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쟁은 종종 ‘급식이 문제인가’, ‘중성화가 해법인가’로 좁혀진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넓히면 이러한 질문 이전에 놓인 전제가 있다. 길고양이는 왜 도시 위를 떠돌게 되었을까?
도시는 오랜 시간 개발을 거치면서 자연 환경을 인공적으로 재편해 왔다. 녹지는 줄었고, 고양이가 스스로 먹이와 물을 구할 수 있는 공간도 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변두리나 농촌에 남아 있던 개체들이 점점 도심으로 넘어왔고, 인간의 생활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길고양이의 존재는 인간이 만든 환경의 결과에 가까운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급식은 단순한 원인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사료로 인해 특정 장소에 고양이가 모이고 그로 인해 번식이나 위생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동시에 이미 먹이와 물을 얻기 어려운 도시 환경에서 나타난 보완적 행동이라는 해석도 있다. 급식은 문제를 만들어냈다기보다 문제의 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중성화 역시 마찬가지다. 자연 상태라면 필요하지 않았을 개입이지만, 도시라는 인공 환경에서는 개체수 조절을 위한 관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고양이를 통제하기 위한 조치라기보다 인간의 개발로 왜곡된 생태 조건을 완화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개입하지 않으면 더 큰 개입이 필요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본질은 ‘개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이미 인간은 도시를 통해 충분히 개입해 왔다. 남은 선택지는 그 개입의 결과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책임질 것인가에 가깝다. 완전한 방치도, 완전한 통제도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길고양이는 야생 동물도, 완전한 반려동물도 아닌 ‘도시 생물’로 남아 있다.
길고양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종종 감정적인 찬반으로 흐르지만, 그 배경에는 도시 환경이라는 구조적인 조건이 자리 잡고 있다. 고양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보다 인간이 만들어 온 도시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더 근본적인 질문일 수 있다. 이 문제를 동물 이슈가 아닌 환경의 문제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진=픽사베이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