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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연우 칼럼니스트

기자가 쓴 기사
  • [전연우 경제 칼럼] 메모리가 반도체의 전부가 됐다
    경제

    [전연우 경제 칼럼] 메모리가 반도체의 전부가 됐다

    - 칼럼니스트, 전연우 前 태일연구재단 이사장
    가격은 400% 뛰고, 애플조차 물량을 못 구한다올해 말까지 D램 가격이 연초 대비 400% 오를 거라는 전망이 나왔다. 한 해 사이 가격이 다섯 배 가까이 뛴다는 뜻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도 이례적인 수치다. 그리고 이 폭등의 중심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있다. 숫자로 보는 초호황올해 상반기 세계 반도체 매출은 7020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2% 늘었다. 반도체 시장 전체가 1년 만에 두 배로 커졌다는 뜻이다. 이 성장을 이끈 건 메모리 반도체였다. 같은 기간 메모리 부문 매출은 305% 급증했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는 올해 메모리 반도체가 사상 처음으로 전체 반도체 시장의 60%를 차지할 거라고 전망한다. 한때 시스템반도체와 메모리가 균형을 이루던 시장에서, 이제 메모리 홀로 시장의 절반을 훌쩍 넘는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이 배경에는 인공지능이 있다. 생성형 AI 서버와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메모리 업체들은 생산 역량을 HBM에 집중하고 있다. 문제는 그만큼 기존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 여력이 줄어든다는 데 있다. 한쪽을 채우기 위해 다른 쪽을 비우는 구조가, 지금의 극심한 공급 부족을 만들고 있다. 실제로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3분기에는 전 분기 대비 40~50%, 4분기에는 30~40% 추가로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한 해 두 번의 분기를 거치며 가격이 두 배 넘게 뛰는 셈이다.SK하이닉스, 25년 만의 권좌 교체이 흐름이 얼마나 이례적인지는 주가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 1년 반 동안 국내 반도체지수는 561% 뛰었다. 올해 들어서만 삼성전자 주가는 194.83%, SK하이닉스 주가는 348.39% 상승했다. 지난해에도 각각 125.38%, 274.35% 올랐던 걸 감안하면, 2년 연속 세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한 셈이다. 그 결과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이 삼성전자를 앞지르는 일까지 벌어졌다. 25년 7개월 만에 코스피 시가총액 1위 기업이 바뀐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 증시의 대명사였던 삼성전자가 같은 업종 안에서 왕좌를 내준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지금 메모리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드리우는 그림자, 반도체 공급난이 공급난은 이미 실물 경제에 파장을 미치고 있다. 애플은 부품 재고 부족 여파로 일부 맥북에어 모델의 출고를 9월 중순으로 미뤘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구매력을 가진 회사조차 원하는 시점에 메모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메타는 메모리 비용 상승을 이유로 올해 자본지출 전망치를 100억 달러 늘려 잡았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이 5년 이상 장기 공급 계약으로 물량을 선점하면서, 일반 소비재용 메모리 칩의 수급은 더 나빠지고 있다.한국은 웃고 있다이 국면에서 가장 웃는 쪽은 한국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사상 처음 100조원을 넘어설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증권가 컨센서스는 113조9832억 원, 연간으로는 삼성전자 360조7551억 원, SK하이닉스 260조9819억 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되는데, 두 회사를 합치면 올해 600조 원, 내년에는 1000조 원을 돌파할 거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내년 영업이익이 전망치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 479조5465억 원, SK하이닉스 371조5932억 원으로, 이 숫자가 실현되면 두 회사는 나란히 글로벌 반도체 기업 순위 1위와 3위 자리에 오르게 된다. 몇 달 전만 해도 이 지면에서 반도체 쏠림과 그로 인한 시장 변동성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다뤘던 것과는 결이 다른 국면이다. 실적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지금 이 두 회사는 역대 가장 유리한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다.이번엔 다르다는 근거반도체 업계 사람들에게 '슈퍼사이클'이라는 말은 낯설지 않다. 문제는 그 사이클이 늘 정점을 지나면 무너져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호황을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이전과 다른 구조적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과거 메모리 반도체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크게 출렁이며 실적 변동성이 컸다. 호황일 때 너도나도 설비 투자를 늘렸다가, 공급이 넘치면 가격이 폭락하고 다시 불황을 맞는 패턴이 반복됐다.이번엔 거래 구조 자체가 달라졌다. 빅테크 기업들이 5년 단위의 장기공급계약으로 물량을 미리 확보하면서, 메모리 업체 입장에서는 향후 몇 년 치 판매처와 가격이 상당 부분 확정된 상태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SK하이닉스도 내년 HBM 판매 계약을 수익성이 보장되는 선에서만 체결했다고 밝힌 바 있다. 공급 과잉이 이 사이클을 조기에 끝낼 우려는 크지 않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신규 생산 능력을 늘려도 그 대부분이 HBM에 투입되는 구조라, 일반 메모리 공급이 갑자기 넘쳐날 가능성 자체가 낮다는 것이다.반도체 호황기의 대가다만 이 호황이 모두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다. 최근 국내 컴퓨터와 휴대전화 가격이 눈에 띄게 오르고 있는데, 그 핵심 원인이 바로 이 메모리 가격 상승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해외 빅테크에 물건을 비싸게 팔수록, 국내 PC 제조사와 휴대전화 제조사들도 같은 값에 부품을 조달해야 한다. 결국 그 비용은 소비자 가격에 그대로 반영된다.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힘을 갖게 된 결과가, 정작 한국 소비자에게는 가전제품 가격 인상으로 돌아오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사이클인가, 구조 전환인가그렇다고 이 호황을 무조건 낙관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장기공급계약이 변동성을 줄인다지만, 그 계약이 전제하는 수요 자체가 꺾이면 얘기는 달라진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오라클이나 브로드컴 같은 AI 관련 기업들의 실적 발표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들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 AI 투자 둔화 우려가 곧바로 부각되고, 그 우려는 메모리 수요 전망에도 그대로 옮겨붙기 때문이다. 지금은 증권가 다수가 AI 버블론을 시기상조로 보고 있지만, 이런 경계심이 계속 따라붙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 호황의 지속 가능성이 완전히 검증된 건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한국 경제, 특히 수출과 증시가 반도체 두 회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는 이미 여러 번 이 지면에서 지적한 위험이다.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을 앞지른 사건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이변이지만, 동시에 한국 증시 전체가 메모리라는 단 하나의 업종, 그 안에서도 단 두 개 기업의 실적 흐름에 얼마나 크게 걸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지금의 초호황이 실적으로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그만큼 한국 경제 전체가 메모리 가격이라는 단 하나의 변수에 더 크게 걸리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호황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 흐름이 꺾일 때 감당해야 할 충격의 크기도 함께 커진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8-16 12:54:35 전연우 칼럼니스트
  • [전연우 경제 칼럼] 호르무즈에서 온 청구서
    경제

