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드는 식량안보… 농지 불법전용 3.3만 건 넘는데 고발은 고작 5%

이정윤 발행일 2026-10-09 19:34:00
국가의 핵심 안보 자산인 농지가 무단 가설건축물과 야적장 등으로 무분별하게 잠식당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적발된 불법전용 사례만 3만 3천 건을 넘어섰지만, 사법당국 고발은 전체의 5%대에 불과해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이 불법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윤준병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2021~2025년 연도별 농지 불법전용 적발 현황’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적발된 불법전용 건수는 총 3만 3,320건에 달했다.
▲2021~2025년까지 연도별 농지 불법전용 유형별 농지 불법전용 적발 현황


연도별로는 2021년 4,788건에서 2023년 9,798건으로 급증한 뒤 매년 6천~7천 건 안팎의 불법 행위가 지속됐다. 특히 개발 압력이 높은 수도권과 근교 지역의 훼손이 두드러졌다.


경기도가 7,847건(23.6%)으로 가장 많았고, 강원 5,758건(17.3%), 경남 4,007건(12.0%), 충북 3,501건(10.5%), 인천 2,862건(8.6%) 순이었다.

▲2021~2025년까지 연도별, 지역별 농지 불법전용 적발 현황

위반 유형을 뜯어보면 생산 기반 파괴가 노골적이다. 논밭 위에 창고나 직원 숙소, 사무실 등을 무단 설치하는 ‘가설건축물 축조’가 1만 2,019건(36.1%)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건축자재 야적(13.9%), 불법 주차장 조성(8.3%)이 뒤를 이었으며, 버섯재배사·축사·비닐하우스 등으로 위장해 공장·창고로 전용한 사례도 1,968건(5.9%)에 달했다.

문제는 적발 이후의 행정조치가 면죄부에 가깝다는 점이다. 전체 조치 3만 3,320건 중 ‘원상회복명령’이 3만 131건(90.4%)으로 압도적이었으나, 형사 책임을 묻는 ‘사법당국 고발’은 1,885건(5.7%)에 불과했다.

행정청의 처분이 시정 명령 수준에 머무르다 보니 불법 행위자가 이행강제금을 물며 버티는 ‘배 째라 식’ 영업이 관행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식량 주권’ 위기 속, 농지 관리는 여전히 행정편의주의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사료용을 포함할 때 20% 안팎에 불과하다. 기후위기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충격이 일상화된 시점에서 농지는 단순한 부동산이 아닌 국가 존립을 지키는 1차 방어선이다. 그러나 현장의 농지 관리 체계는 이 같은 절박함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식량안보 전문가들은 행정당국의 미온적 처분이 가져올 후폭풍을 경고한다. 한 농업·식량정책 전문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농지 위에 자갈과 콘크리트를 깔고 가설건축물을 세우는 순간 토양의 유기물층과 배수 체계는 완전히 파괴된다”며 “서류상 ‘원상회복명령’을 내려 흙을 다시 덮는다 해도 본래의 비옥도와 생산력을 회복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려 사실상 영구 손실로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기후위기로 경작 가능 면적이 전 세계적으로 줄어드는 국면에서 매년 수천 건의 농지가 편법 개발로 유실되는 것은 식량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처사”라며 “위반 수익을 압도하는 징벌적 과징금과 강제 퇴거 등 강력한 법적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한 ‘일단 짓고 보자’는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윤준병 의원 역시 “지자체의 제한된 인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드론과 AI 기반의 농지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며 “상습적·악의적 불법전용 행위자에 대해서는 고발 조치를 의무화하고 강력한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등 농지 보전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진정 식량안보를 국가 핵심 과제로 여긴다면, 훼손된 농지를 보고도 행정명령 한 장 쥐여주고 돌아서는 무기력한 단속 관행부터 손질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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