 진짜 팀장님이 보낸 거 아니야?"라고 되묻는 수준이다. 공격자가 갑자기 국어 실력이 는 게 아니다. ChatGPT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이 대신 써준다. KnowBe4가 2024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피싱 메일을 분석했더니, 82.6%에서 AI 개입 흔적이 나왔다. 10통 중 8통이다. 비슷한 통계는 차고 넘치지만, 이 숫자 하나면 충분하다.하버드 연구팀이 2024년 말 공개한 실험에서, AI가 사람 손을 전혀 거치지 않고 완전 자동으로 만든 스피어피싱의 클릭률은 54%였다. 같은 실험에서 함께 돌린 일반 피싱 대조군(12%)의 4배가 넘는 수치이고, 인간 전문가가 공들여 쓴 메일과 정확히 같은 성적이다. 자동 생성한 메일과 공들여 쓴 메일이 동점이라면, 이 승부는 사실상 끝난 거다.이건 LLM의 작동 방식을 알면 당연한 결과다. 이 모델들은 수십억 개의 정상적인 문장을 학습해서 "가장 자연스러운 다음 단어"를 예측하도록 훈련됐다. 애초에 문법 오류를 만들기가 어려운 구조다. 여기에 타깃의 SNS 활동, 직책, 소속 회사의 최근 공지까지 긁어서 넣는다. 그러면 "어제 회의에서 말씀하신 건으로 첨부 보내드립니다" 같은 메일이 그냥 나온다. 사람이 수백 곳에 맞춤형 메일을 쓰려면 몇 명이 붙어야 하나. AI는 혼자 한다.정작 관제하는 사람들이 골치 아파하는 건 따로 있다. 필터다. 같은 목적의 피싱이라도 AI가 매번 제목, 발신자명, 본문 구조를 조금씩 바꿔서 보낸다. 보안 쪽에서는 이걸 다형성(polymorphism)이라고 부른다. 기존 이메일 보안 게이트웨이는 알려진 악성 패턴의 "서명"을 대조하는 식으로 작동하는데, 변종이 수천 개씩 밀려오면 대조할 서명이 없다. 글을 잘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탐지 시스템이 서 있는 바닥 자체가 흔들린다.그러면 이제 뭘 봐야 하나. IBM X-Force는 문법만 보는 교육이 오히려 역효과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맞춤법이 깨끗하니까 괜찮겠지, 하는 착각을 심어준다는 거다. 봐야 할 건 문장이 아니라 행동이다. 돈을 보내라는 건지, 비밀번호를 바꾸라는 건지, 파일을 열라는 건지. 30분 안에 하라고 압박하는지. 진짜 은행이나 회사는 그렇게 재촉하지 않는다. 의심되면 메일에 적힌 번호 말고, 내가 이미 저장해둔 번호로 전화 한 통 돌리면 된다. 촌스러운 방법 같지만 이만한 게 없다.세계경제포럼(WEF)은 2026년 사이버보안 전망에서 AI 기반 사이버 사기를 랜섬웨어를 제치고 CEO들의 1순위 우려로 꼽았다. 맞춤법을 보고 판단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피싱 메일의 맞춤법이 당신보다 정확하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7-08 07:19:48 최우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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