    [전연우 경제 칼럼] 호르무즈에서 온 청구서

    - 칼럼니스트, 전연우 前 태일연구재단 이사장
    7월 19일,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가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이 이유였다. 그런데 일주일여 뒤인 27일, 두 나라가 무력 충돌을 멈추고 물밑 협상을 벌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가는 장중 89.58달러까지 곤두박질치며 90달러 선이 무너졌다. 그리고 다시 이틀 뒤인 29일, 이란이 요르단 주둔 미군 기지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상황은 또 뒤집혔다. 브렌트유는 하루만에 7.91% 뛰어 90.74달러로 마감했고, 서부텍사스산 원유도 6.56% 오른 84.46달러를 기록했다.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유가는 오르고, 무너지고, 다시 뛰며 광분했다. 며칠 새 뒤집힌 그림이 등락의 진짜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속도다. 오르고 내리는 문제가 아니라, 시장이 하루아침에 '위기 완화'에서 '확전 우려'로, 다시 그 반대로 뒤집히는 일이 반복되면 기업도 정부도 대응할 시간을 벌기 어렵다. 실제로 이번 반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강도 높은 보복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시장이 원유 공급망 불안을 다시 가격에 반영한 결과였다. 시장 참여자들이 지금 가장 주목하는 건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성이다. 전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이 해협을통과하는 만큼, 군사 충돌이 길어지면 공급 차질은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다. 기름값은 국제 문제, 국내 셈법은 다르다?문제는 유가 상승이 국제 요인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데 있다. 최근 검찰은 국내 정유 4사가 중동 정세를 틈타 14조 원대 규모의 가격 담합을 벌인 사실을 적발했다. 국제유가가 오르는 시기를 이용해 국내 기름값을 부당하게 더 얹었다는 의혹이다. 국제 정세가 만든 상승분과, 국내 시장에서 얹힌 상승분을 구분해서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가가 오르는 건 막을 수 없어도, 그 위에 얹히는 부당한 폭까지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물가와 금리, 다시 유가로 돌아오는 이유유가 변동성은 곧바로 비용 부담으로 옮겨붙는다. 항공사들에게 유류비는 전체 영업비용의 30% 이상을 차지 하는 최대 지출 항목이다.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은 올해 2분기 유류비가 전체 영업비용의 42%까지 늘었고, 저비용 항공사들은 유류비와 리스비를 달러로 결제하는 구조라 영업적자 우려가 더 크다. 해운업계 사정도 다르지 않다.더 근본적인 문제는 물가와 통화정책이다. 유가가 계속 뛰면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이는 지난번 이 지면에서 다룬 기준금리 인상 압력을 한층 더 키운다. 성장, 물가, 환율, 자산시장까지 이미 인상 쪽으로 기울여 있던 저울에 유가라는 무게가 또 하나 얹히는 셈이다. 반대로 브렌트유가 100달러를 넘어서는 상황이 온다면, 중앙은행이 향후 금리를 낮출 수 있는 여력 자체가 줄어든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가가 오르면 물가 때문에 금리를 낮추기 어려워지고, 물가가 오르면 다시 서민 부담이 커지는 악순환이다.예측할 게 아니라 대비할 문제다유가가 다음 주에 오를지 내릴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열흘 사이 두 번 방향이 바뀐 시장을 두고 예측을 논하는 건 의미가 크지 않다. 중요한 건 이 변동성 자체를 전재로 두고 대비하는 일이다. 원유 도입처를 다변화하고, 화물차 기사나 소상공인처럼 경유 의존도가 높은 계층에는 직접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은 이미 여러 차례 나왔다. 동시에 국제 유가 상승을 명분 삼아 국내에서 부당하게 가격을 얹는 담합 같은 행위는 별개로 감시해야한다. 국제 정세가 만드는 변동성은 통제할 수 없어도, 그 위에 국내에서 더해지는 부담까지 방치할 이유는 없다.
    2026-07-31 06:56:59 전연우 칼럼니스트
  • [전연우 경제 칼럼] 저축은행 흑자, 부실은 어디로 옮겨갔나
    경제

