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 고라니, AI가 먼저 발견한다…청주 국도 17호선에 '로드킬 경보'

정진욱 발행일 2026-10-30 07:24:04
- 기후에너지환경부, 28일부터 청주 남이면 척산리 구간 시범운영
- 인공지능이 야생동물 감지하면 전광판·경광등으로 경고…운전자 안전과 야생동물 보호 함께
[데일리환경=정진욱 기자] 어둠이 내려앉은 국도에 자동차 불빛이 길게 이어진다. 도로 양옆으로 숲이 펼쳐진 길, 운전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 인공지능을 활용해 도로에 나타나는 야생동물을 감지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기술을 소개한 2024년 4월 국토교통부 공식 카드뉴스 자료 참조(출처=국토교통부·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차량의 속도는 빠르고 동물의 움직임은 예측하기 어렵다. 도로 위에서 사람과 야생동물이 마주치는 순간, 불과 몇 초의 차이가 생명을 가를 수 있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도로에 나타나는 야생동물을 인공지능(AI)이 먼저 발견하고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기술이 충북 청주에 도입됐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28일부터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척산리 국도 17호선에서 인공지능 기반 '동물 찻길 사고(로드킬) 예방시스템'을 시범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번 시스템은 야생동물이 자주 출현하는 도로에서 동물과 차량의 충돌을 예방하고, 운전자와 야생동물 모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마련됐다. 


▲ 인공지능을 활용해 도로에 나타나는 야생동물을 감지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기술을 소개한 2024년 4월 국토교통부 공식 카드뉴스 자료 참조(출처=국토교통부·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시스템의 작동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도로 주변에 설치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 움직이는 물체를 포착하면 인공지능이 영상정보를 분석해 사람과 사물, 야생동물을 구분한다. 동물의 출현이 확인되면 도로에 설치된 발광다이오드(LED) 전광판에 경고 문구가 표시되고 경광등이 작동한다.

운전자는 전방에 야생동물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속도를 줄이거나 주변 상황을 살피며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

그동안 야생동물 출현이 잦은 도로에서는 고라니 그림이 그려진 경고표지판이나 유도울타리 등을 설치해 사고를 예방해 왔다. 그러나 고정된 표지판은 실제 동물이 나타났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같은 경고를 전달한다. 반면 인공지능 기반 예방시스템은 야생동물이 감지된 상황에 맞춰 실시간으로 위험을 알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야간이나 시야가 제한되는 도로에서는 운전자가 야생동물을 발견하기 전에 경고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고라니와 같은 야생동물은 자동차 불빛이나 소음에 놀라 갑자기 도로로 뛰어들 수 있다. 운전자가 이를 피하려고 급하게 방향을 바꾸면 중앙선을 침범하거나 다른 차량과 충돌하는 2차 사고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동물 찻길 사고는 야생동물의 생명을 위협하는 동시에 운전자와 동승자의 안전에도 영향을 미치는 도로교통 문제다. 이번에 청주에 도입된 시스템은 기존 시범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마련됐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포스코DX와 협력해 영상인식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동물 찻길 사고 예방시스템을 개발해 왔다.

앞서 지난해 경기도 양평군과 강원도 횡성군·평창군 등 3개 지역에 관련 시스템을 설치해 시범 운영하고 있으며, 이번 청주 국도 17호선이 추가됐다. 정부는 내년까지 1개 구간에 시스템을 더 설치할 계획이다. 

이 사업에는 인공지능 영상분석 기술과 도로교통 안전관리, 야생동물 생태정보가 함께 활용된다. 기존 시스템에는 스마트 CCTV와 라이다(LiDAR) 센서 등이 사용됐다. 라이다는 레이저를 이용해 물체까지의 거리와 위치 등을 파악하는 기술로, 영상분석과 함께 도로에 나타난 동물을 감지하는 데 활용된다.

2025년 양평과 평창에 설치된 시스템은 동물이 출현하면 약 150m 전방의 LED 전광판에 경고 문구를 표시하도록 설계됐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예방시스템은 도로 위 사고를 줄이는 것뿐 아니라 야생동물의 이동 특성을 파악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다.

동물이 자주 나타나는 시간대와 위치, 종류 등을 분석하면 도로 주변 생태환경을 이해하고 사고 위험이 높은 구간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도로는 사람들에게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이동수단이지만, 야생동물에게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서식지와 이동경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먹이를 찾아 이동하거나 번식지를 오가는 동물들은 도로가 생기기 전부터 이용하던 길을 따라 움직인다. 도로를 건너는 과정에서 자동차와 마주치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는 인공지능 예방시스템과 함께 야생동물 유도울타리, 생태통로 등 다양한 시설을 활용해 찻길 사고를 줄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환경부와 국토교통부가 2024년 발표한 제3차 동물 찻길 사고 저감대책에 따르면, 앞서 사고가 빈번했던 50개 구간에서는 저감대책 시행 이후 연평균 사고 발생 건수가 2019년 1197건에서 2021~2023년 평균 346건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운전자들의 주의도 중요하다. 야생동물 출현 경고가 표시되면 갑작스럽게 핸들을 돌리거나 급정거하기보다 주변 차량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안전하게 속도를 줄이는 것이 좋다. 특히 산림과 농경지가 인접한 국도에서는 야간과 새벽 시간대에 전방을 주의 깊게 살피고, 야생동물 출현이 잦은 구간에서는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청주 국도 17호선에 설치된 인공지능 경보시스템은 기술을 활용해 도로 위 위험을 미리 발견하고 사고를 예방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람의 이동을 위해 만들어진 도로에서 야생동물의 움직임까지 살피는 일은 생태계와 공존하는 교통환경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숲에서 내려온 고라니 한 마리가 도로 앞에 멈춰 서는 순간, 인공지능은 그 작은 움직임을 감지하고 운전자에게 속도를 늦추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 몇 초의 여유가 누군가의 안전을 지키고, 숲으로 돌아갈 한 생명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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