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제도의 문은 열렸지만 첫해부터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정부가 대기업 연구소에 연간 120명을 배정하기로 했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천한 필요 인원은 81명에 그쳤다. 전체 정원의 67.5% 수준이다.
14년 만의 제도 부활이라는 상징성 못지않게 실제 AI 인재 확보 정책으로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한 이유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기정통부로부터 제출받은 ‘2027년도 병역지정업체(연구기관) 선정 추천 명부’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LG전자·HD현대로보틱스·삼성메디슨·삼성전자 등 4개 대기업을 전문연구요원 지정 업체로 추천했다.
대상은 이들 기업 산하 연구소 9곳이며 필요 인원은 총 81명이다. 다만 병무청의 최종 선정과 인원 배정 절차가 남아 있어 81명이 그대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14년 만에 다시 열린 대기업 연구소…AI 인재 확보 카드로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이공계 석·박사급 인력이 군 복무 대신 지정된 연구기관에서 일정 기간 연구개발 업무에 종사하도록 하는 병역대체복무제도다.
대기업 신규 배정은 중소기업의 연구개발 인력 확보 등을 이유로 2013년 중단됐다. 정부는 AI 분야 인재 확보 필요성이 커지면서 대기업 연구소에도 다시 전문연구요원을 배정하기로 했다.
병무청은 지난 6월 고시를 통해 2027년 AI 분야 석사과정 전문연구요원 240명 가운데 연간 120명을 대기업 연구소에 배정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제도는 2027년부터 2029년까지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정책 취지는 분명하다. 병역으로 인한 연구 경력 단절을 줄이고 국내 기업의 AI 연구 역량과 인재 확보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AI·반도체·로봇 등 첨단산업을 둘러싼 글로벌 인재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병역 문제로 국내 우수 연구인력이 연구 현장을 떠나거나 해외로 이동하는 것을 줄일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제도가 실제 인재 유출 방지로 이어지는지는 향후 운영 결과를 통해 검증해야 한다. 전문연구요원 배정 확대만으로 연구인력의 국내 정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원 120명인데 추천은 81명…첫해부터 드러난 ‘39명 빈자리’
주목할 대목은 정부가 마련한 대기업 몫 120명이 첫 추천 단계에서부터 채워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기정통부 추천 명부상 필요 인원은 81명으로 정원보다 39명 적다. 신청했지만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추천 단계에서 탈락한 대기업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병무청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이 AI 전문연구요원 지정업체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 5% 이상, 중소기업과 직접 경쟁하지 않는 분야, 객관적인 R&D 성과 입증 등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제도의 취지가 우수 AI 인재를 국내 연구현장에 붙잡아 두는 데 있다면 정원만 확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제 기업과 연구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가 설계돼 있는지까지 살펴봐야 한다.
반대로 대기업의 참여를 늘리기 위해 선정 기준을 지나치게 낮추는 것 역시 신중할 필요가 있다. 병역대체복무라는 제도의 특성상 일반 병역의무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있고, 대기업으로 연구인력이 집중될 경우 중소·중견기업의 연구인력 확보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도 함께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 “규제 완화만이 답 아냐…AI 인재 확보 효과부터 검증해야”
과학기술·인력정책 측면에서 보면 이번 제도의 성패는 ‘몇 명을 대기업에 배정했느냐’보다 실제로 우수 연구인력을 국내에 얼마나 유지시키고 AI 연구개발 성과로 연결했느냐에 따라 판단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 관점에서는 3년간의 한시 운영 기간 동안 참여 기업 수와 충원율뿐 아니라 전문연구요원의 연구 지속률, 복무 이후 국내 연구현장 잔류 여부, 연구성과 등을 함께 평가할 필요가 있다.
또 대기업 선정 기준이 실제 AI 연구 역량을 평가하는 데 적절한지도 검토 대상이다. 특히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율 5% 이상’이라는 일률적인 기준이 업종과 기업 규모에 따른 연구개발 구조의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는지는 정책 시행 과정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다만 요건을 완화할 경우에는 중소기업 연구인력 유출과 병역 형평성 문제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대기업 전문연구요원 확대가 청년 연구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동시에 기존 중소기업 연구인력 지원이라는 제도 목적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년 한시’ 실험대 오른 AI 병역특례…성과 평가 기준부터 분명해야
황정아 의원은 14년 만에 대기업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복원되면서 청년 연구자들이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 인프라에서 병역을 이행할 기회가 다시 마련됐다는 취지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현재 선정 요건이 지나치게 경직돼 제도 효과가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며 인재와 전략기술 확보 측면에서 제도를 보다 폭넓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번 정책의 핵심은 ‘대기업 병역특례 부활’ 자체가 아니다. 14년 만에 다시 열린 제도가 실제 AI 핵심인재의 해외 유출과 연구 경력 단절을 줄이고 국내 연구개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첫해부터 120명 정원 가운데 추천 인원이 81명에 머문 것은 제도 설계와 현장 수요 사이에 간극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정원을 채우기 위해 요건부터 낮추는 방식 역시 해답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2027년부터 2029년까지 3년간의 한시 운영을 단순한 병역특례 확대가 아니라 AI 인재정책의 실증 기간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기업 참여율과 충원율, 연구성과, 복무 후 국내 연구인력 잔류율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제도 확대 또는 조정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14년 만에 열린 문이 AI 인재를 국내에 붙잡는 실질적인 통로가 될지, 제한적인 시범사업에 머물지는 결국 앞으로 3년 동안의 성과가 말해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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