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피하려 에어컨·지하층 늘렸더니…라돈 노출·폐암위험 커질 수 있다

유승철 발행일 2026-10-19 00:09:04
Communications Sustainability 연구…‘기후적응 행동’이 실내 라돈 노출 높이는 경로 분석
실제 인구 예측 아닌 조건부 시나리오…환기·라돈 저감설비 병행하면 위험 줄일 수 있어
[데일리환경=유승철 기자] 폭염을 피하기 위해 에어컨 사용을 늘리고 지하층이나 저층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기후적응 행동이 오히려 주거공간의 라돈 노출과 장기 폐암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연구진은 미국과 프랑스·독일·이탈리아 인구를 대상으로 가상의 생활패턴 변화를 적용한 결과, 에어컨 사용 증가와 지하층 체류 확대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 현재 조건보다 1만명당 폐암 사망이 미국에서 46명, 유럽에서 42명 더 늘 수 있다고 추정했다.

▲ 폴란드 바르샤바공대 물리학부에서 라돈 농도를 측정하는 장면.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이미지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없음 (출처 : 434841c1·Wikimedia Commons·CC0 1.0)

미국 캘리포니아대 어바인과 이탈리아 국립보건원 연구진은 17일 국제학술지 Communications Sustainability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2015년부터 2025년 7월까지 기후변화와 실내 라돈 관련 문헌을 검토한 뒤, 현재 생활패턴과 에어컨 사용 증가, 지하층 체류 증가, 두 행동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 등 네 가지 노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이후 미국 국립과학원 BEIR VI의 노출-연령-농도 모형을 이용해 85세까지 누적 초과 폐암 사망위험을 계산했다.

연구의 기준 주택은 1층 이상 라돈 농도 74Bq/㎥, 지하층 185Bq/㎥로 설정됐다. 현재 조건은 하루 21시간을 실내에서 보내고 3시간은 실외에서 보내는 것으로 가정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여름 3개월 동안 에어컨을 사용하면서 환기 감소로 실내 라돈 농도가 약 60% 높아지는 경우다. 세 번째는 실외시간을 하루 1시간 줄이고 지하층에서 4시간을 보내는 경우, 네 번째는 두 조건을 함께 적용했다.

분석 결과 미국에서는 현재 조건의 누적 초과 폐암 사망위험이 1만명당 91명으로 추정됐고, 에어컨 사용 증가 시 104명, 지하층 체류 확대 시 119명, 두 행동을 결합하면 137명으로 높아졌다.

현재 조건과 비교하면 각각 13명, 28명, 46명이 추가되는 수준이다. 프랑스·독일·이탈리아를 합친 유럽 인구에서는 같은 순서로 86명, 98명, 112명, 128명으로 추정돼 결합 시나리오에서 42명이 추가됐다.

연구진은 이 수치를 특정 국가의 미래 폐암 사망자 수를 그대로 예측한 값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각 시나리오는 모든 주민이 실제로 같은 행동을 한다고 가정한 것이 아니라, 폭염과 같은 기후조건에 대응해 개인의 생활패턴과 건물 운영방식이 바뀔 경우 위험이 어느 정도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조건부 분석이다.

에어컨 사용에 따른 라돈 60% 증가 역시 제한된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설정한 가정치로, 실제 증가는 건물 구조와 환기방식, 기기 유형, 거주행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라돈은 암석과 토양 속 우라늄이 자연적으로 붕괴하면서 발생하는 무색·무취의 방사성 기체다. 토양에서 나온 라돈은 건물 바닥이나 벽의 틈, 배관 주변 등을 통해 실내로 들어오며 환기가 부족한 공간에서 농도가 높아질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라돈을 주요 폐암 원인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으며, 국가별 평균 라돈 농도와 흡연율에 따라 전체 폐암의 약 3~14%가 라돈과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장기 평균 라돈 농도가 100Bq/㎥ 증가할 때 폐암위험은 약 16%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연구가 주목한 지점은 기후변화가 라돈 자체의 이동뿐 아니라 사람의 행동을 바꿔 노출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폭염이 심해지면 외출을 줄이고 냉방이 되는 실내에 더 오래 머물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지하층은 지면과 맞닿아 상대적으로 시원하지만 일반적으로 라돈 농도가 높은 공간이다. 연구진은 기존 연구를 토대로 단독주택의 지하층 라돈 농도가 상층보다 약 1.8~2.5배 높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폭염기에 에어컨 사용을 줄이거나 실외활동을 늘리는 것이 해법은 아니다. 연구진도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라돈 위험을 피하려다 당장의 열질환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바닥 아래 감압장치, 기계환기와 열회수·에너지회수 시스템, 신축 건물의 라돈 차단설계 등 이미 알려진 저감수단을 기후적응 정책과 함께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WHO 역시 건물 환기 개선과 바닥·벽 틈새 차단, 하부 환기 등을 효과적인 라돈 저감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기후적응을 설계할 때 실외의 폭염만이 아니라 실내 환경보건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에너지효율을 높이기 위해 건물을 더 밀폐하거나 냉방 의존도가 높아지는 과정에서 환기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라돈과 같은 실내오염 문제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

앞으로는 폭염대응 주거정책과 건물 에너지효율 기준에 라돈 측정과 환기·저감설비를 함께 고려하는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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