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사체가 사바나를 바꾼다…8년 지나도 토양·초식동물에 흔적

유승철 발행일 2026-10-14 10:18:51
PNAS 연구, 사체 주변 암모늄 평균 31배·질산염 7배·인 3배 증가
초식동물 방목은 7년 넘게 3배 이상…‘생물다양성 냉점·생태과정 핫스폿’ 확인
[데일리환경=유승철 기자] 아프리카 코끼리는 살아 있을 때만 사바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몸이 죽은 뒤에도 토양과 식생, 미생물, 초식동물의 행동에 수년간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UC샌타바버라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연구진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은 남아공 크루거국립공원에서 코끼리 사체가 있었던 40곳을 조사한 결과, 사체가 사라진 뒤에도 토양의 영양염 농도와 생물다양성, 초식동물 이용 양상이 주변 지역과 뚜렷하게 달랐다고 밝혔다.
▲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루거국립공원에서 촬영된 아프리카코끼리.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이미지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없음 (출처 : flowcomm·Wikimedia Commons·CC BY 2.0)


연구 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온라인 공개됐다. 조사 대상은 죽은 지 8일 된 곳부터 7.7년이 지난 곳까지였으며, 연구진은 각 사체 지점과 인접한 비교 지점에서 토양과 식물을 채취하고 미생물 활동, 식물 다양성, 초식동물의 방목 정도를 함께 분석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토양 영양염이었다. 연구진에 따르면 사체 지점의 암모늄 농도는 비교 지점보다 평균 31배, 질산염은 7배, 인은 3배 높았다. 그러나 영양분이 많다고 해서 곧바로 더 다양한 식물이 자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높은 암모늄 농도와 함께 토양 미생물과 식물의 다양성이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생물다양성의 냉점’과 ‘생태계 과정의 핫스폿’이 동시에 만들어지는 현상으로 설명했다. 코끼리 사체가 놓이면 거대한 몸과 몰려드는 청소동물이 기존 식생을 눌러 맨땅을 만들고, 분해 과정에서 질소와 인 등 영양분이 한꺼번에 토양으로 들어간다. 초기에는 영양염 농도가 지나치게 높아 일부 식물의 재생을 억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자라는 일부 식물과 미생물이 우점하는 구조로 바뀐다.

생물의 종류는 줄어도 생태계 활동은 활발해졌다. 논문 초록에 따르면 토양 미생물 호흡은 사체 지점에서 1~2년 동안 높게 나타났고, 초식동물의 방목 활동은 사후 7년이 넘은 지점에서도 비교 지역보다 3배 이상 높았다.

특히 약 8년이 지난 지점에서도 변화가 사라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오래된 사체 지점에서도 토양과 식생의 특성이 주변과 달랐고 초식동물이 이 지역을 선호해 방문했다고 밝혔다. 가장 오래된 조사 지점에서도 풀의 질소 함량과 방목 강도가 뚜렷하게 낮아지지 않았고, 미생물과 식물 다양성 역시 주변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대형 야생동물의 생태적 역할을 살아 있는 동안에만 한정해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코끼리는 생전에 나무를 쓰러뜨리고 물을 찾기 위해 땅을 파며 식생 구조를 바꾸는 대표적인 생태계 공학자다. 이번 연구는 죽은 뒤에도 한 마리의 거대한 사체가 토양의 영양순환과 식물 군집, 초식동물의 공간 이용을 장기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줬다.

다만 연구 결과를 모든 사바나나 육상 생태계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크루거국립공원의 기후와 토양 조건이 영양분의 축적과 이동을 좌우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도 강수량이 많은 숲이나 습지, 매우 건조한 사막에서는 영향의 크기와 지속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는 대형동물 감소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보는 시각도 넓힌다. 코끼리와 같은 거대 초식동물이 사라지면 살아 있는 동안 수행하던 식생 조절뿐 아니라 사후에 만들어 내던 영양순환의 ‘유산’도 함께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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