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조경태 의원(사진)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당시 전체 유선망의 26%에 달하던 구리선은 3년이 지난 현재 고작 1.3%(3,604톤) 줄어드는 데 그쳤다. 여전히 전국 지하 관로에는 27만 톤이 넘는 구리선이 그대로 묻혀 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정부와 KT의 해명이다. 당초 ‘구리선 26%를 2026년까지 100% 광케이블로 전환하겠다’고 공언해 놓고, 목표 연도가 되자 “구리선을 0%로 철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기존 음성전화망(PSTN)을 광대역통합망(BcN) 방식으로 바꾼다는 의미였다”고 말을 바꿨다.
국민과 시장을 기만한 ‘통계 마술’이자 말장난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든 대목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본질은 정책 달성률 왜곡에만 그치지 않는다. 진짜 핵심은 지난 14년간 사라진 ‘18만 톤의 구리’와 그 매각 대금의 불투명한 행방에 있다.
내부선 “물리적 철거 현실적 불가능”…당국은 침묵으로 일관
이와 관련해 KT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통신업계 핵심 관계자의 시각은 정부 발표와는 궤가 전혀 달랐다.
KT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지하 관로에 매설된 구리선을 전량 회수하는 것은 현장 작업 환경, 도로 굴착 인허가, 천문학적인 철거 비용 때문에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며 “망 고도화 작업은 기존 구리선 통신 서비스를 중단하고 광케이블로 회선을 대체 개통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이지, 땅속 구리선을 전부 파내는 작업이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과기정통부가 실무적인 현실을 모를 리 없는데도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대외적으로 ‘구리선 100% 광전환’이라는 비현실적 구호를 내세워 국민적 오해를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꼬집었다.
결국 주무 부처는 눈앞의 성과 홍보를 위해 기술적 전환(서비스 망 전환)과 물리적 인프라 철거를 의도적으로 뭉뚱그렸고, KT는 이에 편승해 모호한 답변으로 책임을 회피해 온 셈이다.
증발한 18만 톤, 현재 시세로 ‘3조 원대’…매각 대금은 어디로 갔나
문제는 철거가 불가능하다던 구리선 중 이미 적지 않은 물량이 장기간에 걸쳐 회수·매각됐다는 점이다.
KT는 지난 2011년 지하 구리 통신선 규모가 약 45만 톤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2026년 기준 제출된 잔여 중량은 약 27만 3,000톤이다. 단순 계산으로도 14년 사이 약 18만 톤의 구리선이 감소했다.
최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및 전력망 수요 확대로 구리 가격이 급등한 점을 고려하면, 현재 자원가치 기준으로 수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다.
하지만 이 18만 톤이 언제, 누구에게, 얼마에 매각됐는지, 그리고 그 매각 대금이 통신망 고도화나 이용자 편익에 재투자됐는지에 대한 공시나 투명한 기록은 전무하다.
해외 사례를 보면 이러한 불투명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영국의 경우, 민영화된 통신기업 BT의 망 자회사 ‘오픈리치(Openreach)’가 광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리선의 회수 물량과 재활용, 판매 수익 정보를 투명하게 외부에 공개하며 자원 가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국민 세금’으로 깐 기간망, 사유화된 자원 수익 철저히 검증해야
KT의 유선 통신망은 과거 체신부와 한국전기통신공사 시절, 국민의 혈세와 공공 재원으로 구축된 명백한 ‘국가 기간통신망’이다. 비록 민영화 과정을 거쳤다 하더라도 지하 관로와 통신선에 내재된 자산 가치의 공공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정부는 이제라도 ‘100% 달성’이라는 식의 낯부끄러운 면피성 해명을 멈춰야 한다. 과기정통부는 현장 검증을 통해 실제 망 전환 상태를 전수조사하고, 지난 14년간 철거·매각된 18만 톤의 구리선 처리 내역과 수익 사용처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AI 시대에 구리는 단순한 통신 자재가 아니라 국가 인프라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전략 광물이다. 지하에 묻힌 27만 톤의 잔여 구리 역시 향후 회수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가치가 통신 안전망 구축과 미래 인프라 고도화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환원될 수 있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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