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피하려 에어컨·지하층 늘렸더니…라돈 노출·폐암위험 커질 수 있다
Communications Sustainability 연구…‘기후적응 행동’이 실내 라돈 노출 높이는 경로 분석
실제 인구 예측 아닌 조건부 시나리오…환기·라돈 저감설비 병행하면 위험 줄일 수 있어
[데일리환경=유승철 기자] 폭염을 피하기 위해 에어컨 사용을 늘리고 지하층이나 저층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기후적응 행동이 오히려 주거공간의 라돈 노출과 장기 폐암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연구진은 미국과 프랑스·독일·이탈리아 인구를 대상으로 가상의 생활패턴 변화를 적용한 결과, 에어컨 사용 증가와 지하층 체류 확대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 현재 조건보다 1만명당 폐암 사망이 미국에서 46명, 유럽에서 42명 더 늘 수 있다고 추정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어바인과 이탈리아 국립보건원 연구진은 17일 국제학술지 Communications Sustainability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2015년부터 2025년 7월까지 기후변화와 실내 라돈 관련 문헌을 검토한 뒤, 현재 생활패턴과 에어컨 사용 증가, 지하층 체류 증가, 두 행동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 등 네 가지 노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이후 미국 국립과학원 BEIR VI의 노출-연령-농도 모형을 이용해 85세까지 누적 초과 폐암 사망위험을 계산했다. 연구의 기준 주택은 1층 이상 라돈 농도 74Bq/㎥, 지하층 185Bq/㎥로 설정됐다. 현재 조건은 하루 21시간을 실내에서 보내고 3시간은 실외에서 보내는 것으로 가정했다.두 번째 시나리오는 여름 3개월 동안 에어컨을 사용하면서 환기 감소로 실내 라돈 농도가 약 60% 높아지는 경우다. 세 번째는 실외시간을 하루 1시간 줄이고 지하층에서 4시간을 보내는 경우, 네 번째는 두 조건을 함께 적용했다.분석 결과 미국에서는 현재 조건의 누적 초과 폐암 사망위험이 1만명당 91명으로 추정됐고, 에어컨 사용 증가 시 104명, 지하층 체류 확대 시 119명, 두 행동을 결합하면 137명으로 높아졌다.현재 조건과 비교하면 각각 13명, 28명, 46명이 추가되는 수준이다. 프랑스·독일·이탈리아를 합친 유럽 인구에서는 같은 순서로 86명, 98명, 112명, 128명으로 추정돼 결합 시나리오에서 42명이 추가됐다.연구진은 이 수치를 특정 국가의 미래 폐암 사망자 수를 그대로 예측한 값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각 시나리오는 모든 주민이 실제로 같은 행동을 한다고 가정한 것이 아니라, 폭염과 같은 기후조건에 대응해 개인의 생활패턴과 건물 운영방식이 바뀔 경우 위험이 어느 정도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조건부 분석이다.에어컨 사용에 따른 라돈 60% 증가 역시 제한된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설정한 가정치로, 실제 증가는 건물 구조와 환기방식, 기기 유형, 거주행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라돈은 암석과 토양 속 우라늄이 자연적으로 붕괴하면서 발생하는 무색·무취의 방사성 기체다. 토양에서 나온 라돈은 건물 바닥이나 벽의 틈, 배관 주변 등을 통해 실내로 들어오며 환기가 부족한 공간에서 농도가 높아질 수 있다.세계보건기구(WHO)는 라돈을 주요 폐암 원인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으며, 국가별 평균 라돈 농도와 흡연율에 따라 전체 폐암의 약 3~14%가 라돈과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장기 평균 라돈 농도가 100Bq/㎥ 증가할 때 폐암위험은 약 16%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번 연구가 주목한 지점은 기후변화가 라돈 자체의 이동뿐 아니라 사람의 행동을 바꿔 노출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폭염이 심해지면 외출을 줄이고 냉방이 되는 실내에 더 오래 머물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지하층은 지면과 맞닿아 상대적으로 시원하지만 일반적으로 라돈 농도가 높은 공간이다. 연구진은 기존 연구를 토대로 단독주택의 지하층 라돈 농도가 상층보다 약 1.8~2.5배 높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그렇다고 폭염기에 에어컨 사용을 줄이거나 실외활동을 늘리는 것이 해법은 아니다. 연구진도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라돈 위험을 피하려다 당장의 열질환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바닥 아래 감압장치, 기계환기와 열회수·에너지회수 시스템, 신축 건물의 라돈 차단설계 등 이미 알려진 저감수단을 기후적응 정책과 함께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WHO 역시 건물 환기 개선과 바닥·벽 틈새 차단, 하부 환기 등을 효과적인 라돈 저감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다.이번 연구는 기후적응을 설계할 때 실외의 폭염만이 아니라 실내 환경보건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에너지효율을 높이기 위해 건물을 더 밀폐하거나 냉방 의존도가 높아지는 과정에서 환기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라돈과 같은 실내오염 문제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앞으로는 폭염대응 주거정책과 건물 에너지효율 기준에 라돈 측정과 환기·저감설비를 함께 고려하는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