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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자의 뉴스정원] 뜨거운 친일파 논쟁 뒤 ... 제국의 시대, 침묵 대신 조선의 곁을 택한 일본인 다섯 명

    - 아사카와 다쿠미·노리타카 형제와 야나기 무네요시, 후세 다쓰지, 소다 가이치 … 조선의 문화와 사람을 지키려 했던 일본인들
    친일과 반일, 협력과 저항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뜨겁다. 누가 어느 편에 섰는지 묻는 목소리는 커지지만, 역사의 한복판을 살아간 사람의 선택은 때로 국적과 민족이라는 두 글자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일제강점기는 일본 제국이 조선의 국권을 빼앗고 민족의 삶과 문화를 억압한 폭력의 시대였다. 그 책임은 어떤 미담으로도 흐려질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시대, 식민 지배의 부당함을 외면하지 않고 조선의 사람과 문화 곁에 서려 했던 일본인들도 있었다.누군가는 조선의 산에 나무를 심었고, 누군가는 이름 없는 장인의 그릇을 지켰다. 누군가는 독립운동가의 변호인이 됐으며, 또 다른 이는 부모 잃은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그들은 제국의 국민으로 태어났지만, 적어도 삶의 어느 자리에서는 제국이 명령한 침묵을 거부했다. 조선의 곁에 섰던 다섯 사람이번에 살펴볼 인물은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 아사카와 노리타카(淺川伯敎),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다.이들을 모두 같은 성격의 인물로 묶을 수는 없다. 후세 다쓰지가 식민지 민중과 독립운동가를 법정에서 변호한 인권변호사였다면, 아사카와 형제와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의 도자기와 생활 공예를 연구하고 보존한 사람들이었다. 소다 가이치는 버려진 아이들을 돌본 사회사업가이자 기독교인이었다.활동 영역도, 조선을 바라본 관점도 달랐다. 특히 야나기의 조선 예술론은 오늘날까지 식민주의적 시선과 연결해 비판받는다. 따라서 이들을 무조건 ‘조선을 사랑한 의인’으로만 그리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다만 식민 지배가 일상이던 시절, 조선의 사람과 문화가 사라지지 않도록 행동했다는 사실만큼은 기록 속에 남아 있다.1. 조선의 산과 생활 공예를 사랑한 아사카와 다쿠미아사카와 다쿠미는 1891년 일본 야마나시현에서 태어났다. 농림학교를 졸업한 그는 1914년 조선으로 건너와 조선총독부 산림과와 임업시험장에서 근무했다.그는 관청의 일본인 기술자였지만 조선의 산림을 일본식 기준으로만 다루지 않았다. 조선의 기후와 풍토에 맞는 나무를 찾고, 자연의 질서에 가까운 조림 방식을 고민했다. 1924년에는 잣나무 종자의 발아를 촉진하는 노천매장법을 개발해 훼손된 산림을 복구하는 데 기여했다.그의 시선은 산에서 조선 사람들의 밥상과 부엌으로 옮겨갔다. 당시에는 흔하고 보잘것없는 물건으로 취급됐던 소반과 장독, 목공예품과 백자에서 이름 없는 장인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그 결과물이 1929년 출간된 『조선의 소반』이다. 사후에는 『조선도자명고』가 간행됐다. 다쿠미는 물건의 형태만 기록하지 않았다. 지역마다 달랐던 명칭과 쓰임, 제작 방법을 조사하며 생활 속에 스며든 조선인의 미감을 남겼다.그는 야나기 무네요시, 형 노리타카와 함께 1924년 경복궁 집경당에 문을 연 조선민족미술관의 설립과 운영에도 참여했다. 미술관은 왕실의 화려한 유물보다 민중이 일상에서 사용했던 공예품에 주목했다. 다쿠미는 그 실질적인 운영을 맡았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 기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931년, 그는 급성폐렴으로 불과 마흔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다쿠미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늘날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잠들었다. 그의 묘비에는 조선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 간 일본인이 이곳에서 한국의 흙이 됐다는 뜻의 글이 새겨졌다.2. 조선 도자기의 시간을 기록한 아사카와 노리타카다쿠미의 형 아사카와 노리타카는 조선 도자기를 체계적으로 조사한 연구자였다.그는 1913년 경성의 학교에 미술교사로 부임한 뒤 조선 백자의 담백한 빛과 형태에 매료됐다. 이후 전국 수백 곳의 가마터를 찾아다니며 도자기 조각을 수집하고, 제작 시기와 지역적 특징을 조사했다.