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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오

기사
  • [정민오의 시선] 우리는 왜 후각 에티켓, '후각권'에는 무관심할까
    환경

    [정민오의 시선] 우리는 왜 후각 에티켓, '후각권'에는 무관심할까

    소음에는 엄격하면서 향기에는 관대한 사회…공공장소에서 필요한 것은 향수보다 배려
    출근길 지하철 안. 만원 전동차에 겨우 몸을 밀어 넣는 순간, 코를 찌르는 진한 향수 냄새가 퍼진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누군가는 얼굴에 미스트를 뿌린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객석에서는 향수를 분사하거나 향이 강한 핸드크림을 바르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건조한 피부를 위한 작은 습관일지 모르지만, 향은 순식간에 주변으로 번져 나간다. 당사자에게는 잠깐의 습관일 수 있다. 그러나 밀폐된 공간에서는 그 향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함께 맡게 된다.이상하게도 우리는 소음에는 민감하면서 향기에는 유독 관대하다.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거나 음악을 크게 틀면 주변의 눈총을 받는다. 층간소음은 사회적 갈등으로 번지고, 흡연은 장소에 따라 법으로 제한된다. 악취 역시 생활환경 문제로 관리 대상이다.하지만 공공장소에서 강한 향수를 뿌리거나 향이 짙은 핸드크림과 바디미스트를 사용하는 행동은 대부분 '개인의 취향'으로 여겨지고 이를 지적하는 사람이 예민하다는 눈총을 받기도 한다.향수는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제품이다. 그러나 공공장소에서는 그 향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과 같은 공기를 마신다. 결국 개인의 취향이 타인의 감각을 강제로 점유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향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쉽게 간과된다. 하지만 천식이나 알레르기, 화학물질 과민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강한 향은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두통과 어지럼증, 기침, 호흡곤란 등을 호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건강한 사람이라도 밀폐된 공간에서 오래 지속되는 강한 향은 피로감이나 메스꺼움을 느낄 수 있으며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그렇다고 향수를 사용을 금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장소와 상황이다.환기가 잘 되는 야외와 달리 지하철, 버스, 엘리베이터, 병원, 공연장, 영화관, 회의실처럼 많은 사람이 같은 공기를 공유하는 공간에서는 향이 곧 타인에게 전달된다. 향수는 한 번 분사해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공기 중에 머문다.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원하지 않아도 그 향을 함께 맡을 수밖에 없다.생각해보면 이는 소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큰 소리는 귀를 강제로 점유한다. 강한 향은 코를 강제로 점유한다. 둘 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았는데 감각을 침해한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그럼에도 현행 제도는 향수 사용 자체를 규제하지 않는다. 공공장소에서 향수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도 사실상 없다. 결국 법보다 앞서 필요한 것은 시민의식과 배려다.이미 해외에서는 향기를 공공의 배려 차원에서 바라보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 일부 병원과 공공기관에서는 '센트 프리(Scent-Free)' 정책을 운영하며 향수와 향이 강한 제품 사용을 자제하도록 권고한다.일본에서는 향수와 섬유유연제 등 인공 향으로 타인에게 불편을 주는 현상을 뜻하는 '향해(香害)'라는 용어가 사회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일부 병원과 카페, 음식점 등에서는 향수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문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향수를 무조건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많은 사람이 함께 머무는 공간에서는 향의 강도를 한 번 더 생각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자신에게는 만족스러운 향도 누군가에게는 두통과 호흡기 자극을 유발하는 불편한 자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 사회도 이제는 '후각 에티켓'을 넘어 '후각권'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할 때가 됐다. 좋은 향은 가까이에서 은은하게 전해질 때 가장 매력적이다.그동안 우리는 소음을 줄이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을 노력해 왔다. 이제는 후각도 서로 배려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공공장소에서 필요한 것은 가장 강한 향이 아니라 가장 깊은 배려다.정민오 기자 dailyt@naver.com
    2026-07-22 07:43:24 정민오
  • [오뮤지컬] 관람을 넘어 해석으로…진화하는 뮤지컬 관객
    교육

