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지하철 에스컬레이터 118건 장기 중단…최장 297일, 시민 안전은 뒷전인가

이정윤 발행일 2026-10-28 10:53:31
5,965대 중 950대 사용 20년 넘어…코레일 최근 5년간 고장 3,373건

▲ 김남근 의원

[데일리환경=이정윤 기자]철도역과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 고장으로 한 달 이상 운행이 중단된 사례가 118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시설은 무려 297일 동안 운행을 멈췄다. 시민들의 일상적인 이동을 책임지는 대중교통시설에서 장기간 운행중단이 반복되고 있지만, 노후 설비 교체와 부품 공급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에스컬레이터 고장이 단순한 이용 불편을 넘어 인명피해로까지 이어진 사례가 확인되면서 철도 운영기관의 예방정비와 안전관리체계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남근 의원(사진)이 한국철도공사와 서울교통공사, 서울 지하철 9호선 1단계, 한국공항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5개 기관·노선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 에스컬레이터 5,965대 가운데 20년 이상 사용한 설비는 950대로 15.9%를 차지했다.


장기간 운행이 중단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철도·지하철 에스컬레이터 고장·장기 운행중단 현황
 

30일 이상 운행을 멈춘 사례는 한국철도공사 68건, 서울교통공사 10건, 서울 지하철 9호선 1단계 40건 등 모두 118건으로 집계됐다.

가장 오랫동안 운행이 중단된 사례는 서울역에서 발생한 297일이다. 해당 시설은 지반침하에 따른 보강공사로 운행이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장기 운행중단 사례에는 단순 고장뿐 아니라 보강공사와 노후 설비 교체 등이 포함돼 있어 중단 원인별 구분이 필요하다.

문제는 반복적인 고장이 시민 안전을 직접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철도공사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6년 9월까지 에스컬레이터 고장은 총 3,373건 발생했다.

2023년 6월에는 수내역에서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하는 사고가 발생해 이용객 14명이 다쳤다.

코레일은 당시 사고 원인으로 구동 감속기 내부 연결축의 피로파괴와 역주행 방지장치 미작동을 제시했다.

에스컬레이터의 주요 부품과 안전장치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다수의 이용객이 동시에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고다.

시민 불편 넘어 이동권 문제…장기 운행중단 대책은

에스컬레이터는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다. 고령자와 임산부, 무거운 짐을 소지한 승객 등 계단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에게는 중요한 이동시설이다.

특히 출퇴근 시간대 이용객이 집중되는 철도역에서 에스컬레이터가 장기간 멈춰 설 경우 시민 불편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용객 입장에서는 고장 발생 자체도 문제지만, 수리 완료 시점을 알기 어렵거나 대체 이동 동선이 충분히 안내되지 않는 상황도 불편을 키우는 요인이다.

에스컬레이터가 수개월 동안 운행을 멈추는 경우 운영기관이 어떤 대체 이동수단을 제공하고, 이용객들에게 수리 일정과 지연 사유를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하는지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고장 이후의 신속한 수리뿐 아니라 사고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철저한 예방정비다.

중국산 설비 87.5%…해외 부품 조달에 수리 지연

장기 운행중단의 또 다른 문제는 부품 공급체계다.

조사 대상 5개 기관·노선의 에스컬레이터 5,965대 가운데 중국에서 제조된 설비는 5,222대로 전체의 87.5%에 달했다.

코레일은 일부 부품을 현장 규격에 맞춰 해외에 주문·제작하는 방식으로 공급받고 있어 보수에 장기간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부산교통공사 역시 설치 후 20년 이상 지난 노후 설비의 주요 부품이 단종되면서 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공급이 지연되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운영기관의 설명을 종합하면 고장 발생 이후 부품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수리가 지연될 수 있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 셈이다.

다만 중국산 설비 비중이 높다는 사실만으로 제품의 안전성이 낮거나 고장률이 높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제조국보다는 설비별 고장 이력과 유지보수 실적, 부품 공급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운영기관 내부에서도 설비를 구매할 당시의 가격뿐 아니라 장기간 안정적으로 부품을 공급받을 수 있는지, 주요 부품 단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등을 함께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히 고장이 반복되는 설비에 대해서는 단순 수리를 계속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안전한지, 전면 교체가 필요한지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공공구매 개선도 필요…국내 제조 기반 확대가 해법 될까

김남근 의원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발주기관의 구매방식 개선과 국내 에스컬레이터 제조·부품 공급 기반 강화를 주문했다.

국내에서는 2024년 현대엘리베이터서비스와 중소 승강기 업체들이 함께 설립한 K-에스컬레이터가 출범했다.

그러나 에스컬레이터는 현재 공사용자재 직접구매 대상품목에 포함돼 있지 않아 공공구매를 통한 국내 중소기업 판로 확대에 제도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 의원은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가 마련할 '공공발주 모범거래기준'에 중소기업 제품 구매 확대 방안을 반영하고, 발주기관별 구매실적과 직접구매 예외 적용 사유를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계부처가 에스컬레이터의 직접구매 대상품목 지정 필요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국내 제품 구매 확대가 곧바로 안전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내 제조업체 역시 제품 품질과 안전성, 부품 공급 능력, 장기 유지보수 역량 등을 객관적으로 검증받아야 한다.

공공기관의 구매정책이 특정 제조국 제품의 배제나 단순한 국산화 실적 확대에 그치지 않고 실제 안전관리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하는 이유다.

사고 이후 대책보다 예방정비가 우선

이번 자료에서 주목할 부분은 에스컬레이터의 노후화 자체보다 반복되는 고장과 장기간 운행중단을 예방할 관리체계가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 여부다.

20년 이상 사용한 설비가 950대에 달하는 만큼 운영기관별 정밀점검 결과와 주요 부품 교체 이력, 반복 고장 발생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역주행 방지장치와 구동장치 등 핵심 안전부품은 사고 발생 시 피해 규모가 커질 수 있어 일반적인 소모품보다 강화된 점검과 관리가 요구된다.

국토교통부도 국가철도공단과 철도·도시철도·공항 운영기관, 지방자치단체 등과 함께 노후 설비 현황과 부품 수급 실태를 점검하고 중장기 교체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김남근 의원은 “에스컬레이터 고장은 시민의 이동 불편을 넘어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라며 “오래된 설비와 주요 안전장치를 제때 점검하고, 고장이 나면 필요한 부품을 신속하게 공급받아 수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공공발주기관은 품질과 유지보수 역량을 갖춘 중소기업 제품의 판로를 넓혀 국내 제조업 경쟁력 강화에 앞장서야 한다”며 정부 차원의 구매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철도와 지하철은 매일 수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필수 교통시설이다. 에스컬레이터 고장을 단순한 시설 유지보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반복 고장 설비에 대한 선제적인 교체와 주요 안전장치 점검, 안정적인 부품 공급체계 확보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공공교통시설의 안전관리는 사고가 발생한 뒤 책임을 따지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고장과 운행중단이 반복되는 원인을 사전에 파악하고 개선하는 예방 중심의 관리체계가 정착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

함께 보면 좋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