그가 한 일은 아름다운 도자기를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흩어진 파편을 통해 조선 도자기의 계보와 변화를 복원하려 했다. 오늘날에는 작고 불완전해 보이는 파편 하나도 도자사의 연대와 제작지를 밝히는 중요한 사료가 된다.노리타카는 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 조선민족미술관의 운영을 이어받았다. 광복 이후에는 자신이 수집한 공예품 약 3천 점과 도자기 조각 서른 상자를 한국에 기증했다. 이 자료들은 국립민족박물관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의 한 줄기가 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동생 다쿠미가 조선의 숲과 생활 속 물건에 귀를 기울였다면, 형 노리타카는 땅속과 가마터에 남은 파편을 따라 조선 도자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섰다.3. 독립운동가의 법정 곁을 지킨 후세 다쓰지후세 다쓰지는 다섯 사람 가운데 식민 지배에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맞선 인물이다.1879년 일본 미야기현에서 태어난 그는 변호사가 된 뒤 국가와 권력이 외면한 사람들의 편에 섰다. 1919년에는 도쿄에서 2·8독립선언을 발표한 조선인 유학생들의 변호를 맡았다.이후 의열단원 김시현, 일본 왕궁 앞에서 폭탄을 던진 김지섭, 일왕 암살을 계획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등 조선 독립운동 관련 인사들을 변호했다. 1926년에는 나주 궁삼면 농민들이 동양척식회사를 상대로 벌인 토지회수 투쟁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조선에 들어왔다.그는 법정에서 단순히 형량을 줄이는 데 머물지 않았다.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인에게 가한 차별과 고문, 토지 수탈 자체를 문제 삼았다. 그 대가로 변호사 자격정지와 투옥을 거듭했다.해방 이후에도 재일조선인의 권리 보호와 일본 평화헌법의 보급에 힘썼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당시 일본인으로서는 최초의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포상이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후세의 삶을 설명하는 말은 그의 묘비명으로 전해지는 문장에 압축돼 있다.“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하여.”법은 권력의 문장이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손에서는 약한 사람을 지키는 마지막 문장이 될 수도 있음을 그는 보여줬다.4. 광화문 철거에 반대하고 조선 민예를 알린 야나기 무네요시일본 민예운동을 이끈 사상가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의 이름 없는 장인들이 만든 백자와 목공예, 생활용품에서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했다.그는 1916년 처음 조선을 방문한 뒤 여러 차례 조선을 오가며 공예품을 수집하고 연구했다. 아사카와 형제와 함께 1924년 조선민족미술관을 설립했고, 강연과 음악회, 저술 활동을 통해 마련한 돈을 건립 기금으로 보탰다.특히 1922년 조선총독부가 신청사 건립을 이유로 광화문 철거를 추진하자 「사라지려 하는 한 조선 건축물을 위하여」라는 글을 발표해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광화문을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한 민족의 역사와 기억으로 바라본 것이다. 그의 글은 일본과 조선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다. 동북아역사재단그러나 야나기에 대한 평가는 찬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학술지인용색인 수록 연구에 따르면 그가 조선 미술을 ‘비애의 미’로 설명한 것은 식민지 조선을 수동적이고 슬픈 존재로 고정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조선 예술을 사랑했다는 사실과, 그 사랑 속에도 식민지 지식인의 한계와 타자화의 시선이 존재했다는 평가는 함께 살펴봐야 한다. 한 사람의 선의가 언제나 완전한 이해를 뜻하지는 않는다. 야나기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논쟁적인 이유다.5. 부모 잃은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 소다 가이치소다 가이치는 정치가도 학자도 아니었다. 