    [오뮤지컬] 관람을 넘어 해석으로…진화하는 뮤지컬 관객

    작품·창작진까지 분석하는 '해석형 관객' 증가 관람 넘어 학습과 토론으로 확장되는 공연 문화
    [오뮤지컬] 과거 뮤지컬 관람이 좋아하는 배우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소비 중심 문화였다면, 최근에는 작품의 구조와 연출, 음악, 서사까지 분석하며 즐기는 관객층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공연을 '보는 것'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관람 문화가 확장되고 있다는 평가다.실제로 세종문화회관 아카데미를 비롯한 주요 공연기관들이 운영한 뮤지컬 인문·교양 강좌에는 직장인과 중장년층 수강생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공연예술 전공자가 아닌 일반 관객들이 작품의 역사와 창작 과정, 음악과 서사 등을 배우기 위해 강의실을 찾은 것이다.세종문화회관이 올 상반기 진행한 세종예술아카데미 '뮤지컬의 탄생' 강좌가 뮤지컬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는 뮤지컬 관객이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작품의 맥락과 창작 과정을 함께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공연계에서는 이를 일회성 교육 프로그램으로 보지 않는다. 강좌를 통해 형성된 관객들의 관심과 해석 문화가 향후 공연 소비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최근 한국 뮤지컬 시장은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 성숙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대형 라이선스 작품 중심의 시장 구조에서 창작 뮤지컬의 비중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으며, 관객들 역시 단순한 흥행 여부보다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와 연출 의도에 주목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특히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브로드웨이 진출과 토니상 수상은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작품성과 완성도가 세계 무대에서도 인정받으면서 관객들 역시 보다 깊이 있는 감상을 시도하게 됐다는 것이다.덕질의 진화…배우에서 창작진으로공연장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공연 전후 로비에서 배우의 캐스팅이나 무대 인사 등이 주요 화제였다면, 최근에는 작품의 해석과 연출 의도, 넘버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관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관람 후기를 넘어 작품 분석과 상징 해석, 창작진 인터뷰를 공유하는 게시물도 꾸준히 늘고 있다.일부 관객들은 같은 작품을 여러 차례 관람하며 배우별 표현의 차이뿐 아니라 연출 변화와 무대 구성, 음악적 디테일까지 비교·분석한다. 이른바 'N차 관람'이 단순한 팬심의 영역을 넘어 작품 연구와 감상의 과정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공연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덕질의 진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특정 배우를 중심으로 공연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작가와 작곡가, 연출가 등 창작진을 따라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실제로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는 "이 작품은 OO 작가가 썼다”, "OO 연출가의 신작이라 기대된다", "OO 음악감독이 참여했다"는 식의 반응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배우 중심의 팬덤 문화가 작품과 창작진 중심으로 확장되면서 공연을 바라보는 시선도 한층 다양해지고 있다.특히 <어쩌면 해피엔딩>의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 콤비는 국내 관객들에게도 대표적인 창작진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창작진 자체가 하나의 흥행 요소이자 마케팅 자산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공연을 관람한 뒤 관련 서적을 찾아보거나 유튜브 시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작품 해석을 공유하는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일부 관객들은 같은 작품을 여러 차례 관람하며 연출 변화와 배우별 해석 차이를 비교하기도 한다.뮤지컬 강좌를 수강한 직장인 고영연씨는 "예전에는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을 중심으로 공연을 선택했다면, 최근에는 작가와 연출가, 작곡가까지 살펴보게 된다"며 "같은 창작진이 만든 작품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지 기대하게 되고, 공연을 보는 기준도 훨씬 넓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이어 "예전에는 공연이 끝나면 감동을 간직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창작진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찾아보게 된다"며 "공연 관람이 하나의 공부이자 취미가 된 느낌"이라고 덧붙였다.복수의 공연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변화가 장기적으로 시장의 질적 성장을 이끌 것으로 보고 있다. 단순한 티켓 판매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관객의 이해도와 안목이 높아질수록 작품의 완성도 역시 함께 상승하는 선순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원장은 "과거에는 배우가 공연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창작진의 이름만으로도 작품을 찾는 관객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이는 한국 뮤지컬 시장이 한 단계 성숙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이어 "좋아하는 배우를 따라 공연장을 찾던 관객이 작가와 작곡가, 연출가의 작품 세계까지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은 공연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의미"라며 "영화에서 감독의 이름을 보고 작품을 선택하듯 뮤지컬에서도 창작진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 같은 변화는 창작진에게도 긍정적인 자극이 되고 시장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공연을 향한 관객들의 호기심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공연을 보고, 토론하고, 해석하고, 다시 공부하는 관객이 늘어날수록 무대 밖의 문화 역시 함께 성장한다.배우의 이름이 티켓 구매의 이유가 되던 시대를 넘어 작품과 창작진,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찾아 나서는 관객들. 공연계는 지금 '관람'을 넘어 '이해'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정민오 기자 dailyt@naver.com
    2026-06-29 16:03:20 정민오
  • [정민오의 시선] 6·25전쟁 75년…총탄이 지나간 산, 숲으로 돌아오기까지
    환경

