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넘은 산불 연무에 싱가포르 강경 대응…인도네시아 기업 10곳에 예방조치 통지
수마트라 7개사 이어 칼리만탄 3개사 추가…산불 진화·소각 중단·재발 방지 요구
초국경연무오염법 적용, 기업 책임 조사 확대…동남아 대기오염 공동 대응 주목
[데일리환경=정진욱 기자]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의 연기가 국경을 넘어 싱가포르의 대기질에 영향을 미치면서 싱가포르 정부가 산불과 연관된 것으로 의심되는 기업 10곳을 대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산불 발생 지역과 수백㎞ 떨어진 국가에서도 대기오염 피해가 발생하면서 산림과 토지 관리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국경 밖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싱가포르 국가환경청(NEA)은 지난 19일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지역의 산불과 관련해 기업 3곳에 '예방조치 통지(Preventive Measure Notice)'를 추가 발송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앞서 16일 수마트라 지역의 산불과 관련된 기업 7곳에 같은 통지를 보낸 데 이은 조치로, 이번에 통지 대상에 오른 기업은 모두 10곳으로 늘어났다. 새롭게 추가된 기업은 PT Buana Megatama Jaya, PT Mananjung Hayak, PT Baratama Putra Perkasa 등 3곳이다.싱가포르 국가환경청은 이들 기업이 토지 이용권을 보유한 칼리만탄 지역에서 발생한 화재의 연기가 싱가포르까지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해당 기업들에 산불 진화 인력 투입과 화재 확산 방지, 소각행위 중단, 재발 방지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기로 했다.특히 기업들은 자신들이 소유하거나 점유한 토지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고 추가적인 소각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아울러 산불 진화와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싱가포르 국가환경청에 제출해야 한다. 이번 조치는 싱가포르의 '초국경연무오염법(Transboundary Haze Pollution Act)'에 근거하고 있다.2014년 제정된 이 법은 싱가포르 국외에서 발생한 산불이나 토지 소각행위로 인해 싱가포르에 연무 피해가 발생한 경우, 일정한 법적 요건에 따라 관련 기업 등에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마련됐다.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대기오염의 특성상 오염물질이 발생한 국가와 피해를 입은 국가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제도다.다만 이번 예방조치 통지가 해당 기업들의 법적 책임이 확정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산불 발생 위치와 토지 이용관계, 연기의 이동 경로 등을 토대로 관련성을 조사하고 있으며, 기업의 대응과 추가 자료 등을 검토해 후속 조치를 판단하게 된다.동남아시아에서 반복되는 연무 문제는 인도네시아의 산림과 농경지, 이탄지에서 발생하는 화재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특히 이탄지는 식물 등 유기물이 오랜 시간 분해되지 않은 채 축적된 토양으로, 많은 양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다.일반적인 산림화재와 달리 이탄지에 불이 붙으면 지표면 아래에서도 연소가 지속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화재를 완전히 진압하기 어렵고, 장기간 많은 양의 연기와 미세먼지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연기는 계절풍을 따라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 인접 국가로 이동하면서 대기질 악화와 일상생활의 불편을 초래한다. 싱가포르 국가환경청에 따르면 지난 17일 싱가포르의 24시간 대기오염지수(PSI)는 130~199로 '건강에 해로운 수준(Unhealthy)'을 기록했다. 당시 칼리만탄에서 발생한 산불 연무가 남동풍을 타고 싱가포르 방향으로 이동했으며, 수마트라 지역에서도 연무가 관측됐다.싱가포르 정부는 연무가 시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실외활동과 관련한 보건 권고를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대기오염이 심해질 경우 어린이와 고령자, 임산부, 심장 및 폐 질환자 등은 건강상 위험이 커질 수 있어 야외활동을 줄이고 대기질 정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산불 연무는 대기질 악화에 그치지 않고 지역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시거리가 짧아지면 항공과 교통 운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고, 관광과 야외행사, 건설현장 등에서도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워질 수 있다.또한 산불로 훼손된 산림과 이탄지는 탄소 저장능력이 감소하고 생물다양성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산림과 이탄지는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이자 동남아시아 생태계의 중요한 기반이다. 산불이 반복될수록 서식지 훼손과 온실가스 배출 문제가 함께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이번 사태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산불 발생 지역의 토지를 관리하는 기업들에 대한 책임 문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팜유와 펄프, 목재 등 다양한 산업을 위한 대규모 농장과 조림지가 운영되고 있다.이들 산업은 국제적인 공급망과 연결돼 있어 특정 지역의 토지 관리 문제가 주변 국가뿐 아니라 해외 기업과 소비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기업의 토지 이용관계와 산불 발생 정황을 조사하고, 법률적·경제적·규제적 수단을 포함한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이 과정에서 기업의 직접적인 소각행위뿐 아니라 토지 관리와 화재 예방의무, 관련 기업 사이의 관계 등이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사이의 초국경 연무 문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동남아시아에서는 과거에도 대규모 산불로 인해 여러 국가의 대기질이 동시에 악화되는 일이 반복됐다. 특히 건조한 기후와 엘니뇨 현상이 겹치는 시기에는 산림과 이탄지의 화재 위험이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아세안 전문기상센터(ASMC)는 10월 들어 엘니뇨와 강수량 부족의 영향으로 동남아시아 남부 지역에서 산불과 연무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가 간 대기오염 문제는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지역 차원의 협력도 중요해지고 있다.산불 발생 지역에서는 화재 예방과 초기 진화, 토지 관리가 필요하고, 주변 국가에서는 위성 관측과 기상자료를 활용한 연무 이동 예측, 대기질 감시와 보건 대응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번 싱가포르 정부의 조치는 이러한 환경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의 책임을 보다 적극적으로 살피겠다는 의미를 지닌다.우리나라 역시 국제적인 원자재 공급망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동남아시아 산림과 토지 관리 문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팜유와 펄프, 목재 등은 국내 산업과 소비생활에도 사용되는 원료인 만큼,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산림 훼손과 화재 위험은 지속가능한 공급망 관리와 연결된다.싱가포르 국가환경청은 앞으로도 초국경 연무오염을 유발한 것으로 확인되는 기업에 대해 관련 법률에 따른 조치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바람을 따라 이동하는 연기에는 국경이 없다. 한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이 다른 나라 시민들의 건강과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실은 환경문제의 책임과 대응 역시 국경을 넘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