그는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었다.1867년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난 소다는 조선에서 YMCA 일본어 교사 등으로 일했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뒤 사회사업에 뛰어들었다. 1921년부터 가마쿠라보육원 경성지부의 운영을 맡아 일제강점기 거리로 내몰린 수많은 아이를 보살폈다. 이 시설의 역사는 오늘날 영락보린원으로 이어진다.그가 평생 돌본 아이의 수는 자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천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들에게 그는 국적을 앞세운 일본인이 아니라 먹을 것과 잠자리를 마련하고 곁을 지켜준 어른이었다.해방 후 일본으로 돌아간 소다는 일본 각지를 다니며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책임과 회개를 촉구했다. 말년인 1961년 다시 한국을 찾았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서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됐다. 소다 가이치의 생애를 다룬 학술연구, 연합뉴스 관련 기록다만 “이름 모를 조선인이 타이완에서 쓰러진 소다를 구해준 은혜를 갚기 위해 조선에 왔다”는 유명한 일화는 그대로 단정하기 어렵다. 관련 연구는 그가 처음 조선에 온 직접적인 이유가 취업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아름다운 일화일수록 기록과 전승을 구분해 읽어야 한다.영웅 만들기가 아니라, 선택을 기억하는 일다섯 사람을 소개하는 목적은 일본 제국의 식민 지배 책임을 희석하거나 ‘좋은 일본인’의 이야기로 피해의 역사를 덮으려는 데 있지 않다.아사카와 형제는 조선총독부와 식민지 교육기관에서 일했고, 야나기의 미학에는 식민주의적 시선이라는 비판이 남아 있다. 소다 가이치에 관한 일부 미담도 사료를 통해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삶에는 선의와 한계, 실천과 모순이 함께 존재한다.그럼에도 우리가 이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사람은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선택할 수 없지만, 부당한 시대 앞에서 어느 쪽을 바라보고 누구의 곁에 설지는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다쿠미는 조선 사람들이 사용하던 작은 밥상을 들여다봤고, 노리타카는 버려진 도자기 파편을 주웠다. 야나기는 사라질 광화문 앞에서 글을 썼고, 후세는 피고인석에 선 독립운동가의 곁을 지켰다. 소다는 거리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의 손을 잡았다.거대한 역사책에는 제국과 전쟁, 조약과 통치자의 이름이 먼저 기록된다. 그러나 역사의 체온은 언제나 이름 없는 그릇과 한 그루의 나무, 법정의 변론과 아이에게 건넨 밥 한 끼 속에 남는다.친일과 항일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질수록 필요한 것은 성급한 영웅 만들기도, 불편한 사실을 지우는 단죄도 아니다.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으며, 그 행동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기록으로 차분히 살피는 일이다.어두운 시대에도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시대의 명령을 따랐고, 누군가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주 적은 사람들은 국적과 경계를 넘어 고통받는 이들의 곁에 자리를 내었다.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의 국적보다, 침묵할 수 있었던 순간에 침묵하지 않았던 선택인지도 모른다.[정기자의 뉴스정원] 눈 쌓인 거인의 정원을 몰래 찾은 아이들이 앉았던 나무에만 봄이 찾아와, 결국 거인이 쌓았던 벽들을 허물고 정원을 개방한다는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단편 소설 "거인의 정원(The Selfish Giant)"처럼, 담장 밖 뉴스들은 잠시 지우고, '정기자의 뉴스정원'에서는 세상에 채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보석 같은 문화 뉴스들만 골라 시민 여러분께 개방해 드리겠습니다.."정기자의 뉴스정원"은 시민들 제보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세상에 채 알려지지 않은 신간 소개, 공연 소식, 전시 등 문화 소식, 예술가나 다양한 인물들의 소식들을 정기자(jnoog@naver.com)에게 사진과 간단한 내용을 적어 제보해 주시면 됩니다.