    [전연우 경제 칼럼] 저축은행 흑자, 부실은 어디로 옮겨갔나

    - 칼럼니스트, 전연우 前 태일연구재단 이사장
    저축은행이 흑자로 돌아섰다는데, 신용등급은 왜 계속 떨어지나저축은행 업권이 지난해 4173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2023년과 2024년, 2년 연속 적자(각각 5758억 원, 4232억 원 손실)를 기록한 뒤 처음으로 흑자 전환이다. 그런데 정작 신용평가사들의 시선은 정반대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하나저축은행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췄고, 한국투자저축은행과 한화저축은행의 등급 전만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렸다. 흑자로 돌아섰다는 발표와, 등급이 계속 깎이는 현실이 같은 시기에 나란히 벌어지고 있다.부실은 사라진 게 아니라 이동한 것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험노출액은 2024년 말 13조9000억 원에서 2025년 말 8조9000억 원으로, 약 5조 원 줄었다. 숫자만 보면 부실이 크게 걷힌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감소분 상당 부분은 실제로 회수된 게 아니라, PF 정상화펀드에 매각된 뒤 그 펀드의 수익증권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같은 기간 저축은행 업권이 보유한 수익증권 잔액은 4조8000억 원에서 7조1000억 원으로 늘었다. 부실채권을 장부에서 지운 대신, 그 채권을 담은 펀드의 지분을 다시 사들인 셈이다. 위험이 없어진 게 아니라 이름을 바꿔 같은 회사 안에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 펀드의 회수율이 낮아지면, 지금 지워진 것처럼 보이는 손실은 언제든 다시 장부 위로 올라올 수 있다.회사마다 다른 온도차같은 업권 안에서도 처지는 저마다 다르다. 한국투자저축은행은 총자산순이익률이 0.0~0.5% 수준까지 하락했고, 부동산 관련 여신 부실과 개인사업자·중소기업 연체율 상승으로 대손상각비가 2023년 1889억 원에서 2025년 2485억 원까지 늘었다. NH저축은행은 지난해 중도금 대출 관련 손실을 대거 반영하며 978억 원의 순손실을 냈고, 자본 건전성을 보여주는 BIS자기자본비율은 2024년 말 18.0%에서 올해 3월 말 11.5%까지 떨어졌다. 금융당국이 권고하는 최저 수준인 11%에 근접한 수치이다.반면 우리금융저축은행은 오히려 등급 전망이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상향됐다. 대손비용률을 낮추고 부실자산을 상각·매각하며 건전성 지표를 실제로 개선했기 때문이다. 같은 업권, 같은 시기에도 부실을 진짜로 걷어낸 곳과 장부만 정리한 곳의 차이가 이렇게 갈린다.금리 인상이라는 새 변수여기에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겹친다. 조달금리가 오르면 저축은행의 이자 비용 부담이 커지고, 동시에 이미 취약한 차주들의 상환 능력은 더 나빠진다. 수익성과 건전성이 동시에 흔들릴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는 셈이다. 낮은 금리 시기에 쌓인 위험은 늘 금리가 오르는 시기에 그 실체를 드러낸다. 저축은행의 PF 부실도 예외는 아니다.흑자라는 말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되는 이유저축은행 업권 전체의 흑자 전환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흑자가 실제 부실 해소에서 온 것인지, 손실을 다른 계정으로 옮겨놓은 결과인지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예금자 입장에서 중요한 건 업권 전체의 평균이 아니라 자신이 거래하는 개별 저축은행의 건전성 지표다. 예금자보호한도 안에서 분산하는 기본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고, 특정 저축은행이 신용등급 하향이나 등급 전망 부정적 조정을 받았다면 그 이유가 단순 조달비용 문제인지, PF 부실과 직결된 것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더 근본적으로는 공시 방식 자체를 짚어야 한다. 부실채권을 펀드로 넘기는 방식이 회계상 허용된다 해도, 그 펀드의 실제 회수 가능성과 위험을 업권 전체 실적 발표에서 함께 보여주지 않으면 '흑자 전환'이라는 헤드라인만 남고 그 이면의 위험은 가려진다. 진짜 필요한 건 부실이 줄었다는 발표가 아니라, 그 부실이 어디로 옮겨갔고 지금 누가 그 위험을 떠안고 있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2026-07-18 07:59:46 전연우 칼럼니스트
  • [전연우 경제 칼럼] 강세장, 그 유통기한
    경제

    [전연우 경제 칼럼] 강세장, 그 유통기한

    - 칼럼니스트, 전연우 前 태일연구재단 이사장
    돈이 가장 많이 몰릴 때가, 늘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강세장은 영원하지 않다. 누구나 안다. 그런데도 매번 사람들은 욕심 앞에 그 사실을 잊는다. 한때 9,385였던 코스피 지수가 오늘(13일) 6,806까지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꾸 겹쳐 보이는 장면들이 있다. 역사 속에서 강세장이 저물기 직전, 늘 비슷한 신호들이 먼저 나타났다. 개인 자금이 몰릴 때가 항상 문제였다올해 들어 석 달 남짓한 기간 동안 개인투자자들의 신규 자금 유입 규모는 67조 원을 넘어섰다. 2020년과 2021년, 이른바 '동학개미' 열풍이 불었던 시기의 연간 유입액(각각 73조원, 75조 원)에 맞먹는 수준이다. 지난 3월 이후 외국인이 코스피에서 40조 원 넘게 팔아 치우는 동안, 그 물량을 받아낸 것도 개인이었다. 개인투자자들의 순매수 규모 역시 40조 원에 달했다.문제는 이런 규모의 개인 자금 유입이 처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으로 증시가 역사상 가장 뜨거웠을 때, 신규 자금은 정확히 코스피 고점 부근에서 몰려들었다. 1990년대 중반 반도체 호황을 등에 업은 1차 기관화 장세 때도, IMF 외환위기 직후 바이코리아 펀드 열풍 때도, 2000년대 중반 주식형 펀드 붐 때도, 그리고 2020-2021년 동학개미 열풍 때도 마찬가지였다. 돈은 언제나 주가에 뒤늦게 반응한다. 그래서 대체로 강세장의 8-9부 능선에서 가장 많은 돈이 들어온다.초심자의 행운이라는 착각이런 흐름에는 심리적인 이유가 있다. 생애 처음 투자를 시작한 사람이 의외로 돈을 버는 경우가 많다. 늦게 들어올수록 강세장의 막바지에 올라타는 셈이니, 얼마 간은 상승장의 수혜를 함께 누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첫 성공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데 있다. 자신이 번 돈이 시장이 만들어준 것인지, 자신의 판단이 정확했기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그 혼동은 투자금을 더 늘리는 쪽으로 이어지기 쉽다. 뒤늦게 시장에 들어온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건 '나는 시장의 흐름을 안다'는 착각이다. 코스피가 2000, 3000, 4000을 지나는 동안 움직이지 않다가 5000을 넘긴 뒤에야 뛰어든 사람에게, 갑자기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생길 리는 없다.레버리지는 승부를 빠르게, 퇴장도 빠르게 만든다여기에 레버리지가 얹히면 이야기는 더 위태로워진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투자하는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38조 원대까지 불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 변동폭의 두 배를 따라가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까지 등장했다. 분산 없이 개별 종목에, 그것도 레버리지를 더한 상품이다. 레버리지 투자의 진짜 위험은 손실 폭이 커진다는 데 있지 않다. 회복이 불가능해진다는 데 있다. 주가가 50% 빠지면 원금을 되찾기 위해선 그다음에 100% 올라야 한다. 그런데 과도한 레버리지를 쓴 투자자는 그 회복이 오기도 전에 이미 시장 밖으로 밀려난다. 장기적으로 옳은 판단을 하고 있었더라도, 중간의 흔들림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퇴장당하는 것이다.완주가 실력이다강세장이 이제 끝난다고 단정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지금 나타나는 신호들, 사상 유례없는 개인 자금 유입 속도와 늘어난 신용융자, 레버리지 상품의 확산은 과거 여러 강세장의 끝자락에서 반복됐던 패턴과 닮아 있다. 투자는 결국 두 가지 경우에만 멈춘다. 완전히 망했을 때, 아니면 감내하기 어려운 손실을 겪었을 때다. 그 전까지 시장에 남아 있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내 생각엔 지금 필요한 건 시장에서 발을 빼는게 아니라, 시장에 남아 있을 수 있는 크기로 포지션을 줄이는 일이다. 빚을 내서 몰아넣은 투자는 수익을 키우는 만큼 퇴장의 속도도 키운다. 진짜 실력은 얼마나 빨리 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에서 갈린다. 강세장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사람이, 결국 가장 많이 버는 사람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7-13 20:25:21 전연우 칼럼니스트
  • [전연우 경제 칼럼] 경상수지는 역대급인데, 환율은 왜 거꾸로 가는가
    경제

