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탄소를 품어온 바다, 이제 더 정밀하게 읽는다…유엔 '해양탄소지능' 제안

안영준 발행일 2026-10-30 07:25:11
- 유엔환경계획, 2026 기후기술진전보고서 발표…해양 관측·데이터·분석기술 통합 강조
- 바다, 인류 배출 이산화탄소 약 30% 흡수…블루카본 복원과 해양 탄소제거 기술의 과학적 관리 필요
[데일리환경=안영준 기자] 바다는 오랫동안 인간이 만들어낸 열과 탄소를 말없이 받아들여 왔다. 공장 굴뚝에서 흘러나온 이산화탄소와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에서 발생한 온실가스의 일부는 대기를 떠돌다 바다로 스며든다.

▲ 바다의 탄소순환을 보여주는 NASA 위성사진. NASA의 PACE 위성이 관측한 노르웨이해의 식물플랑크톤 분포. 바닷물에 나타난 녹색과 푸른색의 소용돌이는 해양생태계의 생산성과 탄소순환을 연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출처=NASA Earth Observatory, 2025년 7월 12일 관측. NASA PACE 위성 자료)

수면 아래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순환이 이어진다. 바닷물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해류는 탄소를 다른 해역으로 옮긴다. 작은 식물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통해 탄소를 유기물로 바꾸며, 일부는 깊은 바다로 가라앉아 오랜 시간 저장된다.

이처럼 바다는 지구의 기후를 조절하는 거대한 탄소 저장고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심화되면서 바다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역할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난 28일 발표한 '2026 기후기술진전보고서(Climate Technology Progress Report 2026)'에서 해양의 탄소 흡수와 저장 기능을 보다 정밀하게 이해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투자를 촉구했다.

보고서가 제시한 핵심 개념은 '해양탄소지능(Ocean Carbon Intelligence)'이다. 해양 관측기술과 과학적 연구, 데이터 기반시설, 분석모델을 하나로 연결해 바다가 탄소를 얼마나 흡수하고 어디에 저장하는지 파악하고, 이를 기후정책과 해양환경 관리에 활용하자는 제안이다.

이번 보고서는 유엔환경계획 코펜하겐기후센터가 기후기술센터·네트워크(CTCN), 유엔기후변화협약 기술집행위원회(TEC)와 협력해 작성했다. 

인류가 만든 탄소와 열, 바다가 받아온 시간

유엔환경계획에 따르면 해양은 인간 활동으로 발생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30%와 기후변화로 생긴 초과 열의 약 90%를 흡수하고 있다. 바다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와 지구의 온도 상승은 지금보다 더 심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바다의 흡수 능력이 무한한 것은 아니다. 수온이 상승하면 바닷물에 이산화탄소가 녹아드는 물리적 조건이 달라진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바닷물에 녹아들면서 해양 산성화가 진행되고, 수온 상승에 따른 산소 감소는 해양생물의 생존환경을 변화시킨다.

해류와 영양염류의 이동, 플랑크톤의 생산성 변화도 해양 탄소순환에 영향을 미친다. 유엔은 이러한 변화가 해양의 탄소 흡수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기후변화 대응에도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엔환경계획의 마르틴 크라우제 기후변화국장은 해양 탄소흡수원이 약화되면 대기에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남아 기후목표 달성이 더욱 어렵고 비용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 바닷속 탄소를 관측하는 해양 부이. 해양의 이산화탄소와 환경변화를 장기간 관측하는 탄소 관측 부이. 해양탄소지능 구축에 필요한 현장 관측장비의 사례다.(출처=미국 해양대기청 산하 태평양해양환경연구소 NOAA Pacific Marine Environmental Laboratory.)

바다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 해양탄소지능

바다가 얼마나 많은 탄소를 흡수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일은 육상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하는 것보다 복잡하다. 해양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바람과 파도, 해류가 수면을 변화시키고, 계절과 수심에 따라 수온과 염분, 탄소 농도가 달라진다.

같은 해역에서도 관측 시점에 따라 측정값이 달라질 수 있으며, 넓은 공해와 깊은 바다에는 여전히 관측자료가 부족한 곳이 많다. 해양탄소지능은 이러한 관측의 빈틈을 줄이기 위한 통합적인 과학 기반이다.