    2026-09-10 07:18:40 정진욱
  • 국경을 넘어 춤으로 겨루다 … 소년 브레이커 ‘Louis Shan’이 보여준 글로벌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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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을 넘어 춤으로 겨루다 … 소년 브레이커 ‘Louis Shan’이 보여준 글로벌 성장기

    - 일본·한국·러시아 선수들과 맞붙은 국제 브레이킹 무대 … 이틀 연속 우승으로 증명한 가능성
    언어가 달라도 춤은 통한다. 국적이 달라도 배틀이 시작되는 순간 서로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직 음악과 움직임,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준비해 왔는가에 있다.지난 9월 5일과 6일 한국에서 열린 두 차례의 스트리트댄스 대회에서 어린 브레이커 'Louis Shan(루이스 샨)'이 이틀 연이어 우승을 차지했다.단순히 두 개의 우승 트로피를 얻었다는 결과보다 기자의 눈길을 끈 것은 그 과정이었다. 9월 5일 열린 ‘Breakpoints JAM ’26’에서 Louis Shan은 결승에서 일본 선수와 맞붙어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우승으로 그는 2027년 2월 27일 태국에서 열리는 ‘Blow Out Kids Battle’ 출전권까지 얻게 됐다.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9월 6일, 서울 SKBD Place에서 열린 ‘FLABOR VOL.4’의 U-19 Breaking 부문에 다시 출전했다.이날 현장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과 심사위원, MC와 DJ, 관객들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이날 현장은 단순한 어린이 경연대회라기보다는 하나의 스트리트 문화 축제에 가까웠다.'Louis Shan'의 6일 벌어진 대회에서의 두 번째 우승 과정은 더욱 인상적이었다.4강에서 한국 국가대표 고등학생 선수와 맞붙었고, 결승에서는 러시아 선수와 겨뤄 승리하며 최종 우승자가 됐다.불과 이틀 동안 일본, 한국, 러시아 등 서로 다른 국가와 배경을 가진 선수들이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무대에서 실력을 겨뤘다.작은 무대에서 시작되는 ‘문화 외교’현장에서 바라본 브레이킹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것이었다.누군가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음악이 시작되면 국적과 언어의 장벽은 금세 사라진다. 선수들은 춤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상대의 실력을 인정한다. 관객 역시 어느 나라 선수인지를 떠나 좋은 움직임이 나오는 순간 환호한다.그 모습에서 필자는 스포츠와 문화가 가진 또 다른 국제교류의 가능성을 보았다.특히 브레이킹과 스트리트댄스 문화에서는 어린 세대의 국제교류가 이미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열린 대회에 해외 선수들이 참가하고, 여기서 만들어진 인연이 다시 해외 대회 출전으로 이어진다.Louis Shan 역시 이번 한국 대회 우승을 계기로 다음 무대를 태국으로 넓히게 됐다.한국에서 일본 선수와 겨루고, 한국 선수와 경쟁하며, 러시아 선수와 결승을 치른 뒤 다시 태국 무대로 향한다.어쩌면 이것이 지금 세대가 만들어가는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의 문화교류인지 모른다.승패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들의 태도였다.현장에서 만난 어린 댄서들의 표정에는 긴장감과 즐거움이 동시에 있었다.배틀에서는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무대가 끝난 뒤에는 함께 사진을 찍고 서로의 춤을 이야기한다. 승자에게는 박수가 보내지고 패자 역시 다음 배틀을 준비한다.성인들의 국제관계에서는 국가와 이해관계가 먼저 등장하지만, 아이들의 무대에서는 조금 달랐다.“너는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보다 “너는 어떻게 춤추느냐”가 먼저였다. 그것이 스트리트댄스가 가진 힘일 것이다.이번 대회 사진 속 수십 명의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웃는 모습 역시 그런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우승자와 준우승자, 심사위원과 참가자, 어린 선수와 성인 댄서들이 하나의 프레임 안에 들어왔다.한 아이의 우승 뒤에는 긴 시간이 있다대회에서는 몇 분의 배틀로 승패가 결정된다.하지만 그 몇 분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은 수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실패한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간다.이번 두 대회의 결과 역시 단순한 행운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9월 5일 일본 선수와의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하루 만에 다시 출전한 대회에서 한국과 러시아 선수들을 차례로 상대해 우승했다는 것은 체력뿐 아니라 집중력과 실전 대응 능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결과다.그리고 그 과정에는 선수 한 명만 존재하지 않는다.아이를 지도하는 스승과 가족, 대회를 만드는 주최 측, 심사위원과 DJ, MC, 그리고 무대를 찾아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이 함께 존재한다.그래서 어린 선수의 우승을 바라볼 때 우리는 결과뿐 아니라 그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누가 만들고 있는가도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 K-컬처의 다음 장면은 ‘함께 만드는 무대’일지도 모른다한국은 이미 K-POP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통해 세계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한국 문화가 세계로 나가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세계의 젊은 세대가 한국으로 들어와 함께 경험하고 경쟁하고 교류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브레이킹 대회와 같은 스트리트 문화 행사는 규모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이러한 국제교류가 실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공간이다.일본,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다양한 국가의 아이들이 한국을 찾아 한국 선수들과 배틀하고, 다시 다른 나라의 대회에서 만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춤은 하나의 강력한 문화교류 플랫폼이 될 수 있다.그 중심에서 한국이 아시아 청소년 스트리트 문화의 허브 역할을 할 가능성도 충분하다.9월의 어느 주말, 작은 브레이킹 무대에서 한 소년이 두 번의 우승을 차지했다.그러나 기자가 현장 취재를 하며 본 것은 두 장의 우승 상장보다 조금 더 큰 것이었다.국적이 다른 아이들이 같은 음악을 듣고, 서로 경쟁하고, 상대를 인정하고, 다시 다음 무대를 약속하는 모습이었다.Louis Shan에게 이번 우승은 끝이 아니다. 한국에서 시작된 경험은 이제 2027년 태국의 새로운 무대로 이어진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나라의 아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그리고 그런 만남이 반복될수록 아이들에게 세계는 조금씩 가까워진다.춤 한 곡이 흐르는 몇 분 동안 국경이 사라지는 경험. 어쩌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만들어줘야 할 국제교류의 시작은 바로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2026-09-10 07:18:19 김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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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전시

    [정기자의 뉴스정원] “겁먹지 마, 우리의 계절은 이제 시작이니까” … 소피 데뷔 쇼케이스 ‘Don’t panic!’