    [전연우 경제 칼럼] 경상수지는 역대급인데, 환율은 왜 거꾸로 가는가

    - 칼럼니스트, 전연우 前 태일연구재단 이사장
    수출은 사상 최대인데 환율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다.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지금 한국 경제에서 벌어지고 있다. 수출이 늘어나면 달러가 국내로 들어오고, 달러 공급이 많아지면 원화 가치는 올라가며 환율은 내려가는 것이 경제의 기본 공식이었다. 그러나 지금 시장은 더 이상 그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올해 1~5월 누적 경상수지는 1,412억8,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지난해 연간 최대 기록인 1,230억5,000만 달러를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넘어섰다. 6월 수출도 월간 기준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돌파했고 상반기 수출 역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그런데도 원·달러 환율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고 있다. 7월 초까지 환율은 36거래일 연속 1,500원대를 유지했고, 상반기 평균 환율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수출은 역대 최고인데 원화는 약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이제 환율은 무역보다 자본이 움직인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우리 외환시장의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고 분석했다.과거 환율은 수출과 수입 같은 상품거래가 좌우했다. 하지만 지금은 해외투자와 외국인 자금 이동 같은 금융자본의 흐름이 환율을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2000년 이후 환율 변동 원인을 분석한 결과 금융충격이 상품충격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했고, 특히 2015년 이후에는 자본유출에 따른 원화 약세 현상이 더욱 빈번해졌다.결국 한국은 무역으로 달러를 벌고 있지만, 금융시장을 통해 그 달러가 다시 해외로 빠져나가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경상수지 흑자인데 시장에는 달러가 남지 않는다최근 몇 년간 나타난 자금 흐름을 보면 그 이유가 명확해진다. 최근 4개 분기 동안 한국은 약 1,779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하지만 같은 기간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만 1,121억 달러에 달했고,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대거 매도하며 약 448억 달러를 회수했다.수출로 벌어들인 달러 상당 부분이 다시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실제 국내 외환시장에 남는 달러는 크게 줄어든 것이다. 달러를 벌어도 시장에는 남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서학개미와 연기금이 바꾼 달러의 길이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해외투자의 급격한 확대다. 예전에는 수출기업이 벌어들인 달러가 상당 부분 한국은행 외환보유액으로 쌓였다.하지만 지금은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규모가 급격히 커졌다. 우리나라 대외자산에서 외환보유액 비중은 14.9%까지 낮아진 반면, 해외 증권투자는 44%를 넘어서고 있다.특히 해외 주식의 3분의 2 이상이 미국 시장에 집중되면서 국내에서 벌어들인 달러가 곧바로 미국 금융시장으로 이동하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여기에 고령화로 저축이 늘어나면서 소비 대신 해외 금융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흐름도 환율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외환시장은 얕고 충격에는 더 민감하다한국 외환시장의 구조도 문제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동일한 규모의 자본유출이 발생했을 때 원화 환율의 반응은 일본이나 호주보다 훨씬 크다.외환시장의 깊이가 충분하지 않아 조금만 자금이 빠져도 환율이 크게 흔들리는 구조다. 달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거래되는 달러가 부족한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수출기업도 달러를 쉽게 팔지 않는다최근에는 수출기업들의 행동도 달라졌다.예전처럼 달러를 벌자마자 원화로 환전하기보다, 환율이 더 오를 가능성을 고려해 달러를 외화예금으로 보유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시장에는 달러가 존재하지만 실제 현물환 시장에서는 거래되지 않는다.달러가 없어서 환율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달러가 시장에 풀리지 않아 환율이 쉽게 내려오지 않는 구조다.삼성전자가 보여준 또 하나의 신호이 같은 변화는 최근 국내 증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삼성전자가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발표했지만 주가는 오히려 큰 폭으로 하락했고, 외국인은 하루 동안 수조 원 규모의 순매도를 기록했다.기업 실적은 좋아졌지만 외국인 자금은 한국 시장을 떠났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매도하면 원화를 달러로 바꿔 해외로 가져간다.주식시장에서는 주가 하락으로 나타나고, 외환시장에서는 환율 상승으로 이어진다. 겉으로는 서로 다른 현상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자금 이동이 만들어낸 결과다.과거에는 기업 실적이 시장을 움직였다면, 지금은 자본이 어느 나라를 선택하느냐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된 것이다.수출이 좋아도 환율은 오를 수 있다지금의 고환율은 수출 부진 때문이 아니다.오히려 수출과 경상수지는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문제는 그렇게 벌어들인 달러보다 더 많은 달러가 해외투자와 외국인 자금 이탈, 그리고 기업들의 달러 보유를 통해 시장 밖으로 빠져나가거나 묶여 있다는 점이다.'수출이 잘되면 원화는 강세가 된다'는 공식은 더 이상 절대적인 법칙이 아니다. 앞으로 환율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무역 규모보다 자본이 어디로 이동하느냐가 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한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달러를 벌어들이는 나라 중 하나다.그러나 이제 시장은 단순히 얼마를 버느냐보다 그 달러가 어디에 머무느냐를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달러를 버는 경제와 달러가 남는 시장은 더 이상 같은 의미가 아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 외환시장이 보여주는 가장 큰 구조적 변화다.
    2026-07-11 07:45:22 전연우 칼럼니스트
  • [전연우 경제 칼럼] 레버리지가 지운 이름 ... 시스템은 남고, 책임은 사라지다
    경제

