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가 실질적인 정주 여건을 외면한 채 '공급 물량 채우기'식 탁상행정에 매몰되면서 막대한 국가 재정과 주거복지 안전망이 동시에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정희용 의원(경북 고령·성주·칠곡)이 LH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본지가 단독 입수해 분석한 결과, 2026년 가을 기준 전국에서 6개월 이상 비어 있는 장기 미임대 공공주택은 총 4만 3,326호에 달했다. 9월 기준 건설임대주택이 3만 5,717호, 8월 기준 매입임대주택이 7,609호다.
전국 평균 공가율은 3.7%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세부 내역을 뜯어보면 지역 간 불균형은 심각한 수준을 넘어 파탄 직전에 가깝다.
서울 0.8% vs 대구·경북 5.6%… 극단으로 치닫는 수급 양극화
가장 뼈아픈 대목은 지역 간 수급 격차다. 서울의 경우 건설임대 공가율 0.7%, 매입임대 1.0%를 합쳐 전체 공가율이 0.8%에 불과했다. 빈집이 거의 없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공급 가뭄' 상태다.
반면 지방으로 눈을 돌리면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대구·경북의 평균 공가율은 5.6%로 서울의 무려 7배에 달했다. 대구의 건설임대 공가율은 6.1%, 경북은 5.5%였으며 매입임대 역시 대구 5.1%, 경북 3.8%로 치솟았다.
수도권(2.6%)과 비수도권(4.7%)의 격차도 1.8배에 달한다. 특히 충남은 건설임대 10.6%, 매입임대 19.5%로 공가율이 두 자릿수를 훌쩍 넘었고, 세종 역시 건설임대 10.2%, 매입임대 16.5%를 기록했다. 일부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LH가 공급한 집 10채 중 1~2채가 반년 넘게 흉물처럼 방치되고 있다는 의미다.
"소득 잣대 낮춰도 안 들어온다"… 자격 완화 늘렸지만 계약은 54% '곤두박질'
문제는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LH의 처방이 현장에서 완전히 헛돌고 있다는 점이다.
LH는 공가 해소를 위해 소득과 자산 기준을 대폭 낮춘 '입주자격 완화 모집'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실적표는 초라하다 못해 참담하다. 최근 5년간 미임대주택 입주자격 완화 모집 단지는 2022년 204개에서 2025년 282개로 38.2% 증가했다. 문턱을 낮춰 공고를 낸 아파트가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계약 성사 건수는 2022년 1만 4,571호에서 2025년 6,719호로 53.9%나 급감했다. 완화 공고를 100개 단지 가까이 더 냈음에도 입주 계약은 반 토막 이하로 떨어진 셈이다. 입주 요건을 아무리 풀어줘도 '살 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 아파트에는 국민들이 들어가길 거부한다는 냉혹한 방증이다.
LH가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기관공급(중소기업, 대학교, 군부대 등) 역시 2025년부터 올해 7월까지 19개월 동안 3,361호를 소화하는 데 그쳤다. 장기 공가 건설임대(3만 5,717호)의 9.4%에 불과한 수치다. 기관별로는 지자체·공공기관이 1,315호(39%)로 가장 많았고 군 초급간부 984호(29%), 중소기업 897호(27%), 대학교 165호(5%) 순이었다. 미봉책 수준의 땜질식 배정으로는 쏟아지는 빈집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다.
"수요 감소 현실적 한계… 지자체 협업과 직주근접 재배치 총력"
이 같은 지적에 대해 LH 측은 지방의 급격한 인구 감소와 생활권 이동이라는 거시적 변화 속에서 겪는 구조적 고충을 토로한다.
LH 내부 관계자는 "지방 산업단지 침체와 청년층의 수도권 유출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존 계획에 따라 준공된 지방 단지들에서 미임대가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단순히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법령 범위 내에서 소득·자산 요건을 최대한 유연하게 열어두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민간 수요가 전무한 외곽 단지의 경우 중소기업 기숙사나 군 초급간부, 대학생 주거 지원 등 기관 연계 공급을 다각도로 타진하고 있다"며 "향후 신규 사업지 선정 시에는 지역 수요 조사를 한층 강화하고, 지자체와 협의해 장기 공가 물량을 복지·행정 복합공간으로 전환하는 등 공가율을 낮추기 위한 현실적 대안을 모색 중"이라고 덧붙였다.
"아무리 싸도 감옥 같아… '숫자' 대신 '사람' 보라"
그러나 현장 수요자들의 체감 온도는 차갑기만 하다. 임대주택을 찾고 있는 실수요자들은 LH가 '살 수 있는 집'이 아닌 '행정 통계상 집'만 찍어내고 있다고 꼬집는다.
경북의 한 혁신도시 외곽 단지를 둘러봤다는 입주 희망자 D씨(32)는 "보증금과 월세가 저렴해 혹해서 가봤지만, 대중교통 배차 간격이 1시간이 넘고 근처에 편의점이나 병원은커녕 가로등조차 부실했다"며 "차가 없으면 출퇴근 자체가 불가능한 외딴섬에 소득 기준을 풀어준다고 선뜻 들어갈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지방 청년들이 살기 싫어서 안 들어가는 게 아니라, 들어가면 생계 유지가 안 되는 환경이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도권의 역차별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른다. 서울에서 3년째 행복주택 청약을 넣고 있다는 직장인 E씨(29)는 "서울은 가점 만점자도 추첨으로 떨어지고 대기자만 수천 명인데, 지방에서는 4만 채가 썩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허탈하다"며 "필요한 곳에는 짓지 않고 엉뚱한 땅에만 아파트를 올린 뒤 '혜택을 줬는데 왜 안 들어오냐'고 수요자 탓을 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지역 공동화 뇌관 될라"… 공급 중심에서 '수요 밀착형 관리'로 패러다임 바꿔야
공공임대주택의 장기 공가는 단순한 주택 관리 실패를 넘어선다. 4만 3천 채가 넘는 빈집은 LH의 임대료 수익 결손과 관리비 대납으로 이어져 심각한 재무 건전성 악화를 부른다. 더 나아가 비어 있는 대규모 단지는 주변 상권을 고사시키고 슬럼화를 유발해 지방 소멸과 공동화를 부추기는 악순환의 뇌관으로 작용한다.
정희용 의원은 공급자 중심의 낡은 관성을 깨뜨려야 한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정 의원은 "수도권 청년과 서민들은 살 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데, 지방에서는 수만 호의 멀쩡한 집이 비어가고 있다"며 "지방 공가 문제는 LH의 재정 적자를 넘어 지역 공동화를 가속하는 중대한 사회적 위기"라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해법으로 과감한 패러다임 전환을 주문했다. 그는 "수요가 고갈된 지방 단지는 1~2년씩 방치한 뒤 늑장 대처할 게 아니라, 최초 모집 직후부터 소득·총자산 요건 배제를 포함해 완화 시점을 획기적으로 앞당겨야 한다"며 "기업·대학·군부대 등 기관 수요를 지방 단지에 최우선 배정하고, 고령자·다자녀 등 미달이 반복되는 특정 배정 유형은 일반 실수요자 유형으로 전면 전환하는 등 공격적이고 선제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공임대 정책의 성공은 '몇만 채를 지었느냐'는 착공 실적이 아니라, '주거 취약계층이 얼마나 안전하고 쾌적하게 안착했느냐'로 평가받아야 한다.
4만 3,000채의 빈집은 '공급 호수'라는 실적주의에 매몰된 주택 행정이 낳은 경고등이다.
정부와 LH는 이제라도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지역별 실수요에 기반한 정밀한 공급·관리 체계로 전면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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