    - 9월 12일 오후 6시 서울마포음악창작소 라이브홀서 개최 - 싱어송라이터 연서 스페셜 게스트 출연 … ‘걱정괴물’ 협업 무대 예고
    누구에게나 아직 익지 않은 계절이 있다. 다른 이의 시간은 새빨간 토마토처럼 눈부신데, 자신의 하루만 미지근하게 머물러 있는 듯한 순간이다.그런 날의 마음에 “겁먹지 말라”고 말을 거는 공연이 열린다.싱어송라이터 소피(sophy)가 오는 9월 12일 토요일 오후 6시 서울마포음악창작소(옛 뮤지스땅스) 라이브홀에서 데뷔 쇼케이스 ‘Don’t panic!’을 개최한다.공연은 약 80분 동안 진행되며 관람 연령은 만 7세 이상, 입장권은 전석 5만5천 원이다. 예매는 멜론티켓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과 공연 안내에 따르면 이번 무대는 소피가 자신의 새 이름과 음악 세계를 온전히 내보이는 첫 쇼케이스다.‘새벽공방 희연’에서 ‘소피’로 … 익숙한 이름을 내려놓다소피는 낯선 신인이면서 동시에 오랫동안 청춘의 새벽을 노래해 온 익숙한 음악인이다. 그는 듀오 ‘새벽공방’의 희연으로 약 10년 동안 활동한 뒤, 올해 새로운 활동명 ‘소피’를 내걸고 홀로서기에 나섰다.‘소피’라는 이름에는 자신의 작은 철학을 음악으로 들려주겠다는 뜻이 담겼다. ‘소피’라는 발음에서 ‘필로소피(philosophy)’를 떠올렸고, 이에 맞춰 1인 레이블 이름도 ‘포켓필로소피(Pocket Philosophy)’로 정했다.음악의 방향도 한층 선명해졌다. 포크를 바탕으로 한 서정적인 정서에 미니멀하고 빈티지한 밴드 사운드를 더하고, 문학적인 우리말 가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소피가 찾아낸 새로운 색깔이다. 화려한 장식보다 한 사람의 목소리와 마음이 오래 남는 음악을 택한 셈이다. 소피 인터뷰‘데뷔 쇼케이스’라는 표현도 그래서 남다르다. 음악을 처음 시작하는 무대라기보다, 익숙했던 이름을 내려놓고 ‘소피’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첫 무대에 가깝다.덥고 눅눅한 청춘을 닮은 첫 EP ‘한여름 토마토’이번 공연의 중심에는 소피의 첫 EP ‘한여름 토마토’가 놓인다.지난 6월 23일 발매된 앨범에는 ‘곱슬머리’, ‘한여름 토마토’, ‘Don’t panic!’, ‘첨벙첨벙’, ‘긴 낮’, ‘그런 줄도 모르고’ 등 모두 6곡이 수록됐다. 소피는 앨범 전곡의 이야기를 직접 쓰고 음악으로 빚으며, 뜨겁고 눅눅한 여름을 통과하는 청춘의 마음을 한 편의 성장담처럼 엮었다. 미러볼뮤직 앨범 정보앨범 속 토마토는 자신의 계절을 만나 가장 붉게 익어가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누군가는 벌써 환하게 여물었지만, 아직 자신의 때를 만나지 못한 사람은 그 곁에서 조바심을 낸다. 소피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느꼈던 열등감과 초라함을 감추지 않는다.그러나 노래는 자책에만 머물지 않는다. 제멋대로 꼬여버린 곱슬머리처럼 마음까지 엉킨 날에도 웃어보고, 발이 닿지 않는 바다 같은 꿈을 향해 다시 헤엄친다. 미성숙함을 실패가 아닌 성장의 한때로 받아들이는 순간, 여름은 견뎌야 할 계절에서 사랑할 수 있는 계절로 바뀐다.쇼케이스에서는 이 앨범의 수록곡 전곡과 아직 발표하지 않은 노래, 소피가 평소 아끼던 커버곡 등이 밴드 세트로 펼쳐질 예정이다. 노래 사이에는 곡이 태어난 사연과 새 이름으로 출발하기까지의 이야기도 관객에게 들려준다.가장 다정한 주문, “Don’t panic!”공연 제목이 된 ‘Don’t panic!’은 앨범의 세 번째 수록곡이다. 벅스 곡 정보에 따르면 작사·작곡·편곡과 보컬을 모두 소피가 맡았다. 소피는 이 곡을 다른 누군가보다 자기 자신에게 먼저 들려주고 싶었던 위로라고 설명한다. 다른 사람의 장점은 쉽게 발견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엄격했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세상과 사람들도 자신을 생각보다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고 되뇌는 노래다.