    [전연우 경제 칼럼] 레버리지가 지운 이름 ... 시스템은 남고, 책임은 사라지다

    - 칼럼니스트, 전연우 前 태일연구재단 이사장
    누가 이 상품을 승인했는지, 이제 아무도 선명하게 답하지 않는다5월 27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상장되던 날을 기억한다. 하루 등락률의 두 배를 그대로 따라가는 상품이라는 소식에, 위험한 구조라는 걸 그때부터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상품이 한 달 반 만에 국내 증시 전체를 흔드는 진앙지로 지목될 거라고는, 그리고 그 책임을 두고 아무도 선뜻 손을 들지 않는 상황이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규모는 늘고, 이름은 흐려졌다숫자만 보면 이 상품의 성장은 놀랍다. 상장 당시 약 5조 원이던 이른바 삼전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ETF 합산 시가총액은 7월 첫째 주 기준 15조 원 가까이 불어났다. 지난달 레버리지 14종 거래대금은 212조 원에 달했고, 개인 투자자 비중은 92%에 이른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의 코스피 거래대금 비중은 27.9%에서 63.5%까지 치솟았다.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을 두 종목이 차지하는 구조 위에 레버리지가 얹히면서, 하루 등락폭이 10%에 육박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코스피 변동성 지수는 6월 말 장중 97.99까지 치솟아 2009년 공식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공식 집계 이전인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기록인 장중 103.05에는 못 미쳤다. 그해 26차례였던 사이드카 발동은 올해 벌써 31차례를 기록했다.문제는 이 폭발적 성장 뒤에 남은 손실이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SNS를 통해 최근 한 달간 관련 상품 14종이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고, 일부는 손실률이 35%를 넘었다고 주장했다. 하루 수익률의 두 배를 추종하는 구조는 변동성이 큰 장에서 원금을 갉아먹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걸, 상품을 산 사람 대부분은 사고 나서야 알았을 것이다.승인할 땐 긍정적이었다지금은 다들 이 상품을 문제라고 말한다. 그런데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분위기는 달랐다. 금융당국은 이 상품이 해외 투자자금을 국내로 끌어들이고 가격발견 기능을 개선할 거라 기대했다. 한국은행조차 지난달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긍정적 효과를 함께 언급하며 시장 영향은 제한적일 거라 평가했다.한 달이 지난 지금, 같은 기관들의 목소리는 정반대로 바뀌었다. 한국은행은 국회 답변에서 시장 쏠림 심화 가능성을 경고했고, 금융감독원장은 "그때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다"고 뒤늦게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상장폐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금융당국 수장 책임론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애초에 이 상품을 승인한 제도, 그 결정의 근거가 됐던 낙관적 전망은 누가 다시 책임지는지 분명하지 않다. 경고는 늘 사후에 나오고, 승인은 늘 익명의 절차 뒤에 남는다.퇴출도 쉽지 않다더 아이러니한 지점은 이제 와서 이 상품을 없애기도 어렵다는 사실이다. 한국거래소는 상장폐지를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유는 역설적이다. 통상 ETF 상장폐지는 거래가 부진하거나 순자산이 쪼그라들 때 이뤄지는데, 이 상품은 정반대로 거래가 너무 활발하다. 규정에 '공익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 상장폐지가 가능하다는 조항이 있긴 하지만 실제 적용된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문제를 일으킨 상품이 오히려 그 문제의 규모 때문에 손대기 어려운 존재가 된 셈이다.여기에 형평성 문제까지 겹친다. 이 상품만 콕 집어 퇴출하면 다른 고위험 레버리지 상품과의 규제 기준이 흔들린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신규 상장 제한이나 거래 문턱을 높이는 정도의 '현행 제도 개선' 뿐이다. 그러나 이미 시장에 풀린 15조 원과 그 위에서 손실을 본 92%의 개인 투자자에게, 제도 개선은 사후약방문에 가깝다.시스템은 남고, 책임은 사라진다이 상품을 둘러싼 지난 한 달 반의 흐름을 정리하면 이렇다. 도입할 때는 낙관적 전망이 있었고, 성장할 때는 다들 지켜만 봤고, 문제가 터지자 그제야 모두가 뒤늦게 경고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선뜻 없애지 못한다. 이 상품의 이름은 시장 전체를 흔들 만큼 커졌지만, 정작 그 결정을 누가 내렸고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이름은 그 어디에도 선명하게 남아있지 않다.금융 상품 하나의 존폐를 논하는 건 사실 부차적인 문제다. 진짜 물어야 할 건, 특정 종목에 국내 증시 전체가 이렇게까지 쏠릴 수 있었던 구조, 그리고 그 구조 위에 새로운 상품을 얹기로 한 결정이 어떤 검증을 거쳤는지다.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다음번에 비슷한 상품이 나올 때도 우리는 똑같은 순서를 반복할 것이다. 낙관, 방치, 뒤늦은 경고, 그리고 아무도 지지 않는 책임.*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7-10 07:20:41 전연우 칼럼니스트
  • [전연우 정치 칼럼] 팬덤이라는 신앙, 민주주의를 흔드는 침묵의 비용
    정치

