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현수막 속 환한 미소와 힘 있는 구호만으로 한 지역의 미래를 맡길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을까. 유창한 연설과 화려한 경력, 정당의 간판을 걷어낸 뒤에도 그 사람에게 주민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공공의 책임이 남아 있을까.
지방선거를 앞둔 오늘, 170여 년 전에 발표된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을 다시 펼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 위의 얼굴을 바라보던 소년
미국의 어느 평화로운 계곡에는 멀리서 바라보면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는 거대한 바위산이 있었다. 넓은 이마와 깊은 눈, 굳게 다문 입술을 지닌 그 얼굴에는 위엄과 자애로움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큰 바위 얼굴’이라 불렀다.
계곡에는 오래된 전설도 전해졌다. 언젠가 이 마을에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당대의 가장 위대하고 고결한 인물이 태어난다는 이야기였다.
소년 어니스트는 어머니에게서 이 전설을 들은 뒤 날마다 산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는 언젠가 그 고귀한 인물이 나타나 마을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었다. 큰 바위 얼굴은 그에게 단순한 기암괴석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말 없는 스승이었다.
호손은 그 얼굴을 바라보는 일 자체가 하나의 교육이었다고 묘사한다. 어니스트는 학교나 권력의 중심이 아닌 들판과 화롯가에서 일하며 이웃을 돕고, 산의 온화한 표정을 마음에 새기며 성장한다.
인간의 내면을 비춘 작가, 너새니얼 호손
"큰 바위 얼굴"을 쓴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1804~1864)은 "주홍 글자"로 널리 알려진 미국 문학의 대표 작가다. 그는 인간의 죄의식과 위선, 욕망과 양심의 문제를 집요하게 들여다봤다.
"큰 바위 얼굴" 역시 선한 인물이 마침내 등장하는 단순한 우화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은 왜 부자와 권력자, 웅변가를 만날 때마다 그를 위대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지, 한 인간의 진정한 크기는 무엇으로 증명되는지를 묻는다.
작품은 1850년 처음 발표됐다. 호손이 묘사한 큰 바위 얼굴은 미국 뉴햄프셔주 프랑코니아 노치의 실제 바위 지형인 ‘산의 노인(Old Man of the Mountain)’과 연결된다. 이 바위는 2003년 무너졌지만, 호손의 이야기 속 얼굴은 여전히 인간이 닮아야 할 정신의 초상으로 남아 있다.
부자와 장군, 정치인이 차례로 찾아왔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에는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는 사람들이 잇따라 돌아온다.
첫 번째 인물은 막대한 부를 쌓은 개더골드다. 주민들은 그의 재산이라면 마을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어니스트가 본 것은 넉넉하고 자비로운 얼굴이 아니라 돈을 움켜쥐는 데 익숙해진 탐욕의 표정이었다.
두 번째는 전쟁터에서 이름을 떨친 장군 ‘피와 천둥’이다. 그는 강한 결단력과 불굴의 의지를 지녔지만, 큰 바위 얼굴에 깃든 온화한 지혜와 넓은 연민은 갖추지 못했다.
세 번째는 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 유명 정치인이다. 그의 혀는 때로 천둥처럼 울리고 때로 음악처럼 감미로웠다. 그는 옳은 것을 그른 것처럼, 그른 것을 옳은 것처럼 보이게 할 만큼 뛰어난 웅변가였다.
주민들은 깃발을 흔들고 환호하며 그가 예언 속 인물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그의 얼굴에서 높은 목적과 진실한 마음을 발견하지 못한다. 말에는 뜨거운 심장이 있는 듯했지만, 정작 그 안에는 주민과 세상을 향한 깊은 사랑이 없었다.
돈도, 힘도, 말도 그 자체로 위대함의 증거가 될 수 없었다.
어니스트가 큰 바위 얼굴을 닮은 까닭
어니스트는 위대한 인물이 아니었다. 많은 재산도, 군대를 움직이는 권력도, 사람들을 현혹하는 웅변술도 없었다. 그는 평생 고향을 지키며 자신의 몫을 다하고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은 평범한 주민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됐으며, 행동은 오랜 세월 한결같은 삶이 됐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작은 선의가 쌓였고, 그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삶도 조금씩 달라졌다.
