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5.3조 내며 매년 3,200억 묶어둔 과기정통부… ‘기록 없는 결정’이 부른 ICT기금 방만 운용

이정윤 발행일 2026-10-02 10:15:32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관리하는 정보통신진흥기금과 방송통신발전기금(이하 ICT기금)이 최근 6년 새 5조 원이 넘는 빚더미에 올라선 것으로 드러났다. 원금 상환은 단 한 차
례도 이뤄지지 않은 채 이자비용으로만 5,000억 원 이상이 공중에 증발했다.

 

수조 원대 차입 과정에서 공식 결재 문서조차 남기지 않고 최고 심의 기구는 ‘이메일 서면 결의’로 전락시키는 등 공공기금 관리의 기본 원칙마저 훼손됐다는 지적이 거세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혁진 의원(사진)이 과기정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까지 외부 차입이 전혀 없던 ICT기금은 2020년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 차입을 시작한 이후 부채 규모가 5조 2,976억 원까지 급증했다. 이 기간 지출된 이자만 5,204억 원에 달한다.

 

과기정통부 측은 "2020년 당시 국가적 위기 극복을 위한 범정부 정책인 '한국판 뉴딜' 관련 디지털 뉴딜 사업비를 신속히 충당하기 위해 외부 차입이 불가피했다"며 "공자기금 차입은 관련 절차를 거친 정책적 재원 조달 방식"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행정 편의주의적 집행은 기금 본래의 목적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가재정법 제5조는 기금을 특정 목적을 위해서만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정보통신산업 진흥법 역시 R&D·표준화·인력 양성 등으로 용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정부 일반회계로 감당해야 할 정책 과제를 특정 목적 기금에 떠넘겨 빚으로 메운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의사결정의 불투명성과 내부 통제 장치의 형해화다. 5조 원이 넘는 차입 운용 계획을 수립하면서 공식 결재 문서를 남기지 않은 채 차관에게 '구두 보고'로 갈음한 사실이 확인됐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통상적인 기금운용계획 수립과 보고 과정에서 전례를 따랐던 행정 관행"이라고 설명했으나,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정책 실명제와 사후 책임 소재를 스스로 지워버렸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기금 운용을 감시·견제해야 할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심의회 역시 '거수기'에 그쳤다. 2017년 이후 열린 56차례 심의 중 대면 회의는 단 1회에 불과했고, 2020년 첫 차입 결정을 포함한 55차례(98.2%)가 이메일 서면 결의로 통과됐다. 5조 원대 재정적 결정을 내리면서 위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심도 있게 격론을 벌인 적이 사실상 없었던 것이다.

 

비정상적인 자금 운용 행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과기정통부는 막대한 이자를 물어가며 빚을 끌어오는 와중에도, 매년 평균 3,200억 원에 달하는 기금을 본래 사업에 쓰지 않고 금융상품에 묶어뒀다. 이는 연간 사업비의 약 20%에 육박하는 규모다.

 

더욱이 이 여유자금의 상당액은 원리금 보장 상품이 아닌 원금 손실 위험이 있는 주식형 상품에까지 투자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손으로는 고금리 빚을 내고 다른 손으로는 여유자금을 쌓아두며 위험 자산에 베팅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이어진 셈이다.

복권기금 등 여타 공공기금과 달리 공적 부담금으로 조성되는 ICT기금에 대한 성과평가나 사회적 가치 평가는 전무한 실정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여유자금 운용은 유동성 확보와 기금 자산의 수익성 제고를 위해 자산운용 지침 범위 내에서 집행된 것"이라며 "지적된 절차상 미비점과 여유자금 운용 규모의 적정성에 대해서는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단순한 자산 배분의 실책이나 실무 관행의 문제를 넘어섰다. '기록 없는 밀실 결정', '형식적 심의를 통한 견제 무력화', '목적 외 차입과 방만한 자금 유보'가 결합된 총체적 재정 규율 붕괴에 가깝다.

국민과 산업계의 부담금으로 운영되는 ICT기금이 부처의 '재정 쌈짓돈'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감사원 감사를 통한 책임자 문책과 함께, 기금 운용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불가피해 보인다.

 
기금운용계획이 공식 결재문서 없이 차관에게 구두로만 보고되었다. 공공기록물법상 공식 등록·결재를 거치지 않고 수조 원대 차입 결정을 구두 보고로 수용·승인한 당시 차관이 1차적인 지휘·감독 책임자다.



구두 보고를 주고받으며 기록을 누락한 당시 과기정통부 장관·차관 및 기금 담당 실·국장 라인이 공공기록물법 위반과 부실 운용의 직접적 책임자이며, 최 의원실이 "공공기록물법 위반 책임자 규명과 감사원 감사"를 요구한 핵심 대상 역시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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