    [전연우 정치 칼럼] 팬덤이라는 신앙, 민주주의를 흔드는 침묵의 비용

    - 칼럼니스트, 전연우 前 태일연구재단 이사장
    비판이 배신으로 읽히는 순간, 정치는 종교가 된다. 지지와 믿음은 다르다. 지지는 정책과 성과를 기준으로 선택하고, 그 기준이 달라지면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 반면 믿음은 사실과 근거보다 충성에 무게를 둔다. 잘못이 드러나도 인정하기보다 부정하고, 비판하는 사람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강화한다. 최근 한국 정치를 바라보면 '지지자'보다 '신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장면이 적지 않다. 특정 정치인이 논란에 휩싸여도 잘못 자체를 부정하거나,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정치적 비판이 정책 검증이 아니라 진영 공격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민주주의의 토대인 토론은 설 자리를 잃는다.양극화의 숫자가 보여주는 현실이 같은 현상은 단순한 체감만은 아니다.한 시장조사기관이 2025년 초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응답자의 66%가 우리 사회에 팬덤 정치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 진단에서도 진보와 보수 간 갈등은 4점 만점에 3.52점으로 가장 심각한 사회 갈등으로 조사됐다.또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7%가 정치적 양극화가 이전보다 심해졌다고 답했다. 흥미로운 점은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반대편을 지목했다는 것이다.결국 모두가 갈등을 걱정하지만, 정작 자신이 속한 진영은 문제의 원인으로 보지 않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인식은 상대를 설득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알고리즘이 만든 진영의 벽디지털 플랫폼의 발달은 정치 참여의 문턱을 크게 낮췄다. 누구나 유튜브와 SNS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민주주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다.그러나 동시에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은 이용자가 보고 싶은 정보만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과 '에코체임버(Echo Chamber)' 현상을 강화했다.비슷한 의견만 접하다 보면 자신의 생각이 절대다수라고 착각하기 쉽다. 반대 의견은 틀린 의견이 아니라 악의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결국 정치적 토론은 사라지고 감정적 대립만 남는다.팬덤 정치가 온라인에서 빠르게 확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확성기가 된 미디어, 표적이 된 이견과거에는 정치적 의견을 낼 수 있는 통로가 제한적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방송국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유튜브와 SNS는 시민 참여를 확대했지만 동시에 조직적인 여론전도 가능하게 만들었다.특정 기사나 게시물에 집단적으로 몰려가 댓글을 작성하는 '좌표찍기', 같은 진영 정치인에게 문자폭탄을 보내거나 전화 항의를 조직하는 행태는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실제로 이러한 집단행동은 이미 2017년 정당 경선 과정에서도 나타났고 이후 거의 모든 진영에서 반복되고 있다.문제는 정치인 역시 이런 압박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소수의 열성 지지층은 즉각적으로 문자와 댓글, 게시판을 통해 반응하지만 침묵하는 다수는 아무 말 없이 다음 선거에서만 평가한다.정치인 입장에서는 눈앞의 항의가 훨씬 큰 정치적 비용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언론 환경 역시 이러한 구조를 강화한다.협치와 타협은 조회수를 만들기 어렵지만, 충돌과 막말은 빠르게 확산된다. 국회에서 정책을 조율하는 장면보다 고성과 몸싸움이 더 많이 보도되는 이유다.결국 정치인들도 조용히 성과를 만드는 것보다 강한 언어로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유혹에 빠지기 쉬워진다.민주주의를 흔드는 팬덤의 역설팬덤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대표성이 왜곡된다는 점이다.조직된 소수는 매우 크게 보이고, 침묵하는 다수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된다.정당은 점점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기존 지지층을 관리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정책 경쟁보다 충성 경쟁이 우선되고, 능력보다 진영 논리가 인사를 결정하는 일도 늘어난다.결국 정치는 국민 전체를 위한 경쟁이 아니라 자기 진영만을 위한 경쟁으로 축소된다.민주주의는 원래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고 타협하는 제도다. 하지만 팬덤 정치에서는 타협 자체가 배신으로 해석된다.정책 수정은 원칙 없는 변신이 되고, 협치는 투항이 되며, 상대와 대화하는 정치인은 내부에서 먼저 공격받는다.이러한 문화에서는 정치인의 책임 정치도 기대하기 어렵다. 정책 실패보다 지지층 관리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 정치의 방향은 국민이 아니라 팬덤을 향하게 된다.믿음이 된 정치팬덤이라는 표현이 무거운 이유는 정치가 점점 종교의 구조를 닮아가기 때문이다.종교에서는 믿음이 의심보다 우선한다. 정치는 원래 검증과 비판을 전제로 하지만, 팬덤 정치에서는 비판보다 충성이 먼저 요구된다.지지하는 정치인의 실수는 음모론으로 설명되고, 언론 보도는 모두 왜곡으로 치부되며,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배신자로 낙인찍힌다.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자기 성찰이다.건강한 민주주의는 같은 편에게도 "그 부분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유지된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가 사라질수록 정치는 스스로를 교정할 능력을 잃는다.가장 큰 피해자는 침묵하는 시민극단적인 정치의 가장 큰 피해자는 사실 극단적인 사람이 아니다.조용히 정책을 비교하고, 실적을 평가하며, 상식을 기준으로 투표하려는 시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이들은 정치적 혐오감 때문에 점점 정치에서 멀어진다.투표율은 낮아지고, 정치 토론에는 참여하지 않으며, 결국 가장 큰 목소리를 가진 집단만 정치권에 영향을 미친다.그 결과 다시 팬덤의 영향력은 커지고, 침묵하는 다수는 더욱 소외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민주주의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한 제도다. 그러나 정치가 팬덤 중심으로 움직일수록 조용한 시민의 의사는 점점 정책 결정 과정에서 멀어진다.열성은 자산이지만, 맹신은 위험하다열성적인 지지자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정당 활동을 하고, 정책을 공부하며, 정치 참여를 확대하는 일은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원동력이다.문제는 열성이 비판을 거부하는 맹신으로 변할 때다.정당이 열성 지지층의 의견을 듣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만 듣기 시작하는 순간 정당은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조직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으로 변질될 수 있다.정치는 특정 인물을 위한 충성 경쟁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책 경쟁이어야 한다.정치인은 비판받을 수 있어야 하고, 지지자는 잘한 것은 칭찬하고 잘못한 것은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다.비판을 배신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정치는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다.그 순간 정치는 설득보다 신앙을, 토론보다 충성을, 책임보다 맹목적 믿음을 요구하게 된다.민주주의는 서로 같은 생각을 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하고 타협하며 더 나은 결론을 만들어가는 제도다. 정치가 종교가 되는 것을 막는 마지막 안전장치는 정치인도, 정당도 아닌 시민의 비판적 사고와 균형감각이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7-10 07:20:22 전연우 칼럼니스트
  • [전연우 정치 칼럼]  선거철엔 '청년', 끝나면 '들러리'…청년정치가 소모되는 구조
    정치