제목의 느낌표도 눈길을 끈다. ‘당황하지 말라’는 차가운 명령이라기보다, 아침마다 도망치고 싶었던 사람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는 밝은 주문에 가깝다. 완벽한 날개가 없어도 날아볼 수 있고, 무거운 마음은 잠시 그늘에 내려놓아도 된다는 메시지가 경쾌한 리듬을 타고 흐른다.첫 단독 무대에 서는 소피 자신에게도 꼭 필요한 말이다. 새 이름과 새 음악을 품고 관객 앞에 나서는 떨림까지 공연의 한 부분이 된다. 연서가 건넬 또 하나의 동화…‘걱정괴물’ 함께 부른다이날 공연에는 싱어송라이터 연서가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한다.연서는 2023년 첫 싱글 ‘아이’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잊혀가는 동심과 서툰 사랑, 마음속 깊이 남아 있는 추억을 동화 같은 노랫말과 포근한 음색으로 들려주는 음악인이다. 데뷔곡 ‘아이’에는 싱어송라이터 겸 기타리스트 적재가 기타 연주자로 참여해 곡의 따뜻한 결을 더했다.연서는 음악에 여러 감정과 고민, 꿈을 담아 청자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한다. 첫 싱글 당시에도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표현에는 서툴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마음을 노래하며 ‘순수한 진심으로 동화를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인상을 남겼다. 지니뮤직 연서 소개이번 쇼케이스에서는 소피와 연서가 ‘걱정괴물’을 함께 부르는 협업 무대가 마련된다. 연서의 대표적인 감성이 담긴 다른 노래들도 들려줄 예정이다.불안과 비교의 마음을 햇볕 아래 꺼내놓는 소피, 그리고 마음속 작은 아이와 걱정을 동화처럼 어루만지는 연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지닌 두 싱어송라이터는 ‘위로’라는 한 지점에서 만난다.아직 익지 않았기에 더 빛나는 밤한여름을 지나 초가을의 문턱에 열리는 이번 쇼케이스는 계절과 계절 사이에 선 사람들을 위한 공연이기도 하다.꿈은 여전히 멀고, 자신의 시간만 더디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토마토가 저마다 다른 속도로 붉어지듯 사람의 삶에도 각자의 제철이 있다. 아직 익지 않았다는 것은 늦었다는 뜻이 아니라, 여전히 익어가는 중이라는 의미인지도 모른다.9월 12일 저녁, 소피는 서울마포음악창작소의 작은 무대에서 새 이름을 처음 크게 불러본다. 그리고 자신처럼 서툰 계절을 건너는 이들에게 노래로 말할 것이다.겁먹지 말라고. 몇 번의 아침을 피해 달아났더라도 태양은 다시 뜨고, 아직 오지 않은 우리의 계절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고.[정기자의 뉴스정원] 눈 쌓인 거인의 정원을 몰래 찾은 아이들이 앉았던 나무에만 봄이 찾아와, 결국 거인이 쌓았던 벽들을 허물고 정원을 개방한다는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단편 소설 "거인의 정원(The Selfish Giant)"처럼, 담장 밖 뉴스들은 잠시 지우고, '정기자의 뉴스정원'에서는 세상에 채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보석 같은 문화 뉴스들만 골라 시민 여러분께 개방해 드리겠습니다.."정기자의 뉴스정원"은 시민들 제보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세상에 채 알려지지 않은 신간 소개, 공연 소식, 전시 등 문화 소식, 예술가나 다양한 인물들의 소식들을 정기자(jnoog@naver.com)에게 사진과 간단한 내용을 적어 제보해 주시면 됩니다.
