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는 가벼워졌다는데, 왜 식탁 물가는 그대로일까
[데일리환경=이정윤 안상석 기자]10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2.8% 오르며 두 달째 2%대 상승률을 이어갔다.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며 전체 지표를 끌어내렸지만, 정작 소비자가 매일 마주하는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는 오히려 1년 가까운 기간 중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통계가 말하는 '안정'과 서민이 느끼는 '체감' 사이의 간극이 다시 도드라진 셈이다.국가데이터처가 3일 발표한 '2026년 10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20.73(2020년=100)으로 1년 전보다 2.8% 상승했다. 7월 2.8%, 8월 3.1%, 9월 2.9%에 이어 2%대 중후반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전월 대비로는 0.2% 오르며 상승세가 꺾이지 않았다. 지표를 끌어내린 농축수산물은 1년 전보다 1.7% 떨어지며 3개월 연속 하락했다. 특히 채소류가 11.2% 내렸고 농산물 전체로는 7.5% 하락했다. 배추가 11.8%, 사과가 13.4%, 상추가 44.3%, 애호박이 38.4% 각각 떨어지는 등 가을 작황이 좋았던 품목을 중심으로 가격이 큰 폭으로 내려갔다. 전월 대비로 보면 애호박은 52.7%, 시금치는 48.9% 급락해 하락 속도가 더욱 가팔랐다.반면 축산물은 4.8%, 수산물은 5.4% 각각 올랐고, 품목별로는 국내산 소고기 9.1%, 고등어 9.3%, 갈치 11.9% 상승하며 '밥상 위 단백질'의 가격 부담은 줄지 않았다. 신선식품지수도 1년 전보다 6.2% 낮아졌지만, 신선수산물은 오히려 6.0% 오르며혼재된 양상을 보였다.문제는 이 '착시'가 전체 물가의 체감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가공식품 물가는 1년 전보다 2.9% 올라 전월(2.1%)보다 상승폭이 커졌고, 이는 작년 11월 이후 11개월 만의 최고치다. 즉석식품은 12.4% 뛰었고 빵값도 5.9% 올랐다. 외식 물가 역시 2.9% 올라 올해 2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공업제품 물가는 4.4% 상승했는데, 그 중심에는 석유류가 있다. 석유류는 1년 전보다 14.9% 치솟아 전체 물가를 0.56%포인트 끌어올렸다. 경유가 19.7%, 휘발유가 11.6% 올랐고 가정용·자동차용 LPG도 나란히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였다.서비스 물가도 2.7% 올라 전달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는데, 개인서비스는 3.3%, 외식을 뺀 개인서비스는 3.6%까지 상승했다. 반면 전기·수도·가스 등을 포함한 공공서비스는 1.7%, 집세는 1.4% 오르는 데 그쳐 민간 서비스와 공공 부문 간 상승률 격차도 뚜렷했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2.8%로 9월과 같았고, 농산물·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2.8%로 오히려 0.1%포인트 높아졌다. 서민 실생활과 밀접한 품목 위주로 구성한 생활물가지수도 2.6% 올라 전월(2.5%)보다 상승폭이 확대됐다. 올해 1~10월 누적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2.7% 오른 것으로 집계돼, 연간으로도 2%대 중후반 상승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눈에 띄는 대목은 통신·디지털 관련 품목의 가격 상승이다. 휴대전화가 10.8%, 컴퓨터가 26.2% 오르며고물가 부담을 키웠고, 해외로 눈을 돌리면 국제항공료가 20.7%, 해외단체여행비가 11.5% 뛰어 가을·겨울 여행 성수기를 앞둔 소비자의 부담도 가중되는 모습이다. 이처럼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포장된 지표 뒤에서, 실제 가계 지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가공식품·외식·통신·에너지·여행 비용은 동시다발적으로 오르고 있다.이 구조를 수치로 정리하면, 농산물값이 내려가는 동안 식탁 위로 올라오는 가공식품·외식·에너지 비용은 오히려 더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와 통계 당국이 '전체 지수 2%대 안정'을 발표할 때 유독 강조하는 지표는 농축수산물 하락인데, 이는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공식품·외식·서비스보다 훨씬 작다. 소비자가 실제로 체감하는 생활비 부담은 지수가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무거울 수 있다는 의미다.데일리환경의 시각에서 보면 이번 지표는 '물가 안정'이라는 발표 문구가 가리는 구조적 불균형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소비자물가지수는 품목별 가중치를 기준으로 산출되는데, 가중치가 낮은 신선식품의 급락이 전체 지수를 끌어내리는 동안, 실제 지출 비중이 큰 가공식품·외식·에너지 비용의 상승은 체감 물가를 계속 밀어 올린다. 정부가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무 공급 대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사이, 식용유·조미료·외식 메뉴 가격 인상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채 소비자 지갑을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국제유가 변동과환율에 따라 출렁이는 석유류 가격이 식품·운송 물가 전반에 2차 파급 효과를 낳고 있다는 점도 가볍게 볼 수 없다.전망도 밝지 않다. 겨울철 난방 수요가 본격화하면 석유류·도시가스 관련 물가는 추가로 오를 가능성이 있고, 가공식품 업체들이 원재료비·인건비 상승분을 가격에 반영하는 흐름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연말 성수기 수요와 물류비 상승이 겹치면 외식 물가 상승세도 쉽게 꺾이지 않을 수 있다. 특히 가공식품 물가가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점은, 올여름부터 이어진 원재료 가격 상승이 이제서야 소비자 가격표에 반영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통상 가공식품 업체는 원재료비 인상 이후 몇 달의 시차를 두고 출고가를 올리는 경향이 있어, 당분간 추가적인 가격 인상이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결국 이번 지표가 보여주는 것은 '평균의 함정'이다. 전체 지수는 2%대로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가계 지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가공식품·외식·에너지·통신 비용은 오히려 상승세를 키우고 있다. 농산물 가격 하락이라는 계절적 요인에 기대어 물가 안정을 강조하는 발표 방식 자체를 재검토하고, 가공식품과 외식을 포함한 '체감형 생활물가 지표'를 별도로 공표해 정책의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