    [정민오의 시선] 6·25전쟁 75년…총탄이 지나간 산, 숲으로 돌아오기까지

    전쟁이 남긴 환경 황폐화…폐허에서 경제·문화 강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데일리환경=정민오 기자] 1950년 6월 25일 새벽. 한반도는 전쟁의 포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수많은 이들이 가족과 생이별했고 도시와 마을은 폐허가 됐다. 그렇게 시작된 6·25전쟁이 올해로 75주년을 맞았다.그러나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점차 우리 곁을 떠나면서 6·25는 기억의 영역에서도 멀어지고 있다. 교과서 속 한 페이지로 남아가는 전쟁을 오늘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6·25전쟁은 수백만 명의 인명 피해를 남긴 비극이었다. 동시에 한반도 자연환경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전쟁 기간 동안 산림은 군사작전과 폭격, 화재 등으로 크게 훼손됐다. 산 곳곳에는 참호가 파였고 포격과 폭격으로 숲은 사라졌다. 생활 터전을 잃은 피난민들은 생존을 위해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사용했고, 전쟁 직후까지 이어진 극심한 빈곤 역시 산림 훼손을 가속화했다.당시 기록사진을 보면 민둥산에 가까운 산지가 적지 않다. 지금처럼 울창한 숲이 당연했던 시대가 아니었다.전문가들은 한국의 산림 황폐화가 전쟁만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6·25전쟁이 산림 훼손을 더욱 심화시킨 결정적 계기 가운데 하나였다고 평가한다.전쟁이 끝난 뒤에도 국토 복구는 쉽지 않았다. 산업 기반은 무너졌고 도로와 철도, 교량 등 주요 사회기반시설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 국민들의 삶은 생존 자체가 우선인 시기였다.그러나 대한민국은 폐허 속에서 다시 일어섰다.1960~1970년대를 거치며 대대적인 산림녹화사업이 추진됐고, 황폐했던 산들은 점차 푸른 숲을 되찾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의 산림 복원은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한때 전쟁과 가난의 상징이었던 산들은 이제 사계절 아름다운 숲과 등산로, 휴식 공간으로 변했다.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녹색 산림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다.전쟁의 상처는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비무장지대(DMZ)는 분단의 상징이지만 역설적으로 사람의 출입이 제한되면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생태계가 형성된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쟁이 남긴 상처가 또 다른 자연의 공간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6·25전쟁 75주년을 앞두고 찾은 임진각은 분단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철책과 망배단, 끊어진 경의선 철길은 전쟁이 끝난 지 75년이 지났지만 한반도의 상처는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당시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다. 전쟁으로 국토는 폐허가 됐고 산업 기반은 사실상 무너졌다. 그러나 75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를 갖춘 국가로 성장했다. 반도체와 정보기술(IT) 산업을 선도하고 있으며, K-팝과 K-드라마, 영화 등 문화 콘텐츠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물론 오늘의 대한민국을 단순히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던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한 토대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6·25전쟁 75주년을 맞아 우리는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폐허가 된 국토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황폐했던 산을 푸른 숲으로 복원해낸 노력 역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전쟁은 많은 것을 파괴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 상처 위에서 다시 일어섰다.총탄이 지나간 산이 다시 숲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75년. 그 시간은 단순한 복구의 역사가 아니라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미래를 만들어온 대한민국의 역사이기도 하다.정민오 기자 dailyt@naver.com
    2026-06-25 07:21:36 정민오
  • [정민오의 시선] 태극기와 응원봉 사이… 올림픽공원에서 마주한 대한민국
    사건사고