    2026-09-08 07:21:57 정진욱
  • 농지 모아 함께 농사짓는다… 농식품부, ‘공동영농’ 확산 본격 추진
    인물

    농지 모아 함께 농사짓는다… 농식품부, ‘공동영농’ 확산 본격 추진

    고령농 소득 안정·청년농 규모화 기반 마련… 시범사업 거쳐 2027년 전국 확대
    농림축산식품부가 개별 영농의 한계를 극복하고 농업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공동영농’ 확산에 본격적인 속도를 내고 있다. 분산된 농지를 집적화해 전문 농업법인이 생산부터 유통·판매까지 전 과정을 전담하는 방식으로, 고령화와 인력 난에 직면한 한국 농업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핵심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김종구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민·관 협의체를 주재하며 사업 추진 현황을 직접 점검했다. 이날 회의에는 시범사업 참여 법인을 비롯해 선도 농업법인, 생산자단체, 지자체, 관계기관, 민간 전문가 등 30여 명이 모여 농지 집적화와 품목 선정, 소득 배분, 법인 운영 과정의 애로사항과 제도 개선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농식품부는 회의에서 제기된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 오는 11월까지 종합적인 제도 개선안을 마련할 방침이다.작업 효율 높이고 유통 경쟁력 강화… 농가 소득 '쑥'공동영농은 농업법인이 임대나 출자 방식으로 농지를 모아 규모화하고, 참여 농가는 법인의 전문 경영 체계 속에서 영농에 참여하는 구조다. 분산된 농지를 하나로 통합 운영함으로써 농기계 및 인력 효율을 극대화하고 생산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다. 나아가 이모작 확대와 대규모 계약재배를 통해 수익성 극대화가 가능해진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특히 개별 농가 수준에서는 불가능했던 대형 유통업체나 식품기업과의 직접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판로 확대와 품질 관리 측면에서도 강력한 시장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공동영농은 농촌의 고령화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운 고령농은 농지를 출자·임대해 안정적인 배당 및 임대 소득을 올릴 수 있고, 청년농은 규모화된 농지를 바탕으로 전문적인 농업 경영 노하우를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실제로 경상북도 등 선도 지역에서는 벼 단작 중심의 기존 영농 방식에 비해 법인 소득은 3~4배, 참여 농가 소득은 약 2배 이상 증가하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2027년 전국 확대 목표… 수익 배분·신뢰 구축은 과제현재 정부는 강원 횡성, 전북 김제·부안, 전남 영광, 경북 상주·경주 등 전국 6개 공동영농법인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법인별로 2년간 최대 20억 원을 지원하며, 시범 운영 중 나타나는 보완점을 철저히 점검한 뒤 2027년부터 전국으로 대상을 확대한 본 사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다만 공동영농이 완전히 정착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존재한다. 농지 집적 과정에서의 복잡한 이해관계 조정, 참여 농가 간 투명하고 합리적인 수익 배분 기준 수립, 전문 농업 경영인 육성 등이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농업인들의 자발적인 참여 의지와 지역사회 내부의 두터운 신뢰 확보가 사업 성공의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기후변화와 인구 감소라는 거센 파도 속에서, 이번 공동영농 사업이 지속 가능한 농촌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을지 농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26-07-27 16:31:32 이정윤
  • [시론] 시민들에게 공휴일로 변해간 7월 17일 제헌절, 가인(街人) 김병로가 남긴 뼈아픈 질문
    사회 일반

    [시론] 시민들에게 공휴일로 변해간 7월 17일 제헌절, 가인(街人) 김병로가 남긴 뼈아픈 질문

    - 사법부 독립의 초석을 다진 가인 김병로의 삶 - 권력의 파도 앞, 무릎 꿇지 않은 헌법의 방파제
