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제품 수리성 높일 에코디자인 기준 마련 착수
부품·수리 정보·분해 편의 등 의견수렴…가전·전자제품·전동 이동수단은 예비 대상
[데일리환경=유승철 기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제품을 더 쉽게 수리하도록 하는 에코디자인 기준 마련에 착수했다. 집행위는 11월 3일 공개 의견수렴과 증거 수집 절차를 시작하고, 2027년 2월 9일까지 시민·기업·수리업계 등의 의견을 받는다. 수렴 결과는 지속가능제품 에코디자인 규정(ESPR)에 따른 위임법 제정 가능성을 검토하는 영향평가에 반영될 예정이다. 집행위가 제시한 위임법 채택 목표는 2027년이지만, 현재는 법안의 구체적 요구사항이나 적용 일정이 확정된 단계가 아니다. 의견수렴은 제품 수리 과정에서 소비자와 수리업자가 겪는 어려움, 그리고 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묻는다. 검토 항목에는 교체 부품에 대한 접근, 수리·유지보수 정보 제공, 소프트웨어와 펌웨어 요건, 제품의 분해·재조립 편의, 판매 시점의 수리 가능성 점수나 정보 제공이 포함됐다. 이는 확정된 의무 목록이 아니라 집행위가 문제와 선택지를 평가하기 위해 제시한 쟁점이다. 향후 기준은 기술적 실행 가능성과 제품별 특성,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따져 정해질 전망이다.초기 검토 대상으로는 일부 오디오·비디오 기기와 웨어러블·주변기기 등 소비자 전자제품, 일부 전기자전거와 전동킥보드 등 경량 이동수단, 주방·개인관리용 소형 가전이 제시됐다. 집행위는 준비 연구의 예비 결과를 바탕으로 든 사례이며, 실제 수평적 기준에 포함될지는 영향평가를 거쳐 확정한다고 밝혔다. 이미 제품별 규정이나 자율협약, 별도 규제 체계가 적용되는 품목은 중복을 피하기 위해 이번 조치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ESPR은 2024년 7월 18일 발효됐다. 에너지 관련 제품에 집중했던 기존 에코디자인 체계를 넓혀 물리적 제품의 내구성·재사용성·수리 가능성·재활용성 등을 개선하는 제품군별 요건을 정할 수 있는 틀이다. 규정 자체가 모든 제품에 즉시 같은 수리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아니다. 집행위가 제품군이나 여러 제품군에 공통으로 적용할 위임법을 마련하고, 그 법이 정한 성능·정보 기준이 적용되는 구조다.소비자의 수리권을 다루는 별도 법과도 구분해야 한다. 수리 촉진 지침(EU) 2024/1799는 2026년 7월 31일부터 적용돼, EU 법령에 수리 가능성 요건이 있고 지침 부속서에 열거된 상품에 제조사의 수리 의무 등을 둔다. 이번 의견수렴은 개별 고장 제품을 수리받을 소비자 권리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제품군에 적용할 설계·정보 기준을 만들 수 있는지 살피는 절차다. 해당 지침은 부속서 대상 상품에 대해 제조사의 수리 서비스 정보 제공과 일부 수리 정보 공개도 규정한다. 두 제도는 제품 수명을 늘리려는 목표를 공유하지만 규율 대상과 법적 단계가 다르다.환경 측면에서 수리 가능성을 높이는 기준은 제품을 오래 쓰고 조기 폐기물을 줄이려는 정책 수단이다. 다만 실제 효과와 기업 부담은 부품을 얼마 동안 공급할지, 수리 정보와 소프트웨어 접근을 어느 수준까지 보장할지, 분해·재조립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의견수렴은 이런 선택지를 검토하기 위한 단계이므로, 특정 방식이 확정됐거나 폐기물 감축량이 이미 산출됐다고 해석할 수 없다.한국 기업에 미칠 영향도 최종 적용 품목과 기준이 정해진 뒤 판단해야 한다. ESPR은 EU 시장에 출시되는 제품을 대상으로 제품군별 요건을 설정하는 법적 틀이므로, 향후 적용 대상에 포함되는 제품을 EU에 공급하는 국내 기업은 설계·부품·수리정보·적합성 자료를 점검해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발표만으로 한국 제품에 새 의무가 즉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대상 제품, 요구 수준, 유예기간과 시행 시점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앞으로 집행위는 의견과 준비 연구를 바탕으로 영향평가를 진행하고 위임법 제정 여부와 범위를 검토한다. 2027년은 집행위가 밝힌 채택 계획이며 확정된 시행일은 아니다. 소비자에게는 수리비와 제품 수명, 수리업계에는 부품·정보 접근, 제조사에는 제품 설계와 공급망 대응이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다. 최종 기준을 평가할 때는 수리 편의뿐 아니라 제품 안전, 비용, 소규모 사업자의 대응 가능성을 함께 따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