어느 날 저녁, 어니스트가 주민들에게 진실과 사랑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한 시인이 그의 얼굴과 산 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외친다.
“보라, 어니스트야말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인물은 금빛 마차를 타고 돌아온 부자도, 군중의 함성을 몰고 온 장군도, 거대한 연설로 사람들을 압도한 정치인도 아니었다. 주민들 곁에서 가장 오래 책임을 다한 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어니스트는 자신이 예언의 주인공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언젠가 자신보다 더 지혜롭고 선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조용히 집으로 돌아간다. 그 겸손까지도 큰 바위 얼굴을 닮아 있었다.
지방선거에서 우리는 어떤 얼굴을 뽑아야 하는가
"큰 바위 얼굴"을 오늘의 지방선거에 비춰 보면 유권자가 살펴야 할 기준도 분명해진다.
지역을 바꿀 사람은 지역을 자신의 정치적 도약대로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 주민의 삶을 자기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무엇을 하겠다”는 공약만큼이나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가”를 살펴야 한다.
지역의 형편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 선거가 없던 시기에도 주민 곁에 있었는지, 반대 의견을 적으로 몰지 않고 들을 줄 아는지, 개발의 이익뿐 아니라 그늘에 놓일 사람까지 헤아리는지도 물어야 한다.
특히 지방자치는 거대한 구호보다 생활의 세밀함이 중요한 정치다. 버스 노선 하나, 무너져가는 골목 하나, 아이를 맡길 돌봄 공간과 노인의 병원길, 청년이 떠나지 않을 일자리와 작은 상인의 생계가 모두 지방정치의 영역이다.
따라서 좋은 후보를 가리는 질문은 의외로 소박할 수 있다.
- 그는 주민에게 약속하기 전에 주민의 말을 들어왔는가.
- 자신의 성과보다 공동체의 변화를 앞세우는가.
- 측근과 지지자뿐 아니라 반대편 주민도 공평하게 대하는가.
- 실패했을 때 남을 탓하지 않고 책임지는가.
- 지역의 미래를 다음 선거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시간으로 바라보는가.
공약집의 문장보다 지난 삶의 궤적이 더 정직한 답을 들려줄 때가 많다.
지역의 반전은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공동체의 품격에서
지역의 반전을 어느 한 사람의 등장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아무리 유능한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더라도 주민이 감시하지 않고 의회가 견제하지 않으며 행정이 투명하지 않다면 변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큰 바위 얼굴"이 남기는 더 깊은 교훈도 여기에 있다. 어니스트는 위대한 인물을 기다리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그가 기다리던 사람을 닮아갔다.
좋은 정치인을 기다리는 시민 역시 좋은 지역사회를 만드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학연과 지연, 정당의 색깔만으로 후보를 판단하지 않고, 공약의 재원과 실현 가능성을 따져 묻고, 당선된 뒤에도 약속의 이행을 살피는 유권자가 많아질 때 지역정치의 얼굴도 달라진다.
산 위의 바위는 멀리서 바라볼 때 하나의 숭고한 얼굴이 됐다.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 다른 돌덩이의 집합에 불과했다. 지역공동체도 다르지 않다. 서로 다른 시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하나의 품격 있는 얼굴이 만들어진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큰 바위 얼굴’은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현수막 사진이 가장 근사한 사람도, 가장 많은 돈과 조직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오래도록 지역을 바라보고, 주민의 아픔을 자신의 일처럼 품으며, 말과 행동 사이의 거리를 좁혀온 사람이다. 그리고 권력을 얻은 뒤에도 자신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믿지 않을 만큼 겸손한 사람이다.
선거가 끝나면 현수막 속 얼굴들은 거리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한 사람의 결정은 예산이 되고, 길이 되고, 학교와 일자리와 복지가 되어 주민의 삶에 오래 남는다.
그래서 투표는 잘 알려진 얼굴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우리 지역이 앞으로 닮아갈 얼굴을 선택하는 일이다.
오늘의 한 줄 평
“큰 인물은 큰소리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는다. 주민 곁에서 살아온 시간이 그의 얼굴을 만든다.”
[책 읽어 주는 기자]
‘책 읽어 주는 기자’는 아직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문학·역사·철학·미술사·음악사 속 이야기와 그 이면을 소개하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시대와 사람,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바쁜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고,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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