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한 번 안 겪어본 지휘관… 현장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이정윤 발행일 2026-11-06 22:59:54
 
[데일리환경=이정윤 기자]재난 현장의 성패는 찰나의 판단에 갈린다. 짙은 연기 속에서 대원의 진입 여부를 결정하고, 붕괴 위험 직전의 건물에서 퇴각 명령을 내리는 힘은 매뉴얼 책자가 아닌 수많은 현장에서 체득한 감각과 경험에서 나온다.

지휘관의 오판은 곧 대원의 목숨이자 시민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서울 소방의 지휘부 지형도를 들여다보면 과연 이 기본 원칙이 작동하고 있는지 깊은 의문이 든다.

서울시의회 강신욱 의원이 공개한 행정사무감사 자료는 묵직한 충격을 준다. 고위 간부인 소방준감 현원 6명 중 5명이 간부후보생 출신이며, 이들의 화재·구조·구급 실무 경력은 전무한 ‘0개월’이었다.


일선 소방서장급인 소방정 역시 33명 중 22명(66.7%)이 간부후보생 출신으로, 서류상 현장 경력은 평균 8년여에 달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상황실 근무나 지휘선상에 머물렀다. 직접 호스를 잡고 불길로 뛰어들거나 들것을 메본 경험이 없는 지휘관들이 서울의 재난 컨트롤타워를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상명하복'에 갇힌 피라미드… 하위직의 꺾인 사기

현장 경험의 결핍보다 심각한 것은 조직 내부의 심리적 괴리다. 일선의 화재·구조 대원들과 장기간 참혹한 현장에 노출된 구급대원들은 번아웃과 격무를 호소하지만, 정작 지휘부는 이들의 고통을 피부로 공감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 불합리한 승진 구조는 하위직 대원들의 사기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서울시 소방 정원은 수년간 꾸준히 늘어났지만, 정원 확대의 열매는 소방령·소방위 등 상위 직급에 편중됐다.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소방교·소방장 등 하위직 대원들은 공정한 심사승진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한 채 기계적인 ‘근속 승진’ 연수만 채우는 처지다. 땀 흘린 만큼 보상받지 못하고, 특정 출신들만 고속 승진 코스를 밟는 조직에서 헌신과 책임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역 특수성 지운 인사 교류, 누구를 위한 행정인가

이러한 기형적 인사 적체 속에서 추진되는 소방서장급 전국 단위 인사 교류 역시 탁상행정의 위험을 안고 있다. 서울은 초고층 랜드마크, 복잡한 지하연계 복합건축물, 미로 같은 노후 주택가가 밀집해 특수한 재난 대응 전략과 지리적 숙련도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곳이다.

지역의 골목 하나, 건물의 취약점 하나까지 꿰뚫고 있어야 할 지휘관을 전국 순환 배치의 틀에 맞춰 흔들어놓는다면, 비상 상황 시 그 혼선은 온전히 일선 대원과 시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소방 조직이 국민에게 가장 신뢰받는 기관으로 꼽히는 이유는 제복 뒤에 새겨진 현장의 희생 덕분이다. 그 신뢰를 지키는 출발점은 책상이 아닌 현장 중심의 인사 혁신이어야 한다. 경험 없는 지휘관, 꽉 막힌 하위직 승진로, 맹목적인 순환보직을 방치한 채 ‘선진 소방’을 외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지휘관의 권위는 계급장이 아니라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대원들의 신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서울소방재난본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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