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협약’ 둔갑시켜 10년간 3,880억 원대 수의계약… 허위 보고·은폐 의혹 일파만파

이정윤 발행일 2026-10-13 13:38:37
사측 내부 법률자문도 “위법 소지” 결론 냈지만 국회엔 “적법” 거짓 보고
[데일리환경=이정윤 기자]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원전 주변지역 지원사업을 경쟁입찰 대신 ‘협약’ 형식으로 편법 집행하고, 이를 국회에 거짓 보고하며 사건을 축소·은폐
하려 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된 사업 규모만 최근 10년간 약 3,900억 원에 달해, 특정 기관과의 유착 및 방만 재정 운영 의혹에 대한 전면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1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무소속 최혁진 의원(사진)은 한수원이 '2026년 원전 주변지역 사회적경제기업 육성 지원사업'(사업비 5억 7,500만 원)을 집행하며 국가계약법상 요구되는 경쟁입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의적 협약 방식으로 수행기관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취재 결과, 당시 사업 선정 과정은 통상적인 공공기관 계약 기준을 완전히 벗어난 채 진행됐다. 평가위원 과반이 특정 외부 기관 직원으로 채워졌으며, 내부 감사부서의 필수 사전 절차인 일상감사나 제안서 평가 입회 절차는 일체 생략됐다.


특히 한수원의 이중적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당초 한수원은 국회에 관련 법령과 사규에 따른 ‘적법한 계약’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한수원 법규송무부는 해당 사업이 국가계약법 적용 대상이며 경쟁입찰을 거쳐야 한다는 취지의 법률자문 의견을 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자문기관인 정부법무공단 역시 ‘지원사업’이라는 명목만으로 국가계약법 적용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회신했다. 사내·외 법률 검토를 통해 절차적 하자를 사전에 인지하고도 국회에는 상반된 허위 답변을 제출한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칙 계약이 단발성 사고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 의원실 분석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한수원이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사업 명목으로 유사하게 처리한 건수는 총 4,115건, 금액으로는 3,887억 원에 달한다. 수천억 원대의 혈세가 경쟁과 감시 장치 없는 사각지대에서 사실상 수의계약 형태로 배분돼 왔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사후 대처 역시 조직적 은폐 정황을 짙게 풍긴다. 한수원 부사장과 소관 본부장은 국회 측에 ▲감사원 사전컨설팅 의뢰 ▲자체 감사 착수 ▲관련자 엄중 문책을 공언했다.

그러나 실제 감사원 컨설팅은 접수조차 되지 않았으며, 내부 감사는 ‘담당 직원의 수기 요청서 미접수’라는 상식 밖의 이유로 개시되지 않았다. 문제의 실무자는 직무 배제 없이 올해 동일 사업의 실무를 계속 총괄하고 있는 상태다.

최혁진 의원은 “공공기관 고위직의 공식 약속이 이토록 무력화된 것은 단순 실무진의 일탈을 넘어 기관 수뇌부 차원의 묵인과 비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3,887억 원 집행 전수조사와 감사원 정식 감사 청구를 통해 자금 집행의 적정성을 규명하고 지휘라인의 책임을 가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가치’ 뒤에 숨은 불법 수의계약 카르텔

이번 사안의 본질은 단순한 계약 서식의 오류나 실무진의 부주의가 아니다. 공공기관의 회계 질서를 규율하는 ‘국가계약법’이라는 기본 원칙을 행정 편의주의와 부패 방조로 무력화한 전형적인 구조적 비리 의혹이다.

원전 주변지역 지원사업은 입지 갈등을 완화하고 지역 상생을 도모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과 전력기금이 투입되는 정책 사업이다. 사업의 목적이 정당할수록 절차적 투명성은 더욱 엄격해야 한다. 하지만 한수원은 ‘협약’이라는 자의적 포장지를 씌워 경쟁입찰을 건너뛰었고, 특정 기관 중심의 평가위원 구성과 일상감사 패싱으로 최소한의 검증 장치마저 무력화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문제를 대하는 조직의 태도다. 불법 가능성을 지적한 사내 법무팀 의견을 묵살한 채 국회에는 ‘적법’이라 거짓 보고했고, 고위 임원이 약속한 감사와 문책은 서류 한 장 남지 않은 채 증발했다.

비위를 저지른 직원이 동일 사업을 계속 주무르고 있는 현실은, 이 관행이 조직적으로 보호받고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5억 원대 소액 사업’의 꼬리를 자르려다 ‘10년간 3,887억 원’이라는 거대한 몸통이 드러났다. 한수원 자체 쇄신을 기대할 단계를 지났다. 감사원의 즉각적인 전수조사와 수사당국의 엄정한 법적 칼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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