    [정민오의 시선] 태극기와 응원봉 사이… 올림픽공원에서 마주한 대한민국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논란 속 태극기 집회와 K-팝 콘서트가 공존한 올림픽공원
    [데일리환경=정민오 기자] 7일 오후 찾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일대는 묘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한쪽에서는 태극기를 든 시민들이 "투표용지 부족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었고, 길 건너편 공연장 주변에는 K-팝 콘서트를 찾은 팬들이 응원봉을 들고 있었다. 실제 이번 6·3 지방선거에서는 서울 송파구 등 전국 투표소 50여 곳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일부 시민들은 투표를 하지 못하거나 오랜 시간 대기해야 했고, 선거관리위원회는 공식 사과에 나섰다. 이에 송파구에 위치한 올림픽공원 일대에서는 선거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와 부정선거 의혹을 주장하는 집회가 이어졌다.투표 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서울이 33개소, 인천 6개소, 대구 4개소, 부산 3개소, 울산 2개소였다. 이 가운데 투표가 중단되거나 대기를 한 곳은 22개소였다.선관위는 "최근 사전 투표율이 높아지면서 용지가 과다하게 남는 경향이 있어 감축 인쇄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대선과 총선은 선거인 수의 60%, 지방선거는 50%를 하한으로 투표 용지를 축소 인쇄해왔다"고 덧붙였다.선거관리위원회는 공식 사과했고, 책임론 끝에 위원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의 참정권을 앗아간 민주주의 신뢰를 흔든 중대한 문제"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실제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사소한 법을 어겨도 범칙금이나 감옥에 간다"면서, "선관위 고위층만 사퇴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넷과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를 거치며 의혹은 빠르게 증폭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사실과 추정, 경험과 해석의 경계 또한 점점 흐려진다.실제 온라인 공간에서는 "명백한 부정선거"라는 주장과 함께, "조작으로 단정할 사안은 아니지만 행정적으로 있어서는 안 될 중대한 실수"라는 의견이 동시에 충돌하고 있다.행정 실패에 대한 비판은 충분히 가능하다. 오히려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결과' 이전에 '절차에 대한 신뢰'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 날 올림픽공원은 같은 공간, 전혀 다른 군중이 모였다.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현장 모두 결국은 어떤 감정의 에너지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묘하게 닮아 있었다.한 곳은 태극기를 흔들고, 한 곳의 K-팝 팬들은 응원봉을 흔들며 BTS 소속사인 하이브 주관의 '2026 위버스 콘서트 페스티벌(위콘페)' 공연장으로 향했다. 각국 언어가 뒤섞였고, 팬들의 표정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이번 공연은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과 KSPO DOME에서 진행되면서 가족, 친구, 연인 단위 관람객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누군가는 한국의 뮤지션 아티스트를 보기 위해 외국에서 한국을 찾았고, 누군가는 몇 달 치 용돈을 모아 콘서트 티켓을 샀다.태극기를 든 집회 참가자들도 결국은 나라에 대한 불안과 상실감, 억울함 같은 감정으로 모였고, K-팝 팬들 역시 좋아하는 존재를 향한 애정과 연결감, 소속감으로 움직였다.겉으로는 완전히 달라 보이지만, 어쩌면 둘 다 '소신에 따라 움직인 사람들'의 풍경인지도 모른다.우리는 흔히 정치의 세계는 '이성과 논리'의 영역, 팬덤의 세계는 '감정과 공감'의 영역이라고 구분하곤 한다.하지만 지금의 시대를 들여다보면, 정치 역시 팬덤처럼 움직이고 팬덤 또한 정치처럼 결집한다.유튜브 알고리즘은 분노와 확신을 증폭시키고, SNS는 공감과 감정의 속도를 순식간에 끌어올린다. 그 과정에서 사실과 감정, 주장과 신념의 경계는 점점 흐려진다.어쩌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너무 많은 감정이 동시에 분출되고 충돌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노하는 시민을 무조건 음모론자로 몰아붙이는 것도 위험하다. 반대로 모든 행정 실패를 거대한 조작의 증거로 연결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민주주의는 냉정한 시스템 위에서 움직이지만, 결국 그것을 떠받치는 건 사람의 감정과 신뢰다. 이 날 올림픽공원의 모습은 묘하게 지금의 대한민국을 닮아 있었다.한쪽에서는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울렸고, 다른 한쪽에서는 K-팝을 향한 환호와 응원봉의 불빛이 이어졌다.서로 다른 감정 같지만, 어쩌면 모두 지금의 한국 사회가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얼굴인지도 모른다.정민오 기자 dailyt@naver.com
    2026-06-08 07:29:36 정민오
  • [기자수첩] 존경도 체벌도 사라진 교실…스승의날에 묻는 ‘선생님의 자리’
    교육

