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환경
  데일리환경
닫기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생활
  • 세계
  • IT/과학
  • 보도자료
  • 인사/부고/사고
  • 오피니언
  • 지면보기

#빈자리

기사
  • [정기자의 뉴스정원] 당신의 빈자리에 내가 앉아도 될까 … 연극 "조립식가족"이 차리는 겨울 식탁
    문화/생활

    [정기자의 뉴스정원] 당신의 빈자리에 내가 앉아도 될까 … 연극 "조립식가족"이 차리는 겨울 식탁

    허규·윤영민·동현배 등 출연…네 번째 시즌, 12월 2~22일 대학로 세명대 민송아트홀
    [데일리환경=정진욱 기자] 명절이면 돌아갈 곳을 묻는 인사가 흔해진다. 누군가에게는 기차표 한 장으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래 삼켜야 하는 말이 된다. 집이 있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고, 함께 자란 사람이 있어도 선뜻 가족이라 부르기 어려운 이들이 있다. 연극 "조립식가족"은 그 머뭇거림 곁에 작은 식탁 하나를 놓는다. 그리고 저마다 다른 삶을 건너온 사람들에게 따뜻한 떡국 한 그릇을 내민다.공연제작사 창크리에이티브가 연극 "조립식가족"의 네 번째 시즌 캐스팅을 공개했다. 노주현 극본, 김태영 각색·연출로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11월 27일 정읍에서 먼저 관객을 만난 뒤, 12월 2일부터 22일까지 대학로 세명대 민송아트홀로 이어진다.작품은 보육원을 떠난 뒤 서른을 넘긴 청년들의 삶을 따라간다. 보호의 울타리 밖으로 나온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고, 부딪치고, 다시 누군가의 곁을 내어 주는 이야기다. 2021년 고양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초연한 뒤 2022년 대학로 드림시어터, 2025년 지구인아트홀을 거치며 무대를 이어 왔다.이야기가 시작되는 때는 설 연휴다. 정식의 집으로 같은 보육원에서 자란 모세와 희정이 찾아온다. 어렵게 자기 집을 마련한 정식, 성공한 사업가가 된 선배 모세, 택배 물류 현장에서 살아가는 희정. 여기에 정식의 집에 얹혀사는 정미까지 합류하면서 집 안에는 서로 다른 사연과 감정이 들어찬다.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서로의 마음까지 훤히 아는 것은 아니다. 반가움 뒤에는 서운함이 따라오고, 걱정으로 시작한 말이 누군가의 상처를 건드린다. 떡국을 앞에 둔 네 사람은 날 선 말을 주고받으며 저마다 감춰 둔 마음을 드러낸다. 그렇게 한 식탁에 앉아 있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 그럼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 간다."조립식가족"이라는 제목에는 이 관계의 모양이 담겨 있다. 처음부터 꼭 맞는 사람들만 모인 집은 아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온 마음을 돌려 보고, 비어 있는 곳을 살피며 자리를 맞춘다. 테트리스의 블록처럼 한 사람의 모서리가 다른 사람의 빈틈에 닿는다. 가족이라는 이름도 그 과정에서 천천히 생겨난다.작품은 보호가 끝난 청년들이 마주하는 현실을 담으면서도 인물들을 슬픔 속에만 세워 두지 않는다. 이들에게도 성질이 있고, 농담이 있고,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있다. 무거운 사연 사이로 명랑한 웃음이 흐르는 이유다. 웃으며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홀로 살아갈 집을 구하는 일과 힘든 날 찾아갈 사람을 얻는 일이 얼마나 다른지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이번 시즌 정식 역은 유도겸과 동현배가 맡는다. 