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에 자리한 이 은행나무는 나이가 무려 1300여 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 높이는 약 33m, 뿌리 부분 둘레는 약 16m에 달하고, 가지는 동서로 37.5m, 남북으로 31m나 뻗어 있다. 우리나라에 홀로 서 있는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오래된 나무로 꼽히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전쟁과 홍수와 가뭄을 모두 지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무게감이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이 나무는 단순한 고목이 아니다. 성주 이씨의 선조가 심었다는 이야기, 한 스님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놓은 자리에서 자라났다는 전설이 함께 전해진다.
나무에는 흰 뱀이 산다는 이야기가 더해지며 오랫동안 신성한 나무로 여겨졌고, 가을에 잎이 한꺼번에 노랗게 물들면 그해 풍년이 든다는 믿음도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세월의 깊이가,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다.
지금도 마을 어르신들은 손주들에게 이 나무 아래서 지팡이 전설을 들려준다고 한다.
원주시는 이 나무 주변을 새롭게 정비하는 데 약 85억 원을 투입했다. 나무로 다가가는 진입로와 주차장을 새로 만들고, 야외무대와 산책로를 조성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도 이 사업에 함께해 은행나무 23그루를 추가로 심었다고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공사가 한창이라 잔디를 심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고, 방문객들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채 멀리서 지켜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당시 먼발치에서 가림막 너머로 노란 잎만 바라보던 이들 중에는 "올해는 또 못 보고 가는구나"라며 발걸음을 돌린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 기다림이 올해 결실을 맺는다. 10월 26일부터 11월 8일까지 이어지는 가을 축제 기간 중, 11월 2일에는 정비를 마친 광장에서 첫 공식 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늦가을, 비로소 완전한 모습을 갖춘 나무와 광장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입장료 없이 연중 언제든 찾을 수 있다는 점도 변함이 없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를 수 있는 가을 명소로 다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새로 놓인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나무를 둘러싼 풍경 자체가 작은 쉼터처럼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같은 시기, 강원도 곳곳에서도 가을을 붙잡으려는 움직임이 이어진다. 춘천에서는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화동 일대에서 한우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축제가 열리고, 평창 오대산에서는 수령 최대 370년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을 걷는 맨발 트레킹 행사가 마련된다. 태백에서는 추억의 먹거리를 파는 장터가 선다. 저마다 다른 빛깔로 늦가을을 붙잡는 풍경들이다. 단풍철 마지막 주말을 맞아 강원 각지를 돌아보려는 이들에게는 반계리까지 이어지는 여정이 하나의 가을 코스로 자리 잡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반계리 은행나무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노랗게 물든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1300년을 버텨온 생명이 공사 가림막 뒤에 숨어 있던 시간을 지나, 다시 사람들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설 수 있게 됐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다. 나무는 말이 없지만, 그 곁을 스쳐 간 수많은 계절과 사람들의 기억을 켜켜이 품고 있다.
올해 가을, 그 나무 아래 서서 황금빛 잎을 올려다보는 이들은 아마 저마다의 사연을 하나씩 떠올리게 될 것이다. 어릴 적 부모님 손을 잡고 왔던 기억을 되살리는 이도 있을 것이고, 처음으로 이 나무를 마주하며 그 크기에 놀라는 이도 있을 것이다.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을 위해 덧붙이면, 반계리 은행나무는 사계절 무료로 개방돼 있어 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들를 수 있다. 다만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는 날씨에 따라 며칠씩 앞뒤로 움직일 수 있어, 방문 전에는 최신 단풍 현황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새로 조성된 주차장과 산책로 덕분에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도 한층 편하게 나무 곁에 다가갈 수 있게 됐다는 점도 눈에 띄는 변화다. 정비 전에는 비포장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야 했던 구간도, 이제는 평탄한 길로 바뀌어 유모차나 휠체어로도 접근이 한결 수월해졌다고 한다.
겨울이 머지않았다. 그러나 반계리의 은행잎이 모두 떨어지기 전까지, 아직 며칠의 시간이 남아 있다. 늦지 않게 그 나무 아래 서보는 것도 올가을을 보내는 작은 의식이 될 수 있겠다. 천 년을 넘게 버텨온 나무 아래서, 올해의 가을 한 조각을 마음에 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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