    [기자수첩] 존경도 체벌도 사라진 교실…스승의날에 묻는 ‘선생님의 자리’

    [데일리환경=정민오 기자] 5월 15일은 스승의날이다. 한때는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며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를 부르던 날이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하던 시대도 있었다. 교사는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잡아주는 존재로 여겨졌다.하지만 지금의 교실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교권 침해, 악성 민원, 학생·학부모와의 갈등, 아동학대 신고 논란까지. 일부 교사들은 "아이를 지도하는 것 자체가 두렵다"고 말한다. 생활지도를 하다 휴대전화 카메라에 찍히고, 짧게 훈계한 내용조차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는 일이 반복된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교권 보호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반대로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과거 학교는 '절대적 권위'라는 이름 아래 적지 않은 폭력을 용인해왔다. 이른바 '사랑의 매'라는 표현 속에는 체벌과 공개적인 모욕, 인권 침해가 뒤섞여 있었다. 교탁 자, 출석부, 회초리가 교육 도구처럼 사용되던 시절도 있었다. 학생 입장에서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의 공간이기도 했다.결국 지금의 혼란은 단순히 '요즘 학생들이 문제' 혹은 '예전 선생님들이 더 훌륭했다'는 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다.과거에는 지나친 권위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권위 자체가 사라진 시대에 가깝다. 존중과 통제가 동시에 무너진 셈이다.특히 디지털 환경은 교실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과거에는 교실 안에서 끝났을 일이 이제는 영상과 캡처 이미지로 온라인에 확산된다. 교사의 부적절한 행동도 감시받지만, 동시에 교사의 정상적인 생활지도조차 '논란 콘텐츠'가 되기 쉽다. 학생과 교사 모두가 카메라 앞에 놓인 시대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교육의 본질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교사는 민원을 걱정하고, 학생은 교사를 신뢰하지 못하며, 학부모는 학교보다 사교육을 더 믿는다. 예전처럼 무조건적인 권위는 분명 사라져야 했지만, 그렇다고 교사가 단지 '서비스 제공자'처럼 취급되는 현실 역시 건강하다고 보기 어렵다.실제 현장에서는 '문제를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분위기가 퍼진 지 오래다. 적극적인 생활지도보다 소극적 대응이 안전하다는 인식이다. 이는 결국 학생들에게도 좋은 환경이 아니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스승의날이 불편한 기념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촌지와 선물 문화 논란 이후 학교 현장에서는 카네이션 하나조차 조심스러워졌다. 존경의 표현은 사라지고, 경계와 오해만 남았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체벌과 권위주의 시절을 미화해서도 안 된다. 동시에 지금처럼 교사의 권위와 교육적 역할이 지나치게 위축되는 상황 역시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새로운 균형이다.학생 인권과 교권은 서로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 보호되어야 할 가치다. 교사도 보호받아야 하고, 학생도 존중받아야 한다.