정식은 다리를 저는 아픔을 안고도 묵묵히 자기 삶의 터전을 일군 인물이다. 집은 마련했지만 가족을 꿈꾸는 데는 조심스럽다. 자기 공간을 지키려는 마음과 누군가를 들이고 싶은 마음이 한 지붕 아래 머문다. 초연부터 정식을 연기해 온 유도겸과 새롭게 합류한 동현배가 그 단단함과 외로움을 각자의 결로 풀어낸다.모세 역에는 허규와 한동완이 이름을 올렸다. 결혼만 네 번째인 잔소리꾼 선배이자 성공한 사업가인 모세에게는, 끝내 돌아오지 않은 엄마를 기다리던 시간이 남아 있다. 사람들 앞에서 능청스럽게 웃는 얼굴과 오래된 기다림을 간직한 내면이 겹쳐지는 인물이다. 지난해에 이어 다시 무대에 서는 허규와 이번 시즌 함께하는 한동완이 모세의 서로 다른 표정을 보여 줄 예정이다.희정은 장혜민과 정유현이 연기한다. 열여덟에 보육원을 뛰쳐나와 택배 물류 사원으로 살아가는 희정은 욱하는 성미와 의리를 함께 지녔다. 거친 말투에는 쉽게 물러설 수 없었던 날들이 묻어 있고, 사람을 향한 마음에는 미처 닳지 않은 온기가 남아 있다. 두 배우는 희정의 생활력과 유쾌함을 통해 극에 생기를 더한다.갈 곳 없는 불청객 정미 역은 윤영민과 윤선아가 맡는다.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에게서 밀려난 정미는 남의 집 거실에 머물며 새로운 관계를 마주한다. 누군가의 집에 몸을 의탁한다는 불편함 속에서, 조금씩 숨을 고를 자리를 발견하는 인물이다. 새롭게 합류한 윤영민과 지난해에 이어 정미로 돌아오는 윤선아가 그 마음의 움직임을 그린다.무대 역시 인물들의 기억과 현재를 함께 품는다. 초연부터 작품을 이끌어 온 김태영 연출을 비롯해 정숙향 무대디자이너, 이상근 조명디자이너가 다시 참여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이야기는 공간의 겹침과 나뉨으로 펼쳐지고, 기존 공연의 ‘반딧불이 모티프’와 ‘무지 인형’은 희망과 연대를 전하는 무대 언어로 이어진다.반딧불이의 빛은 작다. 멀리서 보면 놓치기 쉽고, 환한 곳에서는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는 그 작은 빛 하나가 누군가의 시선을 붙든다. 작품 속 네 사람이 서로에게 내어 주는 자리도 그와 닮았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해도 오늘 저녁 혼자 앉아 있지 않게 하는 자리다.이 이야기를 쓴 노주현 작가는 보육원 퇴소 당사자다. 작품을 주관하는 한국고아사랑협회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보육원을 떠난 날의 기억이 가난보다 ‘다름’에서 비롯된 불안과 상실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먼저 그 길을 지나온 사람으로서 지금 같은 길을 걷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웃음과 함께 세상에 건네고 싶다는 뜻도 전했다. 그 마음은 설날이라는 배경을 만나 더욱 선명해진다. 가족의 안부를 묻는 말이 많아지는 계절, 네 사람은 정식의 집에 모여 자신들의 방식으로 명절을 보낸다. 서툰 말과 오래된 상처가 오가지만 식탁에는 함께 먹을 음식이 놓인다. 서로를 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한 끼를 나누는 동안, 혼자 견디던 시간에 작은 틈이 생긴다.12월, "조립식가족"이 다시 차리는 식탁에는 서로 다른 모양의 삶이 둘러앉는다. 누구 하나 매끈하게 다듬어진 사람은 없다. 다만 누군가의 빈자리를 알아보고, 자신의 의자를 조금 당겨 앉을 수는 있다. 가족이라는 말이 멀게 느껴졌던 이들에게 이 연극은 그렇게 자리를 권한다. 떡국이 식기 전에, 함께 먹자고.
    2026-10-22 09:54:27 정진욱
  • 데일리환경
  •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31길 17 (원효로3가) 2층
  • PC보기
Copyright ⓒ 데일리환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