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시장수요 변화와 지상 중심의 보행 환경 개편 그리고 노후화된 시설이 맞물리며 오늘날의 지하상가는 공간활용 측면에서 다양한 고민을 안긴다. 흩어진 점포를 정리하고 리모델링하거나 청년 창업 공간을 일시적으로 입주시키는 식의 천편일률적인 대책은 이미 여러 지자체에서 실패를 맛보았다. 기존의 활성화 방안이 대부분 지하상가를 여전히 지상의 상업시설을 지하에 옮겨놓은 형태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지하상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존 상업공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벗어던져야 한다. 이에 따른 새로운 해결책으로 지하상가를 단순한 물건을 파는 상가가 아닌 도시 전체의 고질적인 문제를 흡수하고 연결하는 입체적 도시 스펀지형태로 재정의해야 한다.
앞으로, 지하상가는 지금처럼 상업 공간을 넘어서 기후 위기 시대의 입체적 미세기후 피난처로 진화해야 한다. 폭염과 폭우, 극심한 미세먼지가 일상화된 현대 도시에서 지하공간이 가지는 가장 큰 강점은 지상보다 온도와 습도 변화가 적다는 점이다. 단순히 상점을 배열하는 대신, 지하상가 주요 동선을 따라 지상과 연결되는 자연채광형 지하정원, 대형 공기정화 쉼터, 그리고 기후 피난용 보행 네트워크를 조성해야 한다. 시민들이 날씨의 제약 없이 편안하게 머물고 걸을 수 있는 기후 안전지대가 구축되면, 자연스럽게 체류 시간이 늘어나고 이를 기반한 새로운 소비 환경이 형성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지상과 지하를 가로막는 공간적 단절을 허물고 입체적 보행 생태계를 완성해야 한다. 지상건물과 지하철역 그리고 인접한 공원을 지상과 지하가 유기적으로 얽히는 경사로나 광장 형태로 과감하게 연결해야 한다. 지하상가는 독립된 상권이 아닌 시민들이 지상에서 지하로, 다시 인근 건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도시 보행의 메인 허브가 되어야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또한, 일괄적인 점포 배치가 아닌 시간대별·공간별 팝업 및 로컬 큐레이션으로 콘텐츠 전환율을 극대화해야 한다. 장기 임대 계약에 묶여 고착화된 기존 지하상가의 구조를 깨고 일정 구역을 모듈형 가변 공간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출퇴근 시간에는 직장인을 위한 특화 공간으로, 낮 시간대에는 인근 주민을 위한 문화 커뮤니티로, 주말에는 관광객들이 찾을 수 있는 지역 로컬 브랜드와 크리에이터들의 팝업 스토어로 신속하게 변화하는 상황 가변적 공간을 도입해야 한다.
지하상가의 슬럼화는 단순히 소상공인의 위기가 아닌 도시 공간 이용의 불균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비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공실율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상권 침체기를 맞고 있다. 결국, 지하상가를 활성화 시키기 위한 핵심적인 부분은 공공의 적극적인 제도 개선과 민간의 유연한 기획력이 함께 이루어질 때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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