    매년 7월 17일 제헌절이 다가오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헌법의 의의를 말한다. 그러나 달력 위의 붉은색 날짜만큼이나 헌법은 우리 일상에서 쉬는 공휴일 또는 무채색의 텍스트로 잊혀가고 있다. 헌법을 권력 지형을 바꾸는 정치적 도구나 법전에 갇힌 박제된 문장으로 여길 때, 민주주의의 근간은 소리 없이 흔들린다.지나쳐가는 제헌절의 길목에서 우리가 반드시 소환해야 할 한 인물이 있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이자 '사법부의 수호자'로 불리는 가인(街人) 김병로(1887~1964) 선생이다. 그가 평생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행적을 추적하는 것은, 헌법의 진짜 가치를 잃어버린 오늘날의 우리 사회와 미래 세대에게 가장 정직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권력의 파도 앞, 무릎 꿇지 않은 헌법의 방파제가인 김병로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사법부의 수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의 대한민국은 신생 독립국 특유의 혼란과 독재 정권의 권력 집중으로 헌법 정신이 언제든 유린당할 수 있는 위태로운 시기였다.그의 진가는 서슬 퍼런 정권의 압력 앞에서 드러났다.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정권 연장을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의원들을 강제 연행한 '부산정치파동' 당시, 가인은 법관들에게 단호하게 지시했다. "정치권력의 압력에 굴하지 말고, 오직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소신껏 재판하라." 이승만 대통령이 정부의 뜻을 거스르는 사법부를 향해 "헌법에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게 되어 있다"며 불쾌감을 표하자, 가인은 "이의 있으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고소하시오"라는 서릿발 같은 일갈로 맞받아쳤다. 권력이 헌법을 뛰어넘으려 할 때, 가인은 스스로 헌법의 방파제가 되어 삼권분립의 원칙과 국민의 기본권을 사수해 냈다.청렴과 지공무사(至公無私), 법치주의의 도덕적 기틀헌법은 제정되는 것보다 이를 운용하는 이들의 '도덕적 엄숙함'에 의해 그 생명력이 유지된다. 가인은 이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었다. 6·25 전쟁 중 포탄 파편에 맞아 한쪽 다리를 절단하는 고통 속에서도 의족을 짚고 법원에 출근하며 자리를 지켰다. 국가 예산이 부족해 법관들의 봉급이 쌀 한 가마니 값도 되지 않던 시절, 그는 판사들에게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부정부패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며 청렴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예산을 아끼기 위해 추운 겨울 집무실에 불도 피우지 않은 채 누더기 솜바지를 입고 재판 업무를 보았다. 그가 보여준 지공무사(至公無私·지극히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음)의 자세는 헌법 제11조 '법 앞의 평등'을 지키기 위한 법조인의 최소한의 양심이었다. 헌법을 수호하는 이가 스스로 청렴하지 못하면 법의 권위는 추락하고, 결국 국민이 법을 믿지 못하는 무법천지가 된다는 것을 그는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법을 잊은 사회, 미래 세대가 마주할 위기오늘날 우리 사회는 가인이 살았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사법부 독립을 대놓고 흔드는 독재 권력도 표면적으로는 사라졌다. 그러나 헌법의 가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위협받고 있다.극단적인 진영 갈등은 '나와 다른 생각'을 헌법적 가치 속에서 포용하기보다 혐오와 배제로 밀어낸다. 다수의 힘으로 소수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헌법이 명시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제10조)'가 돈과 효율성이라는 물질적 잣대에 밀려 무색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래 세대가 가인 김병로의 삶에서 얻어야 할 가장 큰 교훈은 ‘헌법은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헌법은 법전 속에 고이 모셔진 유물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부당한 권력과 불의에 맞설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무기다.맺으며, '가인의 정신'으로 헌법의 먼지를 털어내자7월 17일 제헌절, 공휴일 여부를 떠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가인 김병로가 권력의 도끼날 앞에서도 당당히 펼쳐 들었던 그 헌법 책의 먼지를 다시 털어내는 것이다.미래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진정한 유산은 고층 빌딩이나 첨단 기술만이 아니다.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치주의의 가치, 그리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제1조의 준엄한 약속을 신뢰하는 사회 분위기다. 78년 전 가인이 지켜낸 사법 자존과 헌법 정신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시대적 과제다.
    2026-07-09 07:23:42 정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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