    [전연우 정치 칼럼] 선거철엔 '청년', 끝나면 '들러리'…청년정치가 소모되는 구조

    - 칼럼니스트, 전연우 前 태일연구재단 이사장
    "정치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열여덟 살, 누구보다 이른 나이에 정당에 발을 들인 한 청년 정치인의 고백이다. 그는 당대표 홍보팀을 시작으로 국회의원 청년특보단장, 국회의원 비서관, 정당 당협위원장, 시장선거 선거사무장 등을 거치며 정치권 내부를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또래보다 빠르게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정치권의 의사결정 과정과 수많은 정치인을 지켜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 가지 공통된 현실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한다.'청년 정치'는 정치개혁의 상징으로 소비됐지만, 실제 권한을 가진 정치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는 것이다.청년 대표성은 여전히 최하위권22대 국회에서 40세 미만 국회의원은 전체 300명 가운데 14명으로 4.6%에 불과하다. 청년 유권자가 전체 유권자의 약 30%를 차지하는 현실과 비교하면 대표성은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문제는 공천 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청년 지역구 후보 공천 비율은 5% 안팎에 그쳤고, 상당수는 당선 가능성이 낮은 지역에 배치됐다. 비례대표를 제외하면 청년 의원 비율은 2% 수준까지 떨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노르웨이와 스웨덴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청년 의원 비율이 30%를 넘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서도 낮은 수준이다.대표성 부족은 정책으로도 이어진다.22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가운데 청년·신혼부부·대학생 등 2030세대를 직접 대상으로 하는 법안은 전체의 약 4% 수준에 머물렀다.현직 30대 의원들 역시 "청년은 선거철에는 변화와 쇄신의 상징으로 불리지만 평소에는 정책 파트너가 아니라 홍보용 이미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한다.얼굴은 필요하지만 권한은 없다정당들이 청년을 적극 영입하는 이유는 분명하다.청년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만으로도 '변화', '혁신', '세대교체'라는 이미지를 비교적 손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실제 권한을 나누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공천관리위원회나 정책위원회처럼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조직에는 청년 참여가 제한적인 반면, 권한이 크지 않은 청년위원회나 각종 상징적 조직에는 청년들이 대거 배치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회의에는 참석하지만 결정권은 없고, 발언 기회는 있지만 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오랜 기간 정치권을 경험한 이들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부터 그렇게 설계된 구조"라고 입을 모은다.조회수가 실력을 대신하는 정치청년 정치인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존재감을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은 많은 청년 정치인을 SNS 중심 정치로 이끌었다.그러나 SNS 알고리즘은 정책 설명보다 자극적인 발언과 상대를 향한 공격, 논란성 콘텐츠를 더 빠르게 확산시킨다.그 결과 정책 역량보다 화제성으로 주목받는 '어그로형 정치'가 확산됐다는 평가다. 실제로 자극적인 발언 하나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는 사례는 적지 않다.하지만 이런 관심은 정책 신뢰로 이어지기보다 청년 정치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현장을 뛰며 정책을 연구하는 청년 정치인들까지도 같은 이미지로 소비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결국 정당은 청년을 상징으로 소비하고, 일부 청년 정치인은 스스로를 조회수 중심의 정치인으로 소비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필요한 것은 '새 얼굴'이 아니라 '새 자리'전문가들은 청년 정치 활성화의 핵심은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는 데 있지 않다고 말한다.공천 과정과 정책 결정, 주요 심사기구 등 실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자리에서 청년들이 실질적인 의결권을 갖도록 제도를 바꾸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청년 정치인들에게도 과제는 남는다.조회수와 화제성을 정치적 성과로 착각하지 않고, 실제 정책 역량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정치권을 떠난 한 전직 청년 정치인은 "정치의 현실을 직접 경험했고 후회는 없다"며 "다음 세대 청년들에게는 얼굴이 아니라 자리를 요구하고, 동시에 그 자리를 지킬 실력도 함께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7-09 07:32:23 전연우 칼럼니스트
  • [전연우 경제 칼럼] 패닉이 지나간 자리 ...  조정을 겪어본 적 없는 주식, 그 경제 시장의 얼굴
    증권

