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 7대 수출기업에 '11년치 외환·해외자회사 자료' 요구 파문

이정윤 발행일 2026-10-06 23:29:30
“우리가 달러 투기꾼입니까”… 11년 치 원장 털린 재계의 한숨
법(法) 뒤에 숨은 ‘먼지털이’… 환율 급락 뒤에 가려진 관치 행정

[데일리환경=안상석 기자]  재정경제부가 지난해 12월 7대 수출기업을 상대로 11년 치에 달하는 외환 거래 및 내부 경영 자료 제출을 요구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6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수영 의원이 공개한 비공개 공문에 따르면, 재경부는 2015년부터 2025년까지의 외화 자산·부채·예금과 부동산·증권 현황을 기업들에 요구했다.
▲25년 11~12월 환율 추이


특히 제출 대상에는 본사뿐 아니라 해외 법인과 자회사까지 포함됐으며, 연도별 외환거래와 환헤지 방식, 외화자산 운용 거버넌스 등 핵심 경영 판단 관련 자료까지 광범위하게 망라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재경부는 해당 공문에 대해 “존재 자체가 비밀”이라며 국회 제출을 거부해 왔다.


“시장 안정이 급박하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해외 법인의 환헤지 전략과 거버넌스 내부 문서까지 11년 치를 탈탈 털어가는 게 과연 정상적인 행정 지도입니까?”

최근 국정감사에서 폭로된 재정경제부의 ‘7대 수출기업 외환자료 징구’ 사태를 접한 한 주요 그룹 고위 재무통(CFO 라인)의 토로는 깊은 피로감과 좌절감을 담고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관료적 권위주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해 말 고환율 국면 속에서 당국은 7대 기업에 공문을 보내 2015년부터 2025년까지의 외화 자산·부채, 부동산, 증권, 심지어 해외 현지 자회사의 자금 운용 거버넌스 자료까지 요구했다.

여기에 김용범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주재 간담회는 정식 공문 한 장 없이 회의 1~3일 전 전화와 텔레그램 메신저로 긴급 통보됐다.

회의장 안에서 기업 임원들은 발언권조차 얻지 못한 채 일방적인 ‘군기 잡기식’ 훈시를 들어야 했다.

 “정상적 환위험 관리를 ‘달러 사재기’ 취급하나”

 기업 재무 관리자들의 시선에서 이번 사태는 단순한 절차적 흠결을 넘어선 ‘기업 경영 자율권의 침해’다. 글로벌 공급망과 원자재 결제, 시설 투자 주기를 고려할 때 기업의 외화 보유는 불확실성에 대비한 정상적 ‘환리스크 헤지(Hedge)’의 일환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마치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시세차익을 노리는 ‘달러 사재기’나 ‘외화 유출’ 프레임으로 몰아붙였다.

한 대기업 재무담당 임원은 “환율 변동기에 해외 자회사가 외화를 묶어두는 것은 현지 결제 대금과 차입금 상환을 위한 필수적 위험 분산”이라며 “정부가 거버넌스와 헤지 기법 같은 고도의 경영상 비밀까지 뒤져보며 ‘당장 환전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순간, 기업의 중장기 자금 운용 계획은 모조리 헝클어진다”고 토로했다.

메신저로 임원을 호출하고 수일 만에 11년 치 원장을 요구하는 식의 비공식적 ‘팔비틀기’는 현장 관리자들에게 극도의 행정적·심리적 과부하를 안겼다.

‘외국환거래법 제20조’ 만능주의가 남긴 상처

재경부는 외국환거래법 제20조의 ‘필요한 보고’ 규정을 방패로 삼는다. 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보고를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그러나 법 조문 어디에도 민간 기업의 10년 치가 넘는 내부 의사결정 체계와 해외 법인 기밀까지 무제한 제출받을 수 있다는 포괄적 영장은 적혀 있지 않다.

정부 개입 이후 일주일 만에 환율이 50원 이상 급락했던 배경에 이 같은 비공개 자료 징구와 일방적 소집이 작동했다면, 이는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안정이 아니라 ‘행정력 동원을 통한 인위적 환율 억누르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책 실패와 거시경제적 구조 문제를 민간 기업의 외환 곳간 쥐어짜기로 땜질하려 했다는 의구심이 남는 이유다.

기업이 관치(官治)의 대상이던 시절은 지났다. 글로벌 시장에서 다국적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국내 수출기업에 지금 필요한 것은 자의적 칼날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정책 환경’이다. 위기 때마다 공문 없는 텔레그램 호출과 먼지털이식 자료 징구로 시장을 길들이려 든다면, 기업의 경쟁력뿐 아니라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 역시 함께 무너져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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