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캐롤라이나대 의과대학과 HIV Cure Center 연구진은 ENL, USP7, BRD4가 연결된 숙주 단백질 경로가 HIV의 유전자 활동을 억제하고 잠복 상태를 유지하는 데 관여한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Cell Reports에 게재됐다.
HIV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로 혈액 속 바이러스 증식을 크게 억제할 수 있지만, 감염된 일부 세포 안에 바이러스 유전물질이 잠복 저장소 형태로 남을 수 있다.
이 저장소의 바이러스는 평소 단백질을 거의 만들지 않아 면역계의 공격을 피하고, 치료를 중단하면 다시 증식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저장소를 어떻게 깨우거나 제거할지는 HIV 완치 연구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진은 ENL이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HIV 전사를 촉진하는 단백질이 아니라, 특정 조건에서는 전사를 억제해 잠복을 돕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ENL은 탈유비퀴틴화 효소인 USP7을 끌어들이고, USP7은 BRD4 단백질을 안정화해 HIV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는 경로를 형성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이 연결고리를 ENL·USP7·BRD4 축으로 설명했다.
연구팀은 세포 실험과 단백질 분석, 유전자 조작 및 약리학적 억제 실험을 통해 경로를 확인했다. ENL이나 USP7의 기능을 줄이거나 분해했을 때 잠복 상태의 HIV가 다시 활성화됐다. 이런 현상은 실험실 세포뿐 아니라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받는 HIV 감염인의 휴식기 CD4 양성 T세포와 뇌 면역세포인 미세아교세포에서도 관찰됐다.
연구진은 뇌를 포함한 중추신경계 저장소에도 이 경로가 관여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특히 USP7을 표적으로 삼는 PROTAC 방식의 분자 도구를 사용했을 때 잠복 HIV의 재활성화와 BRD4 단백질 불안정화가 나타났다. PROTAC은 특정 단백질을 세포 안에서 분해하도록 유도하는 연구용 약물 설계 방식이다.
이번 결과는 USP7이나 ENL을 조절하면 잠복 저장소를 흔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연구에 사용된 분자가 환자 치료제로 안전하고 효과적인지는 별도의 전임상·임상시험으로 확인해야 한다.
연구가 제시하는 방향은 이른바 ‘깨우고 제거하기’ 전략과 연결된다. 잠복 바이러스의 유전자 활동을 다시 켜면 감염된 세포를 면역계나 다른 치료 수단이 식별하기 쉬워질 수 있다는 접근이다.
그러나 잠복 HIV를 모두 재활성화하는 것과 재활성화된 감염 세포를 실제로 제거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모든 저장소를 충분히 줄이지 못하면 바이러스가 다시 증식할 수 있고, 정상 세포의 유전자 조절에 영향을 주는 부작용도 검토해야 한다.
이번 연구는 사람의 혈액과 뇌 면역세포에서 얻은 시료를 포함했다는 점에서 세포주에만 의존한 연구보다 한 단계 확장된 근거를 제공한다. 그렇다고 연구 결과가 환자의 몸속 저장소를 제거했다는 뜻은 아니다.
연구진도 발표에서 이 경로를 향후 HIV 완치 연구의 표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으며, 실제 치료법 개발까지는 약물 선택성, 독성, 중추신경계 도달성, 바이러스 재발 억제 여부를 따져야 한다.
국내에서도 HIV 치료는 의사의 처방에 따른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이 기본이며, 이번 연구를 근거로 환자가 임의로 약을 중단하거나 치료를 바꿔서는 안 된다.
이번 성과의 의미는 기존 치료를 대체하는 완치법이 나왔다는 데 있지 않고, 치료 중에도 남을 수 있는 잠복 저장소가 어떤 인간 단백질 경로로 유지되는지 추가로 밝히고 새로운 표적 후보를 제시했다는 데 있다. 후속 동물실험과 임상 연구에서 ENL·USP7·BRD4 경로를 조절하는 접근이 실제로 안전하고 지속적인 저장소 감소로 이어지는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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