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침묵시키는 방식으로는 건강한 교실이 만들어질 수 없다.스승의날의 의미는 단순히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사회가 '교육'을 어떤 관계로 바라보고 있는지 돌아보는 날이어야 한다.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스승의날 행사 준비로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가야 한다며 설레어하고, '스승의 은혜'를 흥얼거리는 학생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시대가 변하며 존경의 방식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감사의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정민오 기자 auto@dailyt.co.kr
    2026-05-15 07:13:55 정민오
  • 서초구 양재 IC 인근 비닐하우스 화재…플라스틱 연소 유해가스 도심 확산
    사회

    서초구 양재 IC 인근 비닐하우스 화재…플라스틱 연소 유해가스 도심 확산

    [데일리환경=정민오기자] 29일 오후 4시 4분경 오후 서울 서초구 신원동, 경부고속도로 양재IC 인근 비닐하우스에서 화재가 발생해 검은 연기가 도심 일대로 확산됐다.당시 본 기자가 확인한 현장에서는 비닐하우스 구조물과 농자재가 불에 타며 짙은 연기가 상공으로 치솟았고, 이후 바람을 따라 서초·강남 남부 방향으로 퍼지는 모습이 포착됐다. 검은 연기는 플라스틱 및 복합 자재의 불완전연소로 발생한 것으로, 일반 화재보다 미세먼지와 유해가스 농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서초구는 화재 발생 약 35분 후 재난문자를 통해 인근 주민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창문을 닫는 등의 안전 수칙을 안내했다. 다소 시간이 지난 뒤 이뤄진 안내였지만, 연기 확산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주의를 준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소방당국은 화재 진압과 함께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기상 조건과 지형을 고려할 때 연기는 초기 상승 후 상층 기류를 타고 확산되며, 일부는 지표면을 따라 이동해 주변 지역으로 퍼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경부고속도로 축과 개활지 지형의 영향으로 연기가 한 방향으로 길게 확산되기보다 인근에 넓게 퍼지는 양상을 보였다.분석에 따르면 체감 가능한 1차 영향권은 반경 약 1~2km 범위로, 양재동·우면동·내곡동 및 서초 남부 일부 지역에서 냄새와 연기 유입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어 반경 3~5km 수준의 2차 영향권에서는 개포동·도곡동·대치동 등 강남 남부 지역까지 희석된 형태의 미세먼지 영향이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보다 바깥 지역은 상층 확산에 따른 간접 영향 수준으로, 체감도는 낮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비닐하우스 화재의 경우 폴리에틸렌 계열 비닐과 PVC 자재, 농약·비료 잔류물 등이 함께 연소되면서 일산화탄소, 미세먼지,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등 다양한 유해물질이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전문가들은 "검은 연기가 보이거나 냄새가 감지되는 경우 이미 영향권에 들어온 상태일 수 있다"며 "최대한 화재가 난 곳에서 최대한 멀리 대피하거나, 여의치 않은 경우 창문을 닫고 실내 공기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정민오 기자 assh1010@dailyt.co.kr
    2026-04-30 07:23:45 정민오
  • “식당 테이블 정리위한 소독제 분사, 위생인가 무례인가…법과 매너의 사각지대”
    문화/생활