조사선과 해양관측 부이, 무인 수중관측기, 위성 등이 수집한 자료를 연결하고, 이를 컴퓨터 모델과 분석기술로 해석해 해양 탄소순환의 변화를 파악하는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관측장비의 숫자만 늘리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기관과 국가에서 측정한 자료를 비교할 수 있도록 관측방법과 데이터 형식을 표준화하고, 장기간에 걸쳐 일관된 관측을 이어가야 한다.

이를 통해 일시적인 해양환경 변화와 장기적인 기후변화 추세를 구분하고, 탄소 흡수량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보고서는 해양 관측과 데이터 기반시설, 모델링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과학적 공백을 해소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후정책을 수립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맹그로브와 잘피밭, 바닷속 탄소 저장고

해양의 탄소 저장 기능을 보호하는 방법으로는 블루카본 생태계의 보전과 복원도 주목받고 있다. 블루카본은 해양과 연안 생태계가 흡수하고 저장하는 탄소를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맹그로브 숲과 염습지, 잘피밭 등이 있다.

이들 생태계는 식물의 광합성과 퇴적물 축적 등을 통해 탄소를 저장하는 동시에 다양한 해양생물의 서식처를 제공한다. 해안 침식을 줄이고 파도의 영향을 완화하는 등 기후변화 적응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복원 면적을 넓히는 것만으로 탄소 감축 효과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복원된 식물이 얼마나 오래 생존하는지, 토양과 퇴적물에 탄소가 얼마나 축적되는지, 생태계가 장기적으로 유지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어업과 연안 이용에 의존하는 지역 주민들의 생활과 권리도 고려해야 한다. 보고서는 해양 기반 기후기술이 환경적 효과뿐 아니라 사회적 형평성과 지역공동체의 권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개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다에서 탄소를 제거하는 기술, 가능성과 한계

최근에는 해양의 자연적인 탄소 흡수 과정을 활용하거나 강화하는 새로운 기술도 연구되고 있다. 바닷물의 화학적 특성을 조절해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을 높이거나, 해양생물의 생산성과 탄소 이동 과정을 활용하는 방식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해양 이산화탄소 제거기술은 기후변화 대응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아직 과학적으로 확인해야 할 문제도 많다. 실제로 제거한 탄소가 얼마나 오랫동안 저장되는지, 해양 생태계와 먹이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른 해역으로 부작용이 확산될 가능성은 없는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탄소 제거량을 측정하고 검증하는 국제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기준도 필요하다. 특히 바다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 연결돼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나라의 기술개발이나 관리체계만으로 모든 영향을 파악하기 어렵다.

유엔환경계획은 해양 기반 기후기술이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분명히 했다. 바다의 탄소 흡수 능력을 보호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 자체를 빠르고 지속적으로 줄이는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삼면이 바다인 한국, 해양 관측의 중요성 커져

해양탄소지능의 필요성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서해와 남해, 동해는 수심과 해류, 수온, 연안 생태계의 특성이 서로 다르다.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과 해양 산성화, 생태계 변화도 해역별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해양의 탄소 관측자료와 수온·염분·산소 등 환경정보를 함께 분석하면 바다의 변화를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갯벌과 염습지, 잘피밭 등 연안 생태계의 탄소 저장 기능을 파악하고 복원사업의 효과를 평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장기간 축적된 해양 관측자료는 수산업과 연안관리, 해양생태계 보전정책을 수립하는 데에도 중요한 과학적 기반이 된다. 유엔환경계획이 제안한 해양탄소지능은 단순히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나 첨단 관측장비를 도입하자는 뜻이 아니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축적된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며, 과학적 분석을 통해 정책에 필요한 정보를 만들어내는 역량을 갖추자는 제안이다. 바다는 지금도 대기 중 탄소와 열을 받아들이며 지구의 기후를 조절하고 있다.

그러나 그 거대한 순환은 인간의 눈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파도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가 이동하고, 어디에 저장되며, 언제 다시 대기로 돌아갈지는 오랜 관측과 연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유엔이 이번 보고서에서 강조한 것은 결국 바다의 능력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는 메시지다. 인류가 배출한 탄소를 오랫동안 품어온 바다. 이제는 그 바다가 보내는 변화를 더 세밀하게 읽고, 과학으로 이해하며, 책임 있게 지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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