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엔 웃돈·대체탄 특혜, 중견사엔 소송 폭탄'… 서부·남부발전의 기이한 '

이정윤 발행일 2026-10-19 10:08:09
▲이철규 의원
[데일리환경=이정윤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촉발된 대(對)러시아 석탄 제재 국면에서 발전 공기업들의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적 행정'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남동발전과 민간 시멘트사들이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 등 공급망 위기를 '불가항력'으로 공식 인정한 것과 달리,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남부발전은 동일한 리스크를 두고 공급사 규모에 따라 정반대의 잣대를 들이댄 정황이 드러났다.

대기업 계열사에는 저질탄 반입에도 수억 원대 웃돈을 얹어주며 신속히 대체탄을 허용한 반면, 중견 공급사에는 계약서상 절차를 무시한 채 선(先)구매 후 거액의 소송을 거는 등 '표적 압박'을 가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기업 계열엔 '이틀 만에 변경·3억 웃돈'… 중견사엔 '선계약 후 80억 중재'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이철규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서부발전의 차별적 처리는 극명했다. 지난해 7월 대기업 계열 공급사가 해외 송금 제한 등을 이유로 불가항력을 주장하자, 서부발전은 단 이틀 만에 이를 받아들이고 대체탄 납품 계약으로 변경해 줬다.

더 큰 문제는 정산 과정에서 불거졌다. 해당 대기업 계열사가 1항차로 들여온 러시아산 유연탄은 하역항 검수 결과 5,695kcal/kg으로, 선적항 제출 수치(5,972kcal/kg)보다 277kcal/kg이나 떨어지는 기준 미달 탄이었다.

통상적인 바이어·엄파이어 재검수 절차를 거쳐 약 1억 2,853만 원을 감액했어야 마땅하지만, 서부발전은 선적항 기준을 적용해 오히려 약 1억 7,226만 원의 웃돈을 정산했다. 회사 측이 스스로 떠안은 손실만 약 3억 원에 달한다.

반면 과거 '경쟁 확대 모범사례'로 치켜세웠던 국내 중견 공급사의 처우는 판이했다. 해당 중견사가 주거래은행의 송금 불가 공문, 대형 로펌의 제재 위험 경고 의견서, 글로벌 컨설팅사의 차명 지배 실사 보고서까지 갖춰 불가항력을 소명했으나 서부발전은 이를 일축했다.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부발전은 중견사에 대체탄을 요청(2025년 9월 17일)하기도 전인 9월 9일, 이미 특정 업체 2곳과 기존 단가(톤당 85.8달러)보다 10달러 가까이 비싼 94.5~95.5달러에 총 40만 톤의 대체 물량을 계약했다. "대체탄 공급이 불가능할 때 비로소 공개시장에서 조달한다"는 계약서 제11조를 정면으로 거스른 셈이다.

이후 서부발전은 입찰 규격에 없던 점결성 기준과 사실상 발급이 불가능한 광산 라이선스 번호를 요구하며 시간을 끌다, 지난 9월 대한상사중재원에 80억 원대 손해배상 중재를 신청했다.

통관 마친 물량 스스로 취소하고 소송 건 남부발전

남부발전의 처리 방식 역시 석연치 않다. 문제의 중견사는 해당 분쟁 중에도 남부발전의 수급 요청에 응해 별도 계약분(10만 톤)을 정상 납품하는 등 신의성실 원칙을 지켰다.

그러나 남부발전은 공급사가 불가항력을 공식 통보(2025년 9월 4일)하기 이틀 전인 9월 2일, 이미 타 업체와 기존 단가보다 비싼 톤당 89.2달러에 대체탄 13만 3,219톤을 긴급 선구매했다.

더욱 기이한 대목은 물품의 소유권 처리다. 당시 중견사의 기존 물량은 CFR 조건에 따라 선적 완료 후 남부발전 명의로 세관 통관 신고까지 마쳐 소유권이 이미 남부발전에 귀속된 상태였다. 불가항력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면 그대로 입고해 발전용으로 사용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남부발전은 "공급사의 불가항력으로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사유를 들어 통관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물량을 묶어버린 뒤, 지난 7월 법원에 비싸게 산 대체탄 차액을 물어내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발전사 관계자 "전력 수급 우선 불가피" vs 업계 "특정 카르텔 유착 의혹"

이 같은 행정 처리를 두고 발전사 내부와 전력업계의 시각은 팽팽히 엇갈린다.

발전사 실무 관계자는 "러-우 전쟁 장기화와 국제 제재 강화 속에서 발전소 정지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는 전력 공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해명에 나섰다.

이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사 건에 대해 "대체탄 수용을 서두른 것은 당시 전력 피크기를 앞두고 연료 재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경영 판단이었으며, 정산 역시 상호 계약 조건과 무역 관례의 테두리 안에서 연료의 물리적 반입을 우선시해 매듭지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중견사 건에 대해서는 "공급 불안 징후가 명백한 상황에서 공식 선언만을 기다리다간 연료 조달 타이밍을 놓쳐 대규모 전력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어 선제적 조달이 불가피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발전업계 안팎의 평가는 냉담하다. 한 에너지 자원 무역 전문가는 "남동발전이나 시멘트 제조사들이 법률 검토를 거쳐 동일 사안을 불가항력으로 종결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대기업의 규격 미달 저질탄에는 샘플 재검조차 없이 웃돈을 얹어주면서, 공인 기관 보고서까지 제출한 중견사에는 요구하지 않던 사후 조건을 들이밀며 거액의 소송을 거는 것은 '전력 수급'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명백한 갑질"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대체탄 공식 요구 전 특정 업체와 고가 선계약을 맺은 정황은 발전 공기업 내 특정 공급 카르텔과의 결탁 없이는 설명하기 힘들다"며 "공공기관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건실한 중견 공급사를 고사시키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공기업의 책무 팽개친 '선택적 엄격함'

공기업의 계약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형평성과 투명성이다. 그러나 이번 서부·남부발전의 행보는 대기업에는 한없이 관대하고, 힘없는 중견사에는 한없이 가혹한 '선택적 엄격함'의 전형을 보여준다.

규격에 미달한 탄을 들여온 대기업 계열사에는 수억 원의 공기업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편의를 봐준 반면, 외부 리스크로 정당한 사유를 소명한 중견사에는 선제적 계약 파기와 거액의 중재 신청으로 퇴로를 차단했다.

자체 자정 능력을 상실한 채 빚어진 이번 사태는 일개 공급사와의 계약 분쟁을 넘어 공공 조달 시스템의 신뢰를 무너뜨린 중대 사안이다. 서부발전의 부당 지급분에 대한 즉각적인 배임 혐의 규명과 환수는 물론, 주무 부처인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사법 당국이 발전사 내부의 불투명한 조달 카르텔 전반에 대해 고강도 전수조사에 착수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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