    “식당 테이블 정리위한 소독제 분사, 위생인가 무례인가…법과 매너의 사각지대”

    식사중 옆테이블 소독제 분사, 건강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나?
    [데일리환경 정민오 기자]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보면 옆 테이블을 정리하는 직원이 분무형 소독제를 '칙칙' 뿌린 뒤 테이블을 닦는 장면을 흔히 접한다. 문제는 그 순간, 바로 옆 테이블에는 음식이 놓여 있고 손님이 식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불쾌감의 문제일까, 아니면 우리가 간과해온 위생 관리의 맹점일까.현행 제도는 이 상황을 명확히 규율하지 못한다. 식품위생 관리의 기본 법령인 식품위생법 제3조(식품 등의 취급)와 제44조(영업자 등의 준수사항)에 의거 '영업장의 청결 유지와 위생 관리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음식 섭취 공간 인근에서의 '소독제 분사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제한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법적으로는 '청소 행위'로 해석되기 쉽지만, 그 방식이 주변 손님의 안전과 위생을 해치는지에 대한 기준은 모호하다.행정 감독은 주로 지방자치단체가 맡는다. 실제 민원은 해당 지역의 구청 위생과나 식품안전 부서를 통해 접수할 수 있으며, 국가 차원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책과 기준을 총괄한다. 또한 생활 속 불편이나 안전 문제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하면 지자체로 이관된다. 그러나 현장에서 문제로 지적되는 '분사 방식'은 대부분 단속 대상이라기보다 계도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건강 측면에서는 어떨까. 식당에서 흔히 사용하는 에탄올 기반 소독제는 일정 농도 이하에서 비교적 안전한 물질로 분류된다. 하지만 문제는 '성분'보다 '방식'이다. 분무 형태로 공기 중에 퍼질 경우 미세 입자로 흡입될 수 있고, 음식 표면에 직접 닿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일부 업소에서는 차아염소산나트륨이나 4급 암모늄 계열 소독제를 희석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 호흡기 자극이나 이물감 유발 가능성이 제기된다. 수영장에서 사용하는 소독제로 흔히 '락스'냄새로 알고 있는 성분이다. 전문가들은 "소독제 자체보다 '분사 시점과 장소'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위생 관리 원칙에서도 음식이 노출된 상태에서의 분무 소독은 권장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는 분사 후 충분한 시간 경과 또는 닦아내기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쁜 영업 환경 속에서 이러한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이 문제는 법과 매너 사이의 회색지대에 놓여 있다. 법은 청결을 요구하지만, 손님은 '안전하게 식사할 권리'를 기대한다. 분사 소독이 위생 관리의 일환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다른 손님의 식사 환경을 침해한다면 과연 바람직한 방식이라 할 수 있을까.해법은 복잡하지 않다. 음식이 없는 상태에서 정리하거나, 테이블에 직접 분무 대신 타월에 닦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 최소한 분사 시 주변 손님이 있는지 살피고 손이나 몸으로 가리고 분무하는 등의 방법이다. 이는 법의 문제가 아니라 현장의 배려와 기준의 문제에 가깝다.위생은 청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과정이 타인의 안전과 불안을 함께 고려할 때, 비로소 '진짜 위생'이 된다.위생 관리와 관련한 불편사항은 해당 지자체 구청 위생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식품 안전 민원, 국민신문고, 1399 또는 식품안전나라 홈페이지 등을 통해 문의ㆍ신고를 할 수 있다.정민오 기자 assh1010@dailyt.co.kr
    2026-04-30 07:23:25 정민오
  • “기록하고 준비했다”… 4월 28일, 이순신 장군을 다시 부르는 이유
    문화/생활

