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 '떼인 돈' 8조 원 육박… "수출 안전판" 명분 뒤 가려진 채권 관리 부실

이정윤 발행일 2026-10-11 22:58:30
누적 손실 3.8조는 사실상 포기, 4.2조는 미회수 잔액
한국무역보험공사(이하 무보)가 수출 기업 지원 후 제때 회수하지 못해 날
리거나 묶여 있는 채권 규모가 8조 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적 보증을 앞세운 '수출 안전판'이라는 본래 취지 뒤편에서 부실 채권 관리가 한계 수준에 다다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차규근 의원이 무보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6년 8월 기준 무보가 회수를 포기하고 상각·종결 처리한 누적 채권액은 3조 8,112억 원(국내 2조 666억 원, 국외 1조 7,446억 원)에 달했다.

 아직 회수하지 못한 채권 잔액 4조 1,746억 원을 더하면 총 7조 9,858억 원에 이른다.


특히 상각·종결된 누적 손실액은 2022년 말 3조 1,598억 원에서 약 3년 8개월 만에 6,514억 원 급증했다. 장기 미회수 채권의 누적 현황도 심각하다.

현재 미회수 채권 중 10년 이상 방치된 채권만 1,010건, 2조 1,543억 원으로 전체 잔액의 51.6%에 달했다. 사실상 회수 가능성이 희박한 채권이 장부상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대외 리스크 완충 역할… 민간 금융 잣대로만 볼 수 없어"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무역보험공사 관계자는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불가피성을 호소했다.

무보 관계자는 "무역보험은 글로벌 경기 침체, 지정학적 분쟁, 해외 바이어의 돌발 파산 등 민간 금융기관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위험 영역에서 수출 기업을 보호하는 정책적 안전판 역할을 한다"며 "상각 처리된 채권은 시효 만료나 파산 등으로 법적 추심 실효성이 없는 건을 회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며, 미회수 채권 역시 해외 추심 전문기관과 협력해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정책적 리스크 완충 기능을 민간 여신과 동일선상에서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융권 "공적 보증 기대어 사후 관리 손 놓아… '모럴 해저드' 구조적 방치"

반면 금융권의 시각은 냉랭하다.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정책금융일수록 엄격한 사후 관리 시스템이 전제돼야 함에도, '정책 지원'이라는 명분을 방패막이 삼아 부실을 구조적으로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여신관리 담당 관계자는 "10년 이상 미회수 채권이 절반을 넘는다는 것은 사실상 심사 단계의 모니터링과 사후 추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며 "회수 가능성이 극히 낮은 채권을 장기간 털어내지 않고 끌고 가는 것은 재정 건전성을 왜곡시킬 뿐 아니라, 기업과 바이어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 역시 "수출 드라이브 정책도 중요하지만, 손실이 누적되면 결국 국민 혈세와 공공 재정으로 메워야 한다"며 "부실 징후 기업에 대한 사전 스크리닝과 해외 채권 회수 인프라의 전면적인 개편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혈세 먹는 안전판' 전락 막으려면 전면적 쇄신 필요

무역보험이 대한민국 수출 전선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대외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무역 환경에서 공공의 과감한 보증 지원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원의 불가피성'이 '부실 관리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10년 넘게 묶인 채권이 2조 원을 넘고, 손실 확정액이 매년 가파르게 늘어나는 현실은 무보의 리스크 관리 체계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차규근 의원(사진)이 지적했듯, 채권이 장기간 방치되는 원인을 원점에서 재점검하고 부실 사후 관리를 대폭 강화하지 않는다면 '수출 안전판'이라는 공적 자산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혈세 누수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공적 금융의 존재 이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전 심사 고도화와 실효성 있는 회수 시스템 혁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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