    [전연우 경제 칼럼] 패닉이 지나간 자리 ... 조정을 겪어본 적 없는 주식, 그 경제 시장의 얼굴

    서킷브레이커가 연이어 걸리던 날, 화면 속 숫자는 더 이상 숫자가 아니었다. 계좌 잔고도, 수익률도 아닌 심장을 쑤시는 싸늘한 경고음이었다. 필자는 그날 들고 있던 모든 종목을 팔았다. 몇 년을 지켜본 포지션도 예외는 없었다. 후회는 없지만 그 순간 깨달은 것은 필자는 지금까지 수익률을 관리한 게 아니라 리스크를 방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조정을 몰랐던 사람들의 시장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식은 함부로 발 담글 곳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 반도체 랠리가 시작되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뒤집혔다. 이제는 주식을 안하는 게 현명하지 못한 것이라는 인식이 되었다. 코스피는 비정상적으로 폭등하며 2026년 1월 사상 처음 5000선을 넘긴 뒤, 5월에 7000선, 5월 말 8000선, 6월에는 9000선까지 반년도 안 되는 사이 거의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이 속도로 오르는 시장을 실제로 경험해본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전례가 없기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과거에 주식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주식을 하지 않던 사람들까지 너나나나 모인 이 시장 속에서 대다수는 '조정'이라는 것을 몸으로 겪어봤을 리 만무했다.경험 없는 상승장은 늘 같은 방식으로 움직였다. 오르는 걸 지켜보기만 하다가는 소위 FOMO라고 불리는 뒤처진다는 조바심이, 전 재산은 물론 대출까지 끌어오게 만들었다. 실제로 국내 증시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2025년 말 27조원대에서 2026년 올해 38조 가까이 늘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그마저도 시장 전체로 고르게 퍼진 게 아니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 두 종목에 전체 신용잔고의 3분의 1이 넘는 자금이 쏠렸다. 분산은 이론에나 남고, 실제로는 극소수 종목에 빚까지 얹어 몰아넣는 방식으로 투자가 이뤄졌고 그렇게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한 달 가까이 이어진 폭락장 속에 개미들이 제대로 대체하지 못한 데는 '위험한 태도'가 상당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조정 신호는 이미 여러 차례 왔다. 기관과 외인의 상당 기간 이어진 매도세에 7월에 있을 국민연금 리밸런싱까지. 그러나 그 경고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보다, 주식을 미처 사지 못한 사람들의 배 아픈 소리 정도로 와전되었고 치부되었다. 오르는 시장에서는 리스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늘 '못 탄 사람의 훼방'으로 들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여러 번의 경고가 무시된 끝에 코스피 지수는 3주에 걸쳐 9385에서 7186까지 폭락하고 하루 만에 코스피 지수가 8% 넘게 빠지며 거래 자체가 멈추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기도 했다. 심지어 국내 대표 기업이 세계에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역대 최대 실적을 발표한 바로 그날조차도 주가는 오히려 두 자릿수에 가깝게 폭락했다. 실적이 아니라 그동안 쌓인 쏠림과 빚투가 얼마나 위태로웠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빚으로 주식을 산 이들에게 반대매매가 강제로 집행되는 끔찍한 사례도 함께 늘었다. '진짜 조정'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시장이 처음 맛본 조정은, 그래서 유독 대처하기 힘든 형태로 찾아왔다.집중은 확신이 아니라 방치다투자자들은 종종 집중 투자를 확신의 증거로 착각한다. 특정 섹터에, 특정 국가에, 특정 종목에 자산을 몰아넣고는 그것을 '소신'이라 부른다. 그러나 소신과 방치는 한 끗 차이다. 랠리가 이어지는 동안 개인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는 점점 더 좁아졌다. 분산이라는 단어는 교과서에만 남고, 실제 계좌는 몇 개의 산업, 몇 개의 종목에 갇혀 있었다.더 씁쓸한 건 국민연금의 사정이다. 국민연금조차 이 쏠림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평가액이 랠리를 타고 급증하면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연초에 정해둔 한도를 이미 넘어선 상태였다. 팔아서 비중을 맞추는 대신 유예를 받아 초과분을 그대로 들고 갔고, 정작 시장이 무너진 7월, 그 유예 기간마저 끝나 있었다. 외국인과 기관이 팔아치우던 순간, 수십 년을 내다보고 움직인다는 이 거대한 자금은 시장을 받쳐줄 여력이 없었다. 완충 장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완충 장치가 없었던 셈이다. 수십 년 단위로 움직이는 연기금조차 같은 쏠림에 갇혀 방어력을 잃는다면, 개인 투자자가 그보다 더 좁은 시야로, 그보다 더 얕은 체력으로 버틸 수가 없다.방어는 후퇴가 아니다패닉 이후 많은 이들이 현금을 쥐고 관망한다. 하지만 관망도 하나의 선택이고,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진짜 방어란 시장을 떠나는 게 아니라,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을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국내 대형주 지수와 미국 광범위 시장 지수를 함께 담는 전략은 화려하지 않다. 급등도, 극적인 수익률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종목이 급락해도, 어떤 나라의 정책이 바뀌어도 포트폴리오 전체가 한꺼번에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 그 하나만은 지켜준다. 패닉을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이 밋밋함의 가치를 안다.패닉이 지나간 자리에 무엇을 심을 것인가시장은 다시 오를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문제는 오르는 시장에서 무엇을 들고 있느냐다. 다시 특정 종목으로, 다시 빚을 내서 몰아넣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건 이번 패닉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뜻이다.패닉이 지나간 자리에는 두 부류가 남을 것이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같은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과, 그 잿더미 위에 새로운 구조를 세우는 사람. 필자는 후자를 택할 것이다. 국내 지수와 미국 지수, 그 두 축 위에 다시 포트폴리오를 얹는다. 화려하지 않지만, 다음 패닉이 왔을 때는 심리적인 사유로 또 다시 전량 매도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될 것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7-08 19:34:42 전연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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