    “기록하고 준비했다”… 4월 28일, 이순신 장군을 다시 부르는 이유

    기록하고, 준비하고, 책임지는 리더의 가치
    [데일리환경 정민오 기자]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이다. 1545년 4월 28일부터 올해로 481주년을 맞이했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현충사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추모와 기념 행사가 이어진다. 오늘날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방식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그의 삶이 던지는 현재적 의미를 되새기는 데 방점이 찍힌다. 서울 도심에서도 '충무'의 이름은 일상 속에 깊이 스며 있다. 서울시 중구 일대에서는 충무공 탄신을 기리는 문화행사가 열리고, 공연과 전시가 이어지는 충무아트센터는 그 이름 자체로 장군의 정신을 오늘의 문화로 확장한다. 도심 한가운데인 '광화문광장'에 우뚝 선 이순신 장군 동상 역시 시민들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출퇴근길과 관광 동선 속에서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이 공간들은 '충무'라는 이름을 과거의 기념에 머물게 하지 않고, 현재의 도시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상징으로 이어주고 있다. 남부 지역으로 눈을 돌리면, 충무공을 기리는 공간은 보다 입체적인 역사 체험의 장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충남 아산의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의 생가와 사당이 함께 자리한 상징적 공간으로, 매년 탄신일 제향이 봉행되는 중심지다. 전남 여수의 이순신광장과 진남관 일대는 전라좌수영 본영의 흔적을 간직한 채 해전의 기억을 전하고, 경남 통영의 한산도와 제승당은 한산도 대첩의 현장으로서 장군의 전략과 정신을 되새기게 한다. 이처럼 전국 곳곳에 자리한 기념 공간들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충무공의 삶과 리더십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체험하게 하는 살아있는 역사 현장으로 기능하고 있다.이순신 장군을 말할 때 흔히 거론되는 것은 한산도 대첩과 명량해전 같은 전투의 승리다. 하지만 정작 그의 진면목은 전장의 화려함보다는 그 이면에 축적된 '과정'에 있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그 중심에는 <난중일기>가 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진 기록은 병력 상황과 군량, 기상 변화는 물론 개인의 심경까지 담아냈다. 이는 단순한 일지를 넘어, 전시 상황에서 조직을 유지하고 판단의 근거를 확보하는 일종의 운영 체계로 기능했다. 실제 이순신 장군은 전투를 '감'에 맡기지 않았다. 지형과 조류를 면밀히 분석하고, 병력의 한계를 냉정하게 인식한 뒤 전략을 세웠다. 명량해전이 흔히 '기적'으로 불리지만, 그 이면에는 축적된 정보와 반복된 준비가 있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그의 리더십은 또한 '책임'이라는 단어와 맞닿아 있다. 전투의 선두에 서는 지휘관으로서 결과를 온전히 감당하는 태도, 그리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일관성이 조직을 버티게 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영웅적 수사 이전에, 맡은 역할을 끝까지 수행하는 기본에 충실했다는 점이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배경이다.무엇보다 주목할 대목은 인간 이순신의 모습이다. <난중일기>에는 가족에 대한 걱정과 전황에 대한 불안, 개인적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는 그를 신화적 존재가 아닌 현실의 리더로 끌어내리며, 오히려 그의 선택과 판단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충무공 탄신일이 갖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과거의 위인을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남긴 태도와 원칙을 오늘의 기준으로 다시 읽어내는 일이다. 기록하고, 준비하고, 책임지는 자세는 시대와 환경이 바뀌어도 쉽게 퇴색되지 않는 가치로 남는다.정민오 기자 auto@dailyt.co.kr
    2026-04-28 12:03:14 정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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